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지키는 3가지 기둥(잠 4:23-27절)
성경에서 "마음(heart)"은 단순한 감정의 중심이 아닌, 인간 존재의 중심을 나타내는 중요한 개념입니다. 히브리어로 "레브", 그리스어로 "카르디아(καρδία)"라고 표현되며, 이는 인간의 생각, 감정, 의지, 그리고 영을 모두 포함하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카르디아” (καρδία)는 그리스어로 "심장"을 의미하며, 성경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카르디아"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유래되었으며, 원래는 물리적인 심장을 의미했습니다. Cardiology은 심장학이고 Cardiologist는 심장 전문의란 뜻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카르디아"는 단순히 신체 기관을 넘어, 감정, 생각, 의지, 영적 본질을 포함하는 '인간 존재의 중심'을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지성, 감성, 영성이 연합한 중심을 뜻합니다. 카르디아의 어근은 'Cord'로서, '중심(中心)'이란 의미이다. "코드(Cord)가 같다, 다르다"란 말이 있습니다. "마음이 일치하다, 혹은 틀리다"란 뜻입니다.
신약성경에서 "카르디아"는 총 157회 사용되며, 바울서신에서만 52회 등장합니다. 이는 인간의 내면 세계, 즉 감정, 생각, 의지, 영적 활동의 중심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카르디아),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카르디아"는 우리의 감정과 의지, 그리고 영적 헌신을 포함한 전체적인 사랑을 의미합니다. "카르디아"는 단순한 신체 기관을 넘어, 인간의 내면 세계와 영적 본질을 포괄하는 중요한 개념으로 사용됩니다.
지난 금요일 응답기도원에 다녀왔습니다. 이용남 선교사님께서 히브리서 4장 12절의 말씀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에서 마음은 카르디아입니다. 마음이 영적 활동의 중심임을 강조합니다. 성경에 마음이라고 번역한 것은 '카르디아'만이 아닙니다. 딤후 1:7절의 ‘하나님이 주신 마음’은 '프뉴마'입니다.
오늘 본문 잠언 4장 23절에서는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삶과 행동의 근원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마음을 잘 지켜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일체유심조’란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내는 것이란 뜻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마음에서 지어내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어떠한 상황도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고 불행하게도 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며 우리는 어떻게 마음을 지킬 수 있겠습니까?
1. 첫 번째 기둥: 바르게 말하라(잠언 4:24)
"구부러진 말을 네 입에서 버리며 비뚤어진 말을 네 입술에서 멀리하라."
구부러진 말과 비뚤어진 말이란 거짓이나 부정적인 말, 험담과 같은 말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는 말은 우리의 마음 상태를 반영하고, 우리의 말은 다시 우리의 마음에 영향을 미칩니다. 바르게 말하는 것은 단지 도덕적이거나 예의 바른 표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우리가 하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형성하고, 우리의 영적 상태를 반영합니다. 그러므로 바른말, 진실한 말 사랑의 말을 통해 마음을 지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부정적인 말이나 거짓된 말을 버리고, 격려와 축복의 말로 우리의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말에는 '살리는 말'과 '죽이는 말'이 있습니다. 살리는 말은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창조적인 말로, 사람들에게 힘과 희망을 주며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 냅니다. 반면, 죽이는 말은 부정적이고 소극적이며 파괴적인 말로, 상대방의 기운을 떨어뜨리고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삶의 방향성을 긍정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살리는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살리는 말을 쓰는 사람은 상대방을 살리고 자신을 살리지만, 죽이는 말을 쓰는 사람은 상대방도 죽이고 자기도 죽습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 18:21)
민수기 13장에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가나안 정탐을 갔습니다. 정탐 후 모세에게 보고하기를 그중 10명은 ‘저들에 비하여 우리는 메뚜기 같다“고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말을 듣고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민14:28)고 하셨습니다.
2. 두 번째 기둥: 바르게 보아라(잠언 4:25)
"네 눈은 바로 보며 네 눈꺼풀은 네 앞을 곧게 살펴"
우리의 눈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마음이 영향을 받습니다. 우리가 세상의 헛된 것들, 죄악의 유혹을 바라볼 때, 우리 마음은 쉽게 흔들리고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그분의 말씀과 뜻을 바라볼 때 우리는 마음을 올바르게 지킬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하나님께 고정될 때 우리의 마음은 그분의 평강으로 채워지며, 세상의 유혹에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마태복음 14:22-33절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때, 처음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에 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폭풍을 보고 두려워할 때 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받아들이는 정보는 주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통해 들어옵니다.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입니다. 각 감각 기관은 특정한 자극을 감지하고 이를 신경 신호로 변환하여 뇌로 전달합니다. 이중 시각: 약 70-80%, 청각: 약 10-15%, 촉각: 약 5-10%, 후각: 약 3-5%, 미각: 약 1-2% 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생각과 행동, 내면 성장에 깊은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의 시선이 머무는 곳에 우리의 생각도 함께 합니다.
바라봄의 법칙이 있습니다. 바라봄의 법칙은 우리가 어디에 시선을 두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달라진다는 원리입니다. 심리학적으로나 신앙적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사람의 삶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창세기 30장 37-43절 야곱은 장인 라반의 집에서 일하면서 라반과의 계약에 따라 점 있는 양과 염소를 자신의 소유로 받기로 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특이한 방법을 사용하여 자신의 재산을 증식시킵니다. 야곱은 나무 가지를 벗겨 흰 무늬가 나타나도록 만들고, 그 가지들을 양과 염소가 물을 마시러 올 때 보이도록 물가에 세워두었습니다. 그러면 양과 염소들이 물을 마시면서 그 가지를 보게 되고, 그로 인해 무늬 있는 새끼가 태어났습니다.
3. 세 번째 기둥: 바르게 행하라(잠언 4:26-27)
"네 발이 행할 길을 평탄하게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네 발을 악에서 떠나게 하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로 바르게 걸어가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바른 발걸음은 우리의 마음을 보호하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인생에서 여러 가지 유혹과 어려움 속에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라 바르게 걸어갈 때, 우리는 마음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넓은 길이 아니라 좁은 길을 걸으라고 했습니다. 빠른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을 가야 합니다. 단기적인 이익을 위해 편법을 쓰지 말고 합법적으로 해야 합니다.
유태인의 속담 중에 성경을 읽기 위하여 촛불을 훔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나쁜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 목적이지만, 환경을 파괴하거나 노동자를 착취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또한, 정치적 목표를 이루기 위해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마음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보고, 바르게 행하는 세 가지 기둥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평강 속에서 지킬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 기둥을 붙들고 하나님의 보호 아래 마음을 지키며, 세상의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길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