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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여러 가지 욕망을 갖고 있는데, 사람에 따라 욕심의 종류가 다르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가장 공통적인 욕심은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라고 한다. 어떤 학자들은 이 욕망 때문에 인류가 계속 발전해 나간다고 한다.
옛날에는 사람을 평가할 때 가문(家門)을 대단히 중시하였다. 그래서 양반과 상민의 차등을 두었고, 양반 가운데서도 가문의 등급이 천차만별이었다.
그러다 보니, 될 수 있으면 자기 가문이 좋은 가문이라고 홍보할 필요가 있게 되었다. 실제로 좋은 가문이면 과장을 하거나 가식(假飾)을 할 필요가 없지만, 좀 한미(寒微)한 가문이나 양반이 아닌 가문이 양반 행세를 하려고 하면,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여 과장이나 가식을 하려고 애를 썼다.
과장하거나 가식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족보(族譜) 위조와 조상의 관직 위조 등이다. 우리 나라 족보는 안동권씨 집안의 성화보(成化譜) 등 몇몇 가문의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조선 영조 이후에 만들어졌다. 대부분 집안의 족보를 보면 시조가 있고, 그 이후 여러 대를 잇지 못하다가 고려 중기나 후기의 인물인 중시조(中始祖)가 있는데, 거기서부터 계속해서 대를 이어왔다. 중시조도 당연히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있겠지만, 더 이상 알아낼 수 없으므로 시조와 중시조 사이에는, 정확한 기간이나 중간에 어떤 조상이 있었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비워둔 것이다.
그런데 최근에 와서 어떤 집안에서는 새로 족보를 하면서, 중시조와 시조 사이를 다 채워 넣고, 또 윗대 조상들에게 최고의 관직으로 멋대로 채워 넣는 경우도 있다. 옛날 조선시대에 살았던 조상들이 몰랐던 시조 이후 중시조까지의 조상들의 이름과 행적을 오늘날 와서 더 자세히 안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
또 자기 윗대를 잘 모르는 경우나 한미한 경우, 유명한 인물의 후손으로 집어넣는 경우가 있다. 이를 투탁(投託)이라고 하고, 그렇게 된 일족들을 ‘투탁이’라고 한다. 조상에게 없는 벼슬을 적어 넣은 경우, 당시의 전후 상황을 금방 알 수 있고, 남의 조상 밑에 달린 경우에도 옛날 족보를 찾아보면 어느 시기에 붙여졌는지 알 수 있다.
또 이름 모르는 오래된 고분(古墳)을 자기들 조상의 산소라고 조작하여, 그 앞에 비석을 세우는 경우도 있다.
지구의 역사는 45억년 정도 되었고, 인류의 역사는 100만년 정도 되었으나, 인류가 역사 기록을 남긴 연대는 5000년도 되지 않는다. 중국에서는 은(殷)나라까지는 역사시대로 치지만, 그 이전의 하(夏)나라마저도 전설시대로 친다. 그러니 문헌의 역사가 오래된 중국도 3000년 정도의 역사기록만 갖고 있다.
고려시대의 역사도 1170년 정중부의 난으로 대부분의 문헌이 다 불타버렸기 때문에 그 이전의 역사를 알 수가 없다. 각 성씨의 중시조라는 인물은 대부분 무신란 이후 고려 후기의 인물이다. 알 수 있는 데까지만 조상을 밝히고, 조상이 낮은 벼슬했다고 해서, 남들이 무시하지 않는다. 자기가 행실을 똑바로 하고,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 구실 못하는 사람이 좋은 조상을 두었다고 해서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양반 가문으로 일컬어지는 퇴계 이황 선생의 경우, 자기 6대조까지밖에 모르고, 그 벼슬도 아전에 해당되는 호장(戶長)이라고 솔직하게 밝혀 놓았다. 그렇다고 조금도 퇴계선생이나 그 후손들에게 흠이 되지 않는다. 자기 조상은 본래 그대로 두어야 하는 것이지, 높은 벼슬을 덧붙인다고 해서 자신이 더 돋보이는 것이 아니니, 조상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