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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등산 정보 스크랩 2014년 가을 창경궁의 오후
황종원(중앙대) 추천 0 조회 285 14.11.06 17: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창경궁 명정문


명정문(明政門)은 창경궁의 정전인 명정전의 출입문이다. 명정문은 흥화문과 같이 동향을 하였는데, 명정전으로 이어지는 동서 중심축 선상에 정확하게 놓이지 않고, 남쪽으로 약 1.2m 벗어나 있다. 문의 좌우에 연결된 동행각을 명정문에 맞추어 배치하였기 때문에 행각으로 둘러싸인 명정전 앞뜰은 반듯한 사각형이 아니라, 약간 기울어진 모습을 하고 있다.행각은 2칸 폭의 복랑이며, 경복궁의 행랑에 비해 높이가 낮다.



강원도 오대산에서 가을 배웅을 하였으니 창경궁에서 또 한 번 하십시다.

처형 부부와 함께 지하철 타고 혜화역에서 내려 창경궁으로 걸어간다. 

그 길은 성균과대학으로 가는 길은 아내에게, 처헝에게 소녀 시절의 추억이다.

지금은 대학로로 바뀌었으니 여기 올 일도 없었다.

자, 갑씨다. 






난 창경궁 매표소에 선 노인을 누군가 알아채지 못했다.

주위에서 말한다.

 "박희태야."

누구

" 박희태라고..."

설마 그 노인이 여기 왔을라고.




내 생전에 난다 긴다 하는 박노인을 여기서 볼줄이야.

세상이 돌팔매를 하는 지경에도 노인은 가을의 창경궁에 왔다.

박노인을 알아 보는 연배 있는 남자 노인이 한마디 던진다.

" 나이 값이나 제대로 하지. 늙은 것이..."

박 노인은 묵묵부답이다.




옥천교


창경궁 금천 위에 놓은 다리이다. 대한민국 보물 제386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창건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모든 궁궐 마당에는 시냇물이 흐른다. 법전이 있는 궁궐의 안족과 외부의 공간을 구분하는 역할을 하며, 궁궐 뒤의 산과 짝을 이루어 좋은 운을 불러들이는 길지가 되라고 궁궐 앞쪽에 일부러 낸 물길이다. 이를 '금천'이라 부른다. 창경궁의 금천은 옥천이라 부른다. 그래서 이 옥천에 놓인 다리가 '옥천교'이다.



박노인을 욕하는 세상의 남자들은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음을 알라.

누가 누구를 욕할 수 있으랴.

남정네의 나이는 세월의 무게와 관계 없이 춘정임을...


저마다 은밀하게 야동을 탐닉하는 이들은 노인의 한낮 춘정을 욕하지 말라. 

박노인이 옥천교를 건넌다.


그 강을 건너면 임금님이 계신 옥좌가 있습니다.


정말로 내가 본 이가 박희태 노인일까.

혹은 

닮은 다른 이일까.

정말로 박 노인이라면 수호 무사 없이 이렇게 고궁 산책을 나올 수 있을까.



그는 그의 일행 여인 둘과 떠나갔다.




벌써 2년 전 대학 동창과 왔던 이곳, 다들 별 탈 없이 한 친구만 할애비가 되었을 따름.





명정전


명정전은 창경궁의 정전이다. 대한민국 국보 제226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전은 성종 15년(1484년)에 창건되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광해군 8년(1616년)에 중건한 건물로 현존하는 조선시대 궁궐의 정전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2단의 월대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지어, 중층인 경복궁이나 창덕궁의 정전보다 격식이 낮다.[8] 특이한 점으로는 건물 뒤쪽에 퇴칸 형식의 월랑을 두고 있으며, 건물 내부의 앞쪽으로 고주를 세우고 뒷부분 기둥은 모두 생략하였고, 정면 양 협칸의 벽면 하부를 전복돌로 쌓아 점을 들 수 있다.[8] 명정전은 뒤쪽 터가 높게 경사져 있어, 뒤를 제외한 세 면에만 경사지에 맞추어 월대를 조성하였고, 좌향도 지세에 흐름을 맞추었기 때문에 정문인 명정문의 중심과 축이 일치하지 않는다.









춘당지


춘당지(春塘池)는 원래 조그마한 연못이었으나 1909년 일제에 의해서 내농포(임금이 직접 밭을 일구고 농사의 풍·흉을 예측하던 곳)가 헐리면서 지금의 호리병 모양이 되었다.


춘당지 옆에는 매점이 있었다. 그 해는 봄이었다.

밤 벚꽃 놀이가 한창이었다.

탁자 위 장모님 잔에다 맥주 한 잔을 딸아드린다.

"자네 내 딸을 평생 위해주어야 하네. "

그런 날이 지나갔다.

그 매점 그 맥주는 다 사라지고 없다.

아직 남은 사람이 춘당지 옆을 간다. 



사진사는 원앙이 나무 위에 오를 때를 기다린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손 좀 만저 보자고 한다.

" 이 손으로 멋진 사진 한 장 찍으셨을 터이니 기를 받으십시다."

그는 기꺼이 그의 손을 내게 준다. 

웃음과 함께. 




대온실


창경궁 식물원이라는 명칭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인 후쿠바가 설계, 프랑스 회사가 시공을 담당하였고, 대한제국 순종 융희 원년(1907년)에 기공하여 융희 3년(1909년)에 준공하였다. 건축 당시에는 170여 평(약 570여㎡)으로 동양 최대 규모의 목조 식물원이었으며, 각종 희귀 식물을 전시하였다.


1969년에 양옆에 돔 모양의 온실이 설치되어 있으나 창경궁 복원공사 중 철거되었다. 2004년 2월 6일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었다.







아내여 걱정 마시세.

주름 안 보이게 멀리 찍고 있으니까.



















함인정


원래 연산군때 지은 인양전이 있던 터이나 왜란때 타버렸다. 인조가 인조반정후 인왕산밑에 인경궁에서 헐어다가 옮겨지었다. 함인정 부근은 마당이 넓어 임금이 신하들을 접견하는 장소로 많이 사용되었다. 원래 함인정은 전면 열린공간이 아니었다. 3면은 막힌 공간이었다. 함인정과 환경전 사이에 공묵합이라는 전각이 있었으나 소실되어서 현재는 없다.











여기 사진은 리코 A12 28mm 로 찍었다.

떠나가는 가을을 눈물 속으로 보는 기분이다.

색깔 온도가 차갑다.

다른 카메라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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