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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 인간으로 영생을 산다면, 진정한 '사람다움'은?
인간 육체의 생노병사를 견디며 유한한 삶을 살 것인가?
기계의 몸으로 꿈도 희망도 없이 무한한 삶을 살 것인가?
<은하철도 999>, <매트릭스>, <설국열차>로 철학 하기
[이창언 방송대 교수]
'제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 시대의 개막이 연일 회자하는 지금, 인류는 과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알파고의 시대, 사람이 추구해야 하는 진정한 삶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시대적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1999년 상영된 영화 <매트릭스>(릴리 워쇼스키, 라나 눠쇼스키 감독)는 인공지능이 '매트릭스'라는 공간에서 사람의 의식을 통제하고 사람은 기계의 생존을 위한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이용되는 충격적인 미래상을 보여 준 바 있다. 매트릭스(matrix)는 라틴어 어머니(mater)와 자궁(-ix)의 합성어로 '모체'이며, 수학과 컴퓨터에서 말하는 행렬(行列)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 매트릭스는 개별 사람이 믿고 싶어 하는 현실에 포획된 일종의 보호막인 '모체'와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세상과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인식 과정에 포함된 분별심을 컴퓨터 행렬로 적용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자본과 언론이 앞장서서 최첨단 기계와 인공지능이 만들어 주는 신세계를 찬송하고 있다. 동시에 '기계가 사람의 능력을 넘어서고 있다', '사람의 직업뿐 아니라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각종 문명과 문화가 기계의 지배를 받게 되는 것은 아닐까', '살아 있는 뼈와 살과 세포와 정신으로 구성된 온전한 나가 아닌 기계 부품으로 전락한 삶이 도래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두려움 역시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이 대세가 되는 지금이 아닌 무려 40년 전 이 문제를 전면으로 제기한 만화영화가 있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1977)다. 이 만화영화는 1980~90년대를 살았던 지금의 중년 세대에게 우주적 상상력과 사람다움, 시간, 영생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물론 그것은 추억을 가진 사람들이 중년의 삶을 살아 내면서 마츠모토 레이지의 미래를 읽는 눈에 공감할 때 가능한 것이다.
<은하철도 999>는 영원한 생명(영생), 기계의 몸을 얻기 위한 철이와 메텔의 여행기이자 엄마 잃은 소년 철이의 성장 기록이다. 서기 2221년을 배경으로 한 이 만화영화는 슬픈 눈빛, 허리까지 내려오는 찰랑찰랑 윤기 나는 금발, 가녀린 몸매, 검은 모자와 검은 옷을 입은 메텔과 밀짚모자를 눌러쓰고 자신의 키보다 더 큰 망토를 두른 작지만 신념에 찬 눈빛을 가진 철이가 정거장(행성)을 하나씩 거치면서 시간과 영생의 의미를 깨우쳐 나가는 과정을 보여 준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철이의 길벗인 메텔을 "청춘의 상징이자 소년의 욕망이며 엄마와 같은 자기 안의 환영"이라고 정의한다.
이 만화영화는 기계 백작에게 죽임을 당한 엄마, 그 엄마를 대신해 기계 인간이 돼 영원한 생을 얻기 위해 여행을 떠난 철이와 그의 조력자 메텔이 다양한 존재와 만나면서 세계와 사람을 보는 관점이 변화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은하철도 999>는 결국 '메텔의 이야기이자 철이의 사람다움을 찾아가는 이야기'인 것이다. 영화 <매트릭스>와 <은하철도 999>의 메텔(maetel)은 라틴어로 어머니(mater)라는 뜻이지만, <매트릭스>의 인공지능보다 메텔이 훨씬 '사람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메텔의 슬픈 눈빛과 검은 옷은 여행 중 많은 생명의 죽음에 대한 애도를 상징한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은 한정된 삶 덕분에 더욱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삶이다. <은하철도 999>는 영생(기계화된 몸)에 대한 인간 군상의 욕망을 보여 준다. 나아가 영생을 얻지만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기계 인간들을 통해서 유한한 삶을 긍정하고, 그 시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마츠모토 레이지는 만약 사람이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라며 "시간은 꿈을 배반하지 않고 꿈도 시간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조언한다.
