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택(麗澤)
인접한 두 못이 서로 물을 윤택하게 한다는 뜻으로, 벗이 서로 도와서 학문과 덕을 닦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麗 : 고울 려(鹿/8)
澤 : 못 택(氵/13)
1812년 다산이 제자 초의(草衣)를 시켜 그린 다산도(茶山圖)와 백운동도(白雲洞圖)가 전한다. 다산도를 보면 지금과 달리 아래위로 연못 두 개가 있다. 월출산 아래 백운동 원림에도 연못이 두 개다.
담양 소쇄원 또한 냇물을 대통으로 이어 두 개의 인공 연못을 파 놓았다. 담양 명옥헌(鳴玉軒)과 대둔사 일지암 역시 어김없이 상하 방지(方池)가 있었다.
이렇게 보면 상하 두 개의 연못 파기를 호남 원림의 중요한 특징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지 싶다. 못에는 연꽃과 물고기를 길러 마음을 닦고 눈을 즐겁게 했다. 뜻하지 않은 화재에 대한 대비의 구실은 부차적이다.
두 개의 잇닿은 연못은 주역에 그 연원이 있다. 태괘(兌卦)의 풀이는 이렇다. "두 개의 못이 잇닿은 것이 태(兌)다. 군자가 이것을 보고 붕우와 더불어 강습한다."
무슨 말인가? 두 연못이 이어져 있으면 서로 물을 대주어 어느 한 쪽만 마르는 일이 없다. 이와 같이 붕우는 늘 서로 절차탁마하여 상대에게 자극과 각성을 주어 함께 발전하고 성장한다.
이렇게 서로 이어진 두 개의 못이 이택(麗澤)이다. 이때 이(麗)는 붙어있다 또는 짝이란 의미다.
고려시대 국학(國學)에 이택관(麗澤館)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도 이택당(麗澤堂)이니 이택계(麗澤契)니 하는 명칭이 여럿 보인다.
성호학파의 학습법은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그 즉시 메모하는 질서법(疾書法)과 서로 절차탁마하는 이택법을 기반으로 한다.
이익(李瀷)의 제자 안정복(安鼎福)은 자신의 거처에 이택재(麗澤齋)라는 현판을 내걸었다. 이택의 구체적 방법은 토론이었다. 토론에도 얼굴을 맞대고 직접 논쟁하는 대면 토론과, 편지로 의견을 주고받는 서면 토론이 있었다.
성호는 이 둘의 장단점을 상세히 논한 글을 남겼다. 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서로 양보 없는 토론을 벌였다. 옳은 말에는 아래 위 없이 깨끗이 승복했다. 이 건강한 토론 문화가 조선 유학과 실학의 뼈대와 힘줄이다.
지금 사람들은 귀를 막고 제 말만 한다. 남의 말은 들을 것 없고 제 주장만 옳다. 토론이 꼭 싸움으로 끝나는 이유다. 그러다 금세 말라 바닥을 드러낸다. 마당의 두 개 연못 곁 초당에서 사제간, 붕우간에 열띤 토론을 벌이던 그들의 그 봄날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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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전의(周易傳義)의 태(兌)괘 설명입니다. "이택(麗澤)은 二澤이니 相附麗也". 즉, 이택은 두 못이 서로 붙어있는 것이다.
麗字는 '붙을 리', '걸릴 리'라는 뜻입니다.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다의 뜻이니 '리(이)'로 읽어야 됩니다.
정신문화연구 2009 봄호에 실린 한 논문의 주석에서 이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택(麗澤)의 발음은 중국의 운서(韻書)나 사서(辭書)를 참고해보면 '여택'으로 되어 있다. '이택'으로 읽혀진 것은 오랜 관습의 결과로 보인다."
옥편을 보면 강희자전에는 麗의 현대음은 lì입니다. 동아 한한중사전에는 '짝, 짝짓다', '붙다'의 음으로 '려'를 제시하고 있고, '리'의 음을 가질 때는 '꾀꼬리, 사팔뜨기, 나라 이름'의 풀이를 제시하고 있으며, 麗澤의 음으로는 '여택, 이택'으로 두 음을 모두 제시하고 있습니다.
