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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Ω『그리스 비극 걸작선』
고대 그리스에는 3대 비극작가가 있었다. 이들의 작품을 ‘그리스 비극’이라고 하는데, 전해오는 작품은 33편으로 ‘아이스퀼로스’와 ‘소포클레스’작품이 각 7편, ‘에우리피데스’작품이 19편인데, 이들 3대 비극작가의 대표작 2편씩을 선정해서 엮은 책이 『그리스 비극 걸작선』이다. 비극의 창시자로 일컫는 아이스퀼로스의 독특한 윤리적 세계관을 보여주는 작품인 <아가멤논>, <프로메테우스>,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리는 소포클레스의〈오이디푸스〉, <안티고네>, 비극작가로서는 아웃사이더였던 에우리피데스의 <메데이아>, <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 등이 그것이다.
편집 순서도 〈아가멤논〉·〈프로메테우스〉, 〈오이디푸스 왕〉·〈안티고네〉,〈메데이아〉·〈아울리스의 이피게네이아〉순이며, 이들 모두는 인간의 운명을 사유한 비극작품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교과서로 통하던 「호메로스」의 이야기가 더이상 그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된 기원전 5세기 무렵, 신화의 전통적 가치관이 현실 세계와 갈등을 빚을 무렵, 그리스인들은 신화적 사유에서 벗어나 합리적 인식을 향유 하고자 했다. 이무렵 신들과 자연보다 인간 자신을 탐구 대상으로 삼고자 했던 시대정신에 따라, 호메로스 이야기를 재해석하거나, 그 속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시대적 사명을 가진 작가들이 등장해 진지하고 치열한 성찰의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이들 비극은 이후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져 그리스 철학을 완성하고, 250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셰익스피어 비극과 유진 오닐의 희곡,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등으로, 예술과 사상, 종교와 역사에 침투해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우리는 지금 그리스인들의 운명에 대한 성찰의 과실을 따 먹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드라마나 연극이 그리스 비극에서 기원한 것을 두고 하는 말만이 아니다. 드라마·영화·연극에서 그리스 비극이 핵심 모티브가 되거나, 그 비극을 분석한 틀에서 온전하게 이해되는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 비극을 몰라도 감동과 재미를 체험할 수는 있겠지만, 그리스 비극을 알아야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스 비극을 접한 관객과 그렇지 못한 관객에게서 전혀 다른 감상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비극 33편은 ‘이것만으로 그리스 3대 비극작가의 작품세계를 개관할 수 있다’고 이 책의 편집 저자 천병희 교수는 밝히고 있는데,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군 총사령관 ‘아가멤논’, 그는 대외적으로 빛나는 공로를 앞세우며 귀향하지만, 집안 단속은 부실하다 못해 위태로웠으며 그것은 ‘기약된’ 위험이기도 했다. 10년 만의 귀향, 그러나 그는 아내 ‘크뤼타이메스트라’와 정부 ‘아이기토스’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당한다. 그는 왜 이런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일까. 이러한 참극은 아가멤논 가문에 드리운 비극의 시작도 끝도 아닌 중간 지점이며, 이것은 작가 아이스퀼로스가 평생을 걸고 사색한 신의 섭리와도 맞닿아 있다.
비극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이스퀼로스는 ‘오만’(hybris, 傲慢)에 대한 신의 저주와 심판을 통해 독특한 윤리적 세계를 보여준 작가로서, 신들은 죄진 자에게는 당대가 아니더라도 자식이나 자식의 자식대에라도 반드시 벌을 내린다는 사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한번 지은 죄는 대를 이어 사악한 행동 속에서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며 또 그러한 행동에는 반드시 재앙이 따른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크뤼타이메스트라가 남편 아가멤논을 살해한 명분은 남편이 트로이 원정길로 가던 길목이었던 아울리스 항에서 순항을 위해 딸인 ‘에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다는 것이다. 또 그녀의 정부 ‘아트레우스’는 <아가멤논>의 아버지가 자기 아버지를 추방하고 형들을 살해한 데 대한 정당한 복수라고 주장하였다. 아가멤논의 영웅적이지 못한 죽음을 통해 고통과 슬픔의 필연성, 업보와도 같은 3대에 걸친 되물림을 보여주는 비극이 바로 이〈아기멤논〉이다.
