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이야기-60년, 그 우정의 세월, Perhaps Love/아마도 우정
창현아!
참 고맙다.
내가 네게 고맙다하면 너는 무슨 일로 그렇게 고맙다고 할까싶어서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다.
우선 칠순을 맞은 네가 스스로 벌인 잔치판에서 밥을 얻어먹을 수 있어서 고마웠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만이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더 있다.
더 있어도 참 많이 있다.
‘낼 모레 내 칠순이야.’라고 해서 네 귀한 생일을 주위 두루 알려준 것도 고마웠고, 잘 차리든 못 차리든 잔치판을 스스로 마련하겠다고 나서는 그 열린 마음도 고마웠다.
나도 내 생일을 누가 챙겨주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이다.
스스로 밝혀왔고, 잔치판도 내가 벌여왔다.
잔치판이라고 해서 꼭 거창해야 할 필요가 없다.
오순도순 아름다운 마음만 있으면, 그 어떤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정겨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누군가 ‘사랑의 십계명’이라면서 이렇게 사랑에 대한 정의를 내린 적이 있다.
‘계산하지 말 것. 후회하지 말 것. 되돌려 받으려 하지 말 것. 조건을 달지 말 것. 다짐하지 말 것. 기대하지 말 것. 의심하지 말 것. 비교하지 말 것. 확인하지 말 것. 운명에 맡길 것.’
그렇게 열 가지라고 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일곱 번째의 ‘기대하지 말 것’이라고 했다.
‘기대’는 자꾸만 커가는 것이어서, 사랑을 함에 있어서는 꼭 잘라내야 할 암적인 요인이라고 했다.
그 계명이 있어서가 아니라, 내 일흔 나이가 되도록 살다보니 그 오랜 경험 속에서 터득한 삶의 철학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네가 이번에 칠순을 스스로 밝혀서 잔치판을 벌인 것이 나로서는 당연하게 보이면서도 또 고맙기도 한 것이다.
잔치를 서초동 우리 법무사사무소 ‘작은 행복’ 인근의 한정식집인 ‘연’으로 잡아준 것도 고마웠고, 아내를 동행해준 것도 고마웠다.
내가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서 그 장소를 마련할라치면, 늘 마음 한 구석에 걸리는 것이 바로 그 장소 문제였다.
내가 서초동에 ‘작은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법무사사무소를 낸 것은 업무와 유관한 법원과 검찰청이 있기 때문이다.
법원과 검찰청이 서초동에 있는 것은, 그 청사를 찾아올 사람들이 편히 다닐 수 있게끔 하기 위한 것임은 물어보나 마나다.
어쩌면 법원과 검찰청이 있기에 교통이 편해진 면이 없잖아 또 있다.
결국 서울 어디서도 쉽게 닿을 수 있는 곳이 서초동이라는 것이다.
그 편리한 점 때문에 서초동에 만남의 장소를 정하려고 하면, 그걸로 시비를 하는 주위가 있어,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주춤거리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시비가 싫어서, 그 어떤 만남이 있을 때에는 교통의 편의는 일단 뒤로 제켜두고, 자로 잰 듯 서울의 중심지를 굳이 찾아서, 그 만남의 장소를 정하고는 했었다.
이번에 창현이 너의 칠순 잔치 장소를 서초동 우리 사무소 인근으로 정한 것을 두고도 나와 너의 관계를 들먹이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들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고 하나하나 그 시비를 상대해서, 교통이 아주 편해서라든가, 비용이 매우 저렴해서라든가, 주인아주머니가 참 친절해서라든가 등등의 이유를 구차하게 설명할 수도 없다.
그러니 뒤통수의 비아냥거림을 그냥 덮어쓸 수밖에 없다.
창현이 너는 그걸 감수하고 감히 ‘연’이라는 그 집으로 장소를 정해준 것이다.
그 털어냄이 고맙다는 것이다.
선뜻 나서서 우리가곡 ‘가고파’를 부르고 미국민요 ‘꿈길에서’를 부른 것도 고마웠고, 내가 마련한 작은 선물인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신화’라는 책을 고맙다면서 받아준 것도 고마웠다.
