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생각보다 길어진 관계로 쓰던 제 자신도 지쳐 미완의 글을 올리게 됩니다.
차후 시간이 허락될 때 다시금 수정 보완토록 하겠습니다.
글의 분량은 많은데 완성도도 부족하고 쓰고픈 이야기들도 많이 부족한 느낌입니다.
너무 오랜만에 감상문을 써서인지 상당히 힘겹더군요.
올드보이도 참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다른 작품 감상도 가끔 올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말죽거리 잔혹사--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여린 가슴들의 몸부림, 청춘 시대 !
말죽거리 잔혹사-- 사랑과 자유를 향한 낭만과 열정의 청춘 시대 !
총목차
1. 통과의례 학교청춘시대의 다양한 색깔
2.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여린 가슴들의 몸부림-- 청춘 시대 !
3. 사랑과 우정의 삼중주 --현수 우식 은주의 트라이앵글
4. 이 영화의 미덕과 나의 학창시절
덤으로 읽는 글
5. 식민지 분단 전시국의 총력결집 체제 --유신체제와 군사학원문화
6. 혁명아 박정희, 그의 인생과 평가
7. 유신의 세 아이들-- 군부 육사 11기 똘마니들과 396세대 그리고 박근혜
1. 통과의례 학교청춘시대의 다양한 색깔
이 영화는 나에게 다양한 빛깔로 다가왔다. 나라는 인간은 냉혹한 현실과 싸우는 존재이면서 한편으로는 추억어린 과거의 향수를 그리는 과거의 결집체이면서 동시에 걱정과 희망의 마음으로 미래를 거니는 다면복합체 인간이리라. 내가 어떤 가슴으로 이 영화를 대면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빛깔은 그때마다 달라져 보였고 재미와 의미도 다양하게 다가왔다.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나는 무척이나 재밌었고 피비린내 나는 잔혹한 싸움에 전율하면서 엄청난 쇼크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영화를 보고도 2-3시간 동안이나 나는 이 영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나 보다. 마치 혼이 빠져나간 사람 마냥 다른 일을 하면서도 이 영화 정면들을 회상하고 있었고 이토록 엄청난 작품을 만들어낸 유하라는 인간에 대해 깊이 집착하고 있었다.
다른 일들을 할 수 없었다. 취소할 수 있는 스케쥴들을 다 취소하면서 이 영화의 충격적인 장면들과 의미에 대해서 계속 집착하곤 했었다. 그런 시간은 꽤 여러 날 거듭되었음에도 나는 깊이있는 결실을 얻어낼 순 없었고, 내 분석은 한계점에 이른 듯 힘이 다해 가는 팽이모양 힘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영화에 대해, 유하라는 인간에 대해 깊이 집착하고 있었음에 분명하다. 이 글을 쓰는 이 시점에서 나는 그 영화를 세 번 보았지만 아직도 몇 번은 더 보아야할 것 같은 나를 잘 알고 있다. 왜 이토록 이 영화는 나에게 충격이었으며 재미였으며 감동일 수밖에 없었을까.
처음 이 영화를 보았을 때 내 현실은 너무도 갑갑하고 힘겨운 하루하루였었다. 분출할 수 없는 탈출구 없는 삶이 너무나 힘겨워 마치 힘겨운 통과의례를 거쳐야만 하는 사춘기 학생처럼 일탈과 해방을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이 영화는 너무나 통렬한 해방이였고 자유였고 희망이었으며 용기가 되었나 보다. 힘겨운 시간마다 현수를 생각하면서, 유하를 생각하면서 나도 용기를 내자고 다짐하곤 했었고 실제로 나도 그를 본받았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다양한 색깔을 내포한 작품이었음에도 나에게 충격을 가한 결정적 장면들은 피비린내 나는 싸움 장면들이었고 자유와 존엄을 향한 인간들의 울부짖음이었다. 그래서 처음 이 영화를 생각할 때마다 나는 검붉은 자주 빛을 연상하곤 했었나 보다.
시간이 좀 흐른 후 두번째 감상 기회가 있었다. 이때의 나는 자유는 많아졌지만 현실적 궁핍함은 더 심각한 문제로 나의 뇌리를 미래의 걱정으로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그토록 큰 기대감을 안고 다시금 용기를 얻고자 본 이 영화는 별로 힘이 없었다. 두 번째 보았을 때의 이 영화는 그렇고 그런 많은 영화들 중의 하나에 불과했고 청춘시대의 다양한 의미를 그냥 대충 엮어놓은 듯한 남루한 얘기중의 하나였을 뿐이었다. 같은 작품을 보면서 이토록 큰 감수성의 차이는 무엇인지 제대로 해석하는 데엔 시간이 요구되었다. 시간을 떼우는 기분으로 흥미있는 액션신 몇 곳을 리플레이 해보면서 비디오를 반환할 생각이었다.
세번째 감상기회는 두 번째 날 바로 다음날 아침이었다. 두 번째 감상기회와 시간으로 따져 불과 8시간 이내였으리라. 아마도 그대로 반환하기엔 뭔가 미련과 아쉬움이 남았었나 보다. 그런데 나도 참 내 자신을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이 영화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와 주었다. 역시 명작이었고 감동이었으며 재미였으며 나에게 큰 의미가 되는 작품임에 분명하였다.
두 번째 보았을 때 영화내용은 그렇고 그런 얘기의 나열로 보였었다. 이미 보아 뻔히 아는 얘기들, 흥미로움도 설레임도 기대감도 크지 않았었다. 그래서 그런지 액션신까지도 별로 충격일 수 없었다. 첫 감상과 두 번째 감상의 크나큰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나도 한번 더 볼 필요성을 느꼈는지 모른다. 그냥 기대감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 세 번째 감상 기회를 가졌었다.
결과적으로 세 번째 감상이 가장 좋았었나 보다. 첫 감상에서 나는 액션씬에 지나친 비중을 두어 감상하였고 그 당시의 격렬했던 충격과 감정을 결코 잊을 수 없었다. 세 번째엔 비교적 잔잔한 감성으로 지나간 추억을 회상하듯이 보았나 보다. 작품 전체가 다 보이는 기분이었고 다양한 인물들의 내면들이 아프게 다가오고 있었다.
처음 이 영화는 격렬한 감성과 선홍빛 피가 튀기는 검붉은 자주빛으로 기억되었다. 두 번째엔 적당히 즐겁고 재밌는 얘깃거리들이라 여겼기에 굳이 말하자면 초록색으로 기억할만 한데, 어쩌면 노란색도 가미된 느낌도 있었다. 세 번째 보고난 후 이 영화는 핑크빛에 가까웠는데, 거기엔 진한 회색이 가미된 기분이었다.
왜 이토록 한 영화가 다양한 색상으로 기억되는 것일까. 같은 인물 같은 이야기 같은 청춘시대가 왜 이토록 다양한 색상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아마도 보는 자의 마음가짐이 같은 대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감성을 유도했던 건 아니었을까 ?
