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신도분들이 내가 있는 이 절까지 거리가
너무 멀어 오기 힘들다고 대구 시내에 포교원을
내서 스님의 법문을 자주 쉽게 듣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여린 면이 있어서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대로 대구에다 꽤나 큰 포교원을 내고야 말았다.
이 먼 곳에서 오갈 수도 없고 공양주 보살님한테
절을 맡겨놓고 대구 포교원에 가서 살다시피 했다.
다행한 것은 신심이 별로 없는 이곳 신도님들이
그럴 때에는 오히려 나에게는 더 고마웠던 것이다.
다른 포교원 스님들은 저녁 예불만 다 끝나게 되면,
포교원문을 즉시 잠가 버린다고 하는 것이었다.
나는 직장 끝나고 오는 신도분들을 위해서 밤에 맘대로
들락날락해도 되도록 자유롭게 했으니, 밤 9시에 일이
끝나고 오기도 하고, 10시에 마치고 오는 이도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포교원은 내놓은 것이고, 마음 둘
곳이 없어 힘든 사람들을 살피기로 한 이상 좀 불편해도
어쩌겠는가?
밤마다 자기들 하소연을 들어주기도 하고 또한 즐겁게
세상의 노래도 가르치기도 하고 크게 떠들다, 이웃집에게
너무 시끄럽다고 싫은 소리도 듣기도 하고 하다 보니,
정도 들고 더 깊이 정진을 시키고 싶어서 아예 거사님들께
허락을 맡은 사람에 한하여 철야기도를 감행하기로 했다.
밤이면 잠만 자라고 어두운 것이 아니라, 마음을 고요히
하라고 어두운 것이니, 염불기도 정진에 열정을 다하기로 하고,
뜻이 맞는 신도들을 결성하여 백일기도에 임하기로 하였다.
백일을 마치고 신도 한분이 다른 신도분을 한 사람 데리고
왔는데, 무당이 될 팔자라고 해 굿을 해야 한다고 5백만원이나
주고 굿 약속을 해 놓았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알게 된 그 사람의 동생 되는 신도가 포교원엘 데리고 왔다.
나는 그 돈 반만 가지고 와라, 내가 천도제를 지내고, 백일기도나
같이 해보자고 했다.
그랬더니 돈도 적게 들어도 되고, 내말에 믿음이 생겨 확신이
서는지, 냉큼 내 말을 그대로 들어주니 내가 더 고마웠다.
그 보살은 남편도 없이 20년을 애 둘 데리고 사는 터라, 밤이면
절대 빠지지 않고 열심히 100일 염불기도를 정성껏 하였다.
100일 기도가 시작되고, 50 일쯤 되었을 때, 그 보살이 이상한
일이 생겼다면서 감동한 듯,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 형제들 중,
언니가 세 분인데, 언니들 자식들 셋이 결혼한 지 3년, 4년, 5년이
되어도 애가 없었는데, 조카 셋이 동시에 모두 다 같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신기하다며, 기도를 더 열심히 하니, 염불정진에 힘을 얻은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집에서도 낮에는 일하고 밤만 되면 끊임없이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