시간과 꿈을 배반하지 않는 삶,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분별심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누고 쪼개고 분리하고 분석하는 분별심, 매트릭스 모체 안에서 컴퓨터 행렬로 적용되는 분별심이 아닌 무엇이 귀중한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분별심이 아닐까! 말하자면 분별심은 자동차, 아파트, 다이아몬드와 쌀, 공기, 물 중 어떤 것이 귀중한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다. 전자는 없어도 살 수 있지만, 후자는 없으면 결코 살 수 없는 소중한 것들임을 깨닫는 것이 사람다움이 아닐까!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작동하고 있다. 자동차, 아파트, 다이아몬드를 욕망하는 역설적인 삶, 이것은 사람다움이 아니다.
사람다움은 조화로운 삶, 협동의 삶이다. 고(故) 신영복 선생님은 '삶'을 '사람'의 준말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진정한 '사람다움'은 연식(나이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색의 갈무리라고도 했다. 올바른 분별심을 갖는 공부(工夫, 사람이 도구를 가지고 있는 모양)가 은유(농사짓고 사는 삶)하는 것은 결국, 계절과 자연의 변화, 자연과 사람의 조화, 사람과 사람의 관계 맺기를 이해하고 깨닫는 것이 아닐까!
'사람다움', 서양의 무슨 무슨 사상(가)에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해월 최시형 선생이 말씀하신 삼경(경천경인경물)사상은 이를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늘과 땅과 세상의 돌이나 풀이나 벌레나 모두가 한울님을 모시지 않은 게 없다(천지만물막비시천주야天地萬物 莫非侍天主也)"는 마음가짐과 실천으로부터 사람다움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해월의 시천주 사상을 삶으로 체현하고자 했던 장일순 선생은 일찍이 접화군생(接化群生)을 강조한 바 있다. 선생은 "모든 문제가 생명 속에 하나둘 살아나는 것이므로 전체를 모시고 가는 하나의 생활 태도로 '함께 사는 관계'를 키워 가는 자세, 즉 만물을 다 껴안고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삶"이 진정한 사람다움이라고 했다. 문을 열고 아래로 흘러가는 물(개문류하 開門流下)처럼 사는 삶, 만물을 먹이고 기르되 낮은 곳에 임하고 자기를 고집하지 않는 삶,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다투지 않는 삶이 사람다운 삶이라는 것이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말한 시간을 배반하지 않는 꿈, 꿈을 배반하지 않는 시간은 작지만 하늘과 소통하고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이고 꿈일 게다. 이와 반대로 화폐, 무기(핵), 힘, 성장과 발전의 신화는 기계화된 사람의 회색빛 욕망이다. "돈을 모시지 말고 생명을 모시고, 쇠 물레를 섬기지 말고 흙을 섬기며, 눈에 보이는 겉껍데기를 모시지 말고 그 속에 들어 알짜로 값진 것을 모시고 섬길 때만이 마침내 새로운 누리가 열릴 수 있다"는 장일순 선생의 말씀이 삶으로 스며드는 것, 그것이 철이가 깨달은 사람다움이 아니었을까!
우리 시대 힘차게 달리는 두 개의 열차가 있다. 마츠모토 레이지의 <은하철도 999>가 기계제국에 대한 욕망을 상징한다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2013년)는 자연의 순환 질서를 왜곡한 인간의 욕망을 상징한다. 두 열차는 반(反)생명, 비인간화(지배와 개조의 욕망)의 모순과 위험, 그리고 이원론적 세계관과 화폐의 물신화를 엔진 삼아 지금도 폭주하고 있다. <은하철도 999>의 주인공 철이가 기계화 제국의 숭배자이자 메텔의 어머니인 프로메슘과 괴물이 되어 버린 기계제국을 거부하고 다시 여행길에 올라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더디게 흐르는 삶(시간), 느리게 스미는 관계(꿈)'에 숨겨진 깊은 뜻을 깨달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제 폭주 기관차에서 내려 천천히 걸으며 꿈(희망)에 관해 이야기해야 한다. 그 꿈(희망)은 돈의 노예가 되지 않는 꿈, 소유와 힘의 논리, 경쟁과 지배의 논리로 살아온 왜곡된 자기 사랑의 삶을 참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창언 방송대 교수
https://naver.me/5grG5T7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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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듯 호랑이, 구름, 전차, 기차 등 지난 수천 년간 다양하게 표현되었지만 모두 인간을 저세상으로 인도해 주는 매개자가 있다고 믿어왔다. 이렇듯 은하철도의 이야기와 비슷한 모티브는 세계 곳곳에서 고고학 유물로도 발견되고 있다.
