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의 활동이 모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 잉여로운 생활을 보내던 모모에게 갑자기 뇌리를 스쳐지나간 하나의 추억이 있었다.
3개월전, 한국에서의 한 식당, 그날의 스케쥴이 끝나고 멤버들의 추천으로 가게 된 그 곳에는 그녀의 입맛을 한번에 사로잡아 버린 한 음식, 무엇인가 익숙한 비쥬얼이었지만, 처음보는 그 음식. 항상 그 음식을 달고 살던 그녀에게 그녀의 엄마가 해준 일본식 가정식은 무엇인가 2%부족했었고, 결국 그녀의 그 음식을 먹겠다는 욕망으로 먹고 있던 과자와 누구보다 편한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보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까지 뒤로 한 채, 그 음식을 찾아 나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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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요나, 이고 뭐야? 진짜 완전 마시땅."
"그거? 볶음 김치. 처음 먹어봐?"
"웅. 이거 그 김치랑 비슷한거야?"
"아니, 김치에 재료 몇개 더 넣고 볶은 건데?"
"아, 그롷구나. 이름이 뭐라구?"
"볶음 김치."
"아, 보굼 김치. 히히히. 이름도 맘에 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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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라도 빨리 그 맛을 입에 전달하기 위해 그 어느때보다 일찍 준비를 끝마친 그녀는 볶음김치, 아니 '보굼김치'를 찾기 위한 여정을 위해 집 밖으로 나섰다. 처음 도달한 곳은 그녀 나름대로 머리를 굴려 생각한 한국 음식 전문점이었다.
"저, 혹시 보굼 김치 있어요?"
"네? 복음 김치요? 그런건 저희 가게에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누가봐도 실망했다는 듯한 말투와 어조로 뒤돌아선 모모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모모의 모습과는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로 지나치게 자그마해 보였다. 하지만 이내 볶음 김치의 달달하면서도 자극적인 그 맛이 혀에 아직도 남아있는 듯한 아쉬움을 느끼며 모모는 그녀가 원하는 '볶음김치'가 아닌 '보굼김치'를 찾아서 다시한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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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그녀가 도착한 곳은 재일 한국인들이 살고 있는 코리아 타운이었다. 반찬가게들이 즐비되어있고 고소한 참기름냄새가 흐르는 그곳을 지나가다보니 그녀는 왠지 이번에는 기필코 찾을 수 있을것이라는 환상과 함께 어느새 그녀의 걸음은 점점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녀는 '김치'라고 쓰여져있는 간판을 찾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어, 예쁜 아가씨네, 뭐 줄까?"
"혹시 보굼김치 있어요?"
"뭐? 복음김치? 그게 뭔데?"
"그, 있잖아요, 달고 맛있는 거, 김치종류."
"글쎄, 잘 모르겠는데. 이봐, 김씨, 복음김치라고 알어?"
"그게 뭐여, 김치여?"
"그렇다는디?"
상인들의 정신없는 대화를 듣던 모모는 이번에도 틀렸구나 라는 생각에 그저 조용히 다시 뒤돌아섰다. 그리고 이제 그녀도 지쳤는지, 코리아 타운에서 일반 포장 생김치를 구매해서 집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그녀가 직접 만들어볼 속셈인 것 같았다.
"아니 이씨, 복음 김치가 아니라 볶음 김치 아니야?"
"아, 볶음김치 말하는건가? 맞아요, 아가씨? 어이코, 언제 갔대, 여리여리해서 그런가 걸음소리도 안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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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식탁 위에 포장된 김치를 올려놓고 다시 볶음 김치의 맛과 그 비쥬얼을 회상했다. 그렇게 볶음김치에 들어가는 재료가 무엇이 있을까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는 이내 몇가지 재료를 꺼내오기 시작했다.
'설탕, 참기름, 그리고...초콜릿?'
그녀의 미각은 옳았으나, 그녀의 시각은 옳지 않았다. 볶음김치의 김치와는 차별된 약간 어두운 색깔때문이었을까 그녀가 꺼내온 재료에는 무엇인가 이상한 것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빨리 볶음김치와 흰 쌀밥이라는 정말 트와이스와도 같은 사기 조합을 맛보기 위해 그녀는 빨리 요리 준비를 시작했다.
"에? 이거 왜 안켜지지."
"어, 켜졌다."
