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서는 북이스라엘이 멸망하고 남유다마저 멸망하기 직전부터 활동한 에스겔이란 사람의 대언서다. 24장까지는 유대민족에게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니 받아들이라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25장부터 32장까지는 이방민족-주변국가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언한다. 33장부터는 이미 이루어진 심판의 자리(포로신분)에서 다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달하는데, 심판하신 백성들을 향한 회복의 약속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다시 일으키실 것이며, 그들의 역량과 관계없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를 실행하실 것이다. 교회에서 좋아하는 '마른 뼈가 살아나고 회복되는' 구절이 여기서 등장하는 이야기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주변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 중 '두로(Tyre)'라는 지역에 대한 대목이다. 두로는 레바논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지금은 수르라는 이름을 가진 소도시에 불과하지만 구약시대 뿐 아니라 예수님 활동 당시에도 무역항으로서 역할을 해냈던 융성한 곳이었다. 그들에 대해 하나님은 "바다 한가운데서 가득 채워지고 지극히 영화로웠"다고 말씀한다(겔27:25).
그러나 이들도 다른 주변국들처럼 혹독한 대가를 치른다. 그들의 찬란하고 윤택하고 아름다웠던 현재는 25장 1절~25절까지 면면히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본문이 시작되는 26절부터 읽어보면 그들은 이제 산산히 부서진 파도처럼 무너진다. "많은 민족의 상인들이 다 너를 비웃음이여, 네가 공포의 대상이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겔27:36)
헌데 주변국가들은 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었을까. 이스라엘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약한 것을 천년가까이 어겼으니 마땅한 벌을 받는 것이라 해도, 주변국가들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이들인데 왜 심판의 대상에 포함된 것일까. 성경을 찾아보니, 이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심판받는 것을 좋아했던 것에 대한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주변국가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 시작된 25장으로 가보니 암몬족속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사람아, 너는 네 얼굴을 암몬 자손들에게로 향해 그들에 대해 예언하여라. 암몬 자손들에게 말하여라. ‘주 여호와의 말을 들으라.’”
주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 성소가 더럽혀질 때 내 성소에 대해, 이스라엘의 땅이 폐허가 될 때 이스라엘의 땅에 대해, 유다의 집이 포로로 잡혀갈 때 유다의 집에 대해 네가 ‘아하!’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 나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이스라엘 땅에 대해 네가 손뼉을 치고 발을 구르며 온 마음으로 경멸하며 기뻐했기 때문에 내가 내 손을 네게 뻗어 너를 민족들에게 전리품으로 줄 것이다 ... 내가 너를 폐망시킬 것이다. 그러면 내가 여호와임을 네가 알게 될 것이다.” (겔25:2~7/우리말)
하나님의 백성이 예뻐서, 잘 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존재들을 비방하고 조롱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다. 내 아들 내 딸을 부모인 내가 치리하고 훈육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지만, 그런 내 아들과 딸을 옆에서 비웃고 까내리고 조롱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 된다. 두로 역시 이스라엘의 마지막 국가, 남유다의 몰락을 바라보며 이와 같이 말했다.
"아하, 잘됐다. 백성들(유대민족)의 문이 부서져 내게로 넘어왔다. 그것이 황폐하게 되었으니, 내가 충만하게 될 것이다"(겔26:2/바른)
그런 두로에게 하나님은 에스겔의 입을 빌어 멸망을 공표한다.
"주 여호와가 이렇게 말한다. 내가 너를 아무도 살지 않는 성읍들처럼 황폐한 성읍으로 만들고 내가 깊은 바다를 네게 올라가게 해 광대한 물이 너를 덮을 때, 그때 내가 너를 웅덩이에 내려갈 사람들과 함께 옛날에 죽은 사람들에게로 내려가게 할 것이다. 내가 너를 땅의 가장 밑바닥, 고대로부터 폐허가 된 곳에서 구덩이에 내려갈 사람들과 함께 살도록 할 것이다. 너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될 것이요, 나는 살아 있는 사람의 땅에서 영광을 세울 것이다. 내가 너를 참혹하게 할 것이고 너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누가 너를 찾는다 해도 영원히 다시는 발견될 수 없을 것이다. 주 여호와의 말이다."(겔26:19~21/우리말)
아무리 그래도 남 망하는 거 조롱 좀 했다고 너무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려는 찰나, 28장이 눈에 들어온다. 주변국 이야기가 에스겔에서 여덟 장 뿐인데 그중 두로에 대한 이야기가 네 장이나 된다니, 많이도 할애했다. 에스겔 28장은 두로의 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융성하고 부유하고 강한 도시국가의 왕 답게,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찔렀나보다.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가운데에 앉아 있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거늘'"(겔28:2)
기록에 따르면 섬 위에 도성이 있는 이 도시는 난공불락이어서 바벨론이 13년간 에워쌌을 정도다. 난공불락의 도성에, 융성한 무역에, 기름진 옥토에, 주변국과의 교역을 넘어서 부러움과 존경까지 받는 나라였으니 자기가 곧 하나님이라 생각하는 교만이 들어왔어도 이상할 것은 없겠다 싶다. 그러다 먼저 망한 나라가 이스라엘인데, 옆에서 그걸 보고도 몰랐다는 게 좀 이상한 노릇이긴 하다만. 예루살렘 역시 탈취하기 쉬운 성은 아니었다. 산악지대에 지어진 것도 모자라 뒷편은 오르기도 힘든 험악한 절벽지형, 샘이 흘러 물 걱정 없이 공성도 가능한 요새. 이스라엘도 한때 융성한 무역의 성지였고 주변 국가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어 수많은 공주들이 앞다투어 이스라엘 왕과 혼례를 치르던 곳이었다.
