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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삼씨는 14살의 나이로 고향 황해도 용연군에서 남한으로 납치됐다.ⓒ시사IN 이명익
남한 특수부대원들에 의해 납치된 북한 소년 김주삼이 67년 만에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에서 이겼다. 1956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던 김씨는 그해 10월10일 밤 고향인 북한 황해도 용연군 용연읍 자택에서 잠자던 중 몰래 침투한 한국 공군 특수부대에 의해 납치됐다. 이어 서울 구로구 오류동 군부대에서 4년간 강제 노역을 해야 했고, 풀려나서도 잠재적 대공 용의자로 취급돼 평생 감시와 사찰을 당했다(〈시사IN〉 제778호 ‘납치 소년 김주삼의 60년 망향가’ 기사 참조). 김주삼씨 사건은, 한국전쟁 휴전 후 첩보활동 명목으로 북한 민간인을 무단으로 납치하여 정보를 취득한 뒤, 필요성이 없어진 대상자를 첩보부대에서 무보수로 노역을 시키며 북한으로 돌아갈 권리도 부정하고 남한에 억류시킨, 보기 드문 인권침해 사건이다.
김주삼씨 납치 사건의 진실과 억울한 피해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공식 확인했지만 정부는 이를 외면했다. 2012년 국방부 소속 특수임무수행자 보상지원단은 오류동 소재 공군 첩보부대인 8263부대의 백령도 파견대원 오세훈씨 등이 1956년 10월10일 북한에 침투해 김주삼씨를 납치했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국방부 조사단은 당시 북파 공작원 오씨에 대한 보상금 신청사건 참고인으로 김주삼씨를 불러 사실관계 진술조서를 받았다. 국방부는 이 조서의 신뢰성을 인정해 납치 공작원 오씨에 대한 특수임무 수행을 인정하고 억대 보상금을 지급했다. 하지만 정작 납치 피해자 김주삼씨에 대해서는 국방부가 피해 사실을 확인하고도 후속 조처를 외면한 것이다.
국가가 사과하라
김씨는 2020년 납치와 강제 억류 등 책임을 물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청구 액수는 2014년 김지하 시인이 유신정권 시절 옥고 등으로 당한 피해에 관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인정된 위자료 원금 15억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정부는 김씨가 납치된 후 미군 특수부대에서도 조사를 받았다는 점을 들어 가해자가 미군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또 배상책임에 대해서는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맞섰다. 서울중앙지법 제37민사부(박석근 부장판사)는 2월14일 이 소송에서 “국가는 원고에게 10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미군에 납치 책임을 넘기는 정부 측 주장에 대해선 납치에 가담한 첩보원들이 한국공군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배척했다. 또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주장에 대해 “신의칙에 반하는 것으로 허용될 수 없다”라는 판례에 따라 국가의 항변을 배척했다.
이에 앞서 김씨는 지난해 제2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에도 자신의 억울한 납치·억류 피해 진상을 조사해달라고 진정했다. 지난해 8월 진실화해위는 김씨 사건에 대해 ‘공군 특수부대에 의한 납치 및 노역행위 등 위법 또는 현저한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로 인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정했다. 이어 국가가 신청인에게 사과하고, 피해와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한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강제 이산으로 인한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신청인의 희망에 따라 북한의 가족과 상봉할 기회를 제공하라’고 권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