힘겨운 현실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엔 나 또한 자유와 해방을 열망하였기에 전사가 되고픈 감성과 잔혹한 액션신에 매료되었으리라. 아마도 현실이 너무도 즐겁고 행복했던 자들에게는 또 다른 가벼움으로 다가가지 않았을지.
두 번째 보았을 때, 나는 영화를 즐기고픈 기분보다는 미래를 향한 걱정과 설계로 나의 뇌리를 채우고 있었나 보다. 영화는 나에게 가벼운 오락일 수밖에 없었고 지나간 과거에 대한 추억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으리라. 그래서 영화는 나에게 큰 의미일 수는 없었고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초록빛의 편안함과 시시함이었나 보다.
세 번째, 이 영화는 나를 과거를 그리는 향수어린 시간으로 유도해나갔다. 두 번이나 보았기에 이미 알고 있는 과거의 얘기처럼 추억을 회상하는 기분으로 다가와 주었다. 어쩔 때엔 편안함과 그리움으로, 어쩔 때엔 울분과 격정으로, 어느 곳에서는 아픔과 고통과 연민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이들이 거쳐야만 하는 사회화과정이요 통과의례였던 청,춘,시,대(!) 는 이토록 다양하게 우리의 기억과 추억으로 뇌리의 한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청춘시대, 그 시기가 어떠하기에 우리는 이토록 다양한 감성의 기억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추억지대로 남기고 있는 것일까.
2. 사랑과 자유를 향한 여린 가슴들의 몸부림-- 청춘 시대 !
근대민주화시대는 인류역사상 가장 뚜렷한 특징을 하나 아로새기는 시대였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만민평등 교육의 세례를 베푼 첫 시대이면서 동시에 모든 아이들을 정형화한 유일한 시대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문명의 여유가 만민교육의 필요성에 긍정하였고 대량산업시대의 도래가 공장기계부품과도 같은 비슷한 수준의 비슷한 인간형을 요구했던 것이다.
역사는 바야흐로 자본과 노동의 총량투입경쟁시대로 돌입하였고 교육계의 의무는 균일 품질의 균일 인간형을 대량 생산해내는 노동자 대량생산공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양한 자원들이 모여 컨베이너 시스템을 거치면 같은 제품을 찍어내듯이 학교교육이라는 사회화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은 비슷한 생각 비슷한 수준의 어른이 되어 나왔던 것이다. 학생들의 교복과 교모처럼 검고 획일화되었던 삼표연탄표 인간형이라면 적절할까. 전체 크기는 물론 구멍숫자와 크기까지 같아야 합격품이 될 수 있었던 그 시대가 근대 민주화 교육, 아니 토착형 민주화교육이라 불린 박정희표 유신교육의 전율스러움이었다.
그래서 학교교육은 모든 아이들을 똑같은 하나의 인간형으로 만들어내는데 헌신하였고 골몰하였다. 그것이 국가의 부름에 대한 보답이요 충성이었고 교육자로서의 본분이라고 믿었으리라.
연탄공장에 들어간 아이들은 깨부셔지고 찌부러지고 깍여나가야만 했었다. 그것이 근대화교육이었고 똑같은 색깔 똑같은 구멍으로 다듬어지는 것이 유신교육이었다. 아이들은 고통으로 신음하였고 견디기 힘든 고통을 성공과 효도와 충성이라는 이름으로 감내해야만 했었다. 인간적인 향기와 색깔과 목소리를 모두 죽여야만 통과할 수 있는 그 비인간적인 아픔을 이겨내는 것이 모범생이요 성공자의 길이라 믿었던 것이다. 그 무엇을 위해 왜 그런 인내가 필요한지 그들은 다 알지 못했고 수용과 순응과 인내만이 학생의 본분이라 강요되었다. 여리디 여린 아이들은 아픔이 가중되고 인내가 한계에 도달할수록 인성은 거칠어지고 모질어지고 황폐해져만 갔다. 배운놈들이 더 독하다는 말도 그런 이유로 유래한 말은 아니었을까. 독한 놈이 더 오래 참을 수도 있었겠고, 오래 참다보니 더 독해질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인간에게는 한계상황이 있는 것이다. 환경과 능력과 기질에 따라서 그 한계상황이 도래하는 시점은 다들 달랐지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최소한의 인간적인 향기와 색깔과 목소리를 향한 구원의 호소와 외침은 자연본능이었으리라.
그러나 그들에게는 반항할 시간도 자유를 향한 공간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학생들은 학교에서 도서관에서 독서실에서 버스길에서 학원에서 교회에서 최소 인간적인 시간을 찾아냈었고 친구들간의 놀이나 음악듣기가 그나마 인간적인 시간이었고 영화관람은 고급취미에 해당했을 것이다.
피끓는 열정의 청춘들이 압제의 사슬에 묶일 때 자유를 향한 갈망은 뜨겁고도 뜨거운 불길이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분출구가 주어지지 않은 용암로 안의 불덩어리들이었다. 압제의 공간이 트이고 분출할 길이 보이면 그들은 뜨겁게 분출했던 것이다. 오래 참는 자가 더 뜨거워졌을 것이다. 순한 놈들이 마지막까지 참다가 뜨겁게 폭발했을 것이다.
김현수라는 인물은 현실을 따른다는 이름 뉘앙스와도 같이 오래 참을 수 있는 학생으로 여겨졌었다. 김우식이 멍청하게 씩씩거리는 것과 달리, 차종훈이 훈계만 따르는 권력의 똘마니 차돌맹이인 것과 달리 그는 오래 참을 수 있는 인물로 보였다.
그럼에도 그에게도 한계는 있었다. 우정에 채이고 사랑에 버림받은 고독하고 외로운 영혼은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위로받을 공간이 없었다. 사랑을 잃은 그가 아버지에게서까지 버린 자식 취급받았을 때 그에게 희망은 남아나지 않았다. 성적이 떨어져 기초반에 배정받는 학교는 군화발로 자유의 영혼을 짓밟는 지옥 같았고 사랑하는 친구와의 우정은 깨지고 실연의 상처는 그를 한없이 절망하게 했으리라. 자살을 충동질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그래도 그는 참아내야만 한다고 믿었으리라. 학생의 본분은 그렇게 힘겨운 현실을 받아들이며 따라야만 한다고 믿으며. 그럼에도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한계는 있었다. 친구가 처절히 무너져내릴 때 도울 수도 없었던 자신에 대한 미움이 친구의 적으로부터의 인격무시, 자존심의 극심한 상처, 인간존엄에 대한 극심한 분노가 그를 참을 수 없게 몰아댔다. 용암이 분출구를 만난 것처럼, 그도 해야할 길이 열린 것이다. 상처를 입힌자에 대한 분노와 적개심 그리고 복수욕들이 그를 몰아대고 있었다. 그는 이제 벗어날 길 없는 분출구로 내달리게 된 것이다.
