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주의 좋은 글 나누기> 띠배 사진: 뉴스 1
180223전라닷컴[한송주 괴나리봇짐] 위도 띠배굿
내 사랑도 띠배가 되어 풍랑많은 당신의 난바다로
한 때 내안의 그대들에게 이런 연서를 띄운 적이 있다.
내 사랑도 띠배가 되어
풍랑많은 당신의 난바다로
한사코 노저어 가서
울둘목에 이르러
제 몸에 불을 놓아 훨훨
원없이 타오르다가
정결한 식은 재로 쓰러져
저 아래 해심으로
파랗게 갈앉아 버릴까나
정월 초사흗날 전라북도 부안 고슴도치섬 위도(蝟島)로 봇짐을 싼다. 띠배굿을 보려고.
띠배는 띠풀(茅草)로 만든 배다. 띠는 갯가에서 나는 풀로 신내림(降神) 때 많이 쓰인다(모사그릇도 있잖은가). 띠풀과 짚, 싸리나무들을 얽어 길이 3m, 너비 2m 짜리 작은 배를 엮는다. 거기에 색고운 비단으로 돛을 해달고 배 한갇득 푸짐한 제물을 싣는다.
어미배 꽁지에 줄로 매달아 난바다, 물살 사나운 목까지 끌고 나가 훨훨 불을 놓는다. 용왕님 전 헌공이다.
띠배 제의는 다른 용왕제에는 없는 특이한 차림이다. 그래서 1985년 ‘위도 띠뱃놀이’라는 이름으로 중요무형문화재 제82호에 올렸다. (한데 놀이라는 명칭보다는 굿이라 부르는 게 낫다고 본다.)
띠배굿은 초사흘 새녘부터 이미 판이 열린다. 원당제를 머리로 주산돌기, 용왕제, 띠배띄우기로 이어진다. 영기를 앞세워 무당, 화주, 화장, 선주가 길을 트고 걸궁패가 사물을 때려서 잡귀를 쫒는다. 그 뒤를 도와 오방기를 든 장삼이사들이 춤을 추며 신명을 돋운다. 원당에 이르러 산신 원당아씨 본당아씨 수문장 장군성왕들에 회식밥 쌀 콩 돼지 술 과일 포 등 제물을 차리고 화주독축 무당축수 비손 순서를 제사한 뒤 당굿 한 판 걸지게 놀고 음복을 한다. 이렇게
원당제를 마치면 마을 당산으로 내려와 당산나무를 돌며 비손을 한다(주산돌기).
이제 드디어 용왕제 차례다. 드넓은 칠산바다를 바라 큰 상을 지극정성 차리고 곡진하게 용왕님 전에 재배한다. 밤새워 서리서리 엮은 띠배를 메고 나와 선뵌 뒤에 무당의 사설과 춤사위에 맞춰 배를 돌면서 둥개둥개 어룬다. 선소리꾼이 ‘가래질소리’를 매기면 동배들이 입을 어낭창 가래야 하고 받는다.
벽파창랑 푸른 물결~ 어낭창 가래야/ 칠산바다 숨었다가~ 어낭창 가래야/ 봄을따라 네가왔냐~ 어낭창 가래야/ 조기갈치 민어오면~ 어낭창 가래야/ 멸치준치 갈치로다~ 어낭창 가래야
이어서 ‘술배소리’가 거나해진다. 띠배는 술을 실어 술배다.(거봐, 술이 빠지면 장이 안 선다니까, 꼬숩다 히히)
어화 술배로다/ 혼혼씨가 배를 모아 이제 불통하옵신 후/ 우리들이 본을 받아 고기잡이 힘을 쓰니/ 어부가로 노래하여 먼 데 사람들 듣기 좋고/ 가까운 사람들 보기좋네 술배야 소리로 놀아보세
그쯤 어뤘으면 띠배에다가 방자(액땜)를 하듯 허수아비 10매를 세우고 ‘전라북도 위도면 대리’라 적힌 마을기를 꽂는다.
이윽고 띠배가 뜬다. 배 안에는 떡 밥 고기 나물 과일 술이 그들먹 실리고 마을민들 소원이 담긴 기원문도 얹혔다. 어부들은 띠배를 모선에 매달고 ‘배치기노래를 우렁차게 합장하면서 씩씩하게 칠산바다를 노저어간다. 주위로는 호위선 서너 척이 에움돌며 한껏 기세를 높인다.
띠배는 이제 망망대해의 꽃등에 있다. 바로 용왕님의 거처다. 어부는 띠배에 불을 놓고 이음줄을 자른다. 배는 훨훨 타오른다. 한 줌 재가 되어 해심으로 가라앉는다. 바다는 한결 잠잠해지고, 그리고 풍성해진다. 칠산바다의 맏살림은 뭐라 해도 참조기. 띠배공양을 마치고 나면 참조기 만선파시가 벌써 눈앞에 어른댄다.
위도 파장금 나루에 서니 황금비늘 번뜩이며 질주해오는 조기떼의 북상이 들린다. 그들이 통바다를 뒤흔들며 풍겨대는 노릿노릿한 향내도 그 속알에는 얼음장을 헤치고 온 빙혈의 피비린내가 슬어 있는 거다. 꽃샘 지나면 산란에 바쁜 암초기 대군단이 칠산바다에 모습을 드러낸다.
전에 조기의 북상을 노래해 본 적이 있다.
참조기는 산란을 하면서 엉엉 운다고 한다
칠산바다 물 속에 대롱을 넣고 귀를 대면
용바람 같은 울음소리가 들린다
법성포 숲쟁이 진달래를 보고
단오살에는 위도 연평도를 지나
압록강 대천소에 다다른 것은 유월의 포연 속
여직도 알을 슬지 못한 암초기는
가을 찬 발해만의 잊힌 갯기슭에서
울음마저 못 슬은 채 홀로서 진다
이 무렵 저녁물에 대롱을 담그면
먼 설원을 끌고 가는 시베리아 기차소리 들린다
글 한송주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