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 김명원
구두가 예뻐서 샀다
디자인이 새로워서, 장식이 세련 돼서
꼼꼼히 따지지 않고
외견이 맘에 들어 덥석 샀다
더 잘 신어봤어야 했는데
구석구석 내 발과 맞는지
더 오래 살펴봤어야 했는데
명품 한정판이라는 매장 직원 재촉에
다른 사람이 사갈까 두려워
심사숙고, 삼사이행, 은인자중 등
단어들이 생각도 안 나는 사이
의기양양, 백화점을 나서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 첫 날, 발가락이 아프고
발톱에 멍이 들고, 급기야 물집에 까지기까지
길 한복판에서 벗을 수도 계속 신을 수도 없어
황급히 정확히 원수가 되어 버렸으나
환불을 하려고 태풍의 속도로 찾아 갔지만
이미 신은 신발은 교환도 안 된다는
처절한 신음만 비가로 들리는
그 오후를 무혐 처리하기로 했다.
아니 극혐이지만 체념하기로 했다.
운명의 크기에 내 몸을 맞추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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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원
* 충남 천안 출생
* 이화여대 약학과 및 성균관대 대학원 국문학과 졸업, 문학박사
* 1996년《詩文學》으로 등단
* 시집『슬픔이 익어, 투명한 핏줄이 보일 때까지』,『달빛 손가락』,『사랑을 견디다』,『오르골 정원』, 시인 대담집『시인을 훔치다』등 출간
* 노천명문학상, 성균문학상, 시와시학상 젊은시인상, 대전시인협회상, 호서문학상 등 수상
* 대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