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카스. 세계 미인대회를 휩쓰는 나라, 베네수엘라의 대도시.
석유 덕분에 돈을 벌지만, 그 때문에 빈부격차가 더욱 극심해진 이 나라 이 도시에 이 빌딩이 있다.
번쩍거리는 유리를 덮은 빌딩은, 아직 완공이 되지 않은 모습이다. 다 지어지기도 전에 충분히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호화스럽고 근사한 고층빌딩이다.
아래에서 보면 웅장하기 짝이없다. 현대식 빌딩의 전형을 보는 듯하다.
이 빌딩의 이름은 토레 콘피난사. 곧 콘피난사빌딩이다.
은행 건물로 지어지기 시작한 저 빌딩 높이는 45층. 가장 높이 솟아있는 메인 빌딩과 19층짜리 사무실 빌딩, 그리고 10층짜리 주차장이 한 몸을 이루는 3위일체 구성이다. 그래서 보는 방향마다 생김새가 달라진다.
그럼 다른 방향에서 보자.
옆쪽은 아직 유리를 붙이지 않았다. 네모꼴 격자가 줄지어선 기하학적인 벽면. 그런데 자세히 보면 좀 이상한 것을 눈치 챌 수 있게 된다. 확대해보면 이런 모습이다.
아직 지어지지 않은 빌딩인데, 사람들이 산다? 빨래를 넌 모습도 보이고 가재도구들도 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빌딩 안으로 들어가보면 전혀 예상 못한 풍경이 펼쳐진다.
내부는 마감을 안해 콘크리트들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미완성이지만 그 모습은 마치 조형물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이 안을 사람들이 오간다.
그리고 나오는 모습들.
자동차와 오토바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지어지지도 않은 건물에. 오토바이는 서민들의 운송수단. 저 차들 역시 허름하다.
아직 짓지도 않은 건물을 서민들이 드나드는 것일까?
아니다. 여기에 지금 사람들이 살고 있다. 창도 난간도 없어 아찔한 건물 속에서 사람들이 산다. 때론 저렇게 운동도 하며.
제법 깔끔하게 꾸미고 사는 단란한 가족도 있고,
대충 신문지로 벽을 바르고 주워온 듯한 가재도구만으로 사는 식구들도 있다.
개가 2층 시멘트 보 위를 거닐고, 아이들은 아래 시멘트 바닥에서 농구를 한다.
빌딩 안에는 이발소도 있고,
생필품과 먹을 것을 파는 구멍가게도 있다.
도대체 이 빌딩은 무엇일까? 이 초고층 첨단 빌딩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저 빌딩이 지어진 것은 1990년대였다. 그러나 경제가 곤두박질치면서 베네수웰라의 은행들은 줄줄이 파산하고 사라졌다. 그리고 저 토레 콘피난사 빌딩은 지어지다가 은행 도산으로 공사가 중단되고 만다.
도시 안에 유령처럼 남아있던 거대 건물에 어느날부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집이 없는 이들에게 빈 빌딩은 피난처였다. 사람들은 전기 선을 끌어오고, 수도관을 이어붙여 생활했다.
하나 둘씩 모여든 사람은 어느새 2500명을 넘었고, 빌딩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마을이 되었다.
마을 안에는 가게도, 이발소도, 놀이터도 생겨났다. 어떤 사람들은 가내수공업 공장을 차리기도 했다.
모든 내부는 마감 안된 거친 시멘트 골조였지만 그 속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공간 활용 요령을 깨달았다.
그리고, 토레 콘피난사 빌딩의 이름은 토레 다비드(Tower of David)로 바뀌었다.
저 먼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탑일까? 실은 아니다. 저 건물 사업을 한 이의 이름이 데이비드 브릴렘부르그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름은 중요치 않다. 빌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직 슬럼으로 바뀌었다. "고도로 조직화된 무단 점거자들"의 집이 된 것이다.
사람들이 건물 내부를 꾸민 모습은 소박함을 넘어 처절하고 현실적인 삶의 모습 그대로였지만 그 속에는 나름 미학이 존재한다. 디자인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내부를 바꿔나갔고, 외부에서 디자이너들이 돕기도 하면서 토레 다비드는 현대사회가 만들어낸 가장 특별한 곳이 되었다.
