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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 중국 다녀왔습니다.
서울 모임도 뉴질랜드 여행도 못가 미안하더이다.
메모하며 쓴 일기 소개합니다.
사진은 별도고요.
강경에서 황선춘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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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 양삭, 이프로 가는 길
2010. 01. 11-16
5박 6일간
황 선 춘
2010년 1월 11일 월요일 맑음
기차 18,200 영등포 공항버스 16,000, 점심 20,000, 책 5,000
기차여행
무궁화 2025 강경 9시 53분
레일 위를 가볍게 미끄러져 간다.
중고등학교 시절 통학기차는 연착도 많이 하고 빠르지도 못하여 힘이 넘치는 학생들에게는 장난질을 자주 하곤 했는데 요즈음은 정확하고 빠르기도 하고 안전하며 소음도 거의 없다.
엊그제 눈이 많이 온다고 했는데 강경에 내린 눈은 많지 않아서 별 느낌이 없었지만 서대전을 지나 조치원 가는 길은 제법 많아서 차 창밖이 하얗다.
열차여행은 여유롭다.
아내와 앉아서 60년간 살아온 이야기, 결혼하기 전의 연애시절의 이야기, 딸만 넷을 낳고 고생하며 즐겁게 키우던 이야기, 그 딸이 결혼하여 보라가 임신중에 병원 실습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 미얀마 친구의 이야기, 교회의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는 우리가 얼마나 살꼬? 계산을 하다가 깜짝 놀라고 만다.
야 20년 후면 80이고 30년 후이면 90인데 우리의 결혼 37년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만큼 더 산다면 우린 그땐 어떤 모습일까 상상하니 남은 시간을 더 보람 있게 살아야 한다는 우리 부부의 아쉬운 이야기도 열차 안에서 하여 본다.
옆얼굴을 슬쩍 살펴보니 나와 같이한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 사랑하고 보살펴 주고 싶은 생각이 다짐으로 내 마음에 들어온다.
초롱이가 건이를 데리고 수원역에서 차를 탄다.
아빠 추운 날 해외를 간다고 모자 사 놓은 것을 가지고 온다고 나의 탄 차를 탄 것이 막상 도착을 하고 보니 가지고 올 모자를 놓고 왔단다.
방실이는 초롱이를 믿고 초롱이는 언니가 준비하여 놓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왔으니 책임은 아무도 없다.
막내와 손자 건이와 내외가 때가 되어 롯데백화점에서 점심을 먹고 바로 앞에서 공항리무진을 타고 이별을 한다.
오늘이 유럽 여행중 빠리에 있는 둘째 은실이의 생일이다.
설흔 넘어 시집 안 간다고 성화도 못할 형편이다. 저렇게 방학만 되면 남자와 사귈 사이도 없이 환경에 대한 공부와 연수를 하느라 외국을 바쁘게 다니니 독려할 수 없다.
이번은 대한항공의 협력으로 유럽의 환경 연수를 한다고 한다.
3주간 몸조심하고 연수 잘하고 오라고 메일로 생일을 축하하여 주었다.
우리 교회 당회에서 속초로 장로 연수를 간다고 어제 예배 후에 목사님과 장로 내외들이 떠났는데 나는 이번 여행으로 가지 못한다.
시간의 배정과 조정이 어려워서 그냥 진행하시라고 목사님에게 말씀드린 것이 잘한 것 같다.
이번 주 지나면 19일 20일은 교감단 연수가 있으니 시간 내기가 여간 어렵다.
출국신고를 하고 하나투어 도우미의 도움을 받고 이제부터는 우리가 계림을 찾아가고 현지 가이드를 만나서 일정대로 움직여야 한다.
남은 시간 조용히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 무사히 다녀오게 하시고 많은 것을 배우게 하여 주세요.
나의 부족함을 이번 여행에서 깨닫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남을 배려하고 돕고 사랑하는 이치를 깨닫게 하여 주세요.
19명의 단원들을 둘로 나누어 10명과 9명으로 비자를 신청하였는데 9명 중의 우리 내외가 첫 번 째로 이름되어 있다.
수속할 시간이 되어 서로 인사를 나눈다.
대구에서 오신 분은 83세시라고 하며 중국여행만 16번, 해외여행은 30번이라 하신다.
큰 키에 건강하시어 안심하였다. 이분은 여러 차례 여행에 대한 충고와 원리도 설명하여 주시는 우리의 가이드같은 일을 하신 분이다.
두 쌍의 내외는 교원이시고 좋은 인상을 풍긴다.
서울에서 오신 것이다. 사모님들과 인사를 나누는데 남같이 여겨지지 않고 우리의 동행으로 친한 식구처럼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처음 보는 사람이 친하게 느껴진다면 가까운 무엇인가가 마음을 당겨서 인데 차차 느낄 것 같다.