보고도 모르는 게 인간이구나 싶다. 인류가 시작된 이래 단 한명도 예외없이 인간의 자손은 모두 명을 다해 죽었는데 오늘날도 우리는 죽음이 내게 오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어쩌면 그렇게 외면하도록 학습되고 강화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서면 유일하신 하나님과 대결하여 살아남아야 하는 결투장에 들어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데, 마치 하나님이 겁을 먹고 등장하시지 않아 부전승이라도 거둘 것처럼 살아가는 것도 인간이다. 그런 인간을 보면서도 자기도 괜찮은 아이템 하나 얻으면 똑같이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자리에 선 것처럼 여기는 것도 인간이다.
두로 왕은 아이템으로 얻을 것은 다 얻었다. 권력과 재력과 지혜가 그의 손에 있었다(겔28:3~5). 그러나 그 결과로 교만에 빠져 하나님과 자신을 동일시 하였다. 그러나 정작 하나님은 그를 보며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그저 사람일 뿐"이라고 말씀하신다. 레벨차이가 나는 게 아니라 존재의 차원이 다른 것이다. 하나님은 두로왕의 세계를 파괴하거나 오프 시킬 수도 있는 시스템 개발자, 관리자다. 레벨 999와 레벨 230 정도의 차이가 아니다. 같은 선상에 있지도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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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진 게 없다. 가진 것이 없기에 두로왕의 교만은 나의 것이 아니다. 두로의 심판 역시 나의 것이 아니리라. 하여, 두로의 영광도 부럽지 않다. 다만 내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강하거나 약해진다는 것은 마치 게임 캐릭터의 힘과 능력치가 잠시 높았다가 낮아졌다가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과 관계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하나님의 소유다.
나는 두로에 사는 백성조차 못 되는 것 같다. 가나안 변방, 혹은 이스라엘의 변두리 베다니에 살면서 매일 먹을 것을 얻으러 예루살렘으로 출퇴근하는 어떤 가난한 일용직 일꾼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베다니야말로 성문 바깥, 쓰레기와 오물과 잡다한 것들이 버려지는 가난하고도 어려운 동네의 표상같은 곳이다. 그러나 그런 베다니에 매일같이 예수께서 찾아오셨음을 기억한다. 예루살렘에서 사역하실 때 예수님은 항시 베다니로 돌아가 쉬셨고, 주무셨다.
예수께서 찾아오시는 곳이 천국이다! 예수께서 머무시는 곳이 성전이다. 예수께서 거하시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고로, 오늘 말씀 앞에 머물며 하나님을 묵상하는 나는 지금 하나님의 나라요 성전된 곳에 거하는 중이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앞에 찾아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육체는 날마다 쇠하여 간다. 마치 중고차처럼 아무리 정비를 잘해줘도 놀랍도록 성실하게 나이를 들어간다. 그러나 나의 상태와 환경에 관계없이, 베다니에 찾아오신 예수님은 언제나 나를 찾아오신다. 내가 말씀으로 문을 열기만 하면 나는 나의 상태와 환경에 관계없이 천국이 되고 낙원이 된다. 하나님과의 교제가 곧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요17).
지난 주말은 처가에 내려갔다가 앞에 빈 집 수리를 좀 하고, 점심 먹으러 나왔다가 장모님께서 갑자기 아프셔서 급히 큰 병원을 찾아 내달렸다. 마침 우리가 옆에 있을 때여서 다행이었다. 아내와 돌아보며, 두분도 많이 늙으셨다는 실감이 났다. 집에 돌아와 누우니 이젠 우리 두 사람이 몸살이 났다. 이깐 일들에 꿈쩍도 없었는데, 우리도 세월에 장사없다.
눈이 일찍 떠져 땀 젖은 몸을 씻고 학교에 일찍 출근했다. 몸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나는 다시 살아난다. 내 속사람은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이 흐른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생명이 더 귀하고 강하게 느껴진다. 내 겉사람이 펄펄날 때는 생명이 흘러도 흐른 줄 모르고, 말씀에 젖어도 시원한 줄 몰랐더니 이제는 말씀이 마음에 흐르는 것이 더 잘 느껴진다. 이러면 늙어도 늙는 맛이 나름 있겠다 싶다. 몸은 아직도 별로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생명이 있다. 참 생명이. 지금 이 순간에도 누리는 참된 생명이.
첫댓글 아멘!
벌써 나이들어감을 체감한다니...
내게도 하나님의 생명이 유수처럼 스며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