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가 언어학의 혁명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언어와 정치의 ‘퇴락’의 시대이다!
'정치의 계절'에 정치, 언어,
맹세(약속)의 근본에 대해 되묻다!
트위터는 지저귀고, SNS는 무수한 관계의 그물을 짜고,
이메일은 무수한 편지를 쏟아 붓고, 페이스북은 무수한 얼굴의 대면을 가져오지만
정치는 요지부동에 삶은 오히려 ‘스팸’으로 전락해가는 우리 시대,
과연 이 무수한 말의 폭발과 정치의 과잉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짜 변화는 무엇인가?
빈말은 공허하게 사방을 채우고,
모든 것이‘벌거벗은’삶에 대한 법적인 지배로 환원되는 우리 시대,
철학의 새로운 출발점을 근본적으로 되물으며
‘호모 사케르’시리즈의 방향 전환을 알리는 역저!
“맹세의 쇠퇴기는 또한 독신의 시대이기도 하다.”
“말과 사물과 인간의 행위를 하나로 묶어주는 윤리적 연관이 깨지면 사실상 한편으로는 공허한 말이, 다른 한편으로는 입법 장치들이 대대적이고 유례없이 만연해 더 이상 통제 불능으로 보이는 그러한 삶 전반을 법으로 집요하게 틀어쥐려고 한다.”
■ 언어의 고고학을 통한 정치와 인간 존재(론)에 대한 새로운 탐구!
정치의 계절에 다시 정치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정치의 시절이면 늘 그렇듯이 나라 전체가 온갖 언어의 성찬과 ‘공약’, ‘국민과의 약속’으로 파묻히고 있다. 말과 상징을 근본으로 하는 언어적 현상으로서의 정치를 떠올리게 되었다.
이처럼 기묘한 시기에 말과 사물 그리고 정치와 법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되묻고 있는 아감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새로운 성찰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선 현시대 상황에 대한 아감벤의 의미심장한 진단에 따르면, 우리는 “어떤 정치 조직과의 엄숙하고 절대적이며 신성하게 고정된 결합으로서의 맹세와 무관한 집단생활을 하는 최초의 세대”이다. 즉 “어떤 정치 조직과의 엄숙하고 절대적이며 신성하게 고정된 결합”이 없는 것이, 이제 정치와 생활의 근본적인 양상이 된 것은 아닐까? 그저 일시적이고 일과적인 현상이 아니라 정치의 토대가 근본적으로 잠식되고 있는 것을 알리는 근본적인 변화의 서막이 아닐까?
아감벤은 이러한 시대적 진단을 출발점으로 삼아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재 자체가 위기에 걸려 있다’는 프로디(『권력의 성사』, 1992)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이를 보다 발본적인 질문으로 이끌어나간다. 즉 이를 언어-정치-법의 3항적 관계 속에 새로이 위치시키며 시대 진단과 연결시키고 있다. “살아있는 존재자를 언어와 묶어주었던 결합이 느슨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편에는 갈수록 더 순전히 생물학적인 실재로, 벌거벗은 삶으로 축소되는 ‘살아있는 존재자’가 있다. 다른 한편에는 미디어 테크놀로지에 기반을 둔 각종 장치들을 통해 더욱 더 공허해져버리는 말의 경험 속에서 인위적으로 삶으로부터 분리되는 ‘말하는 존재자’가 있다. 그러한 말에 대해서는 책임지는 것도 불가능하고 또 그러한 말 속에서는 정치적 경험 따위는 갈수록 더 미덥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다.” 근대 정치는 폭력도, 금력도, 완력도 모두 배제한 채 말을 통한 대화와 합의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제시했지만, 이제 우리는 단지 정치뿐만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이메일 등에서의 말의 홍수와 성찬 속에서 말의 공허함을 시시각각으로 체험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성은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하는 것이라는 푸코의 말을 변용하자면 말은 이제 더 이상 억압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생산하면서 폭발하는 동시에 휘발되고 있다. 인터넷 댓글처럼 엄청난 폭증력과 함께 초고속의 휘발력과 공허감을 동시에 폭발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책임의 ‘묻지마’적인 무중력의 정치적 비주체들을 끊임없이 양산하고 있다.
■ 언어-종교-법-정치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한다.
종교와 정치의 쇠퇴 그리고 법과 언어의 폭발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성스러움’을 탐구해온 종교는 사회와 정치로부터 내면의 힐링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고, 정치는 온갖 구태를 반복 중이다. 동시에 모든 사회적 논쟁과 정치는 ‘법’으로 환원되고, 인터넷상에서는 온갖 언어가 만개하고 폭발 중이다. 그러면 왜 언어의 성사이고, ‘맹세의 고고학’인가? 아감벤이 인용하고 있는 프로디에 따르면 ‘맹세는 종교와 정치가 가로지르는 교차점에 놓여 있으며’, 맹세는 ‘사실상 서양에서 정치적 약속의 기초’이기도 하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맹세가 오늘날 쇠퇴하고 있다’는 것이 아감벤의 진단이다. 그리고 서양 정치사의 주요 장면마다 뚜렷한 역할을 한 맹세가 쇠퇴하고 있다는 것은 곧 오늘날 말이 말 같지 않아지고 빈말만이 공허하게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는 의미인데, 아감벤은 이를 (파올로 프로디를 따라) ‘정치적 존재로서의 인간의 존재 자체가 걸린 위기’라고 규정한다.
그리하여 아감벤은, 맹세가 “말하는 존재자이자 정치적 동물로서의 인간의 본성 자체를 의문에 부치는 전망 속에 놓일 때에만” 오늘날 우리 상황과 관련해 핵심적인 의미를 갖는 이 수수께끼 같은 제도를 해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의 부제가 ‘맹세의 고고학’인 까닭이다. 그리고 이 책에서 진행되고 있는 ‘맹세의 고고학’에서 아감벤은 ‘맹세’가 종교와 정치 그리고 법과 맺고 있는 관계를 전복시키며, 법과 정치의 본질과 핵심을 맹세의 쇠퇴로부터 역추출해내는 고고학적 전복의 솜씨를 빼어나게 보여준다. 그리고 이를 통해 맹세란 생명과 언어, 행위와 말의 결합이 필연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이 둘 사이에는 끊임없는 어긋남, 메울 수 없는 틈이 있음을 역설적으로 밝혀낸다.
그렇기 때문에 말하는 존재자로서의 인간에게는 끊임없이 어긋나는 이 둘 사이를 맞물리게 해야만(그럴 때만 ‘주체’와 같은 것이 존재할 수 있다) 하는 임무가 존재론적 숙명처럼 주어져 있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따라서 맹세는 “말하는 동물에게 어떤 의미로건 결정적인 요구, 즉 말하는 동물이 언어에 자신의 본성을 걸고 말과 사물(사태)과 행위를 윤리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하나로 묶어야만 하는 절박한 요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 맹세의 쇠퇴는 곧 ‘인간의 존재 자체가 걸린 위기’인 것이며, 때문에 오늘날 유례없는 말의 성찬 속에서 ― 그리고 이와 짝을 이루는 유례없는 ‘법의 힘’ 앞에서 ― 다시금 맹세가 문제인 것이다.
아감벤의 이 책은 정치는 무책임한 욕망의 배설 행위로 변해가고, 문학 또한 점점 언어의 성스러움을 잃어가는, 정치 행위와 문학 행위가 자신의 전 존재를 거는 성사(聖事)이기를 그친 오늘날, 언어와 생명과 언어를 중심으로 우리 시대의 철학적 사유를 새롭게 정초할 수 있는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