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언제부터 검은닭을 길렀는지는 알 수 없다. 동남아시아 계통이나 일본 계통의 오골계로 오해받던 시절도 있었다. 지양미가 보고한 '봉황과 긴꼬리닭의 역사성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고양시 긴꼬리닭 3계통, 축산연구소의 재래닭 3계통, 연산 오계, 제주도의 재래닭, 축산연구소 레그혼, 로드아일랜드 및 코니쉬 등 11개 집단 449수를 염기서열 분석을 통해 분석하였는데, 긴꼬리닭과 연산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과 93% 확률로 동일한 그룹임이 확인되었다.
긴꼬리닭을 포함하여 연산 화악리 오계가 우리나라 토종닭임을 알려주는 실험이었던 셈이다. 문헌상으로 보면, 고려 시대 이달충(1309~1385)의 시에 등장하기도 하고, 조선 시대 문헌에는 다수 등장한다. 시기를 특정할 수는 없지만 아마 아주 오랜 시기부터 검은닭이 사육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1월에 논산에서 열리는 연산오계 심포지움에서 발표하는 정경일 교수의 '연산 화악리 오계의 역사성과 전통성'에 보면, '구급방언해'(1446년), '언해태산집요'(1608), '동의보감'(1615), 『구급이해방』, 『의방유취』, 『고사촬요』, 『고려사절요』, 『산림경제』, 『청장관전서』, 『용주유고』, 『물명고』, 『오주연문장전산고』 등의 문헌을 인용하고 있다. 대개 오자계(烏雌鷄), 오계(烏鷄) 등으로 호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연유에서였겠지만 2008년 오골계가 아닌 오계(烏鷄)로 이름을 정정하게 된다. 사실은 정정이 아니라 본래의 이름을 찾았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오계(烏鷄)가 멸종하지 않고 논산의 연산에 남은 까닭
우리나라 재래종 가금류 중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이 논산의 연산 화악리 오계(烏鷄)이다. 눈동자와 눈자위가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모든 것이 검다. 깃털도 청자빛 감도는 검은색이며 뼈를 포함한 온몸이 까마귀처럼 검어서 오계 즉 '검은닭'이라 했다. 1980년 가금류 중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265호로(1980년 당시 이름은 연산 화악리 오골계) 지정된 이유일 것이다. 연산오계재단에 의하면, 연산에서 오계를 길렀던 역사를 익안대군(이성계의 셋째아들)으로 올려잡는다.
대대로 오계를 길러온 내력을 자랑한다. 이형흠(1805~1881)대에 철종에게 진상하는 등 오계의 약효에 대한 인정이 이어졌고, 현재는 이승숙 이사장이 6대 지킴이를 자처하며 오계의 보존에 투신하고 있다. 이 대표에 의하면, 연산오계도 대규모 양계산업이 활성화되면서 멸종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다. 다행히 할아버지인 이계순(1974년 작고)씨가 30마리를 키워 종을 보존한 것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천연기념물 지정은 1962년 12월 부산에서 먼저 시작하였지만 1981년 해제되었다. 문화재청에서 밝히고 있는 해제 사유는 보존가치 상실이다. 바꾸어 말하면 1980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연산오계가 보존의 가치를 지키고 있다는 뜻이겠다. 이 시점에서 궁금한 것은 왜 계룡산 자락 논산의 연산에만 오계가 남아있는가 하는 점이다. 동의보감 중심으로 역사 이래 회자되어온 검은 닭의 약효와 건강에 좋은 기능을 넘어서는 그런 얘기다. 예컨대 진돗개가 진도라는 섬을 토대 삼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것은 그 생태적 환경이 진돗개의 생성과 보존에 크게 작용했다고 보는 시각처럼 말이다.
세발 달린 검은새와 연산오계에 대한 상상
지난 칼럼에서 나는 삼족오를 에둘러 말하며, 검은닭 오계를 소개했다. 오계(烏鷄)를 까마귀닭이라 부르지 않고 검은닭이라 부르는 것은 삼족오의 오(烏)가 사실은 검은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굳이 까마귀에만 대입해 태양새를 해석하는 것은 고대로부터의 이름짓기 방식이나 의미부여 방식으로서의 댓구에 맞지 않는다는 취지였다.
