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6.20이후 적용 자세한사항은 공지확인하시라예
출처: 엠팍
토마스 하디의 소설인 '캐스터브리지의 시장'의 첫 장면은
충격적이게도 한 남자가 술을 먹다가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자신의 아내를 파는것으로 시작합니다.
그것도 자신의 딸까지 세트로 말이죠.
하지만 17세기 영국에서는 이러한 아내를 파는 행위가
정신나간 사람의 돌발행동이 아니라 17세기 말 경부터 유행하던 관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아내 매매의 관습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엄청나게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사람이 짐승도 아니고
어떻게 아내와 자식을 파는 관습이 떳떳하게 성행할수 있었을까요?
아내를 판매하는 광경도 충격적입니다.
남편은 아내의 목이나 팔에 올가미(가끔은 리본으로 대체)를 걸어 시장에 끌고나옵니다.
그리고 마치 짐승의 가격을 매기듯이 경매를 붙여 가장 높은 값을 부르는 사람에게
판매합니다.
이건 뭐 흔히 알고있는 노예매매의 현장과 비슷하게 보입니다.
이러한 아내의 매매의 가격은 보통 어느정도선에서 거래가 되었을까요.
일반적으로 에일 1갤론이나 개한마리정도의 가격에 주로 거래가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인류역사에서 여성인권이 낮아서 여성이 동산으로 취급되던 시기가 길었고
지금도 그런 일이 비일비재 일어나는 지역도 있습니다만, 그런 것 치고도 가격이 너무 낮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이러한 아내 매매의 배경에는 당시 영국의 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혼이 교회의 주요 성사로 자리잡은 중세이후 영국에서 이혼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근대 초 영국에서 결혼을 해소하기 위한 방법은 몇가지가 있었는데
가장 공식적인것은 교회에 결혼을 해소하는 소송을 내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송이
통과되기 위한 사유로는
불륜과 생명을 위협하는 학대가 있어야 했으며, 대신 재혼이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1857년 이혼법이 공식적으로 법제화 되기 이전까지 영국에서 이혼은 불가능은 아니었지만
매우복잡한 절차와 비용이 필요로 했고, 심지어 그 적용대상마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평민들에게 이혼이란 불가능이나 다름이 없었고, 영국에서 결혼을 끝내는 방법은 사실상
죽음으로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이혼이 불가능하지만 불행한 결혼생활을 끝내는 다른 방편은 존재하였는데,
그것은 '사적인 별거'입니다. 부부 쌍방간에 별거를 하겠다는 합의서를 작성하여
공증을 받는것입니다.
가정을 버리고 도망가는것이나, 애인과 야반도주하는것도 가능한 방법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방법은 곧 쉽게 남편이 아내와 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를 저버릴수도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당시 영국에서 결혼한 여성의 재산권은 보장이 되어있지 못했습니다.
모든 재산의 권리는 남편의 것이었고, 아내의 빚도 재산도 부양의무도 남편에게 주어져있었습니다.
결혼생활에서 주어지는 부양의무는 모두 남편의 것이었고, 아내와 아내의 부양의무와 같은 재정적
책임또한 남편의 것이었습니다.
이혼법 제정 당시, 중상류층 여성들이 쉬운 이혼으로 인하여
남편이 쉽게 부양의무에서 벗어나는것을 우려하여 이 법의 제정을 반대하였지만,
하층민들의 경우 어차피 무능한 남편은 부양할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이혼을 하는것이
좀더 나은 삶을 살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하층민들이 발견해낸 결혼을 해소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내를 매매'하는것이었습니다.
'아내 매매'는시장과 같은 대중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아내를 매매'함으로서 결혼생활의 권리와
의무를
새로운 구매자에게 모두 넘긴다는 상징적인 행사였습니다.
실제로 이러한 '아내 매매'는 아내와의 동의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었었고
구매자가 미리 정해져있는 경우가 상당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내의 매매가는 상징적인 의미로 아주 적은 금액으로 거래될수 있었던 것입니다.
첫댓글 옘병할 새끼들
아무리 상징적인거라두 저런식으루 하진말지 ㅠ
이러쿵 저러쿵 허울좋게 설명해놨지만 '남편 매매'로도 충분히 가능했었겠네 예쁘게 리본으로 포장두 해서^^...
2 여자만 매매해야 할 이유 무엇? ㅋ
네다븅
존나 유구한 여성혐오의 역사 ㅋㅋㅋㅋㅋ이씨발새기들
남편을 매매하지 왜 아내를 매매하냐 꼬추에 리본매달아서 시장에 내다팔것이지
으유 역시 영국 미개한 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