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英, 나이따라 체험형 안전교육… 韓은 동영상 시청 대체
‘학교내 안전교육’ 어떻게
美 저학년땐 실생활 안전교육… 총기 사용-성폭력 대응 넓혀가
英 “주 1시간 안전교육 권고”… 발달단계 맞춰 내용-목표 달라
韓은 명확한 학습목표 없어… 체험위주 안전교육으로 바꿔야
《지난달 29일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서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계기로 정부가 학교 안전 교육을 강화하기로 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 총론에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맞게 체험 중심의 안전 교육을 명시한다. 중고교 보건 교과에서는 ‘다중이 밀집된 곳에서의 위험 요인을 파악하고 안전 방안을 세운다’는 내용이 신설됐다.
그러나 실제 학생들의 안전 의식을 키우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체계적인 형태의 실습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영국, 일본 등 한국보다 안전 교육을 시행한 역사가 긴 해외에서는 학교 내 안전 교육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 미국은 활동 위주의 안전 교육
미국은 주마다 교육 과정이 다르지만 지난해 기준 50개 주 가운데 46개 주에서 안전 교육을 포함한 보건 교과를 모든 학년에서 가르치도록 했다.
캘리포니아주는 ‘보건 교육 기준(Health Education Framework)’을 통해 유치원 졸업 학년인 만 5세부터 17세까지 안전을 포함한 보건 교육과정을 734쪽에 달하는 책자에 명시했다. 이 책자는 △영양과 신체 활동 △성장, 발달과 성(性) 건강 △부상 예방 및 안전 △알코올, 담배 및 기타 약물 △정신 및 사회 건강 △개인과 지역사회 건강으로 나뉘어 있으며 학년별로 배워야 하는 목표를 제시했다.
각 학년에서 배우는 안전 교육은 연령에 따라 세부적으로 나뉜다. 한국으로 따지면 유치원 졸업부터 초등학교 3학년 때인 5∼8세에는 학교 내 안전과 통학 안전에 초점을 맞췄다. 초교 4∼6학년에 해당되는 9∼11세는 화재, 인터넷 공간의 안전, 지진, 홍수, 수상 안전, 보행 안전, 놀이터 안전과 함께 집에 혼자 남겨졌을 때의 안전 수칙을 배운다. 한국의 중 1, 2학년인 12, 13세 때는 폭력, 총기 사용, 학대 등의 상황에 놓였을 때 안전 수칙을 익힌다. 중3∼고3에 해당되는 14∼17세 때는 성폭력 대처법, 안전한 운전 방법 등을 체득한다.
미국은 저학년일수록 실생활과 밀접한 안전 교육을 한다. 유치원과 초등 저학년 아이들은 위급 상황에 대해 파악하는 방법을 먼저 배운다. 아이들에게 사이렌 소리가 무엇인지부터 가르치고, 소방차나 구급차의 불빛이 의미하는 것에 대해 설명한다.
화재가 발생했을 때나 침입자가 학교에 들어왔을 때 탈출로를 그린 포스터를 학교에 걸어 두고 교사가 정기적으로 아이들과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권고했다. 특히 놀이를 통한 안전 교육에 중점을 뒀다. 예컨대 운동장에 횡단보도를 그려두고 교사의 ‘빨간불’ ‘파란불’ 신호에 따라 건너고 멈추는 활동을 하는 식이다.
미국은 주에 따라 각 지역의 특성에 맞춘 안전 교육을 추가로 시행한다. 캘리포니아주는 익사가 어린이 사망의 주요 원인이라 수상 활동의 주의 사항을 비중 있게 가르친다.
○ 주 1시간 안전 교육 권고한 영국
영국은 1988년 교육개혁법(Educational Reform Act)에 근거해 ‘개인, 사회, 보건 및 경제 교육(PSHE)’을 교육 과정에 도입했다. PSHE에는 도로 안전, 음주와 흡연, 가정활동 안전 등 안전 교육에 대한 주요 사항이 담겨 있다.