그 사례로 고대 중국의 삼족정(三足鼎)과 베트남을 중심으로 하는 남중국과 동아시아 전통의 동고(銅鼓), 특히 태양의 검은새와 댓구의 위치에 있는 달의 화신 두꺼비(蟾)를 설명했다. 지면상 여기서는 소략하지만, 까마귀와 오리, 기러기, 비둘기 등이 태양과 인간을 연결하고 교섭하는 메신저로서의 역할로 분화된 것으로 보이고, 이글거리는 에너지로서의 태양, 특해 재생과 부활이라는 갱생의 에너지는 주로 닭에 투사되었다고 보는 것이 내 입장이다. 본 지면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소개하거나 주장했고, 다른 지면을 통해서도 밝혀둔 바 있어 더이상 리뷰하지는 않겠다. 그래서다. 어찌보면 우연도 이런 우연이 없다. 닭의 투사물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계룡산 자락에 우리나라 유일의 천연기념물 검은닭 오계가 유일하게 보존되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2년여 전 조한규 시청자미디어재단 이사장의 칼럼을 소개한 바 있다. 그는 계룡산의 요모조모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설화들을 밝혀, 오계와의 관련성을 주장하였다. 그와 내가 만난 바는 없지만, 서로의 글로 모종의 합의를 이룬 것은, 태양의 화신이라는 삼족오의 현현이 닭의 산 계룡산 자락의 오계에 투사된다고 하는 점이었다. 우연치고는 너무 절묘한 조합이라고 할까. 나는 이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이 대표를 비롯해 그 가계가 오계를 지키고자 했던 마음의 지점들이, 계룡산 자락에 움자리 틀 수밖에 없었다는 점 말이다. 그 마음의 어떤 지점에 필경 계룡산을 옹위하는 여러 풍수와 담론들이 배경이 되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예컨대 주요 일간지 국제기자를 때려치우고 낙향하여 별 벌이도 안되는 닭 기르는 일에 일생을 투신하기 어렵다. 어쩌면 이 마음의 지형들이 오늘날 연산오계를 보존하고 가꾼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남도인문학팁
닭의 산 계룡산과 연산오계
주지하듯이 계룡산이라는 이름은 닭에 기댄 호명이다. 꼭대기 상봉을 에워싼 쌀개봉과 연천봉을 이은 능선의 모습이 마치 닭의 벼슬과 같다. 이를 잇고 있는 능선은 또한 용이 꿈틀대는 모양새다. 산의 형국이 닭(鷄)과 용(龍)의 모습을 닮았으니 계룡산이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금계포란형(金鷄抱卵形)이니 유룡농주형(遊龍弄珠形)이니 따위의 풍수 담론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문자 그대로 금닭이 알을 품고 용이 여의주를 갖고 노는 형국이라고들 한다. 또한 계룡산은 토함산, 태백산, 지리산, 팔공산과 더불어 신라 시대부터 5악(嶽)에 배정된 산이다. 계룡산의 중악단을 중심으로 충청도 중심 담론이 널리 퍼진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뿐인가. 지금도 계룡산 자락을 돌아보면 수많은 무속계열의 종교인들이 진을 치고 있다. 왜 하고많은 무속인, 신흥 종교인, 관념론자들이 계룡산을 중심으로 모이고 담론들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한마디로 계룡산이 닭의 산이고 용의 산이기 때문이라는 점 의문의 여지가 없다. 예컨대 옛사람들은 계룡산의 봉우리와 능성이에 닭을 투사해 볏의 일들을 상상하고 용을 투사해 권좌의 일들을 상상해온 것 아니겠는가. 내 고향이 진도이기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진돗개에 대한 자부심이 아주 크다. 용맹성보다는 주인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다. 마치 진돗개의 충성심에 대한 자부심처럼 연산의 검은닭이 계룡산 주변 사람들에게 태양의 메신저 혹은 태양의 화신으로 독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대인들이 세 발 달린 검은새를 태양의 메신저로 상상했다면 계룡산 자락에 기대어 선 우리는 훨씬 더 확장된 개념으로 검은닭 오계를 상상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