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은장도
가지치기
도마뱀 꼬리 자르기
상생 공생
별거 아닌 별거
장신구 은장도
우리 모두의 관계는? 상처가 찢어지고 벌어졌을 때, 시간만이 유일한 답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기다리는 것뿐이다. 처음에 따갑고 쓰리고 아프지만 조금씩 아물어간다. 다 나을 꺼라 믿었던 순간에 상처가 벌어져서 붉은 흉이 크게 남기도 한다. 벌건흉이 흰색으로 변해 세월과 함께 늘어져 더 커지기도 한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인간관계는 어렵고 힘들다. 나의 할머니 청주한씨 옥자 규자 께서도 80이 넘은 순간에도 인간관계 때문에 힘들어하셨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데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절대로 안 맞는 인간관계도 분명 있다. 지혜로운 고대인들에게 날마다 묻는다. 나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도대체!! 매일 비명이 나온다. 타인에게 에너지 빼앗기는 누추한 삶은 피하고 싶기 때문이다.
살면서 친하지만 상처만 주는 관계도 있다. 서로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인생엔 분명히 급이 있다. 상타치, 하타치가 존재한다. 물론 그 급은 내가 해석하기 나름이다. 격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품격이 중요하다. 배려와 나눔은 몸에 밸 때까지 만들어야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께서는 내 눈엔 처음부터 영원히 할머니셨고 전혀 아름답거나 세련되지도 않았다. 그냥 항상 넉넉하신 분이셨다. 그런 할머니께서 인간관계로 마지막 고생을 하신 적은 경로당에서의 고스톱 사건 때문이었다. 어느 날, 길 가다 서둘러 바삐 걷고 있는 할머니를 보고 달려갔다. 무언가에 쫓기는듯한 모습이었다.
한복 치마와 저고리 사이 등이 드러난 체 허둥지둥 집으로 향했다. 아는 체를 하는데 일부러 못 들은 체하고 집에 오자마자 어르신 놀이터 (노인정)에서 있었던 사건을 말씀해 주셨다. 별거 아닌 별거 같은 사건이었다. 사건이라 부르기도 우스운 일이었다. 별나라 이야기 같은 별난 일이었다.
단돈 200원 때문에 생긴 일이었다. 30년 전이지만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200원은 적은 돈이다. 차라리 내가 그 돈의 열 배라도 물어주고 할머니들의 어긋난 관계를 개선해 주고 싶었다. 할머니께서 그날따라 운이 좋으셨는지 화투에서 연승을 거두었고 돈을 잃은 다른 할머니들이 짜증을 낸 게 사건의 발단이었다. 할머니께서는 왜 그렇게 200원에 집착했을까? 할머니는 도마뱀처럼 스스로 꼬리를 자르고 싶었던 것일까?
다른 할머니들의 담합도 있었다. 결국 할머니는 유치한 이유로 어르신들 유치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나이 80에 노인정에서 점당 10원짜리 고스톱을 치다 200원을 따는 바람에 동료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그날 이후 노인정에 가는 걸 스스로 삼가셨다. 스스로 고립시켰고 격리감으로 외로움도 커졌을 것이다. 망가진 관계로 육신이 쇄약 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을 뿐이다. 정신이 육체의 안전장치라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럼에도 삶은 어렵고 인간관계는 여전히 난제이다.
할머니의 섬세함은 스스로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다른 할머니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출도 안 하셨다. 전화도 안 받으셨다. 그때, 초대하지 않은 손님 "치매"가 찾아왔다. 노망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개명하고 나타났다. 나 같으면 김앤장 로펌 사서 이길 때까지 싸울 것이다. 비록 은장도를 들고서라도 일본도에 당당하게 맞설 것이다.
오래전, 할머니는 멋진 여자였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오로지 남들의 싸구려 동정만을 꿈꾸던 나의 천한 기대감과 달랐다. 할머니께서는 자칭 스스로를 <만고귀녀>라 칭하셨고 왕비가 여러 명 나온 청주한씨 가문의 딸이라고 평생 자랑하셨다. 아침마다 오동나무 명경을 열고 희고 긴 머리를 참빗으로 빗고 또 빗어서 쪽진 머리에 금비녀를 꽂았다.