1981년에 나온 작은 동아옥편이 있는데 그곳에는 '려'는 '고울, 빛날, 짝맞을, 베품'으로, '리'는 '붙을, 나라 이름'으로 풀이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麗澤은 '연못이 짝하고 있다'고 보면 '려택', '연못이 붙어 있다'고 보면 '리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예전 옥편들은 사실 별 권위 없이 만들어진 것도 많아서 여기의 '붙을 리'의 훈음이 사실로서 의미가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하여간 지금 옥편은 붙다, 짝, 짝짓다 등을 '려'의 음 아래 넣고 있습니다.
麗澤을 검색해 보면 상당수가 '리택/이택'으로 읽고 있지만, '려택/여택'으로 읽은 것도 자주 있습니다.
麗의 음이 원래 례, 리 등에 가까운 음이었을 가능성이 있고, 麗澤을 '리택'으로 읽은 것은 그것을 따른 것이었을 것으로 추정해 봅니다. 그러나 지금 음으로 읽는다면 麗澤은 '려택'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두음법칙은 저로서는 없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갖고 있지만, 두음법칙 때문에 '이택, 여택' 같이 혀짤배기 소리가 되었습니다.
관습은 존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래서 저로서는 '리택'이라고 읽을 것이며, 그렇다고 누가 '려택'으로 읽는다고 틀리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이상 개인적인 의견이었으니 참고하십시오.
▶️ 麗(고울 려/여)는 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슴록(鹿; 사슴)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丽(려; 둘이 나란하다)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사슴이 잇달아 간다는 뜻이 전(轉)하여 나란히 계속(繼續)된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아름답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麗(려)는 ①곱다 ②아름답다 ③맑다 ④짝짓다 ⑤빛나다 ⑥매다 ⑦붙다(부착) ⑧나라의 이름 ⑨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⑩짝 ⑪수, 수효(數爻)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고울 연(姸), 고울 선(嬋), 고울 진(縝), 고울 염(艶), 고울 선(鮮), 아름다울 가(佳), 아름다울 가(嘉), 아름다울 미(美), 아름다울 휘(徽), 아름다울 의(懿), 아름다울 위(褘)이다. 용례로는 아름다운 여자를 여희(麗姬), 학우끼리 서로 도와 학문과 품성을 닦는 일을 여택(麗澤), 아름다운 음곡을 여곡(麗曲), 아름다운 글귀를 여구(麗句), 얼굴이 썩 고운 여자를 여녀(麗女), 아름답고 고움을 여미(麗美), 아름다운 옷을 여복(麗服), 어여쁜 용색을 여색(麗色), 아름다운 깃이나 털을 여용(麗容), 얼굴이 고운 여자를 여인(麗人), 봄이나 가을의 화창한 날을 여일(麗日), 곱게 생긴 체질을 여질(麗質), 서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여풍(麗風), 빛나고 아름다움을 화려(華麗), 아름답고 고움을 미려(美麗), 산수의 경치나 사람이 얼굴 모습 등이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수려(秀麗), 장엄하고 화려함을 장려(壯麗), 행실이 단정하고 겉모양이 아름다움을 단려(端麗), 유창하고 아름다움을 유려(流麗), 윤이 흐르고 아름다움을 한려(閑麗),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움을 극려(極麗), 새뜻하고 아름다움을 명려(明麗), 기묘하고 고움을 묘려(妙麗), 청아하고 수려함을 청려(淸麗), 뛰어나게 아름다움을 기려(奇麗), 겉만 화려함을 부려(浮麗), 문장 따위가 온화하고 아름다움을 온려(溫麗), 식에 맞고 아름다움을 전려(典麗), 모양이나 경치 따위가 매우 아름다움을 가려(佳麗), 눈썹과 눈이 수려하다는 뜻으로 얼굴이 빼어나게 아름다움을 미목수려(眉目秀麗), 얼굴 모습과 몸매가 가지런하여 아름다움을 용자단려(容姿端麗), 아름다운 말과 글귀라는 뜻으로 아름다운 문장이나 아름다운 말로 꾸민 듣기 좋은 글귀를 미사여구(美辭麗句), 산과 물의 경치가 곱고 아름다움을 산명수려(山明水麗), 산의 초목이 자줏빛으로 선명하고 물은 깨끗하다는 뜻으로 경치가 아름다움을 산자수려(山紫水麗) 등에 쓰인다.
