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태 동문의 글이 애잔하다
최윤환 14.03.15
정희태 동문의 카페에 들렀더니 가슴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들어 있었다.
"음력으로 2월12일이 제 어머니의 기일이어서 매년 고향을 방문하는 날입니다,
올해는 음력으로 시절이 조금 빠른 듯 하네요,
어머님이 떠나시던 그 해 이 날은 산수유가 노랗게 피어 있었는데, 올 해는 아직이어서 그런 생각이 듭니다
매년 이날이면 어머니가 다니시던 옥천성당에 들렀다가 집에 들어가지요,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랬습니다
오늘도 버스에서 내려서 처는 먼저 들여보내고, 혼자 터벅터벅 걸어서 제가 다녔던 중학교도 기웃거려 보고,
성당에 올라갔다가 정지용시인의 동상이 굽어보는 언덕배기 공원을 걸어서 집으로 갔습니다
1시간도 더 걸었음에도 거리에서 아무도 아는 이를 만나지 못하는 고향...
제가 자라던 당시의 건축물도 대부분 새 건물로 바뀌었듯이
사람들도 대부분 모르는 사람들로 채워진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도 이 성당만은 그 자리에 그 모습 그대로 있어 주어서 참 고맙습니다. <2014.3.11.옥천>"
어제 3월 13일 모임에서 정형은 내게 그의 고향 방문기에 대해서 위와 같은 뜻으로 조금 이야기 했다.
참말로, 글 서럽게도 잘도 표현했다.
내가 대상포진이라는 진단을 밤중(자정)에 충남 보령아산병원 응급실에서 확인하고는 그 다음날 서울로 급상경했다.
지난 2월 초순. 시골의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고 온 지도 오늘로서 한 달을 살짝 넘었다.
내 방 안에서 누워 계시는 노모. 나날이 벌레로 변신 중이다. 애벌레 수준의 언행이다.
겨드랑이에 꽉지를 끼지 않으면 뒤로 훌러덩 넘어지는 상황이기에 늘 껴안거나 눕혀야 한다.
자력으로는 전혀 일어나지 못하신다. 두 팔만 쭉 내미신다. 잡아서 일으켜 달라는 무언의 몸짓.
이런 어머니라도 더 오래 사셨으면 한다.
내가 빚 진 거 쬐금이라도 갚으려면 한참이나 더 오래 사셔야 할 터인데도 이런 소망은 내 착각이겠지.
모든 것이 거의 다 소진한 상황에 와 있기에...
정형.
글의 내용이 참으로 나를 짠하게 하오.
2014. 3. 15.토. 자정. 바람의 아들
이 글 참으로 안 써진다.
아마도, 나는 정형처럼의 가슴 짠한 일을 아직 당하지 않았다는 이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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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월간문학지에 글 하나 올리려고 예전에 썼던 글을 확인하던 중 양짱의 카페에 올렸던 글(7604 위 제목)이 고교 친구네 이야기이기에 여기에 퍼 왔다.
혹시 여기(대지사랑회 카페)에도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어머니를 2015년 설 지낸 지 며칠 뒤에 잃었고, 양력으로 제사 지낸다(훗날 내 자식들이 기억하기 쉽도록).
2019. 2. 24. 윤환
첫댓글 최형이야 내가 인정하는 효자였오,
나야 어머니에게 너무너무 미안하기만 한 불효자일세
이제 머지않아 기일이 돌아오고 또 고향엘 다녀와야 겠오
오늘 밤(2. 25.)에 지냈소.
아들 두 형제, 큰딸내외와 함께 간략하게 제사 지냈소.
종가 장손인 나는 아무런 종교관도 없고, 유교의 제례문화도 점점 회의가 짙어지고 있소.
간단하게 지냈소. 죽은 자의 영혼을 전혀 믿지 않는 나.
그저 내가 어머니를 잠깐이나마 떠올린다는 것일 뿐.
올 봄/3월에 시골 내려가거든 선산에 들러서 10여 대의 무덤에 일일히 절한 뒤에 부모한테는 가장 늦게 절해야겠소.
솔바람 솔냄새가 사는 산말랭이오.
멀리 서해바다가 내려다보이고...
정형의 글이 무척이나 애잔하여... 나도 잡글 보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