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거지를 엮어두고
간밤 무너진 곳은 울산 무거동 신복로터리 근처였다. 태화강변 일식집에서 노래연습장까지 간 기억은 살아 있었다. 이후 울산 외곽으로 나가는 무거동 모텔에 숙소를 정해 놓고 무슨 찌개를 앞에 놓고 잔을 더 기울인 기억은 가물가물했다. 새벽녘 갈증을 느끼며 잠을 깼더니 옆에는 창원에서 함께 간 친구가 있었다. 어둠 속 평소와 다른 실내 공간이라 친구의 숙면을 방해할 수 없었다.
겨우 더듬어 방 밖을 나왔더니 701호였다. 간밤 내가 잔 모텔은 8충 건물 가운데 7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가 주변의 지형지물을 정찰했더니 신복로터리 근처였다. 나는 편의점을 찾아가 생수를 한 병 샀다. 작은 병이 아니라 아예 큰 병을 마련했다. 그리고 아침밥을 해결할 식당이 어디인지 봐 두었다. 이후 숙소로 올라갔더니 친구는 아직 달콤한 숙면에 빠져 있었다.
벽면 텔레비전은 켜지 못하고 휴대폰으로 뉴스를 검색해 보았다. 아까 사 온 생수를 들이키다 보니 어둠 속에 작은 냉장고가 눈에 띄었다. 냉장고 안에 몇 종의 드링크와 생수가 두 병 있었다. 나는 바깥에서 사온 큰 생수 병을 느긋하게 비웠다. 내가 침대에서 부스럭거려도 친구는 잠을 깰 기미를 보이질 않았다. 내 하루 일과는 새벽 두세 시면 시작되는데 일곱 시가 지나니 갑갑해졌다.
물소리를 죽여서 샤워를 끝내도 친구는 잠에서 깨질 않았다. 이제는 날이 밝아와 텔레비전 화면 곁에 컴퓨터 모니터가 보였다. 컴퓨터를 켰더니 인터넷은 연결되나 한글프로그램을 찾을 수 없었다. 내가 컴퓨터에 밝지 못해 한글프로그램은 열 수 없었다. 워드 작업이 되었다면 간밤 기억을 재생해 일기로 남기고 싶었는데 그럴 수가 없어 못내 아쉬웠다. 그 무렵 친구는 잠에서 깨었다.
친구가 사워를 끝내고 모텔에서 가까운 식당으로 가서 돼지국밥으로 속을 풀었더니 아침 열 시가 지났다. 어제 갔던 길을 되돌아 창원으로 복귀하니 정오가 되기 전이었다. 오후를 그냥 집에서 보내기엔 시간이 아까웠다. 등산복 차림으로 길을 나서 북면 지인의 농장으로 찾아갔다. 지인은 일요일이면 일손을 돕는 동료와 함께 블루베리 이랑에 잡초를 막아주는 부직포를 깔고 있었다.
내가 지인 농장에서 할 일은 두 가지였다. 먼저 지난번 잘라둔 엄나무 둥치의 잔가지를 잘라 가져간 포대에 담았다. 언제 내가 한 차례 잘라간 엄나무와 헛개나무였다. 우리 집에서 내가 한 동안 달여 먹을 양은 충분했으나 이웃에 사는 친구도 필요로 한다기에 더 자르게 되었다. 작은 가지는 전정가위로 쉽게 잘렸으나 굵은 가지는 톱으로 자른 뒤 자귀로 쪼개었다. 알맞은 양을 마련했다.
엄나무 가지를 잘라 놓은 뒤는 배추를 거둔 이랑으로 갔다. 지인이 김장을 담그려고 뽑아간 배추밭이었다. 수레에다 배춧잎을 실어와 노끈을 잘라 세 가닥을 만들었다. 배춧잎을 한줌씩 마주해 놓고 노끈으로 엮어갔다. 지난번 들렸을 때 농막 시렁에다 무청 잎사귀를 벌여 노끈에 바로 걸어 놓았다. 배춧잎을 무청처럼 바로 걸 수 없기에 한 줌 한 줌 노끈으로 엮어서 시렁에 매달았다.
내가 배춧잎으로 우거지 재료를 엮는 사이 지인은 블루베리 이랑 부직포 덮는 작업을 마무리 지었다. 일손을 거들던 동료는 농장을 먼저 나갔다. 지인은 내년 봄 블루베리 묘목을 키울 비닐하우스를 지어 놓았다. 주말이면 지인을 돕는 분이 올 가을 말린 고추를 수건으로 닦고 있었다. 올해 고추 농사가 잘 되어 말린 고추가 제법 되었다. 농약 한 번 뿌리지 않은 친환경 건고추였다.
내가 엮은 배춧잎은 네 다발이었다. 전번 무청을 걸어둔 농막 시렁 모퉁이에 엮은 배춧잎을 매달이 놓았다. 겨우내 시나브로 말라가면 우거지 재료가 될 것이다. 농장을 방문할 누군가가 필요한 분이 있으면 얼마든지 가져가도 좋을 것이다. 짧아진 겨울해라 해가 일찍 넘어갔다. 지인이 화천리까지 나를 태워다 주어 시내로 쉽게 돌아왔다. 어둠이 깔린 거리엔 가로등이 켜지고 있었다. 2015.1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