분노의 격정과 복수에 대한 열정이 그를 휘잡았다. 때로는 고통스럽고 힘겹게 때로는 복수의 환희와 기쁨으로 그 이소룡 따라하기는 계속되었고 복수를 기다림은 감미롭고도 긴장감어린 시간이었다.
분출구를 향하던 용암은 약한 기반을 찾아내 드디어 폭발을 시도했다. 종훈이 햄버거를 난도질할 때 그의 울분은 폭발했다. (칠판 지우게를 힘차게 던지자 팡~! 소리가 들리며 모두가 놀라 돌아볼 때 ) “ 야이 개자식아~~! (종훈을 향해 삿대질하며 분노의 눈길로 쏘아본다) 니가 그렇게 싸움을 잘해~! 너 개자식 내가 상대해줄게~ ! 옥상으로 올라와~~“ 현수가 qs분노의 눈길로 강하게 쏘아보며 도전해오자 예기치 않았던 갑작스런 기습에 어안이 벙벙한 종훈은 얼굴이 타오르면서 도전에 응했다. 싸움의 결과를 차지하고 용암은 오래도록 타오르다가 이제 폭발하여 지면을 뚫고 힘차게 분출한 것이다.
오래 참은 만큼, 오랜 분노의 준비과정만큼 용암의 분출은 힘차고 놀라웠다. 온 세상을 자신의 물결로 모두 뒤엎을 기세로 세상을 휘감았다. 싸움이 처절하게 거칠고 참혹한 것은 참아온 자의 분노가 그토록 고통스럽고 힘겨웠다는 반증이리라.
힘겹고 처절했던 복수극은 일단락되었다. 지친 몸을 겨우 가눠 복도로 나올 때 또 다른 적이 그를 막아섰다. (군화발의 교련선생이 성난 목소리로) “ 저 자식 저거 뭐하는 놈이야~~! 저놈 잡아~~ “ (이때 현수의 분노는 군화발의 학교를 향해 터지고야 만다. 쌍절곤으로 힘차게 유리창들을 박살내자 모두들 놀랄 때 쌍절곤을 군화발에 힘차게 던지며 선언한다) “ 대한민국 학교 엿먹어라 그래~~ “ (눈물 날 만큼 울분과 분노가 치밀어 오르고 있었다)
회한에 찬 눈길과 발걸음으로 그는 학교를 벗어나고 있었다. 분출했던 용암은 지상에 녹아내리고 다시는 지하 암흑길 같은 학교로 돌아갈 마음이 없었으리라. 그가 흝뿌린 용암은 어떻게 녹아 굳어졌을까. 입시교육 유신교육의 용암로에 새로운 분출구를 열어 지상으로 나오는 길을 넓혀 놓았을까.
3. 사랑과 우정의 삼중주 --현수 우식 은주의 트라이앵글
이 영화를 엮어내는 큰 줄기는 몇 개가 같이하고 있었다. 우식 햄버거(함재복) 삼성장군아들 상철(?) 등과의 우정의 학교생활, 현수 우식이 은주를 향해 펼치는 사랑의 쟁탈전, 공부기계를 요구하는 군화발 압제자들인 선생들과의 애증전선, 학교패왕 쟁탈전, 영웅 이소룡의 쌍절봉과 절권도 등. 그들 줄기가 씨줄과 날줄로 역이며 이야기는 사랑과 우정 그리고 분노와 열정의 청춘산맥을 노래하고 있었다.
나는 처음 감상할 때 우식의 영웅활극과 현수의 분노의 복수극에 주목했었다. 처절하다시피 리얼했던 액션신들이 전율스러울 정도의 충격과 감동을 안겼기 때문이다. 물론 애절한 현수의 사랑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었고 그들의 마지막 버스 만남도 오랜 여운이 남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비중은 아니었다. 한데 세 번째 볼 때엔 그들의 사랑이야기와 더불어 우식과의 우정에 초점을 맞추고 보았나 보다.
우식은 첫 인상부터가 시원시원하고 멋있는 나이스 가이였다. 남자라면 믿음과 듬직함을 여자라면 시원하고 황홀한 인상을 받았으리라. 반면 현수는 웬지 모를 친근감을 안을 수 있었다. 나도 저 시절엔 저랬었지. 저렇게 샌님처럼 수줍음 많고 내성적이었어. 착하고 성실한 학생상은 저런 모습이어야 할거야. 나와 여러모로 많이 닮았던 현수는 그에게 감정이입해 들어가는데 큰 공헌을 했었나 보다. 그러기에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청춘의 비망록처럼 빠져들 수 있지 않았을지.
어느 인생이나 대개는 고2시절이 청춘의 황금기이다. 고1로써는 좀 어리고 고3이 되면 공부지옥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인생진로에 대한 고민도 많고 사랑과 우정에 대한 고민과 갈등 그리고 방황이 마지막 기회라는 듯 펼쳐지는 시기일 터니까. 누구에게나 가장 기억에 남은 시공간이 있고 고2시절이 그러한 때라는 분들도 참 많을 텐데 이 작품의 주인공 또한 그러했었다.
영화는 강남 남쪽은 아직도 허허벌판인 듯 싶게 학교 앞은 허허벌판이고 버스안내양이 터져나오는 김밥들을 밀어넣듯이 학생들을 꽉 밀어넣고 차문을 닫는 등하교길 만원버스에서 미어터지는 학생들의 비명으로 시작한다. 시간이 없고 이성과의 접촉시간은 더더욱 없는 학생들에게 그나마 만원버스는 이성과의 신체접촉과 만남의 기회이기도 했었다. 현수와 은주의 첫 만남과 필링도 거기서 이뤄졌음도 대개의 청춘들의 확률높은 얘기와 비슷하리라.
당시 학생들에게 이성 접촉의 기회는 극히 드물었는데 그나마 가능성 있는 공간이 등하교길 버스나 도보길, 교회, 학원, 독서실, 써클 활동이 손꼽을만 했다. 영화관이나 고고장(디스코텍) 그리고 빵집이나 떡볶기집 등은 조금 논다는 친구들에게나 해당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현수 은주 그리고 우식 은주 가 첫만남을 버스간에서 이루고, 대개의 만남장소가 학원, 독서실 등에서 이뤄졌음도 당시의 학생공간이 어떠했는지 잘 알 수 있다 하겠다.
현수는 전학을 오는 첫날 이튿날 그의 청춘의 모든 것들을 예감할 수 있었으리라. 미어터지는 버스안에서 아름다운 여학생에게 마음이 끌리고 악명높은 정문고 선배는 카라를 빼앗아 첫날부터 그는 선도부에 걸려 엉덩이를 맞는다. 옆자리 짝꿍은 야화를 팔아대는 문제아요, 찍새는 그에게 세금을 걷으려 한다. 꼴찌반 학생들은 단체기합을 받음으로써 앞날이 험난함을 예감케 한다.
