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통신 28보> - 자전거 전용도로가 아까워
어제 토요일 낮에 삼림공원으로 단풍구경 가려다, 우리가 살고 있는 13층 계단에 서 있는 전동차에 눈길이 멈췄다.
푸단대학 MBA과정에 다니고 있는 옆집 한국인 학생의 것이었다.
처음에는 전동차를 우리말로 딱히 뭐라고 말하는지 몰라 우리는 그냥 오토바이라고 불렀다.
자전거 같기도 하고 오토바이 같기도 하고···.
자전거라고 부르기에는 더 무겁고 더 튼튼하게 만들어져 있고, 그렇다고 오토바이라고 말하기에는 더 가볍고 더 작게 만들어져 있다.
더 보태자면 그간 이놈 전동차 때문에 원망과 부러움을 얼마나 보냈는지 모른다.
이놈은 소리도 내지 않고 접근해 와서는 어느새 싹 지나가 버리므로 깜짝깜짝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길을 가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달리는 물체가 직접 눈에 보이거나 소리라도 귀에 들려야 하는데, 이 전동차가 뒤에서부터 접근해 올 때는 사람들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당하고만 만다.
나도 지난 학기에 캠퍼스 내에서 사고를 당할 뻔한 적이 있어서, 벗씨가 나보고 정신 좀 똑바로 차리고 다니라고 애꿎은 나만 나무란 적이 있었으니까.
(오토바이가 아닌 전동차. 장바구니도 있고, 뒤에는 벗씨도 같이 탈 수 있고... 한국인 학생 것.)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러한 원망은 잠시일 뿐이고 부러운 것이 더 많다.
소리가 없다는 것이 우선 사람 마음을 얼마나 편안하게 해 주는지 모른다.
우리나라 같으면 시도 때도 없이 왱왱 거리며 거리를 휘젓고 다니는 오토바이들 때문에 사람들 신경이 얼마나 날카로워져 있는가.
그런데 중국 같은 자전거 천국, 오토바이 천국에서 모든 오토바이들이 왱왱거리며 거리를 활보하고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사람들 미치지 않고는 살 수 없으리라.
그리고 또 이 전동차는 가정용 전기로 한 번만 충전하고 나면 일주일 동안 충분히 타고 다닐 수 있으므로, 편리하기도 하고 경제성도 아주 좋다.
그러니 내가 어찌 부러워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집만 나서면 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내 손을 꼭 잡고 있는 벗씨에게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넌지시 물어보았다.
“우리도 저 전동차 한 대 살까? 중국에 왔으면 중국인답게 살아야지.”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써 벗씨의 대답은 혀끝에 나와 있었다.
“그 위험한 것을 뭐 하려고? 그렇게 사고 싶으면 차라리 자전거나 사지. 돈도 얼마 안 하는데.”
“그까짓 것 얼마나 한다고 그래? 우리 돈으로 40만 원이면 충분하다던데? 면허증도 필요 없다고 하더라. 나중에는 다시 팔고 한국 가면 되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위험해서 그렇지. 그걸 타고 자전거 전용도로에 나서 봐. 얼마나 위험하다고? 자전거와 오토바이, 전동차, 그리고 사람까지 뒤엉켜서는···. 아니, 아니지. 복잡한 네거리에서 신호도 지키지 않는 차량까지 합세해서는 빵빵 거리며 난리를 치는 그 광경을 생각하면···. 제발이지 생각하지도 마.”
“알았어. 알았어. 내 말은 그게 있으면 매번 할인매장 가서 쇼핑해 올 때마다 수백 미터의 거리를 낑낑 거리며 보따리를 들고 오는 수고를 안 해도 된다. 뭐, 이런 뜻이지···.”
(빨간신호등임에도 사람이 마구 들이밀고, 버스 또한 마구 들이밀어, 먼저 가는 사람이 임자...)
이때 엘리베이터가 오는 바람에 말이 끊어져 버렸다.
밖으로 나오자마자 빵빵거리는 차량 소음들 때문에 또 신경이 거슬렸다.
이곳 차량들은 좌회전 신호를 잘 지키지 않는다.
직진신호일 때도 마구 좌회전해 버리고, 특히 횡단보도에 사람들이 한참 건너고 있을 때에도 마구 차량 앞대가리를 들이밀어 버린다.
아니, 아니···.
그러고 보니 차량 탓할 것만도 못 되는구나.
사람들은 열의 아홉 정도는 빨간 신호등을 지키지 않으니까.
이곳 사람들은 차가 달리든 섰든 상관하지 않고 마구 차도를 들어서고 만다.
그런데도 참 신기하게도 아직까지 내 눈앞에서 교통사고 나는 것 본 적이 없다.
아, 그러고 보니 사고가 나지 않는 이유가 있었구나.
바로 저 소리···.
빵빵 거리는 저 소리 말이다.
나는 저 소리 때문에 신경이 날카로워 있는데 이곳 사람들은 서로 얽히고설키어 잘도 다니고 있다.
우리 부부는 삼림공원행 버스를 타기 위해 도로로 나섰다.
상하이에 처음 왔을 때는 저렇게 시원시원하게 뚫려 있는 거리가 참으로 보기 좋았다.
무엇보다도 가장 기분이 좋았던 것은 저 자전거 전용도로 때문이었다.
골목길을 제외하고는 상하이의 모든 도로가 저렇게 만들어져 있었으니까.