남자가 둘이 남는다.
얼굴이 다르니 같은 식구는 아닌데 서로 친구 사이이며 하나는 서울에 살고 하나는 정읍에 산다고 한다.
우리보다는 젊어서 40대 후반이라는데 인상보다 더 부드럽고 친구와의 믿음이 강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것이 우리가 여행 중에 배워야 되는 우정의 선배들이다.
정말 부부사이보다 더 정답다는 생각을 한다.
정읍의 한 친구는 자기는 술을 하나도 먹지 않으면서 서울에 있는 친구를 위해 다섯 병이나 되는 소주를 메고 오고 라면이나 김치 등을 친구를 위해 준비해 왔다.
친구부부의 아름다움이 더없이 부럽다.
예전의 나의 친구 미얀마에 있는 정규는 내가 꿈을 꾸면 자기도 꾸었다고 하고 내가 편지를 쓰면 용하게도 그날에 편지를 같이 부쳤던 생각이 난다.
지금도 미얀마의 친구는 이들 친구처럼 내 마음속에 남아 있다.
공항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며 자유로운 그들, 여유 있는 그들, 멋있는 그들을 본다.
한 꼬마보고 너 어디 가니? 하고 물으니 캐나다 간다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행선지를 귀동냥하여 들으니 아프리카, 일본, 중국, 캐나다 등 많은 행선지가 있다.
아 나는 얼마나 그들에 비하여 여유가 없는가? 방학 때만 여행 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부담이 되고 시간에 억매는 여행이다 보니 더 자유롭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시아나 OZ325기 35번 게이트, 34E,F 10시 46분
4시간 50분을 경과하면 내일 새벽에 계림에 도착한다.
잠이나 자 두자. 내일이 피곤하지 않으려면 잠이 충분하여야 한다.
2010년 1월 12일 화요일 맑음
보이차 80,000(240웬), 과일말린것 5포120웬 25,000원, 곶감 2근 10웬
첫날 저녁을 무사히 보내고 西山商務大酒店(Guilin Western Hill Hotel)에서 7시 기상을 하다.
517호의 첫 잠은 춥고 소란스럽다.
첫째 불편한 것은 난방인데 우리나라 여행객들에겐 익숙치 않다.
등소평은 중국에 자본주의 경제를 도입하여 빈민들을 도시로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주었고 사유재산을 허용하여 각 인민들로 하여금 일하는 의욕을 일깨워 주었다.
묘지제도를 화장제도로 바꾸는 문화를 이루어 냈으며 운남성이나 계림 또는 남경 등의 도시에 난방장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호텔도 난방장치는 유일하게 천정에 달린 에어컨인데 우리 여행객을 위하여 밤새 섭씨 30도의 난방을 하도록 특별 주문을 했다고 하지만 밤새 내뿜는 것은 찬바람 뿐 오히려 그대로 두는 것이 바람이 없어 나을 것 같았다.
밤 12시경에는 더욱 심하여 침대 밑에서는 냉기가 몸의 체온을 빼앗고 위에서는 찬바람만 불어서 나는 일어나 내 이불을 아내에게 덮어주고 나는 책상에 앉아서 글을 쓰는 것으로 밤을 보낸다.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한다.
난방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인다는 이 제도가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바꾸어 밖에서는 두 겹 옷을 입어도 살만 하지만 집 안에서는 네 겹 다섯 겹의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들은 집안에서 불을 피우지 못하니까 자연 밖으로 나가서 외식을 한다.
외식하는 값이 비싸지 않다. 그들은 공원이나 길거리 음식점이나 이동식 음식점에서 쌀국수, 호빵, 안남미 쌀밥 등의 취미에 맞는 음식을 사서 식사를 대신한다.
걸어가며 먹는 사람, 길거리 나무 밑이나 음식점 주위 손수레에서 먹는 사람도 있다.
여성들에게는 천국이요, 사내에게도 편안한 식사가 될 수 있다.
호텔의 첫 잠은 눈이 찌뿌듯하고 선풍기 앞에서 곰이 땅속에서 웅크리고 겨울잠을 자듯하는 형상이 되었고 우리는 감기에서 벗어나려는 듯 감기 걸리지 않게 해주세요. 하는 기도로 밤을 새웠다.
둘 째 호텔에 비치된 것은 모두 유료이다.
다른 곳은 먹는 물은 무료였는데 여기서는 먹는 물도 밖에보다 10배 정도 비싼 값이다.
가이드가 차에서 내릴 때 물 한 병씩을 사 준 것은 호텔 것을 먹지 말라는 신호였다.
여기저기 늘어놓은 음료수나 용품들은 마치 여행객을 유혹이라도 하듯이 유혹의 손길을 기다린다.