우리 인생의 기차는 어디로?
인생이 장대한 여행이라면 그종착역은 어디일까. 원작'은하철도의 밤'과 '은하철도 999'는 비슷한 포맷 이지만 결론에서 결정적으로 차이를 보인다. '은하철도의 밤'에는 살아서 선한 일을 했던 사람들이 종착역에서 할렐루야를 외치며 환희로 내려간다. 기독교 신도였던 미야자마 겐지는 아마 존 버천이 쓴 '천로역정'과 같은 결말을 생각했던 것같다. 이렇게 결말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배경에는 미야자와 겐지의 가족사가 숨어있으니, 어린 나이에 죽은 여동생을 위로하기 위 해 쓴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만화 은하철도 999의 결말은 마치 길가메시의 서사시처럼 허망하다. 디스토피아적인 종말은 영화로도 자주 표현되었다. 1970년대에 처음 시리즈가 등장하고 지금까지도 사랑받는 인류가 멸망하고 유인원이 세계를 지배한다는 영화 혹성탈출이 그러하다. 그리고 열차라는 오브제를 사용한 또 다른 영화 설국열차는 은하수를 향하는 대신에 자신들이 망가뜨린 지구 위를 영원히 돌아가다 결국 멈추어버린다.
이제 우리는 과거 은하수를 보며 사람들이 품었던 낭만적인 피안의 세계 대신에 이 세상의 종착역을 걱정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영화 속에서 멀게만 느껴졌던 기계(인공지능)가 지배하는 세상, 갈수록 고립되어가는 인류, 그리고 환경파괴에의한 세상의 변화가 가시화 되고 있다. 은하철도를 보면서 낭만적인 꿈을 꾸기엔
우리의 종착역이 너무나 가혹한 모습으로 보이는 것은
나만의 걱정이 아닐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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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은하철도 999를 다시 보다 ① - 진광 스님
“메텔은 백의관음, 철이는 선재동자 상징이었다”
철이와 메텔을 주인공으로 한 은하철도 999, 화엄경 모티브
창작했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
메텔은 라틴어로 어머니란 뜻
우리 현실에 고통 깃들어 있듯 행성마다 중생 고통 항상 존재
철이, 타인의 아픔 나누고 공감, 그의 순수한 동심은 늘 긍정적
어린 시절 일요일 아침마다 TV로 방영되는 ‘은하철도 999’라는 만화영화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어릴 적 공상의 나래를 펴며 우주여행을 하는 상상과 함께 신비의 여인 메텔의 존재는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나중에야 이것이 바로 화엄경 ‘입법계품’을 모티브로 한 창작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랍고도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철이와 메텔의 우주여행’으로 요약되는 이 만화영화는 죽음과 기계문명, 노동과 환경, 인간복제와 자기 정체성 등 온갖 철학적 주제들을 다루기에 어른들이 되어서 봐야 비로소 제 맛을 느낄 수 있다는 평가가 많다. 이는 마츠모토 레이지 원작을 일본 후지 TV가 1978년 첫 방송하였고 이어 우리나라에서 1981년 수입해 방영함으로써 공전의 히트를 친 작품이다.
기계인간이 되어 영생을 얻겠다는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로운 여인 메텔이 기계 육체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우주공간을 달리는 열차에 탑승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중간중간 수많은 별에 들러 혹은 상황에 맞닥뜨리며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우리의 일상과 빼닮았다. 철이와 메텔이 달리는 우주가 곧 세상인 것이다.
이러한 줄거리들은 ‘은하철도 999’가 바로 화엄경의 ‘입법계품’을 모티브로 탄생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날아라 슈퍼보드’가 현장 스님의 구법여행기인 ‘서유기’를 모티브로 만들어졌듯이 말이다. ‘메텔’은 라틴어로 ‘어머니’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또한 “여행 중 많은 생명이 죽음을 당하는데 애도의 의미를 담아 처음부터 상복을 입은 것으로 설정했다”는 저자의 설명처럼, ‘철이’는 선재동자를, 메텔은 백의(白衣) 관세음보살을 상징한다고 할 것이다.
“터널을 지날 때 우주를 본 듯했다.”
