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모두 그렇다
김은희
새벽 1시, 온라인 멤버 수 98명. 화면을 닫았다.
새벽 2시, 화면을 다시 열었다. 온라인 멤버 수 105명.
아! 그사이 온라인 멤버 수가 7명이나 늘어 있었다.
밤이 깊어 가면 줄어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많은 사람이 깊은 밤을 밴드(BAND Surfing)를 하며 지새우고 있었다.
내가 들어 있는 인문학 밴드다. 회원 수가 몇천 명으로 많기는 하지만, 이 깊은 밤에 100여 명이나 되는 사람이
잠을 잊고 인문학을 탐구하느라 여념이 없이 학구적인가? 아니면 불면의 외로운 밤을 무언의 소통으로 지새운
단 말인가?
[모임이 쉬워진다/밴드]
BAND 메인 화면 표제이다.
모임이 쉬워져서 그런지 참으로 수많은 밴드가 있다. 번거롭지 않게 살려고 여러 개를 정리했음에도 12개의 밴
드에 가입이 되어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모임 만들기를 좋아하고, 어떠한 모임에 소속되기를 원하고, 그 모임
에서 관심받길 바란다. 나아가 어떤 이는 모임의 집단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여 이끌어 나가려는 강한 욕구를 내
어 비추기도 한다.
대면하지 않고서도 SNS(Social Network Service) 소통이 생활화가 된 요즈음 여러 가지의 좋지 않은 부작용(副
作用)이 따르기 마련이다.그리고 On-line에서만 교류가 이루어지면 간단한데, 간혹 Off-line으로 확대가 될 때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나의 여러 밴드 중 밴드를 이끄는 리더의 성격에 따라 모임의 모양새가 달라지
는 것을 경험했다.
배신 – 한국 근대사를 연구하는 모 밴드 참여로 하여 우리 역사의 이해와 학습을 해오고 있었다. 어느 날 문자가
왔다.
〈저는 근대사 밴드에 글을 올리던 B입니다. 금번에 역사탐구 밴드를 따로 만들어 그쪽에서 빠져나왔는데, 선생
님께서 제가 새로 만든 밴드에 오셔서 좀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그 밴드 내에서 내가 올린 글을 읽고 많이 배웠다고 한다. - 주로 우리말 표현의 오류를 수정하여 주었을 뿐인데
내가 〈무엇을 도와 드릴까?〉 물었다.
〈선생님께서 국어를 전공하신 것 같습니다. 밴드에 올린 글에 잘못된 언어 표현을 지적해 주시고, 우리말 어원의
유래나 뜻에 대해 도움을 주십시오.〉
그러면서 공리(공동리더)도 해 달라고 했다. 역사에 해박한 지식으로 종종 깊이 있는 자료로 글을 올리기(Postin
g)에 내심 훌륭하게 생각하여 관심 깊게 보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후에 알아보니 근대사 밴드의 리더가 자기와
역사관이 다르고 독불장군 식이고, 자기를 인정하지 않음과 아랫사람 다루듯 하여 나왔다고 했다.
B가 그 밴드에서 리더한테 상처를 받았나 보다 생각했다. 귀 얇은 나는 그렇지 않아도 B를 좋게 생각하던 터라,
그 밴드에서 탈퇴하여 B가 새로 만든 밴드로 들어왔다. 나뿐만 아니라 몇몇 사람이 빠져나와서 밴드에 합류하였
다. 게 중에 어떤 이는 그 근대사 밴드의 리더인 A가 편협한 마음과 탐욕이 좀 있어서 탈퇴하였다는 이야기까지
하였다. 요즘 사람들은 개별화된 존재로 자기와 사상과 이념이 좀 다르면 쉽게 분해되어버리는 특성을 가진 게
분명하다. 배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담 – B가 리더로 된 역사탐구 밴드가 결성되었다.
다른 밴드에서 찢어져 나온 사람들끼리만 밴드를 운영하다 보니 한계가 있고 활성화가 되지 않았다. 그러자 리
더가 밴드를 공개 하고 여기저기 가입초청을 하였다. 20명 미만이었던 회원이 갑자기 세 자릿수가 되었다. 보통
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라 공개를 잘 하지 않지만, 자기가 ‘무슨 일을 하고 있다’라고 밴드에 공개하는 이
들도 있어서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많은 회원이 들었음을 알 수 있었다.
