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 가장 인명 피해가 많은 전쟁 TOP10
1위 : 2차세계대전, 사망자 70,000,000명 ~ 130,000,000명
최악의 전쟁. 20세기 최고의 비극. 인류가 했던 최악의 흑역사. 1939년부터 1945년까지 추축국(나치 독일, 일본 제국, 파시스트 이탈리아)이 일으킨 연합국과 추축국 사이의 인류 역사상 두번째로시작된 세계대전이자 가장 참혹했던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쟁. 전쟁에 발단은 제1차 세계대전 패배로 인한 독일의 붕괴, 영국과 프랑스의 경제적 혼란, 공산주의 세력 확대에 대한 불안 등 매우 복잡함. 일반적으로 세계 대공황에 따른 경제 위기로 부상한 파시즘과 이에 따른 베르사유 체제에 대한 독일의 반발 및 일본의 보상 심리 등이 원인. 제2차 세계대전에서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가 발생했고 추축국들이 현대는 물론 당시의 기준으로 봐도 심각한 수준의 만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추축국의 상당수는 기존 정부가 붕괴되는 상황을 맞이하였고, 특히 추축국 삼인방인 독일, 이탈리아, 일본은 연합군이 영토 전체를 점령하는 등 일시적으로 국가가 소멸한 후 새로운 국가가 탄생하는 수준의 처벌을 받았음.
2위(공동) : 모택동의 대학살, 사망자 : 40,000,000명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정치가이자 국가 주석으로 중국식 공산주의 혁명가 이른바 모택동. 마오쩌둥이 주도한 대학살은 4천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함. 최근 조사로는 7천만명이 넘는다고 함. 1945년 중국 공산당 당수가 된 그는 1946~1948년에 있었던 내전에 승리를 거두고 1949년 10월1일 천안문 광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 건국을 선포하며 국가 주석이 됨. 이후 1958~60년사이 대약진 운동이라는 이름로 산업화, 군사화, 농지의 강제 국유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함. 그런데, 대약진 운동이 실패로 돌아가자 나라 전체가 대기근에 시달리며 4~5천만명이 굶어 죽었음. 또한 그는 삶을 마감할 때까지 15,000,000~20,000,000명에 이르는 도시 주민을 농촌으로 강제 이주시키고, 반혁명분자 전용 교도소와 수용소에 전 국민의 2퍼센트에 해당하는 숫자가 체포되었음. 이때 그 곳에서 굶어죽거나 질병, 사형으로 죽은 사람의 수는 20,000,000명에 달했다고 함. 국가 주석이자 민중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고, 냉정한 성격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유쾌하고 흥을 즐기는 사람이었다고 하며, 금욕주의자였던 히틀러나 스탈린과 달리 그는 사치와 방탕한 성생활을 노년을 즐겼다고 함
3위(공동) : 몽골의 정복전쟁, 사망자 : 40,000,000명
현재 몽골 지폐에 그려져있는 징기스칸 초상화
몽골제국 최고 전성기때의 지도
몽골의 정복전쟁은 13세기 내내 계속되어 광대한 몽골 제국을 형성했음. 1300년경이 되면 몽골 제국의 영역은 아시아의 대부분과 동유럽에 이르렀으며, 역사학자들은 몽골의 침략과 약탈을 인간의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전쟁 중 하나였던 것으로 여기고 있음. 또한 몽골인들이 팽창하면서 페스트 병이 그들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 전역으로 퍼졌고, 이는 흑사병이라는 대규모 인명손실로 이어졌으며, 몽골 제국은 중앙아시아 및 서아시아에 일련의 정복과 침공을 행하면서 세력을 불렸고, 1240년대에 동유럽에 도달함. 몽골 제국은 1260년경 제국이 분할될 때까지 러시아계 국가들을 지속적으로 약탈했으며, 14세기가 되면 중국 전역을 영향권 아래 두게 되어 원 황조가 성립되었음. 한편 페르시아 지방에서는 15세기를 지나면서 티무르 제국이 몽골 제국의 후계자를 자처하였고, 인도는 몽골의 침략을 받지 않았지만 19세기에 티무르 제국의 후예인 무굴 제국에게 정복됨.
