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양반들은 쌀로 빚은 소곡주, 복숭아꽃으로 담은 도화주, 진달래로 담은 두견주 등을 가장 즐
겼는데, 이들을 모두 합쳐서 춘주(春酒)라고 불렀다. 양반들이 선물로 주고받았던 술로는 평안도의
감홍로, 황해도의 이강고, 전라도의 죽력고, 충청도의 노산춘 등이 가장 선호되었다. 『경도잡지』에
는 봄에 빚는 술의 종류와 양조법, 『산림경제』에는 술 빚기에 적합한 날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
다. 그 밖에도 명주(銘酒)를 빚는 방법이 기록으로 남아있다. 술에 관한 기록 중에는 충청도 한산에서
빚던 ‘한산소곡주’ 얘기가 가장 많다. 아마도 조선 제일의 명주로 쳤던 모양이다. 이 밖에도 1924년에
발간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54종의 전통주가 소개되어 있다.
술 이름에 酒 대신 고(膏)나 春이 들어간 데는 이유가 있었다. 고는 원래 약제를 진하게 고아서 만든
농축액이나 환을 말한다. 부스럼에 붙이던 여러 가지 고약이다. 황해도의 이강고는 배와 생강을 진하
게 고아서 담은 술이었는데, 요즘은 전주지방에서 이를 순화시킨 이강주가 애주가들 사이에서 호평
을 받고 있다. 전라도의 죽력고는 푸른 대를 구울 때 나오는 끈끈한 진액을 담가 빚은 술이다. 죽력고
는 치료제로도 쓰였는데, 동학농민전쟁 도중 관군에 체포되어 한양으로 끌려가던 전봉준이 죽력고로
상처를 치료한 기록이 있다. 춘은 여러 번 술밑을 덮어서 순하고 풍부한 맛이 나도록 빚은 술을 말한
다. 문경의 호산춘도 그 일종이다.
얼마 전 우리 카페에 세계에서 단일 주종으로 가장 많이 생산‧판매되는 술은 중국의 백주, 단일 상표
명으로 가장 많이 생산‧판매‧수출되는 술은 참이슬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소주는 한
류 붐을 타고 해마다 배 가까이 수출량이 증가하는 추세다. 소주는 값이 싼 밀‧옥수수‧고구마 등의 전
분을 당화시킨 뒤, 효모를 이용하여 발효시킨 양조주를 연속식 증류기로 증류하여 이를 15~35도로
희석시킨 술을 말한다. 이때 순수한 물로만 희석시키면 맛이 매우 쓰기 때문에 각종 감미료와 향신료
를 섞어 향미를 높인다. 45도 단일 순도로 생산되던 안동소주도 애주가들의 기호에 맞춰 요즘은 19~
23도로 순화시킨 술을 내놓고 있다.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쌀로 빚은 소주는 귀한 손님이 오실 때만 대접하던 귀하고 비싼 술이었다. 1965
년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쌀 사용이 금지되어 값싼 고구마와 밀을 원료로 하는 소주가 널리 보
급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선조들의 대표적 주종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막걸리는 숙취와 냄새가 심
했었다. 과음한 다음날은 골이 패어 하루 종일 고생하기 일쑤였다. 당화를 촉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첨가제를 넣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소주는 값도 싸진데다가 뒤끝이 깨끗하여 금세 젊은이들의 기
호를 바꿔놓았다. 면서기 시절 금두꺼비를 찾기 위해 대낮부터 진로 병뚜껑을 열고 안쪽을 확인해보
던 기억이 하마 50년 저쪽이다.
영‧정조 연간인 18세기에는 탕평채가 봄철 안주로 크게 유행했다. 『경도잡지』에는 탕평채가 ‘잘게
썰어 초장을 무친 미나리 싹을 녹두묵 및 제육에 함께 버무린 것’으로 소개되어 있다. 탕평채라는 명
칭은 영조가 시행한 탕평책에서 따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반대로 영조가 안주로 한창 유행 중
인 탕평채에서 힌트를 얻어 사색당인을 고루 등용하는 탕평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는 설도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탕평채에 김을 섞어 맛을 더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 밖에도 『경도잡지』에는
탕평채와 함께 나오는 여러 가지 밑반찬이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는 침채(沈菜)가 빠지면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순우리말로는 김치다.
한양의 주객들이 가장 즐겨 먹은 물고기 안주는 임진강에서 많이 잡히는 위어였다. 오늘날의 웅어다.
「조선의 잡지」 저자 진경환은 위어가 웅어로 바뀐 것은 부어가 붕어로 바뀐 것과 같은 음운현상이
라고 했는데, 우리 고유의 말과 글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내린 결론이다. 백성들은 수천 년 전부터 순
우리말로 웅어와 붕어라고 불러왔는데, 이를 한자로 바꿔 쓰면서 위어(葦魚)와 부어(鮒魚)라고 썼을
뿐이었다. 위어는 전국구 물고기였던 듯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호남에서는 2월, 관서지방에서는
5월에 많이 잡힌다고 소개되어 있다. 지금도 부여에서는 봄이면 웅어회를 특산물로 팔고 있다.
사옹원은 왕의 수라와 궐내의 식사 및 잔치에 관한 일체의 사무를 관장하던 관서였다. 사옹원은 전국
요처에 어소(漁所)를 설치하여 어물을 진상했다. 사옹원의 일지에는 궁중에서는 행주의 웅어와 안산
의 밴댕이가 별미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겸재 정선의 그림 <행호관어>에도 행주의 어소에서 웅어와
복어를 잡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봄이면 생선장수들이 행주까지 가서 웅어와 복어를 받아다 한양
의 골목을 누비며 팔던 기록도 나온다. 기록에 의하면 먼저 웅어회를 먹은 뒤 복어국으로 속을 풀었
다고 되어 있다. 복어는 한강에서 잡히는 황복이 으뜸이었다는 기록도 있다. 요즘에는 황복이 임진강
에서만 잡히는데, 그나마 거의 씨가 마른 모양이다.
도미와 숭어도 궁중에서 선호하는 생선이었다. 도미는 전국 어느 해안에서나 많이 잡혔기 때문에 널
리 소비되었다. 삼국시대부터 도미와 관련된 설화가 전해오는 것을 보면 오래 전부터 우리 조상들이
선호했던 듯하다. 민물과 짠물의 경계에 사는 숭어도 인기어종이었다. 허균은 「도문대작」에서 ‘숭
어는 서해 어디서나 잡히지만 한강에서 잡히는 것이 가장 맛있다. 나주에서 잡히는 것은 매우 크고,
평양에서 잡히는 것은 냉동된 것이 맛있다’고 했다. 김득신의 그림 <강상회음>에는 여섯 명의 어부
들이 둘러앉아 숭어회를 안주 삼아 막걸리를 마시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나무 뒤에 숨어서 입맛을
다시는 아이의 표정이 재미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진단이 잘못되면 정확한 처방이 나올리 만무 합니다. "경제견실". "최저임금 긍정 효과 90%", "물 들어온다" 와 같은 정책 호도의 발언은 실정과는 괴리감이 있는 발언 입니다. 점점 골이 깊어가는 경제난국은 소비 감소까지 겹친 악순환의 형국 으로 옳은 처방이 절실히 요구되어지는 필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