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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침몰 3주기를 열흘 앞둔 6일 오후 감신대백주년기념관 중강당에서 감리교신학대학교 총대학원학생회와 총대학원여학생회, 운영위원회가 공동으로 세월호에서 딸 예은이를 잃은 박은희 전도사를 초청해 ‘세월호 간담회’를 가졌다.
박은희 전도사는 감리교신학대학교 신대원을 졸업하고 안산화정교회(박인환 목사)에서 전도사로 사역하는 중에 세월호 사고를 겼었다. 416합창단 활동 등 세월호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는 남편 유경근씨와 함께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활동을 하고 있다.
박은희 전도사는 한 시간여에 걸쳐 세월호 참몰사고를 겪으며 느꼈던 심경, 그리고 세월호를 대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경험한 이야기, 세월호 사고를 미온적으로 대하는 정치권과 싸울 수 밖에 없었던 이유, 그 과정에서 유가족들이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 등을 풀어내고는 마지막에 세월호 참사를 통해 정립된 자신의 신앙고백을 신학생들에게 들려주며 끝맺었다.
학생들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하여 구조된 학생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세월호 인양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등 궁금한 점을 미리 준비한 질문지를 통해 묻고 박은희 전도사가 답을 해주는 방식의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질의응답을 마친 뒤에 학생들은 노란 색종이로 접은 수백 개의 종이배를 유리병에 담아 박은희 전도사에게 전달했으며 이어 학부와 대학원 학생회 대표들이 차례로 나와 기도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박은희 전도사는 앞서 간담회에 참여한 학생들에게 노란 리본 스티커를 나누어 주었다.
총대학원 이현길 원우회장이 박은희 전도사에게 학생들이 접은 노랑종이배를 전달했다. |
박은희 전도사는 신학생들과의 만남을 반기면서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참 좋을 것 같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 이 모든 악몽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 거 같다는 생각에서”라고 덧붙여 그가 겪는 현실이 얼마나 힘든지를 애둘러 표현했다.
박전도사는 세월호 참사가 났을 때 “남이 아닌 내 딸이어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잠간했다”고도 했다. 욥의 고백처럼 주신 분도 하나님, 거두시는 분도 하나님이므로 딸을 일찍 데려간 어떤 뜻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살리시는 하나님이지 죽이는 하나님어선 안되었고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를 참 열심히 살던 딸 예은이를 무참히 짓밟으신 하나님을 이해할 길이 없어서 매일매일 그 뜻을 찾는 고통을 나날을 보내야 했다며 그 과정을 이야기로 풀어갔다.
위로의 말들은 결코 위로를 주지 못했다.
무엇보다 자신이 막상 참사의 피해자가 되어 길거리로, 또는 많은 이들로부터의 위로의 대상으로, 또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보니까 지금까지 자신이 전도사로서 남을 위로하던 말들이 결코 위로가 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장례식장에 찾아온 기독교인가운데 유가족들을 향해 ‘이제 좋은데 갔으니 그만 울라’고 말했어요. 그 순간 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이 드는 거였어요. 내가 우는 것은 천국을 부인하는 행동이고 그럼 하나님께 벌 받겠네 하는
생각. 그래서 우는 것조차도 입을 틀어막고 제대로 울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우는 것을 죄스러워 한 것입니다.”
목회자들은 흔히 어려움을 당한 성도들의 아픔에 동참한답시고 어떤 방법으로든 그럴싸하게 신학적으로 또는
신앙적으로 해석해 주려고 노력한다. 당사자를 이해시키고 안심시키려는 의도였겠지만 모든 사건에 적용될 수는 없었다. 세월호 사건이 바로 그런 류였다.
“욥의 친구들처럼 ‘잘 생각해봐 너 잘못한 게 있을 거야’ 라거나 ‘하나님께서 너를 단련시키려는 거야’ 라는 식으로 설명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러면 너무 상처가 되요. 심지어 어느 큰 교회 목사님은, ‘세월호를 하나님께서 침몰시키셨다’고 설교했지요. 그 말은 진짜, 우리가 3년 동안 들었던 말 중에 최악이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은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어요. 고통가운데 있는 사람들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일단 함께 울어 주는 거 같아요.”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나라가 침몰될 정도로 발생부터 수습과정이 어느것 하나 상식적이지 않았다.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의 망언이야 귓등으로 듣고 흘려보낼 수 있지만 더 날카로운 비수는 내부로부터 날아오는 것 아니던가.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기도 하면서 참사를 겪은 가족들이 모여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께서 “예은이가 순교자가 아니고 네가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박전도사가 거리로 나가게 된 이유였다.