다음날 찍새는 다시금 세금을 걷으려다 현수에게 주먹질을 해대고 우식이 그런 찍새에게 나이값을 하라며 멋진 대빵노릇을 하고 있다. 찍새는 또한 종훈으로부터 훈계를 듣고 그런 종훈에게 우식은 거칠게 (피똥 한번 싸볼래?) 항의함으로써 그들의 관계가 심각해질 수 있음을 알게 된다.
짝꿍 햄버거의 야화를 가지고 있다고 군화발 교련선생에게 걸리는 그, 단체기합이 끝나자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야생마 종훈파와의 농구시합이었다. 그의 맹활약 덕분에 통쾌한 승리를 만끽하며 우식과의 남자간의 진한 우정을 맛보고 나이트클럽에서의 낭만과 모험을 체험한다. 우식과의 풋푹한 우정의 서곡이요 아름다움이었으리라.
그런 현수와 우식이 은주를 만났던 날, 은주와의 인연을 먼저 시작한 쪽은 현수였으나 적극적인 데쉬는 우식의 몫이었다. 그들은 알게 모르게 한 여학생을 향한 사랑의 쟁탈전을 시작하고 있었다. 그 레이스는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면서 현수의 고2생활을 파란만장으로 이끄는 숨은 동기가 되었을 법하다.
우식은 2학년을 다해보는 왕대빵이요 현수는 그를 따르는 따가리로 보였을 법도 했다. 우식은 모든 면에서 자신만만이요 패기만만이었다. 쪽팔리는 짓을 당하면 학교는 지옥이요 끝이라 믿었던 그. 강력하고 굽힐 줄 모르는 소나무로 비유할 수 있을까.
반면 현수는 태권도도장을 하는 아버님의 거친 가르침에도 불구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인 모범생이었다. 그런 그도 우식 등과 어울리며 차츰 공부에서 멀어지고 낭만과 자유를 향한 여정을 떠나는데 거기엔 우식이 좋아하는 상대인 은주를 향한 길이었다.
은주를 향한 사랑은 언제나 현수가 먼저였고 진지했지만 그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에 소심하였다. 시원하고 거침없어 무례하기까지 보이는 우식의 강력한 프로포즈는 결국 은주를 사로잡고 만다. 사랑하면서도, 먼저 사랑했음에도 사랑을 표현할 수 없는 친구의 애인이 되어버린 여자에 대한 일편단심의 연정, 그것은 고통의 길이었으며 우정을 시험하는 시험대이기도 했었다. 사랑과 우정 사이, 거기서 고뇌하는 감성파 순수의 연정. 이들 트라이앵글 삼각관계는 이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이 되었고, 우정에 금이 가고 또 참담하게 쓰러진 우정에 복수하는 동기가 된다.
그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첫 날, 그녀와 거닐던 우산속, 떡볶이집 데이트, 버스의 시간들은 꿈결 같은 시간들이었으리라. 그런 그들은 진도를 나가지 못했고, 우식의 거칠고도 무식한 프로포즈에 전세는 역전당했다. 그로부터 건네 받은 우산, 추억의 우산은 고통의 우산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우식에 대한 풋풋한 우정은 질투와 미움이 번지고 있었을 것이다.
첫 사랑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은 참으로 힘든 인내요 아픔이었을 것이다. 인내는 결국 결실을 보았다. 우식과 은주는 심한 갈등의 골을 들어냈고 그들은 음악이라는 공감대로 다시금 시작할 수 있었다. 독서실 옥상, 그들의 새로운 시작은 우식에게도 현수에 대한 질투와 미움의 불길을 안겼다.
우식의 굿꿋함과 자신감은 너무나 많은 적들을 양산하였다. 3년 동안 가방모찌를 했던 햄버거도 돌아서고 말았다. 스스로는 너무 강했지만 그 자신감은 오만함으로 변해 그는 적들에게 포위되고 있는 형국이었다. 이제 남은 유일한 친구 현수에게 그는 또 같은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현수가 은주에게 주었던 우산을 우식으로부터 되돌려 받았듯이 우식도 자신이 주었던 만년필을 현수를 통해 되돌려 받았다. 현수는 그 아픔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참아냈건만 우식은 오만함으로 참을 수 없었을까. “걔 한번 먹기는 좋은 아이지. “ 현수도 그 안에 담긴 의미를 생각하며 째려보며 반격했다 “그렇게 말하면 네가 멋져 보이냐 ? “ 약간은 당황했을 법한 우식은 멋쩍은 듯이 마무리하려 노력했을까. (얄굿게 웃으며) “ 어이~ 짜식-- 너도 먹었나 보구나~ “ 그 순간 현수의 펀치가 터지고 말았다. 사랑에 대한 질투와 우정의 오만함에 분노의 불길이 당긴 것이다. “자식 많이 컸네~“ 싸우는 와중에 터진 우식의 한마디. “그래 그동안 데리고 날아줘 고맙다 자식아~~“ 정말 현수가 많이 컸다. 그동안 보고 배운 만큼, 우정에 대한 미움만큼. 그렇게 그들은 사랑 때문에 우정에 금이 가고 말았고 우식에게 이젠 남은 친구는 없었다.
우식의 비극의 날, 그는 여전히 많이 오만했었다. 운명을 알 수 있었다면,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었다면 그는 차마 그렇게까지는 오만하지는 못했으리라. 자신의 오만함으로 3년 가방모찌 햄버거를 적으로 돌렸음에도 그는 옛똘마니의 배신을 용서할 수 없었나 보다. 야생마 차종훈의 본드값이나 대며 그들과 어울리는 햄버거의 행위가 배신으로 여겨져 공박하고 싶었으리라. 그러나 그 댓가는 컸다. 꿈틀거리는 지렁이도 몸부림 칠 때가 있고 목숨을 걸면 매서운 반격을 각오해야했음을, 그에겐 지켜줄 친구가 없었음을 그는 몰랐다.
일대 승부, 그토록 문제거리였던 차종훈과의 결투가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그는 격정과 흥분으로 자신의 불리함을 자존심상 인정하고싶지 않았나 보다. 햄버거의 칼로 허벅지가 찔리고 불리한 때임을 알고 피하고 싶었지만 “식모 아들“이라는 놀림에 차마 자존심을 양보할 수 없었나 보다. 쪽팔리면 학교생활은 끝장이라 믿은 그였기에.