4위 : 안사의 난, 사망자 : 36,000,000명
당나라 제국 중엽인 755년부터 763년까지 당 현종부터 당 숙종, 당 대종까지 약 10년동안 벌어진 대규모 군사반란. '안사의 난'이라는 이름은 주동자인 안록산(安祿山)과 후기 지도자 사사명(史思明)의 성을 따온 것이며, 사사명을 배제하고 그냥 안록산의 난으로 혹은 당시 연호를 따서 '천보(天寶)의 난'으로 부르기도 함. 당시까지 중국 역대 통일왕조에서 있었던 반란 중 가장 대규모였고 그 파급력도 가장 컸던 전란으로, 사실상 당을 붕괴로 몰고가기 시작한 전란이었음. 이후 당나라는 당헌종 때에 중흥기를 맞이하여 100여년의 시간 동안 제국을 유지하지만 예전과 같은 모습은 끝내 되찾지 못한 채 멸망해버림.
5위 : 명나라의 멸망, 사망자 : 25,000,000명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
명청 전쟁은 17세기 중국 대륙의 패권을 두고 명나라와 청나라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 1618년 4월 10,000명의 후금군이 명나라 푸순성을 공격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음. 후금군은 푸순성 전투에서 성주 이영방의 항복을 받아내며 쉽게 성을 함락시켰으며, 뒤이어 장승음이 이끄는 10,000 명의 명나라 구원병까지 무찔렀음. 1618년 5월에는 무안과 백가충 등 명나라 11개 성을 함락시키고 7월에는 청하성 전투에서 8,000명의 명나라군을 무찔렀음. 명나라는 1644년 청나라의 공격이 아닌 내부 반란으로 인해 급속도로 쇠락함. 이자성의 난으로 반란을 일으킨 이자성은 시안, 개봉, 낙양을 점령하고 뒤이어 북경에 입성해 스스로 황제를 칭하였음. 이자성의 난을 들은 오삼계가 청나라에 투항하고 연합해 오삼계의 정병 4만명을 포함한 180,000명의 도르곤 군대가 이자성을 격파하고 윈난성 왕이 됨. 중국 북부 후베이성 으로 도망갔던 이자성은 1645년 그곳 주민에 의해 죽임을 당함. 이로써 청나라가 중국 대륙을 대부분 장악하게 됨.
6위(공동) : 스탈린의 대학살, 사망자 : 20,000,000명
조셉 스탈린은 집단 종족 학살과 비인도적 범죄와 세계사에서 자국민을 가장 많이 죽인 무자비한 사람임. 스탈린이 했던 말이 가관임.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요,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이다" 소련 공산당 서기장(1922~53)과 국가평의회 주석(1941~53)을 지냈던 스탈린은 소련의 독재자로써 국제사회의 차가운 주시와 우려 속에서도 소련을 세계 주요 강대국으로 변모시켰다. 공업화와 더불어 농업을 강제로 집단화했으며 철저한 경찰 테러에 의해 그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2차세계대전 동안에는 독일을 패배시키는 데 한몫했으며 소련의 지배권을 동유럽의 여러 나라로 확대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그는 소비에트 전체주의의 최고 설계자였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자유는 말살되었고 생활수준도 나락으로 떨어졌지만 강력한 군사력 배양으로 세계를 핵무장의 시대로 이끌었다. 자기 자신의 흉상·동상·초상 등을 많이 건립해 개인숭배를 강요함으로써 전대미문의 광신적 예배대상이 되었던 그는 20세기 공포정치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다. 스탈린의 정치적 희생자는 수천만 명으로 헤아려졌는데, 그의 주된 목적은 자기의 권력을 극대화하는 데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7위(공동) : 태평천국의 난, 사망자 : 20,000,000명
태평천국의 난(太平天國之亂, Taiping Rebellion)은 서기 1850년에서 1864년까지 중국 대륙에서 벌어진 대규모 내전. 교전 상대는 만주족 황실의 청나라 조정과 기독교 구세주 사상을 기반으로 한 종교국가 태평천국이었음. 태평천국의 난의 주요 무대는 강소성, 절강성, 안휘성, 강소성, 호북성이었으나, 14년간의 전쟁 기간 동안 북서쪽 끝의 감숙성을 제외한 모든 중국의 성을 최소 한번 이상 태평천국군이 지나갔음. 태평천국의 난은 명청전쟁 이래로 중국 역사상 가장 대규모 전쟁이었으며, 인류 전체 역사를 통틀어도 가장 유혈낭자한 내전 중 하나로 손꼽힘. 19세기 최대의 군사분쟁이었던 태평천국의 난으로 인해 죽은 사람은 20,000,000~70,000,000명 정도로 추산되며, 난민 신세가 된 사람도 수백만 명에 달한다고 함.
