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조선일보에 <현각이 한국을 떠난까닭>이란 특집기사가 났습니다.
현각스님은 하바드대학을 나온 숭산스님의 제자로 <하바드에서 화계사까지>란 책을 써서 유명해졌었지요.
그 내용에 참 제가 공감하는 바가 커서 여기에 제가 이해한대로 번역(?)하고 또 제의견도 가미해서
좀 소개해드릴까 합니다.
<한국은 종교적으로 활성화된 나라라고 하는데?>
아니다. 한국엔 수행자는 드물고 종교인들만 넘친다.
한국엔 신앙과 종교만 있지 나와 우리의 실제적인 영적 변화가 없다.
한국의 종교(기독교나 불교가 다 마찬가지인데)는 아직 미국의 백년 전 수준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아직 내 신앙이나 내 종교에만 매달리고 있을 뿐 그것이 진짜 목표인 우리사회전체를 위해
내가 할일에 대해선 거의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국 고상한 욕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없이 과연 내가 지금과 똑같이 있을 수 있는가?
한국의 종교들은 그 이름만이 기독교이고 불교지 평화보다는 전쟁을, 네 것에 대한 이해보다는
내 것을 네가 강요함을, 조화와 하모니보담은 갈등과 환경파괴를 지향하고 있다.
그것도 신의 이름아래.
실로 한국식 종교들이다.
석가나 예수는 불자나 기독교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종교보담은 자신과 우리전체의 변화를 지향한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한국의 종교인들은 자기는 변화하지 않을 테니 구원과 복이나 많이 달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만의 심리적 위안을 위한 종교의 시스템과 이론을 잘 만들어냈고 이제는 그것을 가지고 서로 어느 것이
더 낫냐를 다투는데 열중한다. 한국의 종교는 실로 위기다.
<왜 한국을 떠났나?>
내가 하버드를 나오지 않은 평범한 승려였다면 그들은 내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왜 그렇게 학별에 대해 관심과 컴플렉스가 많은가?
타블로 사건에서도 보듯이 그들은 학벌에만 관심이 많다.
승려는 수행으로, 가수는 노래로, 주방장은 음식 맛으로 자기를 표현하고 보여줄 뿐이다.
한국은 고정관념에 갇힌 사람들이 많아 그게 안 된다. 진정한 실력자가 클 수 없는 환경이다.
어느 산골에 가서 조가만 암자에 혼자 머물렀더니 일주일도 안되어 구경꾼이 들끓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의 수행을 존중하긴 커녕 낮 밤 시도 때도 없이 들이닥쳐서는 심문을 하듯이 왜 출가를 했냐,
애인은 왜 버렸냐고 물어댄다. 똑같은 답을 하는데도 이골이 났다.
유럽에선 아무도 남들에게 그렇게 신경 쓰지 않는다.
또 내가 무슨 일을 자유롭게 할려치면 다른 한국스님들이 말한다.
"스님이 그러시면 안된다"
"스님은 이래야 한다."
난 한국에 스님되러 온게 아니다.
난 참 나를 찾으러 왔을 뿐이다.
난 스승을 알리려고 출판을 햇는데 결과적으로 원치 않는 명성을 얻었다.
수행자에겐 이것은 아상을 키우는 독이다.
내가 한국에서 연예인과 같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도 내사상과 스승의 가르침을 전하기나 했다면.
그게 없는 유명세는 빨리 떠나야할 짐스러운 것일 뿐이라 결국 한국을 떠날 수 밖에 없었다.
<왜 한국불교를 택해 출가했었나?>
한국이 가장 선불교의 전통이 강하게 살아있었기 때문이다.
선불교는 재즈음악과 같다.
당신은 내 생활이 아주 담백하고 심심하며 단조로울 것이라 생각하는가?
천만에. 내 생활은 매순간 다채로운 재즈음악을 듣는 것처럼 늘 신나고 황홀하다.
나는 내 삶의 즉흥연주자다.
내 삶은 그대로 재즈다.
불교는 진짜 자유를 내게 가르쳐 주었다.
미국에서도 자유를 말끝마다 찾지만 그 자유는 기분 나쁘면 아무에게나 총도 쏘아대는 자유다.
하지만 불교는 나를 보다 더 큰 나로 변하게 해주어 참 자유를 알게 해주었다.
참 자유란 과거와 지금의 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다.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우리다. 나아가 우주다.
우주에게 자유란 것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과 자비를 나누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나를 체험하고 즐기는 존재방식이다.
<가장 좋아하는 경전은?>
금강경인데 나는 그것을 <순간(NOW)경>이라 부른다.
지금 이 커피향을 맡는 순간, 친구의 목소리를 전화기 저편 우주로부터 듣는 순간,
제즈를 듣는 순간, 찬물에 손을 담그는 순간, 시원하게 똥 싸는 순간!
나는 지금 이 순간 살아있는 무한 가능성의 존재다.
나는 이 미지의 존재로 존재하기를 사랑한다. 이것은 어디로 튈지 몰라 나를 항상 기쁘게 해주기 때문이다.
<한국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내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나는 이렇게 멋진 그들의 고유전통을 버리고 미국 것 그대로 먹고 입고 따라하는 사람들을 도무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서양의 석학들은 이제 동양의 정신과 철학을 배울려고 안달인데 그들은 오히려
그들 것을 내팽개 친채 거꾸로다.