긴장과 흥분의 일대일 싸움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야생마 차종훈 패거리는 애초에 한명이 아닌 패거리라는 것을 그는 명심했어야만 했었다. 등뒤의 발길질을 조심하지 못한 것, 허벅지가 찔려 장기전에 불리한 것, 이를 간과한 댓가는 참혹했었다. 대빵 김우식 시대는 그렇게 처절한 아픔과 상처를 남기며 종말을 고했다. 그는 다시금 보이지 않은 존재가 되었다. 영웅은 사라지고 영웅시대는 이제 전설로만 남게 되었다.
우식은 현수에게 사랑의 연적이면서 한편으로 아직은 그래도 친구였었다. 그를 도울 정도로 우정이 충실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 참담한 아픔을 보는 것은 또 고통이었으리라.
그런데 우식은 영웅시대를 끝내면서도 그냥 사라지진 않았다. 현수 햄버거와의 우정도 끝냈고 현수의 사랑 은주도 데려가 버리고 말았다.
현수는 다시금 쓰라린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경춘선을 타고 떠난 남이섬 여행길, 꿈결 같았던 나룻배의 이야기, 기타치며 노래하며 그녀와 하나가 되었든 순간들. 그 시간을 어이 잊을까. 그런 여인이 다른 남자와 떠났다는 것을 어이 인정할까. 따스한 봄날의 빗속 우산속에서 시작된 사랑은 그렇게 스산한 가을날 비오는 날에 종말을 고하고야 말았다. 불러봐도 아무리 불러봐도 되돌아오지 못하는 메아리 마냥 그리운 외침은 허공에 떠돌 뿐이었다.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탈진해 돌아오는 그에게 남은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우정은 깨지고 사랑은 날아가 버린 외톨이 같은 인생. 학교의 성적도 어버지의 째찍질도 모두 아픔과 괴로움 뿐, 허공에 몸을 날려 떨어지면 그뿐일 것 같은 인생, 그에게 희망은 없었다.
분노와 복수심의 휴화산이 터지던 날, 학교도 이젠 끝이었다. 보람도 즐거움도 없이 괴로움만을 안겨주던 엿같은 학교는 이제 쫑이었다.
그래도 대학은 필요한 거라며, 외로운 학원생활로 보낸 1년, 그 세월은 사랑과 우정에 상처받은 짐승의 휴식시간이요 치료기간이었을 것이다. 그때 우연히 버스안에서 다시 만난 그녀, 너무도 그립고 반갑지만 상처와 고통이 컸기에 미움의 대상이기도 했을 법한 그녀. 그는 어떤 기분으로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나 다 하고 있을까.
내리려던 그녀가 못한 말이 남은 듯 미련을 두었을 때 남자라면 따라 내려서 못 다한 이야기를 더 나눌 수도 있었지 않을까. 그는 망설이면서도 끝내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길가의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을까, 뒷창가를 바라보는 그는 어떤 미련의 이야기들이 남았을까. 그는 이 순간을 후회하진 않을 자신이 있었던 것일까.
<봄날은 간다>의 재회신과 오래도록 비교해 보았다. 상처입고 헤어진 이들은 그렇게 끝낼 수밖에 없는 것인지. 운명이란 그렇게 되돌릴 수 없는 화살같은지. 나라면 어이했을까. 차마 그냥 스치울 순 없을 것만 같은데.
그들은 버스에서 처음 만나 빗속 우산속에서 사랑을 시작했고 가을철 비속에서 이별을 확인하고 버스에서 다시금 마지막 모습을 보았다. 공간이 다른 사람들이 돌아다니는 버스에서 처음 만남과 끝을, 샌티멘탈하고 멜랑꼬리한 비속 감성으로 사랑과 이별을 얘기하다. 이소룡의 절권도에서 시작해 성룡과 취권으로 끝을 낸 큰 영화 안에 사랑의 그림은 그렇게 그려져있었다.
4. 이 영화의 미덕과 나의 학창시절
인간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지만 그 인간의 삶은 과거가 집적되어 있으며 미래로 나가고 있다. 그래서 삶이란 현재 안에 과거와 미래가 모두 농축되고 지향되어 있으리라. 현재는 과거과 미래를 포괄한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녹아있고 미래의 내가 내포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인간은 현재와 미래가 소중하듯이 과거 또한 나의 일부분이며 애증의 추억수첩이리라. 현재의 나는 순간이요 찰라이다. 우리가 그리운 것은 과거이고 과거의 총합이 오늘의 나이며 미래의 나인 것이다. 미래를 사랑하려면 오늘 만드는 미래의 과거를 소중히 해야할 것이다.
인간의 정체성이란 현재의 단면만으로 쉽게 파악되진 않는다. 현재의 나 안에는 너무나도 다양한 경험과 추억의 내가 같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인생의 바둑이 한판으로 끝나는 것인가. 우리가 수없이 많은 비슷한 바둑을 두며 인생을 살아가듯이 인생 안에는 다양한 이야기와 승부처가 숨어있었고 또 앞으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애기가가 좋은 바둑을 두기 위해 지난 바둑을 복기하듯이 인생바둑도 더 나은 미래를 위해 과거를 추억하고 반성하지 않겠는가.
바둑은 둘 때 다르고 복기할 때 다르며 정밀분석할 때 또 숨어있었던 그림들이 보이곤 한다. 영화와 스포츠의 핵심장면을 느린하면으로 분석할 때 전에 보지 못한 장면들을 정확히 확인하듯이 인생영화도 그렇게 보면 볼수록 다양한 의미로 달리 보이고, 이는 삶의 깨달음과 교훈이 되어 현재와 미래의 거울이 될 것이다. 여기에 낭만과 그리움과 추억을 즐기는 의미와 더불어 추억여행의 참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말죽거리 잔혹사-- 나는 이 영화의 제목을 듣고 영화포스터를 보았을 때 꽤나 흥미진진한 이야기일 것으로 짐작은 했었다. 그런데 웬지 제목이 좀 유치하지 않은가 ? 아마도 학원액션코믹물이지 않을까 싶었고 코믹이라면 진지성은 좀 떨어지지 않을까 짐작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는 나에게 추억의 명작으로 남을 것 같다. 내 청춘의 이야기를 이토록 아름답게 다시 펼쳐낼 수 있을까, 다시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세 번 보면서 각기 다른 감성으로 감상하였었다. 한데 마지막 보았을 때 가장 아름다웠고 내 필링을 깊게 만족시켜줬다는 것을 보더라도 결코 실증날 수 없는 나의 추억앨범이 되리라 믿어진다.
나는 대학 83학번이며 고교 2학년은 81년에 통과하였다. 그는 고고장을 다녔지만 나는 디스코텍세대이다. 디스코텍 첫 입성이 학력고사 끝난 후라 믿어지는데 언제부터 디시코텍시대가 열린지는 불확실한 셈이다.
이 영화에서 멋진 팝송이 없었다면 아마도 많이 싱거웠을 것 같다. 라면에 국물이 없는 것처럼, 그림에 배경이 없는 것처럼 무미건조했을 것이다. 추억의 라디오 디제이 멘트와 더불어 사랑과 낭만의 감성을 살려주는데 큰 몫을 차지한 느낌.