어찌 되었든, 회원 수가 늘어나니 우리의 리더 신이 났다. 전문적인 역사자료를 하루에 한 편 이상을 올리면서 공
부하라, 댓글을 달아 달라 막 독려합니다. 댓글을 못 달면 표정 짓기라도 해달라고 요구했다.
글도 많이 올라오고, 댓글도 많이 달리고, 표정 짓기도 쭉쭉 늘어났다.
리더는 동종(역사탐구) 밴드 중에서 회원 수 대비 Posting과 댓글 수가 2위에 올랐다고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네이버에서 그것도 통계를 잡아 알려주나 보다. 아마도 전에 활동했던 근대사연구밴드의 리더한테 분가해 나와
서 “나 이렇게 잘하고 있지롱!”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평일에는 역사 관련 글만 올리고, 공휴일에는 자유 주제로 글을 올리라’ 공지를 계속 띄운다. 그렇지만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BAND Surfing을 하며 댓글을 달고, 표정 짓기를 하는 일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더구나 역사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역사탐구 밴드에 글을 올린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부담이었을 것이다.
경쟁시키기 – 우리의 리더, 어느 때인가부터 달마다 밴드 활동 순위를 발표한다.
포스팅 1위 B(리더) 35회, 2위 박ㅇㅇ 13회, 3위 윤ㅇㅇ 10회… 5위까지,
댓글 달기 1위 이ㅇㅇ, 2위 정ㅇㅇ, 3위 김ㅇㅇ….
본 밴드 방문 1위 ㅇㅇㅇ, 2위 ㅇㅇㅇ 하는 식으로
매월 이런 발표가 이어집니다. 거기에 더하여 매월 1회씩 탐방 정식모임 하는데, 그때 순위에 든 사람에게는 상
품도 주겠단다. 학창시절에 등수 매기기에 진력이 났던 사람들인데 기분이 좋지 않을 겁니다. 나부터도 ‘은퇴하
여 이제는 경쟁에서 벗어났나보다 했는데, 이런 순위 매김에 내가 신경 써야 하는가?’하고 기분이 유쾌하지 않았
다. 어찌하다가 내 나이가 알려져 본 밴드 내에서 그래도 연장자라고 몇 사람이 나한테 하소연한다. ‘우리가 애들
이냐고?’ 순위 매기는 이런 유치한 짓에 기분 나쁘다고 일창(밴드 내 일대일 채팅방)으로 문자가 왔다.
리더한테 제가 문자를 보냈다.
〈밴장님, 무슨 밴드 경진대회 나가는 것도 아닌데, 포스팅을 못 하는 회원들 기죽게 하지 맙시다. 댓글을 못 달아
도, 능력이 리더의 눈에 못 미쳐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회원들을 좀 품어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리더는 순위 매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나도 점점 이러한 일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쫓아내기 – 작년 여름 발칸반도 여행 중, 한밤중인데 문자가 들어왔다.
〈형님, 저 역탐밴드에서 강퇴 당했어요.〉
잠이 깨어버렸기에 문자로 물었다.
〈무슨 이유로요?〉
〈모르겠어요. C의 포스팅에 댓글 달았는데, 제가 강퇴 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어요.〉
C는 7명 공리 중 한 사람이었다. ‘여기 데이터가 원활하지 않아 밴드에 못 들어가 보니 Wi-Fi가 될 때 밴드에 들
어가 보겠다.’하고 달래주었다.
남도 지방에 거주하며 전기설비를 하는 50대 남자 후배였다. 내가 올려놓은 글에 모르는 한자어가 있으면 주저
하지 않고 공개적으로 뜻이 뭐냐? 물었다.
〈형님. ‘海諒’이 무슨 뜻입니까?〉
이래저래 여러 번 On-line 상에서 답해주었더니, 여자인 나를 평생 형님으로 모시겠단다. 역사에 대한 전문적 지
식이 없고 전기만 아는 사람이 역사탐방 밴드에서 배워가며 함께 어울려보려 노력하는 모습이 떠올라 늘 격려를
보내주었는데 말이다.
그 후로 리더 B는 ‘이러한 사람들은 정리하겠다.’라고 공지사항에 올리더니, 회원들을 강퇴시키기 시작했다.
- 포스팅 내용에 역사의식이 없고 역사와 무관하다.
- 댓글이 포스팅된 글과 관련 없고 이해 수준이 낮다.
- 한 달 이상 본 밴드에 방문하지 않았다.
- 방문은 하는데, 얌체같이 고급 지식만 쏘옥 빼가고 댓글도 달지 않고,
표정 짓기도 하지 않는다.