건축에는 `건축가 없는 건축'이란 용어가 있다. 평범하고 소박한(실은 가난한) 사람들이 직접 지은 건물에서 나오는 정직하면서도 원초적인 건축적 느낌이 풍겨난다. 이런 것이 바로 `건축가 없는 건축'이다.
건축가들처럼 전문지식이 없어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또는 경험적으로 알게 된 요령으로 기능적인 건축적 장치들을 만들어나가고, 때론 과감하고 생동감 넘치는 아우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이런 건물들은 하나하나는 허름하고 별 것 아니지만, 군집을 이뤄 경관이 되면 그 힘은 실로 커진다. 그리고 그 모습은 사람들을 매혹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미학보다 더 본질적인 현실의 문제다. 그 끔찍한 현실은 방관자의 눈에 아름다울지라도 거대한 비명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가 오면서 도시 내부에선 어떤 힘의 공백이 생겼고, 그 덕분에 힘이 약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미약한 힘을 모아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렇게 탄생한 토레 다비드는 세계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동네다.
이 놀라운 동네를 주목한 이들이 있었다. 건축가그룹 어번 씽크탱크와 저스틴 맥궈크, 그리고 건축사진가 이완 반이었다.
이들은 토레 다비드의 놀라운 실험의 현장을 작품 주제로 삼아 취재하고 사진을 찍고 이를 하나의 설치작품으로 만들었다. 이름은 `Torre David/Gran Horizonte'. 토레 다비드-대수평선이란 이름은 역설적이다. 거대한 수직 빈민가가 거대 수평선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다.
그리고 이 젊은 창작자 집단은 이 작품을 들고 `건축 올림픽'에 출전했다. 세계 건축계에서 가장 큰 행사인 올해 베네치아 비엔날레 건축전 주제전에 나간 것이다.
이들은 전시장 한 켠을 카페처럼 꾸몄다. 거대 구조체가 도드라지는 비엔날레 전시장의 특성과도 잘 맞아떨어졌고, 전시 구경에 지친 관람객들이 쉬어가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되는 동선을 감안한 전략도 좋았다. 짓다만 건물과 비슷한 가벽을 세워 공간을 구성하고, 그 벽에는 저 묘한 동네의 사진을 붙였다. 그리고 음료와 함께 베네수웰라 음식도 같이 팔았다.
글귀는 의미심장하다. 죽은 거인.
빌딩은 태어나지도 못한 채 죽어버려 20년 넘게 방치되고 있지만, 그 안에선 놀라운 흐름이 잉태됐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도시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그 일들은 무엇 때문에 일어나는가? 왜 사람들은 절규하고 주장하는가? 그 속에서 건축은 무엇일까? 무엇이 되야할 까? 아니, 어떤 무엇이 될 수나 있을까?
카페와 결합한 저 사진전이 이들이 만들어낸 설치작업이었다. 겉보기에는 깔끔하고 독특한 간이 카페 같지만 전시가 던지는 의문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건축은 과연 미학인가 윤리인가? 건축가 없이도 건축은 탄생하는데 그러면 건축가들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시도해야 하는가? 사진 속 풍경들은 많은 질문을 하게 만들었다.
올해 베네치아 건축전의 주제는 `Common Ground'. 건축의 공통 기반, 또는 본질을 지금 건축가들이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베네치아 비엔날레는 올해 주제전 최고의 영광인 `황금사자상'을 이들에게 수여했다. 건축의 본질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작업이었다는 평가를 내린 것이다.
건축가들에겐 곤혹스런 일일 수도 있다. 과연 저 설치작업에 건축은 있는가? 저 희한한 동네가 보여주는 것은 건축인가? 건축의 예술적, 문화적 측면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함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옳은가? 많은 논쟁도 일었다.
