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보 요새의 탈출
원제 : Escape from Fort Bravo
1953년 미국영화
감독 : 존 스터지스
출연 : 윌리암 홀덴, 엘레노어 파커, 존 포사이드
리처드 앤더슨, 윌리암 데마레스트, 윌리암 캠벨
폴리 버겐, 존 럽튼, 칼 벤튼 라이드
'브라보 요새의 탈출'은 1953년에 만들어진 서부극으로 준수한 재미와 완성도를 가진 작품입니다. 'O.K 목장의 결투' '건 힐의 결투' '황야의 7인' '대탈주' 등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 존 스터지스 감독이 그 영화들 이전에 담금질 하던 시기의 영화죠. 그 영화들 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히 팽팽한 긴장감과 로맨스, 모험을 다룬 오락물입니다. 존 스터지스 감독은 1946년에 감독 데뷔를 했는데 몇 년간 무르익는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50년대 접어들면서 완성도 있는 영화들을 본격 만들었고, 1963년 '대탈주'로 정점을 찍을 때 까지가 전성기였습니다. 서부극에서 주로 솜씨를 발휘했는데 '브라보 요새의 탈출'도 흥미로운 서부극 입니다.
제목이 어디어디 탈출이지만 사실 탈출은 그냥 떡밥입니다. 내용인즉, 한 미모의 여인이 등장하여 북군의 요새에 갇힌 남군 애인 및 일행을 탈출시키는 내용이지만 사실 그 내용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대형 맥거핀일 뿐이죠. 이 영화의 핵심은 딱 두 개, 첫째는 윌리암 홀덴과 엘레노어 파커 라는 선남선녀 주인공의 로맨스, 그리고 브라보 요새가 아닌 인디언에게 포위된 위기에서의 탈출이지요. 그 둘을 위해서 요새의 탈출 이야기는 그냥 떡밥일 뿐입니다.
이런 유형의 영화는 종종 있습니다. 어떤 목적을 갖고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사실 그 목적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실제로는 남녀 주인공의 로맨스가 원래 목적인 것. 대표적으로 게리 쿠퍼와 수잔 헤이워드 주연의 '악의 화원'이 그렇습니다. 그 영화는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 남자들을 고용한 수잔 헤이워드가 남편 구하려고 모험을 전개하는데 사실 남편을 구해낼지 실패할지는 별 관심거리가 아닙니다. 심지어 남편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도 별 중요치 않죠. 그냥 고용된 남자 중 하나인 게리 쿠퍼와 어떻게 사랑에 빠지느냐가 관건이지요.
존 스터지스 감독의 특징은 주인공 배우를 돋보이게 만드는 솜씨입니다. 그는 'O.K. 목장의 결투'에서 역대 가장 멋진 닥 할러데이(커크 더글러스)를 만들어냈고, '황야의 7인'에서 적어도 율 브리너나 제임스 코반은 그들이 출연한 영화 중에서 가장 멋지게 등장했습니다. '대탈주'는 스티브 맥퀸을 톱 스타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죠. '건 힐의 결투'에서는 안소니 퀸을 악역임에도 굉장히 멋있게 다루었죠. '노틀담의 꼽추'나 '길' 에서의 덜 떨어진 역할을 완벽히 해낸 안소니 퀸을 한 마을을 지배하는 세력가로 다루어냈죠. '여섯번째 사나이' 에서는 주로 필름 느와르의 악역으로 많이 어울렸던 리처드 위드마크를 서부극의 지적인 하층민 역할로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 주었습니다. 그의 영화에 출연하는 주인공 배우는 굉장히 이득입니다.
그런 만큼 '브라보 요새의 탈출'에서의 남녀 주인공 윌리암 홀덴과 엘레노어 파커 역시 굉장히 멋지게 다루었습니다. 윌리암 홀덴은 역대 어느 영화보다도 멋진 모습입니다. 그리고 미모로 따지면 뒤지지 않는 배우긴 하지만 엘레노어 파커 역시 굉장히 아름다운 모습으로 등장시킵니다. 두 사람은 북군 요새의 비밀 탈출작전 이라는 별 의미없는 떡밥 아래서 굉장히 보기 좋은 연인같은 로맨스를 마음껏 펼칩니다.
남북전쟁이 한창일 때 북군 요새에 포로로 잡힌 남군들이 북군 기병대와 함께 지내는 '브라보 요새' 일종의 포로 수용소를 겸한 곳이죠. 그 요새의 외곽은 흉폭한 인디언들이 깔려 있어서 탈출해 봐야 뜨거운 사막과 인디언의 표적이 될 뿐입니다. 요새의 장교인 로퍼 대위(윌리암 홀덴)는 탈주한 포로를 잡아오는데 일가견이 있는 인물입니다. 이 요새에 미모의 여인 칼라(엘레노어 파커)가 방문하는데 요새의 비처 중위(리처드 앤더슨)과 곧 결혼할 친구 앨리스의 결혼식 참석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건 위장이었고, 사실은 남군 포로인 애인 마쉬(존 포사이드)를 탈출시키기 위함이죠. 칼라는 일부러 로퍼에게 접근하여 그의 환심을 사고 로퍼가 그에게 빠져들게 만듭니다. 그렇게 로퍼를 안심시킨 뒤,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고 앨리스와 비처 중위의 결혼식 날 물건을 싣고 온 마차를 이용해 탈출할 계획입니다. 마차의 마부는 이미 매수가 된 상태입니다. 과연 이 탈출작전이 성공할까요?......는 별로 의미가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탈출하던 말던 그건 별 의미가 없죠. 영화의 전반부는 요새 안에서 벌어지는 칼라와 로퍼 대위의 감질나는 로맨스, 영화의 후반부는 인디언들의 습격에 고립된 남군, 북군 연합팀(?) 몇 명이 숫자가 많은 인디언을 상대로 포위되어 위기를 극복하는 모험입니다.