제우스를 도와 티탄 족을 이기게 하고 올림포스 신들의 시대를 열게 한 공로가 있음에도 불을 인간에게 전해주고 기술을 가르쳐주어 인간 편을 들다가 ‘제우스’로부터 미움을 사 카우카소스 산 높은 암벽에 결박당한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의 역사로 관심의 눈이 바뀌는 지점에서의 비극이라는 장르가 태동했고, 비극이 신에게서 인간의 문제로 인간의 고통을 사유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상징성이 매우 크다.
그리스 비극의 ‘완성자’로 불리고, 기교면에서 대가의 반열에 오른 소포클레스는 비극의 작시(作詩)를 아이스퀼로스에게서 배웠다. 하지만, 아이스퀼로스의 화려함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엄격하면서 기교주의를 극복하고 나서야 비로소 등장인물의 성격에 맞는 최선의 문체에 도달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프로메테우스〉야 말로 “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극찬했던 이유다.
자신의 운명에 저항해 집을 떠나 떠돌던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바이의 왕이 되었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해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하지만 나라에 창궐한 역병과 관련된 선왕의 살해자를 찾던 도중에 자신이 과거에 피하고자 노력했던 운명이 현재의 비극을 잉태했음을 알게 되고, 친아버지를 죽이고, 친어머니와 결혼할 운명을 타고났다고 하여, 그 운명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에는 어머니이자, 아내이며, 아이들의 엄마인 이오카스테를 자살로 이끌고, 오이디푸스 자신은 제 손으로 제 눈을 멀게 하여 방랑의 길을 떠나고 만다. 그리스 비극하면 늘 떠올리게 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내용이다. 운명을 피할 수는 없지만, 운명에 굴복하지도 않았던 오이디푸스가 보여주는 고통과 비극성 앞에서 그리스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카타르시스라는 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효과를 논하며’에서 처음 쓴 말이다. 비극성으로 더욱 두드러지는 오이디푸스의 고귀한 성품에 대한 경외였을까? 큰 고통 앞에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의 고통이었을까? 왕이거나 왕이 아니거나, 인간이라면 누구나 피해 갈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깨달음은 누군가의 고통을 함께 슬퍼하며 그 고통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한다는 기쁨이었을까? 그것이 무엇이라고 한마디로 말할 수는 없지만, 슬픔과 고통 속에 그리스인들은 분명 무언가를 보았고, 나누었고, 오늘날 그것을 우리는 ‘그리스 정신’이라고 부르는지 모른다.
오이디푸스와 이오카스테 사이에는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있었고, 딸이 둘 있었는데 아버지가 방랑의 길을 떠나자, 왕권을 차지하려는 골육상잔 끝에 일대일 결투에서 서로 죽이고 죽었다. 그러자 새로 테바이의 왕이 된 크레온(이오카스테의 오빠)은 다른 나라의 군대를 이끌고 조국을 공격하다가 죽은 폴뤼네이케스의 시신을 매장하지 못하게 한다. 그러나 ‘안티고네’는 왕명을 어기고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다가 크레온에게 잡혔다. 안티고네로서는 죽은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는 것이 천륜, ‘신들의 불문율’이라고 주장하나, 왕명에 반하는 일이므로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안티고네는 자신의 행동이 반역이므로 죽음을 부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본성에 의지해 주어진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오이디푸스〉와 〈안티고네〉는 소포클레스 비극에 등장하는 주인공들로 ‘절대 의지’와‘절대 고독’을 잘 보여준다. 그들은 누군가에 의해 고통을 당하는 자의 나약한 모습이 아니라, 고통을 향해 뚜벅뚜벅 인간의 길을 걸어가는 당당한 모습을 보여준다.
소포클레스는 대체로 전통을 존중하고, 아이스퀼로스 못지않게 신들의 힘과 위대함을 인식하지만, 그에게 신은 항상 인간으로서는 알 수 없는 수수께끼 같은 존재였다. 아이스퀼로스가 신들의 섭리를 증명하려 했다면, 소포클레스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보여주는데 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두 선배 작가와 달리 신세대 작가로 불렸던 ‘에우리피데스’는 비극 무대에 영웅 대신에 평범하고 미천한 인물을 등장시켜 인간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그려냈다. 등장하는 영웅들도 성격을 자유롭게 변형하여 인간화시켰다. 여성의 심리 묘사에도 탁월했다. 그의 작품은 확실한 답변보다 문제 제기에 비중을 둠으로써, 판단을 독자 몫으로 돌리고 주제와 다른 나름의 거리를 유지하려 했다. 전통에서 벗어난 새로운 사고 기법이 당시에는 대중의 큰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 ‘위대한 아웃사이더’였던 그의 작품이 오늘날까지 가장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그의 작품이 꾸준한 사랑을 받았다는 증거기도 하다.