그러나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 왜 아이들을 구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당연한 의문조차도 풀리지가 않았다. 정부의 잘못에 대해 따져야 하는데 국가라면, 대통령이라면, 국회라면 이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이 계속되어도 정부나 국회, 언론은 진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처음엔 대통령 퇴진이라는 말만 나오면 유가족들은 다 집으로 갔다고 한다. 그런데 3년을 겪어보니 그 말이 저절로 나오게 되더라고 했다. 이렇게 까지 생명에 관심이 없고 국민을 발가락에 때만큼도 여기지 않는 대통령이 필요할까?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달려가 손잡아주고 앞장설 것 같은 교회가 보여준 모습은 너무 챙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었어요. 그 절정은 탄핵반대 집회에 나온 교회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굴 위해 주여삼창을 외치고 누굴 위해 거기서 구국기도회를 하고 있는지. 도대체 저기가 교회가 맞나 싶을 정도였어요. 솔직히 난 한국교회가 여기까지 무너졌나 하는 위기감이 들었습니다”
세월호를 침몰 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
박전도사는 “세월호를 침몰 시킨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교회”라고 말했다.
사회가 옳지 못한 길로 갈 때 옳은 목소리를 내야할 교회가 오히려 ‘권세잡은 자에게 순종하라’는
성경말씀을 가지고 입을 막으려 하고, 낮고 비천한 곳으로 오셨던 예수님을 이야기 하지 않고 힘과 권력을 옹호하고 심지어 부당한 권세를 지키려는 맛을 잃은 소금이 결국 세월호를 침몰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시대의 ‘권세잡은 이’는 황제였으므로 황제에게 복종하는 것이 맞을지 몰라도 국민이 주인인 지금 시대에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말이다.
물론 모든 교회가 이들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안산분향소에 예배처를 마련한 뒤로 많은 교회가 방문하여 같이 예배를 드리면서 아픔을 공감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박전도사가 들려준 제일 기억에 남는 교회는 전북 익산의 어느 교회의 방문이야기였다.
“2015년도엔 전북 익산쪽의 어느 기장교회가 학생들 열 댓 명을 데리고 와선 긴 시간동안 우리 얘기를 들어 주셨는데 말씀하시는 한 유가족 어머니가 욕을 해가며 아슬아슬한 수위로 너무 오랫동안 울분을 토하시는 거에요.
거의 한 시간 동안이나. 그래서 제가 목사님께 이제 그만하게 할까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목사님이 절대 그리하지 말라시는거였습니다. 우린 여기 봉사하러 온 거고 아픈 사람들에게 최대한의 봉사는 그냥 들어 주는거라고 생각한다며 지금 저 학생들은 듣는 봉사를 하고 있는 거니까 계속 말씀하게 두라고 하시는 거에요.”
아픔의 현장을 찾아는 주었으나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지겹다면서 ‘다른 컨텐츠를 개발해 보라’는 교회가 있었는가 하면 들어주고 함께 해주는 것을 가장 큰 섬김이자 봉사라고 생각하는 교회가 있었다. 유가족들이 누구에게 마음을 의지할지는 자명하다.
“어떻게 보면 한국의 부정부패의 제일 끝자락에 세월호 문제가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을 떠 받들고 있는 거거든요.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곳으로 예수님을 보내신 이유는 그 가장 낮은 곳에 가보면 그 곳에 그 사회의 모든 문제가 응축되어 있기 때문 아니었을까요? 낮은 곳으로 가는 것이 겸손해 보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곳에 가서, 너희가 사는 이 세상의 모든 문제가 쌓이고 쌓인 그 현장으로 가라. 어디가 아픈지 알아야 치료가 가능하지 않나요? 알지도 못하는데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냥 기도하고 노래하는 것은 자기만을 위한 신앙생활일 뿐이죠. 그냥 거기에 도취되어선 ‘난 너무 편안해. 할 일을 다했어’ 라고 생각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박전도사는 신학생들에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교회의 경계를 넘어서라”고 외쳤다. 웨슬리가 세계가 나의 교구라 했듯이 언제든지 그 경계선을 넘어 세상으로 나가는 용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제는 아파하는 이들과 연대해 주는 것이 내 삶일 것.