서로 전쟁을 치루던 남군과 북군이 인디언을 맞이하여 서로 힘을 합쳐서 싸운다... 백인주의의 씁쓰레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결국 물리쳐야 할 적은 인디언이고 같은 백인인 남군과 북군은 협력한다 뭐 이런 설정이지요. 다만 그 과정을 다루는 연출이 꽤 흥미롭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는 인디언이 먼 발치에서 등장하고, 인디언에게 쫓기는 과정, 그리고 포위되는 과정, 포위된 후에 서서히 피를 말리는 과정 등이 꽤 긴박감 넘치죠. 특히 하늘 높은 곳에서 내려오는 화살들을 섬뜩하게 묘사한 장면은 굉장한 긴박감을 줍니다. 당시 이런 연출은 존 스터지스만의 장점이지요.
윌리암 홀덴과 엘레노어 파커의 로맨스도 꽤 감질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녀의 정체는 비교적 일찍 드러내고 있습니다. 뭐 크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요. 어차피 그녀의 비밀 임무는 떡밥일 뿐이니. 그래서 관객들은 사실상 비밀 첩자인 그녀와 그걸 모르고 속은 윌리암 홀덴의 로맨스를 미인계가 아닌 사실이 될거라고 굳게(?) 믿게 됩니다. 둘 다 너무 멋진 선남선녀의 모습이지요. 그 상황에서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윌리암 홀덴이야 원래 50년대 할리우드에서 손꼽히는 섹시남으로 알려진 인기 배우입니다. 그래서 그의 매력을 거론하는 거야 뭐 새삼스러울 게 없죠. 단 상대역인 엘레노어 파커는 굉장히 저평가 된 배우입니다. 배우의 가치와 미모 모두. 우선 마릴린 먼로, 엘리자베스 테일러, 오드리 헵번, 그레이스 켈리 등 1950년대의 당대의 미녀들이 나타나기 전 그에 못잖은 미모로 영화계를 풍미한 배우가 엘레노어 파커 입니다. 데보라 커, 라나 터너, 에바 가드너와 동시대 연배지만 제가 보기엔 오히려 미모에서는 그들을 능가한다고 생각되지요. 우리나라에 개봉이 많이 되었지만 주로 30대 시절인 50년대 영화가 압도적입니다. 그녀가 20대에 출연한 '네버 세이 굿바이'나 '케이지' 같은 영화에서의 미모는 정말 눈부시죠. 90년대 대표 미녀 샤론 스톤을 연상시키는 미모입니다. 물론 30대에 접어든 50년대에도 여전히 미모가 빛을 발해서 '네이키드 정글'이나 '브라보 요새의 탈출' 에서도 여전히 여신급이지요. 아무튼 이런 선남선녀가 함께 주인공인데 명목상 그녀의 애인역인 존 포사이드와 잘 될 거라고 믿는 관객은 없었을 겁니다. 더구나 '악의 화원'에서도 마찬가지였지만 여기서도 존 포사이드가 연기한 마쉬는 두 선남선녀의 사랑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당한 시점에 죽어줘야 합니다. 주인공 남녀릉 위해서 희생해야 하는 비중있는 조연 배우의 비애지요.
로맨스, 모험, 긴박감, 재미난 스토리라인 등 상업 오락 영화로 깔끔한 작품입니다. 대신 인디언들, 들러리 조연이 두 남녀의 존재감을 빛내기 위해서 희생한 영화지요. 이 영화에서 윌리암 홀덴과 엘레노어 파커는 같이 빛났지만 이후 존 스터지스의 영화는 좀체로 여배우에게 큰 비중을 두지 않았습니다. 'O.K 목장의 결투' '건 힐의 결투' '고스트 타운의 결투' '노인과 바다' '황야의 7인' '대탈주' 모두 남자 배우들을 띄운 영화이고 여배우는 비중이 적고 톱 배우가 등장하지도 않았죠. 엘레노어 파커는 존 스터지스 영화에서 보기 드물게 반짝반짝 빛났던 여배우가 된 셈입니다.
평점 : ★★★ (4개 만점)
ps1 : 엘레노어 파커가 '사운드 오브 뮤직'에 출연한 것은 정말 일생일대의 실수라고 해야 할까요? 여전히 그녀는 폰 트랍 대령에게 차이는 비운의 백작부인으로 기억되니까요. '브라보 요새의 탈출'에서 명목상 연인을 들러리 삼아서 멋진 윌리암 홀덴과 로맨스를 이루지만 '사운드 오브 뮤직'에서는 마리아와 폰 트랍 대령의 로맨스를 위해서 적당할 때 용도폐기되는 굴욕적 들러리 역할이었으니 참....
ps2 : 인디언들이 총, 창, 활 등 다양하게 무기를 써서 공격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전술이 발단된 인디언들이죠.
ps3 : '6백만불의 사나이'의 오스카 골드맨으로 유명한 리처드 앤더슨이 여기서도 나오는데 비중이 꽤 있는 역할입니다. 20대 시절이었지요.
[출처] 브라보 요새의 탈출 (Escape from Fort Bravo, 53년) |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