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뢰아 교회 성도들의 말씀 중심의 신앙
사도행전 17:10~12
찬송가 369장(죄짐 맡은 우리 구주)
베뢰아 교회는 사도 바울이 이차 전도 여행 중에 매우 짧은 기간 머물면서 세운 교회입니다. 이 도시는 크지 않은 소도시인데 금속 세공업으로 부를 축적한 도시였습니다. 그 도시에도 유대인들이 적지 않아서 유대인 회당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한 육 개월 정도 전도하다가 거센 핍박을 받아 밤중에 몰래 도망쳐와서 이곳 베뢰아 시에 들어와서 유대인 회당에 들러 전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 다니는 사람들은 대체로 지체가 높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11절 전반절에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라고 하였습니다. ‘너그럽다’라는 헬라어 단어 유게네스‘라는 단어는 본래적으로 ’좋은 가문에서 태어난‘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본래적 뜻에서 우러나온 파생적 의미가 ’너그럽다‘, ’관대하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성경에서 쓰여진 다른 용례처럼 신분적으로 지체가 높은 가문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베뢰아의 유대인 회당에 들렀던 누가의 눈에 보니, 그 회당의 회원들인 유대인들이나 헬라의 이방인 교인들이 당시 사회적 지위가 높은 귀부인들이 많았던 것이 유난히 눈에 띄였던 것 같습니다. 호화로운 옷차림새와 차분하고 공손한 말투 등이 의사인 누가가 볼 때에 인상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출신 성분의 탁월함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에 그의 전도의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반발을 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다른 지역의 유대인들이 통상적으로 보이던 아집과 교만이 없었고 사도 바울이 증거하는 복음의 말씀에 대하여 열린 마음을 가지고 들었던 것입니다.
11절 중반절에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라고 하였으니, 이 뜻은 그들이 사도의 전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최대한의 열심을 가지고 그 말씀을 열렬히 환영하여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높은 지체를 가진 자들이었으나 하나님 말씀 앞에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여 들었던 것입니다. 열렬히 환영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말씀을 받는 것은 아름다운 자세입니다. 베다니의 마리아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하고 달콤한지 자기도 모르게 음식 장만하는 언니 마르다 곁을 떠나 방안으로 들어와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 말씀에 흠뻑 빠져들어서 언니가 시킨 일도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그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렀던 것과 같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들을 때에는 다른 모든 것을 다 잊어버리고 딴 생각을 전혀 하지 말고 오직 말씀을 달콤한 꿀을 먹는 것처럼 말씀을 받아 먹는 자들이 됩시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베뢰아 회당의 그 교인들이 보인 아름다운 신앙 자세는 사도 바울의 말씀을 들을 때에 맹목적으로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과연 그 전하는 바 말씀에 성경에 일치가 되는가를 자세히 검증하여 살펴보았다는 점입니다. 11절 후반절에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라고 한 말씀이 그러한 뜻입니다. ‘상고하다’라는 헬라어 단어 ‘아나크리노’라는 단어는 자세히 검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질문하다, 판단한다, 재판한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열심히 들은 바 사도의 복음 말씀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성경을 자세히 읽고 그 말씀과 일치하는가 여부를 차분하고 정확하게 따져 확인하고서 받아들이곤 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무작정 믿는 자들이 아니었고 성경에 비추어보고 하나씩 따져가면서 확인하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살피는 성경 중심적 신앙인이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래 랍비로서 성경을 깊이 알고 성령의 계시를 통하여 나사렛 예수께서 성경을 따라 세상에 오시고 성경을 따라 고난당하시고 성경을 따라 죽으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해오곤 했기 때문에, 사도 바울로서는 베뢰아 성도들의 이러한 기록된 말씀 중심의 신앙 자세를 보고서 너무나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곳에서 그의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성경 강해와 해석을 날마다 회당에서 마음껏 펼쳐서 그 성도들에게 복음을 가르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갖지 않았던 이방인들에게는 때로 표적과 이적을 허락하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크심과 유일하신 신 되신 것을 증거하곤 했는데,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었습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성경을 자세히 살펴가면서 예수님께서 구원자 되심을 확인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하나님께서 기사와 표적을 베풀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뢰아 성도들은 기사와 표적 없이도 말씀을 믿고 구원받는 은혜를 입은 매우 특별한 축복을 받은 성도들이었습니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증거하면서 음부 곧 지옥에 떨어진 부자가 자기의 다섯 형제를 구원하고자 천국에 들어간 나사로를 자기 형제들에게 보내달라고 간청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그 거절의 이유에 대하여 주님께서 그 비유에서 이르기를
“이르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6:31)
고 말씀하셨습니다. 죽은 자가 살아나서 천국이 있고 지옥이 있다고 전도한다 해도 모세와 선지자들 곧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는 자들은 결코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자는 죽은 자가 살아나는 큰 표적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베뢰아 회당의 그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권면의 말씀을 듣고서 표적 없이도 기꺼이 기록된 말씀을 상고함으로써 깨닫고 복음 진리를 받았으니, 참으로 귀한 신앙인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말씀 중심의 신앙 자세를 가졌던 베뢰아 성도들은 참으로 복이 있는 성도들입니다.
우리도 베뢰아 성도들처럼 표적과 기적을 보지 못할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잘 듣고 날마다 성경을 자세히 살펴 읽고 묵상함으로 굳게 섭시다. 그리하여 모든 영적인 유혹과 시험들이 많은 이 시대를 잘 분별하고 말씀 중심의 신앙으로 차분하고 고요하게 굳건한 신앙으로 서가는 신앙인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