마츠모토 레이지가 이 만화를 쓸 때를 회상한 대목이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18세에 도쿄로 올라오는 편도행 기차에 올랐다. 그 열차가 바로 ‘은하철도 999’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큐슈와 혼슈를 연결하는 간몬터널에서 그는 “우주를 나는 열차를 상상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꿈의 공간이었던 우주를 자신의 위대한 작품으로 실현한 것이다.
‘은하철도 999’라는 제목 또한 자못 철학적이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1000은 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999’는 영원히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를 상징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니 아무리 오래 살더라도 인생은 불완전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철이는 여러 행성을 지나며 여러 상황과 맞닥뜨리며 끊임없이 묻고 주저하고 절름거리면서 결국엔 나름의 해법을 찾아간다. 모든 별에는 저마다의 고민과 슬픔과 희망이 있고 그 별을 기어이 통과해내야만 비로서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 나만의 별에 도착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이렇듯이 작은 한마디 말이 나를 계속해서 살아가게 만들 수도 있고 죽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던 그 실수가 지금에는 더없이 소중한 보석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이다. 애플 CEO였던 스티브 잡스의 “여정(旅程), 그 자체로 보상이다”라는 말처럼, 모든 평범한 일상의 우연적인 인연의 합(合)이 바로 필연이자 진리가 아닌가 생각하게 한다.
삶의 매 순간은 우리가 죽는 그 순간까지 수많은 화두를 던져준다. 인생에 대해 끊임없이 궁금해 하고 번민을 거듭해 궁구한다면, 그만큼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긴다는 뜻일 게다. 타인의 아픔을 본능적으로 감지하고 함께 아파하는 ‘철이’처럼 순수한 동심은 영원히 매력적이고 희망적이다. ‘메텔’의 관세음보살과 같은 자비와 친절, 그리고 여성성만이 마침내 우리를 영원에 이르게 할 것이라고 믿는다. 어쩌면 우리가 지향할 것은 완전의 ‘1000’이 아니라 불완전하지만 인간적인 ‘999’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은하철도 999’를 ‘청춘에 대한 송가(頌歌)’라고 한마디로 정의했다. 메텔은 청춘을 상징하는 인물이고 철이가 보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그는 혹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기계 몸으로 바꿀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영생을 산다면 대충대충 살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한정된 시간을 사는 것이다. 시간은 꿈을 배신하지 않는다. 그리고 가치 있는 삶을 위해 꿈도 시간을 배신하면 안 된다”고 단호하게 답한다.
무엇보다 ‘은하철도 999’는 화엄경 ‘입법계품’의 현대적 버전이다. 앞서 말했듯이 철이는 선재동자이고 메텔은 바로 관세음보살의 현신과도 같다 할 것이다. 특히 전편을 관통하는 주제는 ‘마음은 하나의 우주’라는 화엄의 인간관과 우주관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할 것이다.
알다시피 선재동자는 진리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 힘차고 당당하게 남쪽으로 순례하면서 53분의 선지식들에게 법을 청했다. 그는 우리 마음속에 고동치고 있는 진리를 향한 힘찬 발걸음이므로 오히려 각자 나 자신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선재동자의 구도 여정은 깨달음의 차원이 인고의 척박한 땅덩어리에서 실제로 피와 땀이 뒤엉킨 중생의 살 냄새에 부대끼면서 열린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진리의 길로 이끄는 사람이라면 모두 착한 벗(善友)이다. 그 사람이 잘났건 못났건, 노인이든 어린 아이든 그 누구라도 진리를 깨우쳐 준다면 그는 선지식(善知識)이다. 53선지식은 그 모든 사람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선지식이 53분뿐이겠는가. 우리가 만나는 모든 자연과 사람들이 모두 우리의 선우이자 선지식이며 불보살과 같은 것이다.
그러할진대 우리도 어린왕자나 선재동자가 되어 진리의 길을 떠나보자. 인생 전체가 바로 ‘입법계품’ 선재동자의 구도여정이며 궁극에는 깨달음의 꽃인 ‘화엄(華嚴)’의 세상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디 길과 원수 맺지 말고 이 길 위에서 잘 살아가기를 빌어마지 않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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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철도 999
1. 개요
마츠모토 레이지의 SF 만화. 은하철도 999는 작중 등장하는 열차의 명칭이기도 하다. 일본어로는 「銀河鉄道999(スリーナイン)」라고 쓰고, 『긴가테쓰도 스리나인』이라고 읽는다.[3] (TVA 오프닝의 제목 레터링을 보면, 999 위에 스리나인이라고 요미가나가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기계인간이 되려는 호시노 테츠로(철이)와 신비로운 여인 메텔이 기계 몸을 무료로 받을 수 있다는 안드로메다의 어느 별로 가기 위해 우주 공간을 달리는 열차인 은하초특급 999호를 타고 가는 여정을 그린 작품으로, 연재 이후 4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손꼽히는 걸작 애니메이션으로 회자되고 있다. 각 회차마다 999호가 방문한 행성의 극단적 특수성을 부각해 삶의 본질에 대한 묵직한 화두를 건넨다. 원작자 마츠모토 레이지는 본인의 여러 타 작품과 본 작품 간 평행선상의 서술을 도모했다.
