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낯을 가리나 봅니다. 여자들은 화장실에서 물 틀어 놓고 울고, 중년 남자들이 마시는 소주잔의 반은 눈물로 채운다잖아요.
‘눈물 없는 세상’이 왔으면 하고 바라는 이들이 많습니다. 기쁘고 좋아서 흘리는 눈물보다 슬프거나 억울해서, 서럽거나 외로워서 우는 사람이 많아서 일 테지요. 눈물 없는 세상이 하늘에서 툭 떨어지기를 기다리느니,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내 맘대로 펑펑 울 수 있는 눈물 방이라도 하나 만들어 볼까 싶네요.
이이들은 언제 어느 때 가리지 않고 제 울고 싶으면 울고, 좋으면 웃습니다. 어른들은 그렇지 않고 웃거나 울 때 눈치를 살핍니다. 다른 사람의 좋은 일에는 박장대소하지만, 나에게 웃을 일이 생기면 주위에 슬픈 사람이 없는지 기색을 살핍니다. 울고 싶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이의 슬픔에는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함께 눈물을 보태지만, 나의 슬픔은 드러내지 않고 숨어서 웁니다. 웃음을 참는 것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이고, 눈물을 삼키는 것은 자존을 지키려는 마음이라 보아도 될까요.
인생의 두꺼워지는 것과 반비례해서 미소와 눈물의 차이는 점점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개그맨의 재치와 농담에 한껏 빠져 웃다가 눈을 질끈 감아보면, 굵은 눈물 서너 방울 이 떨어지던걸요. 드라마 보다가 울고, 저물녘 아무런 이유 없이 주르르 흐르는 눈물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눈물이 낯을 가리지 않는 것을 보니, 마음껏 기뻐하거나 울 수 있는 것도 젊은 한때인 것 같네요. 이제는 좋은 것을 봐도 실없이 웃어넘기고, 아무리 슬픈 일이 닥쳐도 뼛속 깊은 울음을 울지 못하니까요. 슬퍼서 우는 거야 눈치코치 안 보고 낯 안 가려서 좋습니다마는 무섭고 외로워서 흐르는 눈물은 아직도 숨기고 싶네요.
하늘로 올라가시기 직전의 엄마 얼굴처럼 나도 세상을 하직할 때는 눈물을 참아 내고 미소를 남긴 채 떠나고 싶습니다. 그래도 자식들은 내 손을 붙들고 울 테지만요.
(조이섭 님의 수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