남편의 배신을 응징하기 위해 자기 자식을 죽이게 되는 〈메데이아〉를 통해 사랑과 미움, 온유와 포학 같은 상반된 감정들이 인간의 내면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메데이아’의 마음속에서는 사나운 복수심, 자식에 대한 애정, 파국에 대한 확신, 그리고 그로 인한 결과들에 대한 상념이 교차한다. 결국 아이들은 어떤 경우에도 구원받을 가망이 없다는 인식이 우위를 점하게 되지만 〈메데이아〉에서의 결론은 인간을 움직이는 대립적인 두 힘은 바로 격정(thymos, 激情)과 숙고(bouleumata, 熟考)이며, 이 가운데 격정이 숙고보다 우세해지면 그것이 곧 인간에게 재앙의 원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그리스 비극들의 내용을 본다.
〈아가멤논〉
아이스퀼로스의 〈아기멤논〉은 아가멤논의 딸 이피게네이나를 아울리스 항에서 순풍을 얻기 위해 ‘아르테미스’여신에게 제물로 바쳐졌지만, 마지막 순간에 아르테미스가 사슴을 대신 넣어주고 그녀를 구출하여 이국땅에 있는 자기 신전의 여사제로 봉사하게 하였다는 “사실은... 이랬어”라는 일설에 따라 개연성을 획득한다. 이피게네이아는 무자비하게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인과 아버지를 늘 원망하면서도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동생 ‘오레스테스’를 만나게 된다. 그러나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오누이 사이의 갈등이 긴장감을 더해주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주고받는 대화가 이체롭다.
그리스 비극은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의 원조를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절하고, 너무 적나라하여 인간 감정의 묘사에 혀가 내둘릴 정도다. 그리스 비극 작가 중 아이스퀄레스는 기원전 499년, 그의 나이 24세에 그리스 비극경연에 처음 참가하고, 기원전 484년 첫 우승을 거머쥐고 그 후 12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고 하는데, 이런 내용이 ‘파리스’ 신전 대리석 판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꼭 그처럼 언젠가 어떤 이가 집에서
어린 새끼 사자 한 마리를 길렀다네.
어미젖을 먹지 못해 아직도 젖꼭지가 그리운
그 새끼 사자, 어린 시절에는 유순하여
아이들에게는 좋은 친구요
노인들에게는 낙이었다네.
그리고 때로는 젖먹이처럼
그들의 품에 안겨 맑은 눈빛으로
손을 올려다보며 아양을 떨었지만
이는 다 배가 고파 한 짓이었다네.
하나 그 새끼 사자 세월이 흘러 장성해지자
부모에게 타고난 본성을 드러냈다네.
길러준 은혜 갚는답시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양 떼를 도륙하여
잔치를 준비하니,
집안은 피로 물들었다네.
집 안 사람들에게는 막을 수 없는 고통이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큰 재앙이었으니, 그가 집안에서
아테(광기의 여신)의 사제로 자란 것도 다 신이 뜻이었다네.
〈아가멤논〉에서 ‘아르고스’시를 노래하며 크로스(원로원 노인)들이 한 말이다. 다음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줌으로써 제우스로부터 혹독한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를 애태우며 바라보는 ‘오케아누스’의 딸들에게 프로메테우스가 하는 말을 들으면 인간이 고마워해야 할 신은 어떤 신도 아닌 ‘프로메테우스’라는 생각이 든다. 〈프로메테우스〉역시도 아이스궐로스 작품이다.
〈프로메테우스〉
“나는 그대들이 아는 것만 말하겠소.
들어보시오. 인간들이 겪었던 고통과
전에는 어리석었던 그들에게 내가 어떻게
사고력과 지적 능력을 주었는지 말이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인간들을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선물들이 호의에서 전달되었음을 밝히기 위해서요.
