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초적 본능을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하와가 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쫒겨난 직접적인 원인인 첫째, 뱀의 말을 듣고 둘째, 따먹고 싶은 마음으로 선악과를 보았기 때문이다.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 3:1).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5).
뱀으로부터 이 말을 들은 후에 선악과를 봄으로 먹게 된 것이다. 듣고 보고 행동한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 3:6)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보고 듣는 것을 제어해야 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이겨낼 수 있다. 이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요일 2:15-16).
우리가 아무리 의롭고 정결하고 거룩하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뜻을 행하려고 해도 산속으로 들어가 혼자 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귀머거리가 아니고 소경이 아닌 이상 일상생활에서 듣고 보는 것을 듣지 않고 보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을 다스림으로 행동에 옮기는 죄를 짓지 않을 수는 있다.
물론 주님은 마음으로 도둑질하고 간음하는 것도 죄라고 하셨지만, 그것은 그 생각을 발전시키고 그 생각을 즐기는 단계를 말씀하시는 것이지, 듣고 보는 것을 통해 자연적으로 스쳐가는 생각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혹자가 말한 대로 새가 내 머리 위로 지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어도, 그 새가 내 머리 위에 앉아 둥지를 틀게 하지 않을 수는 있는 것이다.
우리 말에 ‘오만가지 생각’이라고 하였다. 심리학자들에 의하면 사람은 잠자는 시간 8시간을 빼고 하루에 6만가지 생각을 하며 산다고 한다. 그런데 이 생각들이 듣고 보는 것에서 가장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듣고 보고 생각하는 것을 다스리면,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고, 그의 뜻을 더 잘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요일 2:15).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듣고 보는가가 너무나도 중요하다. 그것이 생각을 주관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생각이 또 듣고 또 보기를 원하기에 어느 순간에 처음에 의도하지 않았던 자리에 까지 가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핸드폰과 TV로 무엇을 듣고 보고 있는가가 자신의 현 위치라고 보면 된다.
첫째는, 듣는 것을 다스려야 한다.
사단이 주는 말, 타락한 본성인 인간의 생각이 주는 말, 세상의 말을 분별하고 그 말을 버리고 귀에 담아 생각하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세상 메스콤에서 나오는 말, 카톡이나 유투브 등 SNS에서 듣는 말, 세상 사람들의 말들 중에서 믿음 없는 사람들의 말, 육신의 탐심과, 정결함과 반대된 세속된 말을 듣지 말아야 하고, 듣게 된다고 해도 그것을 금방 지나가게 해야 한다. 내 귀와 내 생각이 그것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게 해야만 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이 땅에 살면서도 위엣 것을 찾고 위엣 것을 생각하고(골 3:1-2), 낮이나 밤이나 주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히 3:1), 그의 뜻을 이루기를 힘쓰야만 한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7).
둘째는,. 보는 것을 다스려야 한다.
선악과를 볼 때 “보암직도 하고”(창 3:6)라 하였다. 여자는 잘 모르겠지만, 남자는 여자 벗은 몸 보기를 좋아한다. 그래서 도색잡지나 포르노 산업이 발달되었고, 지하철에서 몰래 촬영하는 사람들이나 몰래 카메라를 설치해 여자의 몸을 보려고 하다가 발각되는 사람들이 남자들인 것이다.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여자의 벌거벗은 몸을 보고 좋아했으나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 동산에서 쫒겨난 이후로 그 벗은 몸을 가렸으니 아담의 DNA를 물려받은 남자가 자신은 배가 나왔어도 여자의 비너스 같은(하와) 몸매를 보고 싶어하게 되었을까?
15년 전 한참 불에 태워지고 있을 때, 그 때 박사과정에 들어오려고 나에게 지도를 받고 있던 한국에서 이혼하고 미국에 와서 신학교를 졸업한 전도사님에게 “그래도 이쁜 여자들이 지나가면 고개가 돌아가려고 한다”고 했더니, 자신은 두 번 세 번 돌아본다는 것이다.