일본 최초의 SF 작가라고 할 수 있는 미야자와 겐지(1896~1933)의 동화 "은하철도의 밤"이 만화의 원작이라고 한다. 내용상으로는 만화와 동화가 상당히 다르지만, 원작에 나오는 "우주를 횡단하는 증기기관차"라는 낭만적인 소재에서 모티브를 얻어 만화가 탄생했다. 한국에선 오히려 은하철도의 밤보다 은하철도 999가 더 유명해서 둘을 혼동하는 경우가 있다.
2. 줄거리
때는 서기 2221년. 지구는 항공교통의 눈부신 발달로 우주로 향하는 열차가 은하계 끝까지 갈 수 있게 되었고, 행성간 왕복열차도 매일 운행하는 기록을 세우고 있었다. 이때의 지구는 최첨단 미래도시 메가로폴리스가 조성되었는데, '기계의 몸'에 정신을 옮긴 부유한 자들이 부품 교체를 통해 2천 년 이상[5] 행복하고 쾌적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메가로폴리스 시민이 되려면 재산이 많거나 기계몸을 사고 개조할 수 있어야 했기에 가난한 보통 육신의 사람들은 도시 외곽의 빈민촌으로 쫓겨나 기계인간으로부터 온갖 천대와 멸시를 당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빈민촌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번뜩이게 할 소문이 퍼졌는데, 바로 메가로폴리스에서 출발하는 우주열차인 999호를 타면 무료로 기계몸으로 개조해주는 행성에 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은 빈민촌 사람들로 하여금 기계인간이 되어 천대와 멸시를 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메가로폴리스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기대를 심어주었다.
한편 빈민촌에 살고 있는 소년 테츠로는 어머니와 함께 눈 내리는 어두운 밤, 메가로폴리스로 향해 날아가는 은하열차를 보면서 감탄하고 그의 어머니는 열심히 노력해서 테츠로를 은하열차에 태우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가난한 자를 사냥하고 다니는 기계백작 무리가 테츠로와 테츠로의 어머니 앞에 등장하고, 이를 피해 도망치던 중 테츠로 어머니가 기계백작에게 살해당한다. 테츠로는 복수를 다짐하며 이윽고 기계백작 주거지를 찾아내 기계백작과 그 일당들까지 모두 소탕한다. 그렇게 살인 혐의로 경찰에 쫓기다 홀로 방랑하던 테츠로는 금발의 미녀 메텔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난다. 테츠로는 그녀로부터 은하철도 승차권을 받아 기계인간이 되기 위한 여행을 시작한다.
2.1. 엔딩 줄거리
엔딩 줄거리는 TV판, 극장판, 원작만화가 전부 다 다르다.
2.1.1. TV판
기나긴 여행 끝에 테츠로와 메텔은 999호의 종착역이자 그토록 바라왔던 기계몸을 무료로 준다는 프로메슘에 도착한다. 기차역에서 유리몸의 기계인간 지니의 영접과 안내를 받으며 프로메슘 행성을 둘러보는데, 메텔은 테츠로를 지니에게 맡겨두고 홀로 아버지 닥터 반과 프로메슘 행성의 여왕이자 자신의 어머니인 프로메슘을 차례차례 만난다.
