와인이 어딨지? [6]
우리는 나머지 점심시간에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우린 친구가 될거야〉와 벨벳 언더그라운등의 〈시간이 흘러〉의 가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고, 그 시간은 내 청소년기 인생에서 가잔 낭만적인 기적처럼 느껴졌다. 어는덧 나는 몇곡을 직접쓰게 되었고, 그걸로 코즈믹 피자 식당에서 열리는 열린 무대의 밤에 출연해 보기로 결심했다. 코즈믹 피자는 시내에 있는 식당으로 앞에는 앉아서 식사를 할 수 있는 카페 테이블이 여러개 놓여 있고, 바 뒤쪽에 작은 무대가 하나 있었다.
반들거리는 시멘트 바닥과 높은 천장이 있는 그곳에서는 보통 재즈의 밤을 열거나 다양한 월드 뮤직을 연주했다. 나는 친구들에게 내 공연을 보러 오라고 초대했다. 식당은 대부분 비어 있었지만 유리잔 부딪히는 소리, 피자 오븐을 쾅 닫는 소리, 계산대에서 주문한 피자가 나왔다고 소님들의 이름을 불러대는 소리에 파묻혀 내 코스트코 어쿠스틱 기타 소리는 잘 들리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7분간의 명성에 마냥 행복했다. 내가 친구들을 한무더기 몰고 왔기에 그 열린 무대는 서서히 나의 무대로 바뀌었고, 덕분에 나는 이 지역 예술가들의 작은 무대에 시동을 걸 수 있었다.
화장실에서 타이머를 켜놓고 직접 내 사진을 찍고 그걸 아빠 컴퓨터로 스캔한 다음, 마이크로소프트 페인트를 이용해 광고 전단을 만들었다. 그리고 스테플 건을 사서 전단을 동네 전봇대 곳곳에 붙였고, 가게 마다 돌아다니면서 창문에 전단지를 좀 붙여도 되겠느냐고 묻고 다녔다. 마이스페이스 [2005년에 이용자가 많았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 사이트] 계정도 하나 파서, 내가 개러지밴드 프로그램 [누구나 자유롭게 음악이나 핏캐스트를 만들 수 있는 디지털 오디오 작업 프로그램.] 으로 녹음한 노래들을 거기에 올렸다. 그리고 다수의 지역 밴드와 음반 기획사를 상대로 같이 일하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이메일을 써서 노래 링크와 함께 보냈다.
나는 각종 학교행사에서 공연을 했고, 공연 때마다 꼬박꼬박 와주는 얼마간의 팬들도 생겨났다. 대부분 내가 공연을 보러 와달라고 은근히 압력을 넣은 같은 반 아이들과 친구들이었지만, 마침내 나는 마리아 테일러의 와우 홀 오프닝 공연을 맡을 정도가 됐다. 공연이 있던날 닉은 나를 격려해주러 일찌감치 와서,내 차례가 될 때까지 같이 대기실에서 기다려주었다.
대기실에 있어본 것은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지만 그렇게까지 막 대단한 느낌은 들지 않았다.옷장만한 크기의 방은 조명이 워낙 밝았고 안에는 벤치 두 개와 목제 탁자가 있었고 그 위에 미니 냉장고가 놓여 있었다. 나와 닉은 벤치에 나란히 앉아 문 쪽을 쳐다보고 있는데 마리아 테일러가 플란넬 천을 휘감은밴드 동료와 함께 방으로 들어왔다.
실제로 보니 인상이 보통이 아니였다. 물결 모양의 검은 머리카락이 이 가수가 뿜어내는 강한 이미징의 주축 역할을 했고, 특유의 길고 오뚝한 코와 호리호리한 몸이 그런 느낌을 더 강렬하게 만들었다. 마리아가 들어오는 순간 나는 숨을 멈추었다.마리아는 "와인이 어딨지?" 하고 혼잣말을하더니 쑥 방을 나갔다.
우리 부모님도 오셔서 뒤쪽에 나란히 서 계셨다. 나는 포에버21에서 구입한 무지개 줄무늬 셔츠와 물 빠진 나팔 청바지를 입고 갈색 카우보이 부츠를 신은 채 철제 접이식 의자에 앉아 어쿠스틱 곡을 여섯 개 정도 불렀다. 내 딴에는 그 차림이 진짜로 멋있다고 생각했다. 정말로 다행인 것은 그때 적어도 테일러가 기타로 업그레이드를 한 뒤였다는 사실이다.
앰프는 오로지 빨간색과 크림색 조합이 예쁘다는 이유 하나로 고른 SWR 스트로베리- 블론드 앰프를 사용했다. 나는 코드 형태를 편하게 다시 쓸 수 있도록 노래마다 카포를 사용해서 다양한 오픈 코드를 쳤다. 그리고 더 단순한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10대 다운 노래를 불렀다. 바로 그 시절이 그런 시절이라는 건 까맣게 모르는 채로, 노래를 마치고 나자 부모님은 "잘했다. 우리 딸"하며 칭찬해주었다. 그리고 나머지 공연 시간에 내가 마음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도록 너그럽게 내버려 두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