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경북일보 7월 19일자]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지난 14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경제위기 극복 과정에서 공공요금을 묶어 놓았고, 굉장한 적자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며 "경제사 정상화 과정을 밟아가면 서민 부담을 최소화하면서 단계적으로 현실화하는 것이 어떤 의미에서는 불가피하다"고 말했습니다.
최 장관이 '묶어 놓았다'고 말한 공공요금은 전기요금와 도시가스요금을 지칭한 것입니다. 많은 언론들은 제목을 '전기·가스요금 단계적 요금 인상 불가피'
로 뽑았습니다. 현직 한나라당 의원(경북 경산·청도)이기도 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틀 후인 16일 국회에서 지식경제위원회 조찬간담회를 가진 후 기자들과 만나 "현재 전기·가스료가 원가 이하인 상황"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도시가스 요금의 인상 가능성을 시사한 최 장관은 다음날 17일 자신의 지역구인 경산시로 내려가 자인면사무소에서 열린 '도시가스 공급 설명회'에 참석했습니다. 인구 7000여명인 경산시 자인면 중 도심지역에 도시가스를 공급하는 문제를 주민들에게 알리는 자리였습니다.
설명회 관련 내용은 19일 아침 지역신문에 자세하게 실렸습니다.
신문에 따르면 이날 설명회는 대구도시가스(사장 이종무)가 마련했습니다. 그런데 참석자 면면은 살펴보면 심상치 않습니다. 오상경 한국가스공사 공급본부장, 지식경제부 이관섭 국장이 최 장관과 자리를 함께 했습니다. 가스공사는 최경환 의원이 장관으로 있는 지식경제부 소관 공기업이고, 이관섭 국장은 부처 간부입니다.
쉬는 토요일 최경환 장관은 이들을 왜 서울서 멀리 떨어진 자신의 지역구로 데려갔을까요.
신문은 "자인지역의 도시가스 공급은 올해 초 최경환 장관에게 주민들이 건의하면서 추진됐으나 기대수익에 비해 투자부담이 너무 많다는 대구도시가스의 거부에 부딪혔지만 지식경제부 관련 부서의 현장방문 등 적극적인 재검토 요구로 자인까지 연결하는 도시가스 주배관의 70%이상을 사전투자 비용으로 주민 부담을 줄여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쉽게 말해 현재 자인면은 도시가스가 들어가기 어려운 지역인데 의원 겸직 최경환 장관님 덕분에 LPG보다 가격이 저렴한 가스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죠.
최경환 장관은 설명회에서 "지경부가 5천억원의 예산으로 낙후지역 도시가스공급사업을 추진하는데 자인지역이 가장 먼저 혜택을 받게 됐다"고 말하며 민간기업인 대구도시가스 이종무 사장에게 "도와달라"는 부탁도 했다고 합니다.
신문은 또 "이날 설명회를 통해 최 장관의 노력으로 수요가가 부담해야 할 180만원의 일반시설 분담금을 50만원으로 대폭 낮춘 것으로 알려지며 큰 박수를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국가를 위한 큰 정책을 펼쳐야 할 장관이 자신의 지역구를 위한 작은 일에 더 큰 열정을 쏟은 것은 아닐까요.
최경환 의원 겸 장관은 지역구를 다녀온 다음날인 18일 일요일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워싱턴에서 열리는 클린에너지 장관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틀이 지난 20일 최경환 의원의 홈페이지(
http://www.vision2015.com)에 새로운 속보가 하나 올라왔습니다. 제목은 '최경환 장관, 자인면 도시가스 공급 설명회'였습니다. 내용은 신문보도보다 더 구체적입니다.
속보에 따르면 "여태껏 도시가스가 보급되지 못한 지역을 둘러보면 시설 비용문제, 지역별 보급 우선순위, 자치단체의 의지 등 여러가지 사정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합니다.
이에 최 장관은 "지식경제부 담당국장에게 자인면에 도시가스가 하루 빨리 보급될 수 있도록 최대한 긍정적으로 심도있게 검토해 볼 것"을 지시했고, 담당 국장은 서둘러 담당과와 가스공사 관계자들을 불러놓고 다각도에서 지혜를 짜내어 도시가스 보급 조기 실현 방안을 도출했다고 합니다.
저렴한 도시가스 혜택을 보게 될 지역구 주민이 보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
일 수 있지만 국민들이 본다면 어떻게 생각할까요.
의원 겸직 장관이 자신의 지역구와 관련된 사사로운 일에 공무원을 동원한 것은 아닐까요. 담당 국장으로 알려진 이관섭 지식경제부 에너지산업정책관의 해명을 듣기 위해 20일 낮 여러 번 통화를 시도했지만 그쪽 사정으로 직접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가스산업과 과장은 휴가 중이었습니다.
겨우 연결된 주무관에게 신문에 보도된 내용과 최경환 의원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내용을 알려주었습니다.
담당 주무관은 "도시가스 주배관(30인치)은 한국가스공사가 설치하고, 여기에서 사용자 지역까지 배관(8인치)은 각 지역 도시가스사가 공사하도록 되어 있다"고 말했습니다.
신문이 보도한 낙후지역 도시가스 공급사업을 추진하는데 들어가는 5천억원의 예산에 대해 주무관은 "지식경제부 예산이 아니라 가스공사가 부담하는 돈"
이라고 해명했습니다. 또 "어떤 지역 사용자에 도시가스를 공급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곳은 각 지역 도시가스회사"라고 말했습니다.
주무관은 이관섭 에너지산업정책관이 토요일 장관의 지역구인 경북 경산까지 내려간 사실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다시 이 정책관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여직원이 "통화 중"이라고 해 "해명을 들을 것이 있다"며 기자의 전화번호와 이름을 남겼지만 이날 밤까지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관섭 정책관을 해명을 기다리다 지쳐, 바깥으로 나가 바람을 쐬고 온 사이 최경환 의원 홈페이지 초기화면에 있는 '최경환 속보'에서 '최경환 장관, 자인면 도시가스 공급 설명회'라는 제목이 사라졌더군요.
기자가 최경환 의원 홈페이지에 나온 속보를 갈무리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을 못한 것일까요.
속보에는 아래 사진도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