영국 교육부는 주 1시간을 PSHE에 배정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학생들은 일주일에 한 시간은 보건을 포함한 안전 교육을 듣게 된다. PSHE는 꼭 독립 교과가 아니어도 괜찮다. 정보 교과를 가르치면서 온라인에서 직면할 수 있는 위험에 대해 논의하는 등 다른 교과와 혼합해 운영하는 것도 가능하다.
PSHE도 아동의 발달 단계에 따라 학습 내용과 목표를 4단계로 설정했다. 1단계인 5∼7세에서는 안전한 장소를 식별하고, 위험한 장소를 인식하도록 가르친다. 또 학생들이 자신의 주소와 보호자의 전화번호를 알고, 집에 아무도 없을 때 갈 수 있는 곳을 파악하도록 했다. 사고 예방 원칙인 ‘멈추고, 보고, 듣기(Stop, Look, Listen)’에 대해서도 배운다.
2단계인 8∼11세 땐 위험 상황을 판단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중점을 뒀다.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장소에는 어떤 곳이 있는지, 이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를 배운다. 안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알아차리는 법도 중요한 학습 목표다. 3단계인 12∼14세에서는 위험 상황을 평가해 사고 발생 시 대처 요령과 도움을 요청하는 법을 익히고, 4단계인 15∼16세에는 기본 응급조치와 심폐소생술을 직접 실습해 본다.
영국 안전 교육도 실생활 적용을 강조한다. 테러 대응 교육에서는 대응 원칙인 ‘도망가고, 숨고, 알린다(Run, Hide and Tell)’를 익히는 것을 넘어, 학생들이 실제로 학교나 지역사회에서 테러를 맞닥뜨렸을 때 대피할 장소를 미리 찾는 활동을 하는 식이다.
일본의 안전 교육은 학교 안전 교육과 학교 방재 교육으로 나뉜다. 학교 안전 교육은 학생의 학교생활 등에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목적이다. 학교 방재 교육은 지진이나 태풍 등이 많은 일본의 특성을 반영해 자연 재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소학교부터 중학교,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교통안전, 자연재난 대처법, 심폐소생술 등을 반복 학습한다.
○ 동영상 보는 한국 안전 교육
한국의 학교 안전 교육은 ‘학교 안전 교육 실시 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그 기준이 제시돼 있다. 해당 고시에 따르면 학생 안전 교육은 생활안전, 교통안전, 폭력예방 및 신변보호, 약물 및 사이버중독 예방, 재난안전, 직업안전, 응급처치 등 7대 영역에 따라 유치원과 초중고교에서 51시간 이상 실시해야 한다.
하지만 학년별 또는 연령별 안전 교육 목표가 명확하게 제시돼 있지 않다. 미국, 영국 등이 학생의 발달 단계에 맞춰 구체적인 안전 학습 목표를 제시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한국도 ‘학생 안전 교육 내용 및 방법’에 학교급별로 익혀야 하는 안전 수칙을 명시하긴 했지만 ‘화재의 원인 및 대피요령, 신고, 전파요령 알기’ 등으로 단순하고, 초중고교 내내 동일한 내용이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 학생 발달 단계에 따른 안전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그마저도 2024년 적용되는 2022 개정 교육과정부터는 초등 1, 2학년에 있던 별도의 안전 교과인 ‘안전한 생활’이 사라진다. 이렇게 되면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개별 교과 시간이나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을 통해 안전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체계적인 안전 교육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현행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초등 고학년부터는 별도의 안전 과목이 없어 유아용 안전 애니메이션을 보여주는 것으로 수업을 대체하는 경우가 많다. 중학교부터는 도덕, 기술·가정 등에 안전 관련 내용이 분산돼 있어 안전 교육을 유기적으로 하기 어렵다. 고등학교에서는 대입 때문에 이론 위주의 영상 시청으로 대체하는 게 대부분이다.
학생들의 안전 의식을 함양하는 것은 일회성이나 단기 교육으로 불가능하다. 일상생활을 하면서 지속적, 반복적으로 안전 교육을 시행해야 가능한 일이다. 우리도 이제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명확한 학습 목표를 제시하고, 체험 중심의 안전 교육을 시행해 안전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여야 한다. 그래야만 각종 안전사고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종합적으로 향상되고, 우리 사회가 좀 더 안전해질 수 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