평소에 요리를 잘 하지 않았던 그녀에게는 볶음김치 또한 굉장히 어려운 요리일 수 밖에 없었다. 정말 사소한 과정인 가스불을 켜기까지 5분, 프라이팬을 꺼낼때까지 5분, 본격적인 요리는 시작도 안했지만, 도합 10분의 시간이 지났다. 그리고 그녀는 활활 잘도 올라오는 가스불을 그대로 놓고 김치의 포장을 뜯고 있었다.
"어. 일단 기름을 넣고, 볶아서 만드는 거라고 했으니까."
그리고 그녀는 사왔던 '생' 포기김치를 프라이팬에 던져넣었다.
"이렇게 하는 것, 맞겠지?"
약간의 의문점이 있었지만, 그녀의 볶음김치 만들기는 멈추지 않았다.
김치가 프라이팬에 들어간지 5분 후,
그녀는 설탕을 약 밥 한공기의 양을 넣었으며
김치가 프라이팬에 들어간지 10분 후, 그녀는 다됬다는 생각에 김치를 그릇에 옮겨 담고 설거지를 했으나 김치의 맛을 보고 다시 가스불을 켜는대 5분을 낭비했다.
다시 김치가 프라이팬에 들어간지 5분 후, 그녀는 너무 배가 고파서 다른 밑반찬과 함께 밥을 먹기 시작했으며
다시 5분 후, 그녀는 재료로 준비해 놓았던 초콜릿 까지 먹어 치웠다.
그렇게 김치를 익히기까지 20분이 지났으나 김치는 아직도 산소호흡기를 단 것 마냥 싱싱하게 살아있었다.
다시 또 10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그녀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프라이팬 위의 포기 김치를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는데, 이와 동시에 그녀는 이미 이 김치의 운명은 정해진 것을 얼핏 느끼기 시작했으며
집안에 연기가 차기 시작하고 어느덧 김치 양념이 프라이팬에 눌러붙어 검정색으로 변하고 김치가 팬에 올라간지 약 40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드디어 김치는 숨이 죽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김치가 팬에 들어간 지 1시간 후,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았던 생김치의 볶음김치화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모모의 승전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드,드디어!"
볶음김치를 올려두고 첫입을 먹어보려 했던 모모는 문득 숟가락을 드는 것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느꼈다.
이미 밥에다가 초콜릿까지 먹었던 모모는 볶음김치를 먹을 생각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양념이 눌러붙어 곳곳에 검정빛깔을 띈 볶음김치는 결국
다시 냉장고로 들어간다. 하지만 볶음김치는 이 새로운 보금자리에 오랫동안 정착하지 못했다.
볶음김치가 냉장고에 들어간지 5분, 집으로 돌아온 그녀의 어머니가 집안 가득찬 연기에 놀랐고,
볶음김치가 냉장고에 들어간지 10분, 등에 벌겋게 어머니의 손자국이 난 모모가 프라이팬을 수세미로 긁고 있었으며,
볶음김치가 냉장고에 들어간지 20분 후, 모모의 어머니가 맛을 본다며 볶음김치를 꺼냈다.
그리고 볶음김치가 냉장고에섯 나온지 단 30초, 약 1시간동안 모모가 고생해가며 겨우 숨을 죽이고 맘을 열게된 우리의 볶음 김치는
음식물 쓰레기 통으로 향했다.
"엄마! 뭐하는거야!" (일본어)
"아니 도대체 뭘 만든거니. 저걸 사람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해?"(일본어)
"그럼! 당연하지! 내가 처음으로 요리한 건데!"(일본어)
"니가 덜 맞았구나!"(일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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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의 땀과 눈물로 얼룩진 볶음김치 만들기는 프라이팬에 눌러붙은 김치 양념이 도저히 떨어지지 않아 프라이팬을 새로 사게 됨으로써 끝이났다. 사실 모모는 몰랐을 것이다. 볶음김치는 적당히 익은 신김치를 사용한다는 사실과 왜 그때 자신이 볶음김치 만들기에 실패한 것인지, 그리고 왜 코리아 타운의 누구도 보굼김치를 모르는 지.
그리고 결국 의문을 해소하지 못한 모모는 다음날, 다시 한번 김치와의 사투를 위해 코리아 타운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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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볶음김치는 생김치로 만들지 맙시다.
첫댓글 ㅋㅋㅋㅋㅋㅋ 모모링ㅋㅋㅋㅋ 어머닠ㅋㅋㅋㅋㅋㅋㅋ 근데 모모는 진짜 볶음김치를 저렇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네요 ㅋㅋㅋ 잘보고가요!
감사합니당 ㅎ 사실 제가 볶음김치 만들다가 고생해스..
잘보고 갈께요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