물론 저 작업에서 건축가가 실제 한 구체적인 것은 없다. 메시지와 의미는 분명 좋지만 건축적인 작업은 아니란 이들도 많았다. 구겐하임 빌바오로 유명한 건축계의 스타 프랭크 게리는 최근 몇 번의 베네치아 비엔날레의 흐름이 너무 건축의 사회정치적 측면만 바라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데이비드 빌딩'은 `다윗의 탑'처럼 의미심장하다. 특별하면서도 보편적인 무엇을 담고 있음을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 전세계 어느 도시에서나 노숙자들은 넘쳐나고, 그들은 자기만의 구역을 찾아 도시를 방황한다. 그들에게도 어딘가 정착할 곳은 필요하다. 우리 도시는 무엇을 어떻게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 인물로 `아베 피에르'라 불린 피에르 신부는 집 없는 사람들과 함께 빈 채로 남아있는 집들을 점거하는 운동을 펼쳤다. 한쪽에선 집이 없어 사람이 죽어가는데, 부자들이 집을 몇채 씩 소유하고 비워놓는 세상에 도전한 것이었다. 부자들에겐 강탈적 점거였지만, 빈민들에겐 최후의 도전이었다.
사람들은 이들의 점거를 지지했고, 결국 프랑스는 저런 점거자를 함부로 내쫓지 못하는 제도를 만들기까지 했다. 돈놀이로 돈을 먹는 경제 시대는 가난한 이들을 더욱 절망 속으로 밀어넣고, 사람들은 `점령'으로 맞서고 있는 것을 막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프랑스는 가장 먼저 인정했다.
그러나 프랑스의 이 전향적인 결단도 벌써 옛날 일이 되어가고 있다. 유럽에서도 가장 사회주의적인 나라 프랑스도 바뀌어간다. 최근 프랑스 최고 재벌인 루이 뷔통의 사장님은, 세금이 너무 많아 못살겠다며 이민을 간다고 했을 정도다. 한 성질 화끈한 신문사가 "꺼져 돈많은 멍청아"라고 대놓고 비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우리 시대가 어디로 가는고 있는지 우리는 모른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사람들은 희망을 잃는다.
건축은 그 속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할까?
물론 정해진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고민이다.
건축은 분명 예술도 공학도 아닌 무엇이다. 건축은 결국 `여러 방법을 모으고 연결해 공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건축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고민만은 치열하게 이어져야 한다.
어떤 곳이든,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니까 말이다
(출처) 구본준의 거리 가구 이야기.
첫댓글 재밌네요. 사람 냄새가 나네요
우리집 앞에도 있는데...... 단 사람은 살지 않고... 범일동 코리아 시티 앞 십몇년 되었는지? 20년쯤 되었나? 영화도 많이 찍고 가더만...
앞으로 이런게 많이 생기겠지?
범일동이라 , 01년영화 친구 촬영지였던 곳이죠. 너무나도 80년대 스런 모습이라서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넿~^^;
타워팰리스의미래모습
분위기 있는데요?
우리나라 아파트의 미래인가?
재미있네요.
재밌네. 그래도 뭐 저 나란 추방시킬려는 세력은 없나보네. 저렇게 대놓고 들어가서 사니.
그래도 골조는 튼튼해서 층간소음은 없어뵌다 ^^
저기에도 타인토지을 20년 거주하면 등기청구권이 있을까?
돈으로 공사를 하고 돈 떨어지면 포기하고 방치하며 이를 누구도 고치려하지 않는 것
자본주의의 세상이 그렇다해도 정치인들은 무엇을 하는 건지,,,,,
지역단체장과 정치인의 태도가 그대로 보이는 모습이지요
우리나라 판교에 3천가구 넘는 임대아파트가 무려 3년간 비어있다죠 웃기는 일입니다
언제부터 들 다 이렇게 무책임 무관심해 진 건지 그참
여러생각이 교차하는 글입니다. 덕분에 잘 봤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놀라운 모습이네요!
과천의 끝자락에 보면..노란색 건물이 있어요..병원건물로 지은거라는데...
제가 본것만으로도 10년동안 비어있는 빌딩...거의 완성단계에와서 중단된듯한데...
요즘은 지나가다보면 부식이 많이 진행되어 보기에도 그렇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