만원 버스, 버스의 안내양과 아름답고 새침한 여학생들, 독서실 풍경, 독서실 옥상, 다양한 학원모습, 자전거타기, 떡볶기집, 고고장 등이 그립고도 아릿한 추억공간으로의 이행을 도와주었다. 선도부, (지겨운 조회식간은 아마도 엑스트라 비용 때문에 포기한 듯), 교련선생의 죽도, 교실풍경, 짤짤이, 무술놀이 등도 학교시절을 연상시키는데 일조하였다.
72년 말 유신헌법이 통과되었다. 유신교육은 그래서 7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체제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었다. 승공구호에서 멸공구호로 발전하듯이. 나는 77년 중학생활을 시작하였고 82년에 고3생활을 한셈이다. 79년 말 유신의 핵 박정희 전대통령은 서거했지만 그 정신과 교육이념은 고교말까지도 이어진 셈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학에서 교련수업이 없어진 것이 아마도 85년경이 아닐까 싶다. 84년까지는 유신교육의 정신이 이어지지 않았는지.
사춘기는 감성이 민감하고 도덕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성격의 완성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에서 통칭하기를 386세대라고 하는데, 내가 우리세대를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유신의 아이들(아들들)이라 부르는 게 더 걸맞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유신의 아들들은 세부류로 나뉜다. 당시 중고교 교육을 받는 세대들은 정신과 영혼이 유신세례를 받았다. 전두환 노태우 등 하나회 핵심들은 박정희의 군부권력과 통치술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박근혜는 그의 피와 가문의 명예와 부채를 상속하고 있다.
박정희 유신의 아들들인 정신의 아들들과 권력의 아들들은 80년대 무식할 정도로 극심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386세대라는 학생들의 승리로 결론맺었다. 그리고 이제 박근혜의 본격 등장으로 그녀와 386세대들이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유신 체제에 대해선 이 글에서 길게 쓸 수 없기에 이 글의 첨부하는 글에 참고로 덧붙이고자 한다.
나는 여러모로/ 이 작품의 주인공과 닮은 점이 많았었다. 그러기에 다른 이들이 별로라고 생각되는 부분까지도 깊이 감정이입이 되었고 이 영화는 나의 추억의 명작영화로 남을 것 같다.
중학시절 그 누구보다도 모범생일 정도로 철두철미 유신의 정신으로 세뇌되었다. 가마가제를 타라고 하면 기꺼이 충성을 외치며 오를 정도로. 나의 학창시절이 꼬이기 시작한 것은 80년 광주항쟁기. 고1이던 나는 물리학자가 되어 핵을 연구하고 싶었다. 그게 바로 김일성을 협박하는 수단이 되어 통일의 길이라 믿었던 것이다. 전두환의 포악접 민중말살은 나에게 커다란 충격이요 상처가 되었다. 내가 만든 핵이 저런자의 손에 들어가면 끝장이라 믿었고, 내가 진리라고 굳게 믿은 교과서도 정부도 선생님도 부모님도 모두 진리는 아닐 수 있으리라 회의하기 시작했다. 나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모색기로 들어간 것이다. 이때부터 교과서와 멀어지며 잡서들을 읽기 시작했다.
나라를 바로 세우려면 정치가 바로 서야한다고 확신하였기에 용기를 내서 처음으로 실장을 맡았다. 하나 내 원칙주의적 성격은 조그만 반 하나도 무난히 운영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나는 힘있고 이기적인 아이들과 충돌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운동과 무술연마를 시작했다. 교과서와 학교공부와는 더더욱 멀어지고 성적은 폭포수 떨어지는 느낌.
항상 결전의 순간이 내일일지 모른다는 각오로 대비하고 있었다. 마당에는 샌드백이 걸리고 태권도에 이어 권투도장으로 나가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조그만 충돌은 많았지만 그토록 두려워한 피튀기는 거대한 싸움은 결국 별일 기회가 없이 겨울방학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나는 공부도 대학도 관심이 없어지고 말았다. 긴장의 학교생활은 피곤함 자체였으며 그런 세월을 고3에서도 버틸 것 같지 않았다. 대학은 잘해야 지방대일 것 같았고 학교생할을 계속 하다가는 건달이 되기 십상이지 싶었다. 정치도 포기한 몸, 이제 대학은 목적이 사라졌다. 적당히 돈을 번다면 차라리 사업을 하는게 낫고, 그것은 대학과는 무관해 보였다.
한달여 결단을 미루다가 82년 1월 11일 가출. 소신 가출이었다. 결코 내 발로 들어가진 않겠다는 다짐으로. 소설 같은 이야기 거리가 많은데, 나는 목표대로 식당보이에서 주방으로, 다시금 영업사원으로 순항하였으나 1달만에 어머니에게 잡히고 만다. 결국 기말고사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학교에 소문이 나서 자퇴결행. 이 결정에 대해선 상당히 후회도 되지만 다시 돌아가도 어쩔 수 없지 않을까 싶고, 어려운 부분이다. 친구들의 고3시절을 나는 학원에서 홀로 보내야만 했었다. 재수생 친구하나 없이 보낸 그 시절은 참으로 힘겹고 고독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친구들과 학교를 너무나 그리워해서 학교에서 부르던 노래를 참으로 많이 부르며 그리워했었나 보다.
고교시절 선생님에게 매를 맞은 건 딱 한번이 아닐까 싶다. 고1 초반 나는 학교특별수업을(성적 우수자들만) 듣지 않고 학원을 고집하다가 매를 엄청 맞은 것. 맞을 것까지는 없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교육적 차원에서 맞았다고 믿었기에 불만도 남기지 않았다. 고2마지막까지도 학교에서 문제되는 일은 없었다는 말이다.
다만 고2시절 학교와 공부는 점차 지옥같이 변해가고 있었다. 실장임무를 충실히 수행하려다가 힘있는 친구들과의 마찰이 심해져 그 스트레스가 심각해진 케이스라 할 수 있겠다. 지금 생각하면 어울릴 수도 있고 이해도 해줄 수 있는 것들을 당시의 내 원칙주의적 소신으로는 용납할 수 없는 케이스였기에 스스로 힘겨웠던 것이다.
주인공의 성격과 공부문제 그리고 싸움을 향한 준비, 학교와 공부에 대한 증오심 등이 많이 닮았다고 믿었기에 남의 인생이야기 같지 않았나 보다.
광주항쟁으로 중2부터 짝사랑해온 경상도집 여학생은 떠나갔고 고2부터 새로운 짝사랑을 키우며 그녀에 대한 수많은 그리움의 노래와 시를 읊었나 보다. 전두환이 등장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 여학생은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의 사랑이야기는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과외조치 금지법으로 학원을 다닐 수 없었던 것도 슬픈 일이었다. 난 학원을 다닐 때마다 언젠가 학원에서 멋진 인연이 생기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이다. 고1 전두환의 등장은 여러모로 나에게 큰 비극이었다.