- 매월 행사인 역사탐방에 참여하지 않고 관심이 없다.
(탐방 후 저녁 식사 후 애프터(술자리)에 참석하지 않으려면 역사탐방에 오지 말라)
귀국하여 밴드에 들어가 보니 전기설비 후배가 밴드의 공리인 C의 포스팅한 자료에 댓글을 올렸는데, 단어 중에
은어(隱語)가 들어가 있었던 것을 발견했었다. 그래도 가르쳐 주고, 너그러이 품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말이
다.
누구든 외롭다 - 연초에 한 달여가 넘게 몸이 좀 아파서 약을 먹고, 마음을 쉬느라 일체의 밴드 활동을 하지 않았
다. 생각이 번거로워지기 싫었다.
어느 날, 영등포에서 농기계 상을 하는 이ㅇㅇ한테 연락이 왔다.
“누님. 저 밴드서 짤렸어요.”
“그랬어요. 저도 스트레스받기 싫어서 오랫동안 밴드에 들어가지 않았어요. 우리 B밴장 밴드 사랑이 흘러넘쳐
서 그런 것이니 이해하시고, 마음 상해하지 마세요.”
“맞아요. B 밴장은 이상하게 자기 지위에 순응하지 않고, 조금 비판적인 사람들을 쳐 내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저 너머 지도자 비슷해요. 조금만 기다려 주면 우리가 도움을 줄건 데∼ 암튼 속 모를 인사입니다.”
좀 거칠기는 해도, 탐방 모임 때 젊은 회원들 먼 부산에서 왔다고 식삿값은 물론 술값까지 내주던 정 많은 사람인
데 마음이 상했나 보다.
그 후로 ㅇㅇㅇ 강퇴 당했다, ㅇㅇ도 강퇴 당했다, 소식이 들렸다.
공리 C에게서도 전화가 왔다.
“저 역탐 밴에서 강퇴 당했어요.”
“아니! 나를 비롯하여 다른 사람 다 쫓아내도 그대를 쫓아내면 안 되지요. 우리 C가 역탐밴드에 수준 높은 자료
를 많이 올려 본 밴드의 활성화에 기여를 많이 했는데, B밴장 이해가 안 되는데요.”
C는 문화유적과 역사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고, 그 누구보다 IT 기술을 활용하여 역사자료를 도식화하는데 뛰어
나서 밴 회원들이 천재라 칭송이 많은 사람이다.
“선생님, 저 위로해 주세요.”
C는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그도 큰 상처를 받았나 보다.
그 후, 작년에 강퇴 당했던 전기장이 후배가 뜬금없는 밴드 가입 초청문자를 보내 왔다. 강퇴자 모임 밴드를 자기
가 만들었으니, 나보고 리더 해서 새 밴드를 운영해보자 한다. 웃음이 나왔다.
〈자존심 상하고, 웃기게 무슨 쫓겨 난 사람들 모임이냐? 이 복잡한 세상 자꾸 이곳저곳에 엮이지 말고 자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요즈음 엮여 있는 밴드도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정리 중이다. 잘 이끌어 나가지
못하면 어떤 모임의 리더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구속되지 말고 홀가분하게 살자.〉
그러자 바로 뜻을 수그렸다.
〈네. 알았습니다. 삭제할게요. 생각이 짧았어요. 제가 좀 무식해서 즉흥적인 면이 있네요.〉
아니다. 아직 세상일에 열정과 사랑이 남아 있다는 거다. 그대는 아직 순수를 잃어버리지 않은 것 같아 좋다. 소
통이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하고, 찾아오면 맛난 술도 사주겠다고 했다.
가끔 역탐 밴드에서 강퇴 당한 사람들한테 보고 싶다. 술 사주세요. 번갯팅 하자고 전화가 온다.
모두 외로운가 보다. 나도 무척 외롭지만, 아닌 듯 산다,
자기와 좀 맞지 않는다고 마구 사람을 털어내고, 또 새로운 회원들 맞이하여 1등 밴드를 만들려고 열 일하는 역
탐 B밴장. 그도 무척 외로운 사람일 거라는 생각에 B의 모습을 떠올리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김은희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하였으며, 전주교대와 한국방송통신대를 졸업했다. 『아동문예』에 동화가 추천되어 등단했다.
40여 년 동안 초등교사, 교감, 장학사를 거쳐 교장으로 퇴임하여 아이들의 꿈을 키워 주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난 바보 아니야』 등 여러 편이 있다.
현재 성남탄천학에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