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 말씀입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찰옥수수와 술빵을 판다는 현수막을 걸어놓고, 삶은 옥수수와 술빵을 파는 트럭을 볼 수 있습니다. 술빵이라는 글 귀를 보노라면 손녀가 했던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손녀가 질문하기를 " 예수님도 포도주를 마셨는데, 왜 교회에서는 술을 마시지 말라 하는 거야? 그러면 술빵도 먹으면 안 되는 거야? " 하고 물었습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의심해서가 아니라,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몰라서 알고 싶어서 질문하는 것은 더 깊이 말씀 안으로 들어갈 수가 있기 때문에,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은, 시편 백삼십편, 1절, 2절, 말씀을 더 알아보려는 마음으로 보도록 하겠습니다.
1절 :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2절 : 주여 내 소리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소서. 아멘
1절 말씀에, " 내가 깊은 곳에서 "라는 말씀을, " 내가 절망의 늪에서 "로 번역한 성경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목을 ' 절망의 늪에서 살아남기 '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려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늪이라는 말을 들으면, 그 유명한 창녕의 우포 늪을 떠올립니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우포 늪은 아주 환상적인 늪입니다. 그러나 아프리카 밀림의 늪이나, 아마존의 늪은 환상적인 그런 늪이 아닙니다. 사람이나 짐승이 한번 빠지면 살아나올 수가 없습니다. 살아나오려고 발버등을 치면 칠수록 더 깊이 빠져들어가는 무서운 늪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절망의 늪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사탄은 우리들로 하여금, 우리 가는 소망의 길을 가지 못하도록 절망의 늪에 빠뜨립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주인공인 크리스천이, 천국을 향해 성경 책을 들고 떠납니다. 천국 가는 여정에서는 다양한 시험과 유혹들을 만나서 싸움을 하게도 됩니다. 그런 가운데 주인공인 크리스천은 절망의 성에 갇히게 됩니다. 천성가는 이 시대의 크리스천인 우리들도 절망안에 갇혀 버릴수가 있습니다.
절망은 우리를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게 합니다. 절망은 소망을 포기하게 만듭니다. 절망은 믿음을 의심으로 바꾸어 버리게 합니다. 절망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가, 무덤이 되도록 만들어 버리기도 합니다.
이런 무서운 절망의 늪이지만, 우리는 절망의 늪에서, 거뜬하게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거뜬하게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앞에서 본, 1절 말씀에 해답이 있습니다. " 여호와여 내가 깊은 곳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 " 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이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한번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바다를 건너가던 중에 바다에 큰 놀이 일이 났습니다. 파도가 덮쳐 배가 바다에 잠길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때 제자들은, 주여 구원하소서 우리가 죽겠나이다 하고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은 곧 일어나시어, 바람과 바다를 꾸짖어 주심으로 거센 파도로 인하여 절망에 빠져가던 제자들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우리들도 절망의 늪에 빠져들어갈지라도 부르짖으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는 분이시며, 나의 부르짖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부르짖는다는 말은 간절한 기도를 말합니다. 절망의 늪에서 살아나오려면 부르짖으면 됩니다. 간절하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절망의 늪에서 우리를 건져 주십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들로 하여금, 낙심의 늪에서도, 더 나아가 절망의 늪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찾도록, 능력주시기를,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 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