▶️ 澤(못 택, 풀 석, 전국술 역, 별 이름 탁)은 ❶형성문자로 沢(택)의 본자(本字), 沢(택), 泽(택)은 통자(通字), 泽(택)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삼수변(氵=水, 氺; 물)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睪(역, 택)으로 이루어졌다. ❷형성문자로 澤자는 '못'이나 '택지', '늪'을 뜻하는 글자이다. 澤자는 水(물 수)자와 睪(엿볼 역)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睪자는 ‘엿보다’라는 뜻을 가지고는 있지만, 여기에서는 '역, 택'으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못'이나 '늪'은 오목한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을 말한다. 항시 물에 젖어있는 곳이기 때문에 澤자는 '축축하다'나 '습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또 습지에서는 농사가 잘되기 때문에 '은혜'나 '은덕'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물이 축축하게 젖어 빛나는 것, 자비(慈悲)를 베푸는 것, 지금은 수초(水草)가 돋아나 있는 못의 뜻으로도 쓰인다. 그래서 澤(택, 석, 역, 탁)은 성(姓)의 하나로 먼저 '못 택'의 경우는 ①못(넓고 오목하게 팬 땅에 물이 괴어 있는 곳)(택) ②늪(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택) ③윤, 윤택(潤澤)(택) ④은혜(恩惠)(택) ⑤덕택(德澤), 덕분(德分)(택) ⑥은덕(택) ⑦자취(어떤 것이 남긴 표시나 자리)(택) ⑧윤택(潤澤)하게 하다(택) ⑨습하다(택) ⑩축축하다(택) 그리고 '풀 석'의 경우는 ⓐ풀다(석) ⓑ풀리다(석) 그리고 '전국술 역'의 경우는 ㉠전국술(군물을 타지 아니한 진국의 술)(역) 그리고 '별 이름 탁'의 경우는 ㊀별의 이름(탁)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못 당(塘), 못 지(池), 못 소(沼), 못 연(淵), 불을 윤(潤)이다. 용례로는 어량을 쳐 놓은 못을 택량(澤梁), 등대풀로 대극과의 두해살이 풀을 택칠(澤漆), 택사과에 딸린 여러해살이 풀을 택사(澤瀉), 은혜와 덕택을 혜택(惠澤), 윤기 있는 광택 또는 물건이 풍부함을 윤택(潤澤), 빛의 반사에 의하여 물체의 표면에 어른어른하게 번쩍이는 윤기를 광택(光澤), 남에게 미치는 은덕의 혜택을 덕택(德澤), 평화의 은택을 개택(凱澤), 융숭한 혜택을 고택(高澤), 큰 은혜를 홍택(鴻澤), 학우끼리 서로 도와 학문과 품성을 닦는 일을 여택(麗澤), 너른 늪을 광택(廣澤), 내와 못을 천택(川澤), 갯가의 진흙 땅을 해택(海澤), 호수와 못을 호택(湖澤), 혜택이 영원히 미침을 일컫는 말을 택급만세(澤及萬世), 덕택이 만민에게 미침을 일컫는 말을 택피창생(澤被蒼生),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일컫는 말을 난망지택(難忘之澤), 연못의 물을 말려 고기를 잡는다는 뜻으로 일시적인 욕심 때문에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갈택이어(竭澤而漁), 위에는 불 아래에는 연못이라는 뜻으로 불이 위에 놓이고 연못이 아래에 놓인 모습으로 사물이 서로 이반하고 분열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을 상화하택(上火下澤)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