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무리
간소하고 질서 있는 생활을 할 것. 미리 계획을 세울 것. 일관성을 유지할 것. 꼭 필요하지 않은 일은 멀리할 것. 되도록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할 것. 그날그날 자연과 사람사이의 가치 있는 만남을 이루어가고, 노동으로 생계를 세울 것! 원초적이고 우주적인 힘에 대한 이해를 넓힐 것. 계속 배우고 익혀 점차 통일되고 원만하며 균형 잡힌 인격체를 완성할 것. <스콧 니어링의 좌우명>
농사도 삶도 갈무리를 잘해야 한다. 내 인생의 스승, 스콧 니어링(1883년 8월 6일 ~ 1983년 8월 24일)은 미국의 경제학자이다. 백세시대가 아니었는데도 그는 완벽한 백 년을 꽉 채우고 온전히 원하는 삶을 살다 갔다. 그는 삶에도 돈에도 집착하지 않았다. 반자본주의, 친사회주의, 반전, 친평화의 길을 걸었다.
1차 세계대전 반전 운동을 하다 대학에서 파면당하기도 했고 스파이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강연정지로 생계를 위협받기도 했다. 그의 인생도 결코 쉽지 않았다. 우리 시대의 시각으로 보면 그는 실패한 인생이었다. 요즘 T.V에서 나오는 성공한 인생과 비교해 보면 실패의 완전체였다.
큰집에 명품을 둘러야 하고 부동산이나 주식을 소유해야 하고 부자들의 강연을 들으며 공감해야 한다. 그들을 따라 해야 제대로 사는 것처럼 보인다. 재테크에 실패하면 인생낙오자인 것처럼 떠든다. 목소리 내어 유튜브에서 떠들고 사람들을 몰고 다녀야 성공의 상징처럼 보인다. 마치 키치 미술(싸구려 저속한 미술이라는 뜻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가격이 나가는 걸 보면 미술계의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유행처럼 번지듯 싸구려 번쩍이는 플라스틱 문화가 남발한다.
난 금이나 은은 아니어도 닦을수록 빛이 나는 청동 거울이고 싶다. 시인 윤동주가 선으로 닦고 발로 닦은 푸른 거울이고 싶다. 수백 권의 회장님들의 책을 읽고 공감도 해보고 부러움도 느껴보고 자신을 성찰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쉰이 넘어 얻은 결론, 성공한 인생은 자신이 보기에 좋아야 하고 가준은 없다. 처음엔 회장님들의 빛나는 삶에 경외심을 느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우습다. 경험에서 오는 성찰이 최고이다. 진리는 자신만이 알겠지만 "인생 별거 없다"는 나 자신만의 말똥구리 철학에 도달했다.
스콧니어링은 자연인처럼 버몬트주의 시골로 들어갔다. 헤렌 니어링이라는 인생의 동반자를 마흔다섯 살에 만남으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그녀는 스무 살의 연하에도 불구하고 그와 생각과 사상이 비슷했고 인생관이 같았으며 서로를 존중했다. 음악과 문학, 그림, 평화를 사랑했다. 둘 다 채식주의자였고 물질에 대한 욕심을 버림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채워갔다. 하루네 시간의 노동과 네 시간의 공부, 그리고 남는 시간엔 하고 싶은걸 각자 했다. 먹을 만큼만 추수했으며 남는 건 모두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모든 인생을 월급이나 연금에 지나치게 매여 사느라 삶을 음미하기 어려워진 요즘과 달랐다.
부부는 모든 게 비슷해야 잘 산다. 심지어 좋아하는 음식도 같아야 환갑이 된 어느 날, 문득 "순대국밥이 먹고 싶소 " 하면 "나도요" 해야 행복할 수 있다. 지나치게 타인이면 공감할게 없어진다. 사실 환갑까지 함께한 것도 기적일 수 있다. 어머니의 시절엔 의리나 의무감이란 게 그나마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삐걱이거나 위태한 커플들이 넘쳐난다. 공감력이 없어서이다. 같은 호모사피엔스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자신과 반대인 사람을 만나야 잘 산다는 건 이미 자신과 다른 사람과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혼하거나 헤어질까 봐 위로하기 위해 생겨난 말이다. 무조건 많이 닮을수록 좋다. 얼굴도 남매처럼 닮아야 잘 산다는 증거도 나왔다. 기왕이면 쌍둥이냐는 소리를 들어도 좋다. 같이 오랜 시간 함께 하다 보면 생활습관이 비슷해 닮아가는 부부들도 많다.
일체의 생명을 연장하려는 의학적 배려도 거부하고, 고통을 줄이려는 진통제·마취제의 도움도 물리치고, 물과 음식조차 끊고, 온전한 몸과 마음으로 한 달의 죽음을 음미하고 충분히 견딜만하고 색다른 경험이라 좋다고 말했다. 죽음을 온전히 맛보고 싶다는 뜻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었다. 품격 있는 죽음이었다. 수의가 아닌 작업복을 입고 관이 아닌 침낭에 넣어 빨리 화장하라고 했다. 위대한 아내 헬렌 니어링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농사일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비만 벌었다. 남은 시간을 책 읽고 악기를 연주하고 평생을 다정한 동지처럼 살다 갔다. 모그룹회장님께서 자연인은 도피자라고 바하발언하셨다 본인도 미안하다고 서두를 던지면서 말했다. 삶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닌 삶을 온전히 소유하기 위해서 자연으로 향했다.
