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칼럼
인생 항로를 잃었을 때 묻는 질문, 내 인생의 ‘자메이카’는……
서울대총동창신문 제490호(2019. 01.15)
알파고 시나시 (대학원10-18, 39세) 아시아엔 편집장
소사이어티 게임2’라는 방송에서
알게 된 모델 유승옥 씨가 출연한 공연 ‘자메이카 헬스클럽’을 관람하러 대학로에 있는 해피씨어터를 찾아갔다. 공연이
완성도가 있었고, 내용도 너무나 좋았다. 특히 공연 중에
이러한 대사가 있었는데, 제일 많이 공감했다.
“이 헬스클럽의 이름이 왜 자메이카인지 아세요? 한국에서 자메이카에 가려면 일단 미국 뉴욕을 가야 합니다. 14시간
걸려요. 거기서 경유해서 마이애미로 가야 돼요. 마이애미에서
드디어 자메이카에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데, 갈아탈 때마다 공항에서 오래 기다리고, 비행시간이 오래 걸려서 자메이카에 가는 것이 엄청 힘들어요. 즉, 자메이카까지 가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그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엄청난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 되어 지쳐서 포기한 사람이 많아요. 누구나 머릿속에 자기네 나름대로의
자메이카가 있습니다. 이 헬스클럽은 각각 개인의 자메이카에 가고 싶은 사람들이 같이 가자고 해서 모인
장소입니다. 시간이 걸리고 지쳐도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이름을 자메이카로 지었습니다.”
필자의 이 글이 동창신문에 실린 첫 글이니까 많이 설렌다. 무엇을 쓸까 많은 고민을 했다. 많은 고민 끝에 서울대에 합격하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감정을 자백하려고 한다. 필자에게는 서울대는 일종의 자메이카였지만, 첫 자메이카가 아니었다. 필자에게 첫 자메이카는 터키에서 졸업했던
과학고등학교인 야만라르(Yamanlar) 과학고등학교였다.
필자의 고향이 터키에서 워낙 시골 속에 시골이니까 야만라르 과고처럼
터키의 톱클래스 엘리트 학교에 합격하기는커녕 지방에 있는 일반 과고 합격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중학교 2~3학년 동안 거의 제대로 놀지도 못하고 고등학교 입시 시험에 집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오직 그 고등학교에 집중을 해서 드디어
2001년 합격했다. 우리 고향 역사에서 첫 사례였다.
고향을 떠나 터키의 제일 예쁜 도시인 이즈미르에 위치한 야만라르 과고에
입학했다. 첫 몇 달은 ‘드디어 자메이카에 도착했다’ 감정으로는 아무 우려나 걱정도 없었고, 매일 매일이 설렜다. 그러나 중간고사 시기가 다가오고, 점수가 늘 나왔던 대로 높게 안 나오자 큰 좌절을 느꼈다. 하긴
이 학교에 온 학우들이 다 자기네 ‘자메이카’에서 온 고수들이었는데, 경쟁이 쉽지 않겠지. 필자는 그 때 전략적으로 너무나 큰 실수를 했다. 새로운 ‘자메이카’를
설정 안 했던 것이다. 새로운 자메이카, 즉 갈 곳이 없다
보니 의미 없는 성적 경쟁에 빠져서 쓸데없이 에너지를 낭비해 1~2학년이 날아갔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던 시기였다. 3학년 마지막 학기에 정신을 차렸다. 이제는 새로운 자메이카를 선정했다. ‘동양에 유학 가기’.
동양 유학 프로젝트는 단순한 ‘도피 유학’이 아니었다. 터키에서 이스탄불 기술대학에 합격했지만, 삶의 맛이 없다고 해야
되나, 그러한 분위기였다. 한국에 와서 전공을 바꾸고 충남대에서
정치외교학과에 들어갔다. ‘서울대 외교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할 자격을 갖출 수 있게끔 4년 동안 열심히 했다. 드디어
2010년에 서울대 대학원 외교학과에 합격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같은 실수를 안 했다. 바로 다음 ‘자메이카’를 선정해서 그런지 서울대에서 보낸 2년이
너무나 생소하고 사랑스럽다. 의미 없는 성적 경쟁에 휩싸이지 않고, ‘SNU’라는 단어를 즐겼다.
서울대에 매년 많은 후배가 새로 들어온다. 그들에게 서울대는 ‘자메이카’일 것이다. 그러나 한 학기만 보내면
이 사랑스러운 자메이카가 지옥 같은 장소로 변질되기도 한다. 원인은 단순하다. 다음 자메이카를 선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미 없는 성적 경쟁이 배고픈 호랑이처럼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필자가 이 글에서 후배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말은, 이제 다음
자메이카를 선정하라는 것이다. 후배뿐 아니라 인생이 무의미해진 모든 분들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