빠른 시간내에 경제건설을 해서 그런지 한국 사람들의 신앙과 종교생활도 물량주의적이며 변덕스러울 정도로 화끈하게 변한다. 그러니 이혼율도 세계최고일수밖에.
한국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고유의 가치였던 여백의 미, 고요와 평화, 새벽의 정온감(Serenity)같은 것들을 다 잃고 유행, 센세이션, 감성적 자극, 집단행동들에 빠져있다.
사람을 잘 울리는 목사가 실력 있는 목사다.
복 많이 받게 하고 참 나를 몰라도 재미있게 해줘서 인기를 잘 끄는 승려가 실력 있는 승려다.
젊은 연인들이 만나 시를 나누고 정신을 교감하기 보담은 새로 산 아이폰을 문지르고 같이 들여다보고 있을 뿐이다.
사람을 보지 않고 얼굴이나 직업, 재산만을 서로 따지고 조건을 맞춰 부랴부랴 결혼한다.
모든 사람들이 서로 남들에게 보여 주기 위한 삶만을 살고 있을 뿐 자기의 삶을 스스로 창조적으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 전체적으로 불행도가 높아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것은 삶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정도 발전했다면 행복은 물질적인 것으로부터 오지 않는다는 것을 이젠 깨달을 때도 되지 않았나?
아직도 모자란가?
현명한 사람은 매맞기 전에 숙제를 다마치나 어리석은 학생은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
(거듭나기)
하바드 출신 현각스님이 만난 참담한 경험담
※하바드 대학교 학생이었는데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화계사에 있으며
책을 내어 현재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현각스님의 경험담을 참고삼아 읽어보자.
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지하철을 탔다.
일요일이었는데도 사람들로 붐볐다.
그런데 어떤 남자가 내가 탄 지하철 칸으로 들어왔다.
'아뿔사, 우산 파는 사람이 아니었구나.'
잠시 후 나는 그가 '예수를 파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천천히 들어보니 그는 나에게 이렇게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었다.
"오직 성경만 읽어라. 오직 예수님만 믿어라. 예수님만이 당신을 구원할 수 있다."
나는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단전으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 쉬었다를 반복했다.
그는 나에게 뭔가 계속 얘기를 해댔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지고 흥분에 가득 찼다.
"조심하라. 사탄들이 권하는 사악한 종교를 믿지 마라."
그는 내 뒤에 똑바로 서서 쉬지 않고 퍼부어댔다.
나는 점점 더 앞으로 밀려나 지하철문 유리창에 안경이 닿을 정도까지 되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의 무관심에는 아랑곳 없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크게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다른 사탄의 우상숭배 종교를 믿지 마라. 그것들은 악마의 가르침이다.
만약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에게 귀를 기울이면 당신은 지옥으로 간다.
금불상 우상에 절하지 말라.
우리가 IMF의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우리나라에 금불상이 하도 많아
여호와신이 우리를 벌주셨기 때문이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와 우리나라를 구하실 수 있다"
그는 계속 내 뒤에서 성경 구절을 인용하고 있었다. 그는 소리치고 있었다.
"성경을 읽으세요! 성경을 읽으세요!"
나는 속으로 약간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이렇게 그에게 말했다.
저는 이미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수십 번도 더 읽었는데요.
하버드 신학대학원에서 성경을 따로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사탄의 종교가 판을 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 팸플릿을 내 주머니에 찔러놓기도 하고 자기네 교회에 나와 예배를 꼭 보라고 간곡하게
권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내 팔목을 잡아 끌기까지 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당신 미국에서 온 것 맞지요. 미국 아저씨. 미국은 예수님 나라입니다.
그런데 왜 사탄의 가르침을 믿습니까?"
그리고는 아예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지하철에 탄 사람들을 향해
"악마의 말을 전하는 사탄" 이라고 소리 지르기도 한다.
한번은 한 중년여자가 나에게 오더니
"우리나라는 예수님 나라이니 하루 빨리 한국을 떠나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나는 그럴 때마다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예수에게 감사하고 있으며, 예수 가르침에 따라 살려고 하는지 성경책에서
글귀를 찾아내어 그들에게 알려주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그렇게 한번 시도했다가 큰 모욕을 당한 적이 있어 아예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다.
그들은 내가 무슨 대응이라도 할라치면
'어찌 감히 이런 옷(승복을 가리키며)을 입고 예수님 말씀을 인용하느냐'고 따졌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나를 따라 내려 내 앞길을 막으며 나와 논쟁을 하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얘기한다.
'나는 당신이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지 의심스럽군요'
재미있는 것은 정작 기독교의 종주국이라 할 미국에는 이런 사람들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1996년 내가 묵고 있는 화계사에 세 번이나 불이 났다.
경찰은 기독교인을 범인으로 추정했다.
화계사는 불탄 절을 다시 세우고 개·보수하느라 1억여 원을 들여야 했다.
미국에도 수천 개의 사찰이 있다.
전통적인 기독교의 나라이지만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불교 사찰에 불을 지른다든지
탱화를 훼손한다든지 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는다.
첫댓글 아~마음이 아픕니다..관세음보살.._()()()_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자신을 되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