빈혈이 와서 생간을 드시던 모습은 구미호가 피 묻은 얼굴을 흰 저고리 소매로 닦을 때와 흡사했다. 입술을 타고 핏물이 흘렀다. 훔치고 싶은 금비녀는 무명실로 묶여 있어서 늘 할머니와 함께했다. 어느 날 갑자기 "밥 줘"라고 소리치셨다. 그날 이후, 할머니의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의 빙의 인생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께서 검고 무거운 한쪽다리가 부러져 무명천으로 칭칭 감은 의족을 한 상이군인 같은 가위를 번쩍 들었다. "뎅강" 잘린 긴 머리, 은빛 실타래가 금빛 보자기 위로 툭 떨어졌다. 내가 알고 있었던 할머니가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반항하던 할머니가 할아버지의 어르고 달래는 소리에 순한 아기처럼 방긋 웃었다. 낯선 모습의 흰머리 비너스의 죽음의 탄생이었다.
그렇게 강제 커트머리 할머니와 우리 가족의 5년간의 새로운 동거가 시작되었다. 할머니의 수제 참빛도 그날 이후 함께 사라졌다. 한복도 접이식 면경도 주인을 잃었다. 박스형 티셔츠와 보라색, 호피무늬 몸빼바지 여러 벌이 장터에서 집으로 이사 왔다.
항상 가슴에 달고 다니던 할머니의 은장도를 처음으로 만져보았다. 할머니의 애장품이 드디어 내손으로 넘어왔다. 할머니의 가슴에 달린 은장도는 도대체 어디에 쓰는 물건일까? 난 할머니가 세상으로부터 달팽이처럼 움츠러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그렇게 칩거하던 할머니께 그때부터 치매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스스로 항상 당당하던 모습을 잃기 시작했다.
순결을 지키기 위한 여인처럼 목이랑 가슴에 은장도를 들이대 보았다. 실망스럽게도 할머니의 은장도는 그냥 장신구였다. 사극에서 은장도로 자결하는 여인의 모습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연출한 것뿐이다. 과거의 할머니의 모습은 해오라기처럼 단아했고 불쌍한 사람들을 보면 언제든 도와주셨다. 자기 연민에 빠져서 오로지 남들의 싸구려 동정만을 꿈꾸던 나의 천한 모습과 달리 할머니는 멋진 여자였다.
밥 얻어먹으러 오는 이들을 내친 적이 없었다. 그때 그 시절 걸인들이 유난히도 많았다. 스스로 월남전 상이군인이라 말하며 때밀이 이태리타월을 갈고리손에 걸어 디밀면 몇 곱이나 비싸도 아무 말 없이 사주곤 하셨다. 할머니의 곳간은 수시로 열렸다. 어려운 이들을 보면 반드시 지전을 쥐어 주던 모습이 기억난다.
은장도가 칼이 아니라 장신구라는 것을 알고 난 후 난 가짜 삶을 시작했다. 위협적이지만 전혀 위협이 아닌 "가오"의 삶을 택했다. 이제 세상에는 정조, 정절, 지조, 신념, 의리, 관대 따위의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난 시대해석에 실패했다. 스스로 이리의 소굴로 들어갔다. 그때 그들은 내가 생각하는 그런 자들이 아니었다.
경험하지 않은 것들에 대해 광적으로 집착했다. 사람공부, 참 어렵다. 지나친 풍요가 정신의 결핍을 가져올 수도 있다. 미래는 나미비아 붉은 사막 넘버 7보다 더 높아질 수 있다. 삶에 적용되는 완벽한 공식은 없다.
반성하지 않는 많은 이들을 징계하거나 벌주기보다는 가르치고 싶었을 뿐이다. 자기기만으로 부터 탈출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넘쳐났던 시간들 마녀사냥의 주인공이 되어 발화하고 나서 배운 진실하나! 대소변만 가릴 수 있고 남에게 민폐를 주지 않는다면 차라리 할머니처럼 치매라도 걸려 다 잊어버리고 싶은 시간이었다.
나의 그리운 할머니 한옥규 님! 언제나 상냥했고 할머니의 미신마저도 사랑스럽게 느껴지는 밤이다. 새벽마다 우물에서 첫물을 떠 와 신주단지위에 올려두던 모습, 지나간 모든 것들에 마음 주지 않으리라! 나약한 자신과 결심해도 어쩔 수 없는 몽환적 그리움은 빗속에 둥지로 날아드는 새처럼 찾아든다.
코로나로 이웃과 사회와 모르는 이들과 싸웠던 지난 시간들! 펄떡이는 뜨거운 심장을 꺼내 태양을 향해 들어 올림으로 저항했던 피의 시간들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공부가 되는 새벽! 난 오늘도 공부를 한다. 진정한 학문이란 삶에 대한 바른 이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