인간들은 전에는 눈을 뜨고도 보지 못했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소. 아니 인간들은 꿈속의
형상처럼 긴긴 일생 동안 모든 것을 아무렇게나
되는대로 뒤섞었소. 그들은 양지바른 곳에
벽돌집을 지을 줄도 몰랐고, 목재도 다룰 줄 몰았으며,
득시글거리는 개미 떼처럼 햇빛도 들지 않는
토굴 안에 파묻혀 살았소. 그들에게는
겨울과 꽃향기 가득한 봄과 결실의 늦여름이 다가와도
그것을 말해줄 확실한 징표가 없었소.
그들은 모든 것을 지각없이 해치웠지요. 그들에게
별들이 언제 어디서 뜨고 지는지 – 사실 그것은
가늠하기 어려운 일이지요 – 내가 가르쳐 주기 전에는.
그 밖에도 나는 그들을 위해 발명품의 진수인 수(數)를
발명해냈고, 문자의 조립도 찾아내어, 그것이 그들에게
모든 것의 기억이 되고, 예술의 창조적인 어머니가 되게
했소. 나는 또 처음으로 들짐승들에게 멍애를 엊었소.
봇줄의 노예가 된 야수들이 가장 힘든 노역에서
인간들을 구해주도록 말이오.
나는 또 말들을 수레 앞으로 끌고 가 고삐에 복종케 함으로써
부자들이 자신의 사치를 자랑할 수 있게 해주었소.
아마포의 날개를 달고 바다 위를 떠돌아다니는
선원들의 수레를 발명해낸 것도 다름 아닌 나였소.
가련한 나는 인간들을 위해 그런 기술들을
발명했건만, 나 자신은 지금 이 곤경에서
벗어날 방도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소.
〈오이디푸스〉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아내로 맞아 아들, 딸을 넷이나 낳고 사는 비정의 주인공 ‘오이디프스’는 실제 인물인지 의심이 되지만, 기원전 436년경 개최한 그리스 비극경연 대회에서 2등을 차지했다고 한다. 작품은 ‘소포클레스’의 최대 걸작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는“비극의 모든 요건을 갖춘 가장 짜임새 있는 드라마”라고 극찬했다. 〈오이디푸스〉는 스핑크스가 낸 수수께끼를 푼 뒤, 테바이 왕이 되고 왕비 이오카스테와 결혼하여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행복하게 살았다. 그러나 나라에 역병이 창궐하자, 신탁이 말한 정화를 위해 선왕 라이오스 살해범을 반드시 잡겠다는 결의를 보인다. 그러나 자신이 아내인 이오카스테와 그 전에 삼거리에서 살해한 라이오스의 아들임이 밝혀져 최책감에 시달리다가 이오카스테는 자살하고, 자신은 제 손으로 제 눈을 찔러 멀게 한다.
이 비극은 인간의 인식 능력으로 ‘어떻게’스스로 저지른 행위 과정과 의미를 깨닫고 나아가 ‘어떻게’절망적인 상황에 대응하는지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대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있소.
그대가 어떤 불행에 빠졌는지, 어디서 사는지,
누구와 사는지 말이오.
그대가 누구 자손인지 알고나 있나요?
그대는 모르겠지만, 그대는 지하와 지상에 있는 그대의 혈족에게는
원수외다. 그러니 어머니와 아버지의 저주라는 채찍이 언젠가
그대를 무서운 발걸음으로 뒤쫓으며 이 나라 밖으로 몰아낼 것이오.
지금은 제대로 보는 그 눈도 그때는 어둠만 보게 될 것이오.”
눈먼 예언자 테이레시아스가 오이디푸스에게 한 말이다.
이에 오이디푸스는 발끈하면서 말했다.
“저 자에게 이런 말을 듣고도 참아야 한단 말인가?
파멸 속으로 꺼져버려라! 어서 빨리 되돌아서서 이 집에서 썩 물러가지 못할까!”
그러나 운명이란 짐 지워지는 것일까? 아니면 만들어진 것일까?
〈오이디푸스〉비극은 원로원 대표 크로스가 절규에 가까운 마지막 말로 끝난다. “내 조국 테바이 주민들이여 보시오. 저분이 유명한 수수께끼를 풀고 더없이 권세가 컸던 오이디푸스요. 어느 시민이 그의 행운을 선망의 눈길로 바라보지 않았던가! 보시오. 그런 그가 얼마나 무서운 불운의 풍파에 휩쓸렸는지! 그러나 항상 생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기를 지켜보며 기다리되, 필멸의 인간은 어느 누구도 행복하다고 기리지 마시오.