8위 : 티무르 정복전쟁, 사망자 : 17,000,000명
티므루 황제
칭기즈칸의 후예라 자칭했던 티무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했으며, 그는 목적달성을 위해서라면 기만.모략.배신.암살.학살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음. 그 같은 잔혹함 위에 그는 사마르칸트를 중심으로 러시아와 중동, 아프가니스탄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활한 제국을 이룩하는데 성공함. 그러나 무자비하고 성급하게 세운 제국은 그 자체가 사상누각이였음. 티무르가 몽골 제국의 부흥을 외치며 이란·이라크·북인도에 광대한 영토를 형성하면서 14세기 사마르칸트를 수도로 성립된 이 왕조는 이슬람 문화에 페르시아 문화, 튀르크 문화, 중국 문화가 혼합된 복합 문화를 형성하였다. 소아시아 방면에서 일어난 오스만 제국을 앙카라에서 격파하여 구 몽골 제국의 서반부를 영유하는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영토 확장으로 일 한국 병합 후 킵차크 한국과 인도의 서북부 침공, 서쪽으로 오스만 제국 제압(앙카라 전투)하고 지중해 동부 연안 진출했으며, 티무르 사후 중앙아시아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약화되어 튀르크계 우즈베크인에게 1,500년 멸망하였다.
9위 : 1차세계대전, 사망자 : 15,000,000명
1차대전 최대 격전지에는 지금 양귀비만 피어있다
1차 세계대전 방아쇠 당긴 사라예보의 총성 100년 전 사라예보에서 두 발의 총성이 울렸다.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쓰러졌다. 19세 학생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저격 성공이다. 1914년 6월 28일, 세상은 뒤집어졌다. 발칸의 총소리는 전쟁의 뇌관이었다. 한 달 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 최초의 세계대전. 최악의 소모전 이젠 역사책에서나 볼 수 있는 역사의 영역으로 들어선 전쟁, 제1차 세계 대전 일단은 전쟁에 관련된 국가들의 숫자만으로도 35개국이 관련됨으로서 이전의 그 어떤 전쟁보다도 대규모의 전쟁이었으며 전장이 확대된 최초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세계대전(世界大戰)이란 이름이 붙었다. 지금도 'Great War'는 제1차 세계대전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임.
10위 : 러시아 내전(적백내전), 사망자 : 9,000,000명
러시아판 세계대전. 러시아 혁명 직후의 러시아에서 벌어진 전쟁. 원어로는 Russian Civil War 로 표기하며, 21세기 기준으로 공식 명칭은 러시아 내전. 적백내전으로 불리는 러시아내전은 혁명군인 적군과 혁명을 반대하는 백군의 싸움. 전쟁의 시작은 혁명이 일어난 1917년 10월 25일. 실질적인 끝은 흔히 1920년으로 보지만, 백군 일파인 몽골의 미친 남작 운게른 슈테른베르크 같은 경우 1921년까지 버텼으며 공식적인 종결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프리아무르 임시정부가 망한1922년 10월 25일으로 봄. 최후의 백군이 사라진건 1923년 6월~10월 쯤이며, 일본이 사할린에서 철수한 걸 따지면
1924년 입니다 (펌글)
첫댓글 3개월에 한번씩 래원하는 가정의학과 의 공복혈액 검사로 당뇨,혈압약을 받아 오곤 합니다. 한두번 현기증으로 주저 앉은일이 있은 직후 의 이완혈압이 급격히 떨어진 탓으로 상담을 통한 조치를 받습니다. 노화로 가는 과정 이긴 하지만 철저한 관리가 요구 되는 건강관리 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