한편 테츠로는 프로메슘 행성 번화가에서 여러 종류의 기계인간을 만나고, 술과 노름으로 태평하게 흥청망청 떠들고 노는 기계인간을 보면서 '저들은 언제쯤 공부를 하고 노동을 하냐'고 꼬집었다가 비웃음과 함께 돌아온 '영원히 사는 기계인간이 왜 공부와 노동을 해야 하냐'는 대답을 듣고 기계인간이 되는 것에 미묘한 감정을 느낀다. 그러던 중 고층빌딩에서 나이가 들어보이는 기계인간이 투신 자살하는 것을 목격하고, 그로부터 메텔이 여왕 프로메슘의 외동딸이라는 충격적이고 놀라운 사실을 듣고 격분하며 다시 만난 그녀를 경계한다. 심지어 프로메슘이 자신과 같은 소년을 모아 우주 전체를 거대한 기계화 제국으로 만들기 위한 기동력으로 삼으려 한다는 지니의 말을 듣고서 메텔에게 기계인간이 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프로메슘은 테츠로를 자신에게 반역하는 불온자로 간주하여 테츠로를 은하철도 999호에 태워서 블랙홀로 낙하시키라는 사실상 사형과 다름없는 명령을 내린다. 이를 엿들은 메텔은 아버지 닥터 반의 혼령이 담긴 목걸이를 용광로에 던져서 프로메슘 행성을 파괴하라는 지시를 따르려다 결국 프로메슘에게 발각되어 감옥에 갇힌다. 테츠로는 999호에 강제로 태워지고, 프로메슘 행성에서 발사된 중력 유도파에 의해 블랙홀로 끌려들어갈 위기에 처한다.
그 와중에 테츠로는 999호를 탈출시키려고 노력했지만 허사였고, 테츠로의 위기를 감지한 메텔은 탈옥하여 기계통제실을 습격하고 중력 유도파를 해제해 999호의 탈출을 돕는다. 999호는 간신히 테츠로가 직접 수동으로 운전해 탈출하여 다시 프로메슘 역으로 회차한다. 프로메슘은 테츠로와 메텔을 추적하여 죽이라고 명령하였고 테츠로는 임무를 다하지 못해 자살하려는 지니를 말리고 메텔과 만나 오해를 풀어간다. 지니는 프로메슘에게 거짓 보고를 하고, 프로메슘의 손에 있던 닥터 반의 목걸이를 빼앗아 테츠로에게 돌려준 뒤 죽는다. 테츠로와 메텔은 프로메슘의 방해를 이겨내고 목걸이를 용광로에 넣는 데 성공하고, 프로메슘은 같이 죽자며 테츠로와 메텔을 잡으려 하다가 용광로의 화염에 휩싸여 사라진다.[7] 행성이 붕괴될 조짐을 보이자 테츠로와 메텔은 999호를 타고 행성 박쥐로 탈출한다. 행성 박쥐의 역에서 메텔은 옆 선로에 대기중인 777호를 타고 테츠로와 이별하며 떠난다. 테츠로 역시 메텔을 떠나보내며 지구로 돌아간다. 하지만 기계인간이 몰락한지 1년뒤 지구는 메타노이드에서 보낸 총독이 지구를 지배하며 기계인간들처럼 사람들을 차별하는 대신 먹는 것과 여가를 충분히 제공하며 엄청난 편의를 누리게 해주며 사람들을 생각하기 싫어하는 게으른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반항하면 지하에 유폐시켜 감옥에 가뒀는데 테츠로는 총독에게 대들었다가 지하에 유폐되어 사형선고를 받게 된다. 한편 999호에서는 메텔이 테츠로가 보고 싶어서, 또 메타노이드를 함께 저지하기 위해서 테츠로를 찾으러 지구로 돌아온다.
메텔은 위험에 처한 테츠로를 차장과 함께 999호에 태우며 이터널(말 그대로 영원을 뜻하는 의미로 메텔과 테츠로가 영원한 여행을 떠난다.)은하로 여행을 떠난다. 둘은 TV판 마지막 화에서 메텔과 헤어질 바에는 차라리 영원히 함께 여행하고 싶다는 철이의 바람대로 둘은 영원히 이터널 은하로 여행을 떠나며 은하철도999의 TV판 스토리 레이지버스가 막을 내린다. 이 스토리가 은하철도 999: 이터널 판타지이며 2000년대 이후에는 메텔의 과거를 다룬 메텔레전드: 교향시 숙명과 우주교향시 메텔등의 외전 작품이 나오며 베일에 싸여있던 메텔의 비밀이 풀린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작품은 전부 원작을 바탕으로 한 TV판의 작품이므로 극장판이랑은 연관짓지 않는게 좋다. 사실 극장판은 TV판과 스토리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극장판에 관한 정보는 메텔문서의 린 타로 감독의 설정부분을 참고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