특별히 고마운 것은 내 책 선물을 선선히 받아준 것이었다.
이쯤에서 책과 관련하여 정말 내가 쪽팔렸던 사연 하나 밝힌다.
그때가 벌써 9년이나 됐다.
당시 법원과 검찰을 출입하던 기자 중에 중앙일보 박유미 기자가 있었다.
우리 두 아들이 다닌 연세대학교 출신의 여기자로, 고운 모습에 반듯한 생각이 내 마음에 들어 참 좋아했던 기자다.
어느 날 그 박 기자가 당시 집행관이었던 내 경험담을 듣더니만, 그 경험담들에 감동했다면서 그 며칠 후에 기사화를 시켰었다.
그 기사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게 됐고, 그 사연이 쭉 이어져 결국은 ‘집행관일기’라는 책 한 권으로 탄생하게 된 것이었다.
너도 알다시피 내 고향땅 문경 점촌과 내가 사는 서울에서 두 차례에 걸쳐 출판기념회까지 열기도 했다.
바로 그때의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검찰 선배 한 분을 그 출판기념회에 모시지 못한 것이 쭉 마음에 걸려서, 그 분과 또 다른 몇 분 선배를 초대해서 점심을 같이 했었다.
“제가 쓴 책입니다. 집행관의 현장 경험담을 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내 그렇게 말하면서 그 ‘집행관일기’ 한 권을 그 선배에게 선물이랍시고 내놨었다.
내가 내놨으니 그 선배는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선배의 그 다음 행동이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만 것이다.
뭔가 말 한마디 할 수도 있을 텐데, 아무 말이 없었고, 책을 펼쳐 볼 수도 있을 텐데, 아예 펼치지를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슬쩍 옆으로 밀어놓고 있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오로지 그 선배가 하는 히딴 말만 듣다가 왔다.
그 선배는 아직도 내 그때 받은 마음의 생채기를 모른다.
그냥 넘어갈 수밖에 없다.
말해 본들, ‘내 그때 잘못했다.’라고 사과의 말을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이 있었으니, 창현이 네가 나로부터 그 책을 받아들고 고맙다고 하면서 기뻐하는 모습은, 선물한 나를 감동시키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나로서는 또 고마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 고마운 것이 있었다.
네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지금 이 단계에서 내가 너로부터 무엇을 선물 받았다고 하는지, 선뜻 답을 내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덤으로 받은 선물이기 때문이다.
네가 벌려놓은 잔치판에서 여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내게 있어서는 덤의 선물이었다.
이제는 대충 답을 짐작할 만 할 것이다.
내가 너로부터 받은 덤의 선물은 곧 이것이다.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내가 검찰수사관으로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 범죄정보부서의 팀장으로 근무할 때 그때, 함께 고락을 같이 하던 동료 수사관들을 창현이 네가 마련한 잔치판 그 판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었다는 것, 바로 그 인연의 이어짐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 담긴 함박웃음이 내겐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또 고맙다.
참 고맙다.
창현아!//
7년 전으로 거슬러 2016년 1월 27일에, 내가 중학교 동기동창 친구들과 온라인으로 소통하는 우리들 Daum카페 ‘문중 13회’에 그렇게 편지글 한 편을 게시했었다.
‘East Of River, 친구의 칠순-덤의 선물’이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 위의 글은 그 전문이다.
문득 그 글이 떠올랐다.
2023년 5월 19일 금요일 오후 4시쯤의 일로, 문경상무여자축구팀이 창녕WFC여자축구팀을 맞아 경기를 벌이는 문경시민운동장 스탠드에서 그랬다.
내 중학교 동기동창으로 위 편지글의 주인공인 김창현 친구가 그 경기를 관람하려고 그 운동장을 찾았고, 스탠드에서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친구인 내가 문경읍에서 70리길이나 되는 그 먼 길을 걸어서 그곳 경기장까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것이기도 했다.
친구의 그 발걸음이 참 고마웠다.
왜 그랬을까 생각해봤다.
그것은 아마도 우정인가보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