박전도사가 거리에 나왔을 때 이미 길거리에 나온 사람이 너무 많았다고 했다. 자신들은 이제 3년인데 10년이 넘도록 억울함을 토로하며 나라에, 기업에 하소연하는 국민들이 너무 많더라는 것. 그렇지만 그 일에도 교회는 나서주지 않았다며 또다시 세상을 외면하는 교회의 민낯을 들어 올렸다.
“그 분들이 길거리까지 왜 나왔겠어요. 그냥 그 일이 좋아서? 원래 싸움꾼이라서? 과격해서? 누구말대로 종북좌파라서? 얼마나 당사자들이 안 들어주면 여기까지 왔을까? 얼마나 안 들어 주면 여기 이 힘없는 국민들 앞에 서명판을 들고 서명해 달라고 졸랐을까.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했으면 머리를 깎고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소리칠까...”
박전도사는 이들에게 연신 너무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자신은 자신의 교회만 잘 섬기는 것으로 자기 일을 다 하는 거라고 착각하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하지만 진짜 목사는 불의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척결에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러분들이 다 신학과 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러분들이 성도를 섬기실 때 그런 마음으로 섬기셔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주일에 교회를 찾아오는 이들을 돌보아 주는 일 뿐 아니라 그 분들의 일상에 대해서도 깊숙이 관심을 가질 뿐 아니라 관심을 넘어서 불의한 일이 있다면 부조리를 척결하기 위한 일에도 서슴없이 나설 수 있는 목사가 진짜 목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말고 용감하게 직면하여 기억하여 바꿔 나가는 게 바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 아니겠어요?”
잊지 않기 위해서
박전도사는 강의를 마무리 하며 잠간 2014년 4월 16일을 회상했다. 고난주간인 그 날이 지나면 부활절에 무슨 기적이라도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고난주간에 이런 고난을 주시고 부활절에 아이들이 살아 돌아오는 기적이 일어나는 거 아냐 하는 실낫 같은 희망을 가졌어요”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인양되는 배는 그날의 기억 때문에 바라보기가 너무 힘들다고 했다.
“저희 가족들은 세월호 올라올 때 다 오열해서 쓰러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배는 그냥 배가 아니고 우리 애들이 절규하며 죽어간 현장이었기 때문에 너무 보기 힘든 거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너무 보기 괴로운 것을 보기로 결정한 겁니다.”
박전도사는 제자들이 십자가를 교회의 상징으로 삼은 것을 세월호에 비유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하고 싶은 말은, 기독교는 기억의 종교라 생각합니다. 교회에 걸린 십자가는 편한 물건이 아닙니다. 제자들에게 있어서 십자가는 그냥 십자가가 아니었을 거에요. 예수님이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것도 못하고 가장 극형에 돌아가시는 것을 그것도 비겁하게 숨어서 지켜봤어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이후 교회에서 십자가를 상징으로 삼았어요. 괴로운데도. 왜? 잊지 않기 위해서... 잊지 않기 위해서... 너무 보기 괴로운 것을 보기로 결정한겁니다”
제자들이 성찬식을 거행하면서 그들이 집어든 포도주적신 빵을 보고 예수님을 처절하게 떠 올렸을 것이다. 그들은 그 빵을 정말 예수님의 피흘리는 몸으로 느끼며 목으로 꾸역꾸역 넘겼을 것이다.
박전도사는 성찬식 때 딸 예은이가 떠 올려 진다고 했다. 그 빵을 먹으면서 너무 괴롭고 아프지만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자기 몸에 새긴다고 했다.
그래야 이 나라에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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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수는 섬김을 받으러 온게 아니라 섬기려고 온것인데....
지금의 종교계는 예수교가 아니라 목사교라 할만큼 목사의 섬김 일변도 같습니다.
교회당 안에서도 가장 낮은곳에서 섬기려는 자세가 아니라 가장 높은 자리로 올라가서 섬김을 받으려고 경쟁을 하는 기분 입니다.
종교의 가르침은 나보다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서로 사랑으로 도와주며 평화롭게 사는데 있지
무리를 만들고 집단으로 행동하며 지도자를 중심으로 지도자를 섬기는 종교가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오늘날 종교는 거의 대부분이 어려운 이웃이나 소외된자를 위한 섬김의 종교가 아닌
종교 지도자를 위한 종교에 지나지 않은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