그가 드디어 고통에서 해방되어 삶의 종말에 이르기 전에는”
〈안티고네〉
‘안티고네’라는 작품은 기원전 441년경 소포클레스에 의해 씌어졌다. 오이디푸스의 두 아들 에테오클레스와 폴뤼네이케스가 골육상잔을 벌여 서로 죽고, 죽이는 상황이 되고 난 뒤, 이들의 외삼촌인 크레온이 테바이 새 왕이 되었다. 새 왕은 형인 에테오클레스의 장례는 성대히 치르게 한 대신에 외국 군대를 몰고 대항한 동생 폴뤼네이케스의 장례는 치르지 못하게 하고 시신을 버리게 한다. 이에 여동생 안티고네가 오라비의 장례를 치르는 것은 천륜이며 ‘신들의 불문율’이라면서 장례를 치르려 한다. 크레온은 안티고네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크레온의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인 ‘하이몬’이 아버지를 말려보지만, 크레온의 생각은 확고부동하다. 크레온은 하이몬이 목을 매고 죽은 안티고네와 있는 모습을 보게 되고, 하이몬은 아버지를 칼로 찌르려다 실패하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허탈하게 궁전으로 돌아온 크레온은 아내 ‘에우뤼디케’가 절망해 자살했다는 비보를 듣고... 〈안티고네〉역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크레온 : 에테오클레스는 이 도시를 위해 싸우다가 모든 면에서 뛰어난 창수(槍手)로써 전사했으니, 모덤에 묻어주고 지하에 있는 가장 훌륭한 사제들에게 걸맞은 온갖 의식을 베풀 것이오. 하지만 그와 형제간인 폴뤼네이케스로 말하자면 망명지에서 돌아와 조국 땅과 선조들의 신들을 화염으로 송두리째 불살라 없애고 친족의 피를 마시고, 나머지는 노예로 끌고 가려 했으니 그와 관련하여 나는 도시에 알리게 했소이다. 아무도 그를 위해 장례를 치르거나 애도하지 말고 그의 시신을 묻히지 않은 채 버려두어 새 떼와 개떼의 밥이 되어 흉측한 몰골이 되게 하라고 말이오.
·크로스(원로원 노인) : 이 도시의 적과 친구에게 그렇게 하는 것이 그대의 마음에 든다는 것이로군요. 물론 그대에게는 죽은 자들과 살아 있는 우리 모두에게 마음대로 어떤 법령이든 적용할 권한이 있기는 하지요.
·크레온 : 여러분은 내가 내린 명령의 수호자가 되어 주시오.
·크로스 : 그런 짐이라면 더 젊은 사람들에게 지우시지요.
…
·크레온 : 보이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다오. 이 못난 인간을!
나는 본의 아니게 너를 죽였구나, 내 아들아.
그리고 당신마저, 여보! 아아, 기구한 내 신세!
어디로 시선을 돌리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손대는 일마다 잘못되고,
감당할 수 없는 운명이 나를 덮치는구나.
·코르스 : 지혜야말로 으뜸가는 행복이라네.
그리고 신들에 대한 경의는 모독 되어서는 안 되는 법.
오만한 자들의 큰소리는 그 벌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늘그막에 지혜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다네.
〈메데이아〉
‘메데이아’공주의 도움으로 천신만고 끝에 황금 양모피를 구해 왔으나 ‘펠리아스’왕은 약속을 어기고 왕위를 내주지 않았다. 메데이아는 속임수로 펠리아스 왕을 죽이고 그의 아들‘이아손’과 결혼했다. 그러나 이민족 출신인 메데이아에게 실증을 느낀 이아손은 코린토스 왕 크레온의 딸과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이에 크린토스 왕은 메데이아가 자기 딸에게 복수할까 봐 메데이와와 이아손 간에 난 두 아들을 데리고 즉시 코린토스를 떠나라고 명령한다. 메데이아는 애걸복걸하여 하루의 말미를 얻고는 독이 묻은 드레스와 머리띠를 결혼 선물로 보내 신부가 될 여자와 그녀의 아버지를 죽인다. 그리고 제 손으로 아들 둘을 죽였는데 이아손을 자식 잃은 아비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었고, 또 자식들이 아비에 의해 죽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자 메데이아는 절망에 몸부림치는 이아손을 조롱하며 용이 끄는 마차를 타고 아테나이로 도망친다. 그곳 ‘아이게우스’왕으로부터 망명하면 받아주겠다는 내략을 받아 두었던 것이다. 그러나…
·메데이아 : 당신이 진실로 악당이 아니라면 당신 결혼을 가족들에게 비밀로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나를 설득한 후에 결혼을 했어야죠.