여기 히스패닉 남자들 중에는 젊고 몸매가 좋은 여자가 지나가면 길에 서 있던 남자들의 눈이 다들 그 뒤를 따라가고 두 번, 세 번 돌아보다가 심지어 그 여자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그 골목길까지 따라가 보는 사람들도 있다.
며칠 전에는 교회 사무실에서 바로 가까운 곳에Wi 스파라고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사우나 여탕에 자신을 여자라고 하는 남자가 성전환 수술도 하지 않고 들어오자 한바탕 소동이 나서 밖에서 트랜스젠더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그것을 반대하는 기독교 사람들과 싸움이 나 폭력을 행사하는 일이 있었다.
지금은 여자 벗은 몸을 보기 위해 자기가 여자라고 하면 여탕이나 여자 탈의실에 들어가는 것이 법으로 허용되었기에 막을 길이 없는 것이다.
오래 전 그 사우나 2층 찜질방에서 화장실 복도 옆에 아이들도 지나다니는데 남자 몸짱 사진들을 30대 후반인가 된 여자가 공용 컴퓨터로 버젓이 보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제는 여자들도 남자들의 몸을 보는 것이 숨길 일이 아닌가 보다 하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보고 싶은 유혹은 내가 일부러 그러지 않아도 일상생활 곳곳에 있다. 운전면허증 기한이 다 되어 재발급 받으려고 DMV에 가서 줄을 섰더니 엉덩이가 1/3쯤 드러나게 핫팬티를 입은 여자가 두 사람 앞 줄에 서 있는데 자꾸만 그 팬티를 끌어 내리는 것이 눈에 보였다.
다른 사람들 보라고 그렇게 입고 나와서는 그 짧은 팬티 끝을 수시로 끌어내리려고 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그 보는 것을 상상으로 연결하면 얼마든지 간음할 수 있는 것이다.
수년 전 한국집회 후 방문했던 태국의 한 쇼핑센터 푸드 코트에서 음식을 기다리고 있는데, 좀 떨어진 휴계실 의자에 앉아서 나를 힐끔 힐끔 쳐다 보던 여자가 책을 보는체 하면서 일부러 다리를 벌려 속팬티를 보여 준 것이 외국 관광객을 유혹하려던 콜걸이었음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냥 일반인처럼 행사하면서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영업하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럴 경우에 혼자 가면 믿는 사람이라도 원초적 본능에 유혹 당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옆에 있던 아내에게 저 여자가 자꾸만 일부러 그러는 것 같다하고 방향을 돌려 앉은 적이 있다.
여자라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찌라도 이처럼 보는 것에 끌리는 유혹은 예외가 아닐 것이며, 특히 보석이나 악세사리에 유달리 관심 갖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게 하나님을 사랑했던 다윗도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 부하인 밧세바의 남편을 전쟁터에 나가 죽게 하고 그녀를 취했다가 아이가 죽는 보응을 받게 된 것을 본다.
그러나 한편으로 욥은 “내가 내 눈과 언약을 세웠나니 어찌 처녀에게 주목하랴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욥 31:1-2) 하며, 보는 것과 마음을 통제하였기에 하나님께로부터 동방의 의인이라고 칭함을 받은 것이다.
궁극적으로 듣는 것과 보는 것은 무엇을 사랑하느냐와 직결되어 있다. 세상을 사랑하느냐? 하나님을 사랑하느냐?
세상을 사랑하면 오늘날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인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탐스러울만한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예비해 놓으신 하나님의 지혜와 비밀을 보고 들을 것이다.
그러므로 듣고 보는 것에 대해서 승리하려면,
1. 생각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
2.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야 한다.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고후 10:5).
3. 주님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히 3:1).
4. 위엣 것을 찾고 소망을 하늘에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골 3:1-2).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골 1:5).
5. 주님의 얼굴과 그의 영광을 사모해야 한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
“모세가 가로되 원컨데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출 33:18).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사 35:2)
6.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한 것,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고전 2:7)를 보고 듣기를 원해야 한다.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고전 2:9-10).
킹덤 빌더즈 전두승 목사
L.A 글로리 교회
하나님의 리콜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