덤으로 읽는 글
아직 미완성인 글이다. 오늘 너무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피곤한 상태이기에 차후 가필할 것을 기약하며 일단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5. 식민지 분단 전시국의 총력결집 체제 --유신체제와 군사학원문화
인간은 모두들 다르지만 또 대개는 비슷비슷하다고들 한다. 낮은 곳에서 좁게 보면 인간들은 너무나 다양한 개성들이지만, 높은 곳에서 크게 보면 인간들은 거기서 거기인 비슷비슷한 군상들이다.
역사적으로 인간의 삶의 유형은 물질문명과 계급에 의해 좌우되었다. 오늘의 현실이 불만인 사람들은 과거 귀족들이 부럽기도 하겠지만, 오늘 그대의 힘겨움이 과거 노예의 비천한 삶만 하겠는가.
근대민주화시대는 인류역사상 가장 뚜렷한 특징을 하나 아로새기는 시대였었다. 모든 아이들에게 만민평등 교육의 세례를 베푼 첫 시대이면서 동시에 모든 아이들을 정형화한 유일한 시대로 역사는 기록할 것이다. 문명의 여유가 만민교육의 필요성에 긍정하였고 대량산업시대의 도래가 공장기계부품과도 같은 비슷한 수준의 비슷한 인간형을 요구했던 것이다.
역사는 바야흐로 자본과 노동의 총량투입경쟁시대로 돌입하였고 교육계의 의무는 균일품질의 균일 인간형을 대량 생산해내는 노동자 대량생산공장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다양한 자원들이 모여 컨베이너 시스템을 거치면 같은 제품을 찍어내듯이 학교교육이라는 사회화과정을 거치면 아이들은 비슷한 생각 비슷한 수준의 어른이 되어 나왔던 것이다. 학생들의 교복과 교모처럼 검고 획일화되었던 삼표연탄표 인간형이라면 적절할까. 전체 크기는 물론 구멍숫자와 크기까지 같아야 합격품이 될 수 있었던 그 시대가 근대 민주화 교육, 아니 토착형민주화교육이라 불린 박정희표 유신교육의 전율스러움이었다.
한국인의 특성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역사적 문화적 인종적 특질들을 얘기하곤 한다. 거시적으로는 맞는 방향일 수도 있겠지만 미시적으로 오늘날의 한국인들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특질들이 있다. 다른 대부분의 나라들이 경험치 못한 한국인들만의 특이한 경험과 유산이 그것인데, 그것은 학교와 군대라는 곳에서 경험하는 군대식 획일화와 압제화가 특질이라 할 것이다.
식민지라는 열등감에서 나오는 분투심, 이데올로기적 분단과 전쟁의 긴장감, 총화단결로써 북한과의 체제경쟁에서 살아남고 이겨야한다는 경각심이 박정희 유신교육의 발로였고 덤으로 유신체제에 대한 비판정신을 말살하기 위한 무비판적 순응형 인간의 양성이 숨은 의도로 깔려있었다.
각국마다 비슷했던 근대화시대를 촉진하기 위한 전형화된 공장제산업형 인간형을 양성하는 것으로도 부족해 유신교육은 일본에는 민족주의로 북한에는 반공주의로 반격하는 반공민족주의를 기본정신으로, 그 실천수단으로는 전투적이면서도 무비판적이면서도 맹렬한 전사적 인간들을 양성해냈던 것이다.
고교시절부터 시작해 대학시절까지 이어지는 군사교육 교련시간에 이어 한국남자들은 3년이라는 군대병영생활을 뼈저리게 체험해야만 했었다. 역사적으로 그 어떤 나라 어떤 시대보다도 극렬했던 전사형 인간교육 유신교육을 도덕과 감성을 결정하는 사춘기에 경험하고, 세계 최고수준의 군기교육을 청년기에 의무적으로 수행해야만 하는 한국남자들은 세계 그 어떤 민족 국가보다도 맹렬하고도 전투적인 돌진형 인간들이 되어갈 수밖에 없었다.
유신교육과 군대문화가 오늘날 한국인들의 특질로 깊이 잠재되어 있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전체를 군사문화적으로 바꿔놓고 말았다. 혼인을 하면서 배우자에게 아이에게 그 정신을 물려줬고 교육자가 되어 후세들에게 대물림했으며 정치와 군대와 경찰로 사회를 지배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선거를 통해 비슷한 사람들을 리더로 뽑아 군사문화를 뿌리깊게 했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이 국민기질은 많이 다르다고들 한다. 그런데 묘한 것이 있다. 오늘날 한국인들의 특징과 기질이 역사적으로는 일본인들과 꽤나 많이 닮았다는 것이다. 한국이 부드러운 문화(붓)의 민족이고 일본이 강압적인 사무라이 무력(칼)의 문명이었다면, 오늘날 한국은 과연 어느쪽에 가까운 것일까.
10년 전에 이 질문을 받았다면 오늘날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일본인을 닮았다는 말에 한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만큼 80년대까지의 교육과 사회문화는 군대문화적이었고 획일주의와 맹목주의는 극심했었다. 저돌적인 사무라이즘은 현대 일본이 아니라 오늘날 9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 두두러졌던 것이다.
한국의 냄비현상은 어쩌면 세계문화사전에 올라가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정도이다. 모든 국민들이 하나의 목표나 관심에 우~~ 몰렸다가 우~~ 하고 다른 데에 달려드는 그 한심한 현상. 오죽했으면 80년대 초반 미국 모 대사는 한국인들을 가르켜 들쥐같은 사람들이라고까지 했을까.
한국인들의 높은 단결심과 국가애국심은 대견하지만, 군대문화적 무비판적 획일주의와 맹목주의가 대중의 유행과 감성에 결합할 때 우리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기도 한다. 이성의 보루를 지키지 못하고 감성의 부표에 떠다니는 군중들이 너무 많아 사회가 표류하는 듯한 느낌도 없지 않은 것이다. 개인은 군중들 속에 섞여있을 때 안전감과 안도감을 안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전체군중이 어디를 향해 어떻게 가고 있는지는 최소한 확인을 해야하지 않겠는가.