·이아손 : 내가 당신에게 결혼에 관해 말했더라면 당신이 잘도 내 계획을 따라주었겠소. 지금도 마음속으로 격렬한 분노를 억제하지 못하는 주제에….
·메데이아 : 그 때문이 아니라 야만족 여인과의 결혼이 노후에 당신한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겠지요.
·이아손 : 잘 알아두시오. 내가 지금 아내로 맞는 공주와 결혼하는 것은 여색을 탐해서가 아니라, 앞서도 말했듯이 당신을 구하고 내 자식들에게 왕족의 피를 받은 형제자매를 낳아주어 우리 집안의 울이 되게 하려는 것이란 말이오.
…
·이아손 : 오오, 제우스이시여, 내가 어떻게 내쫓기는지.
제 자식을 죽인 흉악한 저 암사자에게
내가 어떤 수모를 당하는지 들으셨나이까?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
그것은 내가 통곡하며 어떻게 당신이
내 자식들을 죽이고는 내 손으로 시신들을
만져보고 묻어주는 것조차 거절하는지
신들을 중인으로 부르는 것이오. 아아, 내가
자식들을 낳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당신 손에
자식들이 죽는 것을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바라지도 않았던 것을 위해 신께서는 길을 찾아내시고, 이런 사건도 그렇게 해서 일어난 것임을 알 수 있게 한다.
〈타우리케의 이피게네이아〉
유럽사람들은 이름도 길지만, 외우기도 어렵다. 유비·장비·관우처럼 동양적인 이름과는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타우리케 이피게네이아’도 그렇다. 타우리케는 지금의 크림반도 옛 지명이고, 이피게네이아는 트로이 원정대장이었던 아가멤논의 딸로 그리스 원정군이 트로이 원정에 나설 때 아울리스 항에서 순풍을 얻기 위해 신탁대로 제물로 바쳐진 아이였다. 아이는 그리스 군에 의해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바쳐졌지만, 마지막 순간 아르테미스가 사슴을 대신 넣어주고 그녀를 구출해 타우로이 족이 아르테미스 여신을 모신 신전의 여사제로 봉사하게 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방인들을 여신께 제물로 바치는 관습에 따라 제물을 축성(祝聖-제물을 죽이기 전에 머리에 성수를 뿌리는 일)하는 일을 맡아보고 있었는데, 그녀는 자신을 제물로 바친 그리스인들을 원망하면서도 늘 고향을 그리워했다.
어느 날 그리스 젊은이 두 명이 제물로 바쳐지기 위해 끌려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그들이 아폴론의 명령에 따라 그곳에 있는 아르테미스 여신상을 그리스로 가져가려고 온 이피게니이아 자신의 남동생 ‘오레스테스’와 그의 친구 ‘퓔라데스’인 것을 알게 된다. 둘은 서로 오누이 사이인 줄 몰랐으나, 고향에 편지를 전해주면 살려주기로 하고, 그녀가 편지 내용을 읽어주다가 남매임을 알게 되었고, 그녀는 어머니를 죽인 살인자인 두 사람이 신상을 만진 만큼, 신상도 제물도 바닷물에 세정해야 한다며 타우로이 왕 토마스를 속이고는 오레스테스 일행을 싣고 온 배를 타고 그리스로 탈출한다.
혈육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 여자인 이피게니이아의 심리적 묘사 또한 뛰어나지만, 결국 그녀는 그것들을 위해 아르테미스의 사제라는 직책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만약에 그녀가 타우리케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텐데…. 이피게니이아의 필연적 행동에 대해 아테나 여신은 드라마 마지막에 토마스 왕에게 이렇게 말한다.
“잘했구려. 필연 앞에는 그대만이 아니라 신들도 복종해야 하는 법.
불어라 순풍아! 아가멤논의 아들을 배에 태워 아테나이로 인도하라!
나도 동행하며 내 언니(아르테미스)의 존경스러운 신상을 지켜주겠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