"살아있는 자가 중요하지 죽어가는 자는 뒷정리만 잘하고 가면 돼! 누구나 다 죽을 걸 왜 미련을 가져! 다 받아들야할 일을 왜 집착해!"
<59세에 췌장암으로 돌아가신 나의 삼촌 류홍묵>
이순(耳順)을 앞둔 어느 날, 삼촌은 세상을 떠났다. 경상도 사나이답게 다소 투박하고 촌스럽지만 대철학자 같은 유언을 남겼다. 평생 종교나 철학을 배운 적도 없다. 죽음 앞에서 삼촌만큼 저돌적이고 멋진 사람을 현실에선 본 적이 없다. 돌아가 시기 전, 혼자 모든 것을 감내했다. 도배와 장판을 새로 하고 담장을 고치고 집수리와 집단장을 했다. 고장 난 곳이 있는지 물 새는 곳이 있는지 꼼꼼하게 보고 또 봤다.
숙모가 갑자기 왜 난리법석이냐고 물었고 그제야 췌장암말기 진단이 나왔고 병원에서 3개월 시한부 인생 선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집수리와 모든 재산정리를 다 마치고 배낭하나달랑 매고 소록도로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그리고 정확히 3개월 후 갑자기 쓰러져 돌아가셨다. 지난 2년 동안 삼촌은 어디에 있을까? 가끔 궁금해진다.
잘살기 위해선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
살아있을 때 재산이 많은 자 보다 재산이 없는 사람이 삶을 잘 정리해야 한다. 특히 신용불량자인 경우는 더욱 중요하다. 내가 살다 간 흔적을 지우고 가야 한다. 남에게 민폐는 안 돼야 잘 살아온 여행길인 것이다. 길을 가다 보면 여기저기 음료수 마시다 일회용 컵 버리고 가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사막에 우리가 버려지지 않는 한 그렇게 급하게 목이 마를 이유도 없으며 자신의 지저분한 모습을 길 위에 영역표시도 아니고 남기지 않기를 바란다. 세상은 인간만이 사는 곳이 아니다. 일회용 컵 함부로 버리시는 자들은 인생정리도 잘하지 못할 것이다. 나를 위해서도 남을 위해서도 반드시 일회용 컵 자제해야 하고, 신발은 신발장에 의자는 일어나자마자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래야 인생도 잘 풀린다.
죽음 마케팅으로 병원은 돈을 번다. 막대한 자본으로 죽음을 붙잡고 있음으로 거대한 부를 축적한다. 병원이 죽음을 막을 거라 착각해선 안된다. 아버님이 돌아가신 지 2달이 넘었는데 아직도 정리되지 못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재산이 많아서가 아니라 신용불량자여서이다. 우린 왜 죽음을 미리 준비하지 않는 것일까? 부모님이 아프면 유명병원에 모시고 가고 병이 심해지면 명품요양병원에 모시는 걸로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한다. 인기 있는 병원을 더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은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이 아니다. 죽음 앞에선 돈자랑도 의미가 없다. 죽음 앞에서 흑우되지 말아야 한다. 엑스맨처럼 온갖 장치 주렁주렁 달고 목에 호흡기 달고 죽는 삶이야말로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이다.
어린 시절 할아버지를 모시고 위독한 어르신들 인사 다니면서 난 철이 들었다. 야릇한 죽음의 냄새와 쾌쾌하고도 지릿한 죽음의 냄새를 맡고 검정파리처럼 갓을 쓴 하얀 얼굴의 저승사자가 병풍뒤에 숨어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죽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있다는 것을 그때 배웠다. 죽음을 배워야 삶의 소중함과 내가 가야 할 길을 빨리 결정할 수가 있다. 많은 죽음을 겪음으로 우린 삶에서의 중요한 가르침을 얻게 된다. 내 달력엔 생일보다 기일이 많다. 집에서 키우던 돼지나 닭이 잔칫날이나 제삿날 상에 오름으로 우린 미안함과 생명의 소중함을 배우게 된다.
닭뼈를 먹고 3일 동안 내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앓다 죽은 누렁이를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 잡아먹었다. 가죽을 벽에 걸어두었을 때 내 심정이 얼마나 참담했는지 모른다. 죽은 개를 손질하는 옆집아저씨의 날렵한 칼질이 미웠다. 짐승을위해 장사치르고 추억하는 것은 오히려 당시엔 사치나 놀림거리였다.
처음부터 누렁이는 먹기 위해 키운 것이었다. 집에서 키운 고양이를 장터에 팔러 가는 날 동생들은 하루종일 울었다. 이별의 연습을 했던 추억 속의 날들이다. 그날, 동생은 일기장에 빼곡히 슬픔을 기록했다. 둥이를 팔러 아빠가 인동시장에 갔다. 가여운 둥이, 귀돌이는 팔지 못하게 담엔 꼭 말려야겠다.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 속에 파릇하게 살아난다. 슬픔엔 이상하게도 새살이 안 돋는다. 수십 년이 지나도 눈물이 난다.
지금 우리는 죽음 마케팅시대에 살고 있다. 죽음은 무조건 연기해야 할 채무인 것처럼 여기고 있다. 죽음의 당사자가 원하는 것이 옵션이 아니었다. 온전한 삶도 온전한 죽음도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당신은 죽음을 회피할 것인가 받아들일 것인가? 기다리고 있을 것인가? 연장할 것인가? 죽음이 오기 전에 모든 결정은 당신의 몫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