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2:1]
나는 시온의 공의가 빛 같이, 예루살렘의 구원이 횃불 같이 나타나도록 시온을 위하여 잠잠하지 아니하며 예루살렘을 위하여 쉬지 아니할 것인즉......"
나는...잠잠하지 아니하며 - 본절의 화자(話者)를 누구로 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구구하다. 먼저는 저자인 이사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본절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영광이 의미하는 바는 이스라엘이 회복되고 그 영광이 온 땅에 드러나기까지 이사야는 그의 수고와 중보 기도를 중단하지 않겠다는 것이 된다
한편 하나님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이 경우 본절은 구속 사역을 성취하기까지는 그의 백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각오를 실은 구절이 된다. 이외에도 유대인, 신약교회 성도 등으로 보는 견해가 있는데 유력한 견해는 아니다. 이중에서 본장의 전반적 흐름을 고려할 때, 본 화자는 1차적으로 이사야 선지자를,
더 나아가서는 위대한 중보자이신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겠다.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영적 회복을 맛볼 때까지 그 백성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중보 사역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사야가 특히 하나님을 향해 중보 기도를 드린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침묵 및 그의 백성의 불평이 전제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오랜 포로생활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이 시행되지 않자 백성들은 불평을 하고 그 불평을 들은 이사야가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는 대목이 전제되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우를 64:12; 시 28:1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57:11; 65:6등에서는 오랜 침묵을 깨고 응답을 약속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읽을 수 있다.
구원이 횃불같이 나타나도록 - 앞의 '공의가 빛같이'의 동의적 평행구이다. '횃불', '빛' 따위는 그 특징이 그 주위를 향해 빛을 발산한다는 것이다. 여기서는 이제 이스라엘에게 비롯된 구원이 마치 아침태양이 가까운 언덕, 들, 그리고 더 높은 산을 향해 그 빛을 펼쳐 나가듯이
온 세상을 향해 그 영향력을 펼쳐 나갈 것을 의미하기 위해 사용되고 있다. 저자는 나타날 구원이 이스라엘뿐 아니라 온 열방에도 미칠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사 62:2]
열방이 네 공의를, 열왕이 다 네 영광을 볼 것이요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 - '새 이름'은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용어이다. 성경은 새 하늘과 새 땅이 도래한 후 그곳에서 살게 될 자들을 언급할 때 바로 이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이 회복된 상황을 표현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스라엘은 현재 수치와 가난, 압제로 대변되는 삶의 상황 속에 처해 있다. 그러나 메시야의 시대가 도래하면 번영과 영광으로 삶의 상황이 바뀌게 될 것인데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을 새 이름을 얻을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네 하나님의 손의 왕관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 원문직역은 '여호와의 손안에 있는 영광의 면류관'이다. 본문은 해석하기 힘든 구절로 알려졌는데 그 이유는 면류관이란 머리에 쓰는 것이 상식인데 여기서는 그 면류관이 손안에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 '면류관'을 축제 혹은 결혼식 따위 때에 손에 들고 행진하던 화환, 꽃다발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본절은 면류관 자체보다 하나님 손안에 있다는 사실에 강조점이 있는 내용으로 보고 해석되어야 할 것같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음을 가리킨다(신 33:3). 그리고 후 문맥은 하나님이 다시는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고 보호하실 것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본 구절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게 될 이스라엘을 강조하는 구절로 봄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영광의 '면류관' 혹은 ' 왕관'으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도 간과될 수는 없다. 특히 '왕관'은 '체니프'로서 '둥글다', '굴곡을 이루다'는 뜻을 내표하는 말이며 가장자리에 보석 따위가 박힌 둥근 면류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 왕관은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나는 영광의 상징이다. 이 사실을 중시할 대 본절은 이스라엘이 이방 세계 앞에 두드러질 것을 암시한다고 간주될 수 있다. 앞 문맥은 사실 이것을 지지한다.
[사 62:4]
다시는 너를 버리운 자라 칭하지 아니하며 다시는 네 땅을 황무지라 칭하지 아니하고 오직 너를 헵시바라 하며 네 땅을 쁄라라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를 기뻐하실 것이며 네 땅이 결혼 한바가 될 것임이라...."
헵시바 - 문자적인 뜻은 '나의 기쁨은 그녀 안에 있다'이다. 말하자면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기쁨의 대상이 되겠다는 것이다. 물론 예루살렘이 그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은 자신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은총을 베푸셨기 때문이다. 한편 히스기야 왕의 아내가 '헵시바'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히스기야 왕은 메시야의 모형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베울라 - 문자적인 뜻은 '결혼한 자', '결혼한 부인'이다. 그러나 이 용어는 결혼했다가 이혼 당한, 말하자면 버림을 받은 여인에게 사용되는 용어이다.
여기서는 한번 버림을 받았으나 다시 용서함 받은 이스라엘의 신분을 암시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근동에서는 한 왕이 다른 왕으로부터 왕권, 곧 통치권을 받았으면 그는 그 왕국과 혼인 관계에 들어갔다고 흔히 말한다.
또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그의 교회를 신부로 비유하곤 한다. 저자는 다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지 않을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로 이 결혼 이미지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