도로 중앙에 화단 혹은 철로 된 중앙분리대가 있고, 양 옆으로 차량 전용도로가 시원시원하게 뚫려져 있었다.
그리고 또 다시 양가로 화단 혹은 철로 된 분리대가 있고 자전거 전용도로가 건설되어 있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발상이며 대단한 실천력인가?
(왼쪽부터 인도, 펜스, 자전거전용도로, 펜스, 차량전용도로, 또 화단중앙분리대... 삼림공원 앞)
우리나라 같으면 이제야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드니 못 만드니 하면서 아옹다옹 하고 있으니, 어찌 도로교통 후진국이라고 아니 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하하. 뭐 그렇다고 후진국이라고까지야 할 수 있겠나마는···.
며칠 전 영남일보 기사만 봐도 그렇다.
대구시에서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며 자전거타기운동연합에서 질타어린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주어진 도로사정을 감안해서 도로의 설계속도를 줄이면 차로 폭을 줄일 수 있고, 그러면 차로수를 줄이지 않고도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 생긴다고···.
하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교통문화란 것이 아무리 짧은 거리라도 차를 타고 다녀야 하는 것이라서, 자전거 전용도로를 확보한다고 해서, 매연이 북적거리는 거리를 사람들이 활용할까?
이곳에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아무리 자전거타기 운동을 한다고 해도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20여 년이 조금 못 되지만 북경에 갔을 때의 일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모든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녀서 그야말로 자전거 천국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경제발전과 소득수준의 향상에 따라 승용차 보급이 확대되었고, 지하철, 버스, 택시를 비롯한 대중교통수단이 발달하여 점점 자전거에 대한 수요는 줄고 있다.
옛날 같으면 자전거보다 나은 오토바이라도 타고 다니면 호강하는 생활이었지만 지금은 또 그것도 아닌 것 같다.
그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 하고 기어코 승용차를 사야 직성이 풀리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푸단대학 내 강의동 앞의 자전거... 우미 무시라... 옛날엔 저게 전부 거리로 나왔는데...)
아니나 다를까.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네거리에서 들려오는 짜증스런 클랙슨 소리 말고는 자전거 전용도로는 조용했다.
미래가 걱정이 되었다.
차량 수는 점점 증가하고 자전거, 전동차, 오토바이 등의 수는 점점 줄어들 텐데, 저렇게 많이 확보해 놓은 자전거 전용도로는 낭비가 아닐까 하는 걱정 말이다.
물론 먼 장래까지 굳이 내다볼 필요조차 없다.
지금 당장 상하이의 차량 전용도로는 혼잡하기 이를 데 없고, 자전거 전용도로는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 있으니, 이게 바로 도로의 비효율성이 아닐까.
아, 물론 아주 가까운 이동거리는 예외적이다.
학교 주변 주택가 및 기숙사에서 학교로 이동하거나, 교내 각 동간 이동할 때는 아직도 여전히 자전거가 최고의 교통수단이다.
강의동 앞에 빽빽하게 세워 놓은 자전거를 보면 그야말로 장관이니까.
하지만 조금 먼 거리를 이동하거나 출퇴근을 할 때에는 자전거는 이미 교통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고 하겠다.
그러니 옛날처럼 도로를 꽉 메우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자전거 행렬을 본다는 것은 이젠 추억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 되어 가고 있다.
147번 버스를 10분이 넘도록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을 원망하며, 다시 한 번 벗씨에게 졸랐다.
“이 자전거 전용도로, 우리라도 사용해야 할 것 아니야? 그냥 놀리기에는 너무 아깝잖아. 그러니 전동차 한 대 사자, 응?”
“그만 됐네요. 만약에 샀다가 내년에 다래 오면 그걸 타고 다닐 텐데, 그러면 난 무서워 못 살아요. 제발 사지 말자고요···.”
더 이상 조르다간 오늘 단풍구경은 다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나는 가로수 은행잎만 나뒹구는, 텅 비어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만 그저 바라볼 뿐이었다.
‘저 아까운 자전거 전용도로···. 쯧쯧···.’
2010년 11월 21일
상하이에서 멋진욱 서.
<참고>
김지욱 중국 상하이 직통 전화 : 159-0042-7896
첫댓글 땅이 무지 넓은 중국 동네라서 널널하게 만들어 놓은 자전거 전용도로 ,그것도 효율성이 떨어져서 텅텅 빈 도로를 보니, 좁은 땅덩어리에서 살다 간 사람들에게 아깝다는 생각......충분히 공감이 가네요. 반지의 요정 지니에게 부탁해서 우리 나라로 휘---익 던져 보내세요
반지의 요정 지니도 있어요? 알라딘의 요술램프에서만 지니가 나오는줄 알았는뎅... 어쨋튼 램프 문질러 지니가 나오면 부탁해볼게요. 가져간 드넓은 만주 벌판과 발해를 후딱 돌려주라고...^*^
ㅋㅋㅋ 이런 답장 뜰 줄 알았다닝께. 머리속으로 생각한건 알라딘의 요술램프 지니였는데, 그게 입( --아니 손이구나) 밖으로는 이러케 튀어 나왔네요. 이런 경지---아직 장부회장 모르지요잉....역시 흥사단의 피는 못속여---만주벌판, 발해까지 思考의 확산이 압권이여라요
읽어보고 나감. 얼굴도 좀보여주지. 문자 왔을때 그번호 그대로 답장보냈는데 받아보남.
네.. 잘 받았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