나는 2002년 월드컵때 빨간 물결의 전 국민적 붉은악마 응원단에 열광하였고 지지자였으며,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시위에도 열렬한 지지자였다. 그럼에도 나는 2002년에 붉은 옷을 끝내 입지는 않았다. 붉은 옷에는 공감을 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악마라는 이름은 한사코 거부하고 싶었다. 그래서 차라리 흰옷을 입고 싶었다. 악마라는 이름이 국가외교적으로 너무 안좋고 나쁜 이미지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엄청난 손실이라 믿었음은 물론, 그 투혼의 상당부분은 군사문화적 산물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한국팀의 열정과 투혼은 정말 자랑스러운 것이지만, 한국적 맹목주의와 무식한 맹렬함까지는 사랑할 수 없으며 사회가 그 방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6. 혁명아 박정희, 그의 인생과 평가
작은 키와 가난함에 대한 청춘의 울분으로 나폴레옹을 영웅으로 숭배하였고 안정된 교육자라는 문의 길을 버리고 뒤늦은 나이에 육사라는 칼의 길로 들어선 박정희. 메이지유신에 깊이 감명받았던 군일출신이기에 총과 칼로써라도 국가 권력을 찬탈하면서까지 혁명을 이뤄냈던 박정희. 프랑스혁명의 완성자요 전도사였던 나폴레옹같이, 메이지유신의 승리자요 일본 근대화의 영웅들같이 그도 한국 근대화의 혁명자요 전도자이고 싶었다. 그 길은 무엇이었을까. 무력과 패기로써 국가와 국민을 총동원하여 근대화의 길로 일로 매진하고 총화단결하여 북한에게는 체제경쟁에서, 일본과는 경제전쟁에서 승리하는 길, 그것이 박정희식 유신체제였던 것이다.
박정희의 길은 한국의 길이 되었다. 그의 혁명은 막강한 에도막부에 대항해 수백 수천의 영웅들이 궐기해서 오랜기간 혁명을 완수한 메이지유신과 달리 국가군대의 지휘관이 되어 단칼에 권력을 찬탈했던 나폴레옹과 닮았다. 그 권력의 길도 나폴레옹과 닮았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락의 길. 칼로 일어선 나폴레옹도 일제의 군부도 영웅이라 할만한 히틀러도 칼로 망해갔지만 그는 충복의 손에 쓰러진 것이다.
원래 박정희 역시나 나폴레옹과 일본군부의 아들이기에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해가는 것이 정석이었을 것이다. 그 역시나 그러려고 했었다. 자기만이 진리요 선이라 믿었던 그였기에 그 누구에게도 자신의 운명과 국가의 미래를 맡길 마음이 없었었다. 오죽했으면 그 무식한 차지철을 정권의 2인자에 앉히고 영구집권을 꿈꿨을 것인가. 오죽했으면 자신의 사병이나 마찬가지인 육사 11기 전두환 노태우 등 영남군부세력을 측근에 두고 만반의 사태를 대비했을 것인가. 그토록 신변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건만 믿었던 친구요 동지였던 김재규가 배신을 때릴 줄이야 !
김재규가 더 무식한 군바리가 아니었기에 가능했던 사건이었다. 김재규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이 너무 컸기에 가능한 거사였었다. 정권의 단물에 찌들어 오직 박통만을 숭배하고 노래하지 못한 역사의식의 사나이였기에 가능한 의거였었다.
7. 유신의 세 아이들-- 군부 육사 11기 똘마니들과 396세대 그리고 박근혜
72년 말 유신헌법이 통과되었다. 유신교육은 그래서 73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체제교육은 시간이 갈수록 강화되었다. 승공구호에서 멸공구호로 발전하듯이. 나는 77년 중학생활을 시작하였고 82년에 고3생활을 한셈이다. 79년 말 유신의 핵 박정희 전대통령은 서거했지만 그 정신과 교육이념은 고교말까지도 이어진 셈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학에서 교련수업이 없어진 것이 아마도 85년경이 아닐까 싶다. 84년까지는 유신교육의 정신이 이어지지 않았는지.
사춘기는 감성이 민감하고 도덕관과 가치관이 형성되는 시기이며 성격의 완성시기이기도 하다. 나는 사회에서 통칭하기를 386세대라고 하는데, 내가 우리세대를 부르는 이름은 다르다. 유신의 아이들(아들들)이라 부르는 게 더 걸맞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유신의 아들들은 세부류로 나뉜다. 당시 중고교 교육을 받는 세대들은 정신과 영혼이 유신세례를 받았다. 전두환 노태우 등 하나회 핵심들은 박정희의 군부권력과 통치술을 물려받았다. 그리고 박근혜는 그의 피와 가문의 명예와 부채를 상속하고 있다.
박정희 유신의 아들들인 정신의 아들들과 권력의 아들들은 80년대 무식할 정도로 극심한 권력투쟁을 벌였고 386세대라는 학생들의 승리로 결론맺었다. 그리고 이제 박근혜의 본격 등장으로 그녀와 386세대들이 새로운 전선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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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부족한 글이었습니다. 전반적으로 미완의 글이네요. 각장마다 대폭적으로 보완할 필요성이 절실한데 시간도 체력도 여력이 없군요. 차후 글을 보완하고 유신과 박정희 문제는 분리 독립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마도 짤라야할 부분도 너무 많아 보입니다만.)
읽어주신 여러분들께는 감사드리구요, 비판 부탁드리겠습니다.
(너무 산만하고 제 중심적인 글이었던지라 피곤함 안기게 되었습니다.
이점, 양해를 부탁드리지요. 좀 더 감성적으로 쓰지 못해서 아쉽기도 합니다.)
즐거운 영화와 함께 힘찬 삶이 되시길 빌겠습니다 !
2004 4 21 수요일 11:30 (오전)
산책시간.
안경섭 정말 글 잘쓰셨네요. 저두 이영화 정말 최고였습니다. 원래 답글 거의 안남기는데 글 쭉 읽고 부분부분 공감이 가서 글남깁니다. ^^ [2004/04/21]
위트 정말 잘 쓰셨네요~ 잘봤구요 , 이 글을 읽으면서 말죽거리 잔혹사 한장면 한장면이 다시 떠올려지네요 ^^ 이번 주말에 한번 더 볼 생각이랍니다 ^^ [2004/04/21]
열정에 찬 베.. 부분적으로는 저와는 생각이 다른 곳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상당한 공감을 표시하고 싶습니다. 저 또한 현수라는 인물에게서 저의 학창 시절의 모습을 보았었기에 이 영화와 글이 제게는 남다른 의미가 되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글 정말 잘 읽고 갑니다. 제게 글 솜씨가 있다면 멋진 보답글이라도 남기고 싶지만.... [2004/04/22]
제니 산책님!! 긴 글 감사하게 일었습니다
산책시간
압축이 너무 부족한 글이었습니다. 다쓰고 수정보면서 압축하려했는데 다 못쓰고 지치고 말았지요. 긴글은 읽은분들이 압축해서 필요한 부분만 읽어도 좋겠더군요. 관심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깊이 감사드리구요 앞으로도 좋은 영화감상 자주 나눌수 있기를 빌어봅니다. 올드보이도 참 좋았는데 언제쯤 얘기해볼 시간이 날지요.. 좋은 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