선반 위라든지, 벼개 맡이라든지 데스크의 스탠드 옆, 그리고 화장실에도 예전대로 무심코 사용했다간 돈 봉변을 당할 것 같다. 자세히 살펴 읽으니 값이 매겨져 있다.
목욕하고 옷을 갈아입고 2층의 식당으로 간다.
주로 양식인데 빵 종류를 한 개씩 골고루 담고 과일과 쥬스를 두 번 담아다 먹으니 배가 부르다.
여행을 위해서 빵과 바나나 과자 몇 개를 가방에 넣어 둔다.
식당의 음식도 충분한 양은 아닌 것 같다.
두 번째 가니 과일도 맛있는 것은 동나고 없다.
9시에 첫날 관광을 위해 버스에 몸을 싣는다.
소영광 가이드는 술술 나오는 우리말로 관광지에 대한 설명과 과거의 중국과 현재의 중국 그리고 미래의 중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잘도 한다.
우리가 높은 연세로 염려하던 정기범 할아버지는 모든 것에서 우리보다 선두이시다. 45년간 교직을 하시다가 지금은 노인대학에서 강연도 하신단다.
호텔에 들어가는 것도, 식당에서 식사하고 나오는 것도, 차에 올라 앉는 것도 그리고 여행지에 대한 설명과 보고 듣는 것을 작은 글씨로 메모하는 것도 우리의 한 수 위이시다.
메모는 할아버지와 나 둘이서 하고 귀담아 듣는 것도 맨 앞에서 우리 둘이 묻고 답도 한다.
하기사 중국을 16번이나 다니셨으니 12번인 나 보다 한 수 위인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우리 일행 9명은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뭉친다.
호텔에서 주는 고량주를 한 잔 씩 따르면 할아버지가 “위하여!”를 외치는 것은 정해진 순서였다.
대구식 말로 “한 잔 움켜 쥐이소” 하는 멘트는 끝날 까지 계속된다.
잠깐 길거리를 보자.
오토바이를 탄 행렬이 유난히 많다.
긴 부츠를 신고 긴 코트를 입을 여성들의 행렬이 눈에 띄는데 이들은 서두르지도 않고 낮은 속도로 묵묵히 앞을 보고 달린다. 출근길이란다.
북경은 자전거가 많고 계림은 오토바이가 많다.
바쁘지 않은 여유 있는 출근길의 모습이다.
우리가 관광하는 광서 장족 자치구(廣西 壯族 自治區)는 중국의 남쪽에 위치하며 베트남에 연결되어 있다. 중국을 한 마리의 닭에 비교하면 가슴부분이란다.
인구는 약 4,500만 명 정도인데 장족, 한족, 묘족, 요족, 모한족이 주로 살고 있으며 명 청 때 광서성으로 불리다가 1958년에 자치구로 바뀌었다.
지형이 석회암으로 되어 있으며 기온이 높고 강수량이 많아서 여름엔 덥고 겨울에는 춥게 느껴진다.
1월의 평균 기온이 4도-13도이며 4월부터 더워 10월까지 계속되는 여름엔 25-33도까지 올라 이 기간에는 선풍기나 에어컨이 있어야 산다고 한다.
여름의 무더위는 50도?까지 오르기도 한단다.
桂林(계림)- 구이린은 산수갑천하(山水甲天下)라고 하여 계수나무가 많고 산의 경치가 세계제일이다.
계림은 광서성의 북동부에 위치하고 아열대 기후라서 열대식물들이 겨울에도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연평균 19도를 유지한다. 계수나무가 흐드러지게 피는 곳이란 이름에 맞게 가로수도 농장도 계수나무가 많다.
독특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우리나라의 마이산과 같은 특이한 산이 겹겹을 이루고 이강과 도화강이 그 사이로 흐른다.
산청(山淸-돌로 된 산이 푸른색을 띠고), 수수(水秀-물이 맑고 그 바닥의 돌이 보이며 경관이 빼어나고), 동기(洞奇-동굴이 많고 기이하고 17개의 큰 동굴과 수백 개의 작은 동굴들이 봉우리 산마다 존재한다.), 석미(石美-대리석이 대부분인 돌들이 수석으로 장식되기도 하지만 보는 그 자체가 아름답다)가 어우러져 세계 관광을 주름잡는단다.
대리석이 많으면 시멘트가 많고 시멘트가 많으면 고사리도 많다.
벼는 3모작을 한다. 비옥한 땅이 많다.
음력 8월의 서늘한 바람이 불면 계수나무가 꽃을 피우고 그 향기가 사방에 퍼져 여행의 극치를 이룬단다.
기원전 213년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이곳에 계림군을 세우면서 이름 지어졌고 석회암으로 쌓은 성벽이 구시가지에 지금도 자리하고 있다.
다민족이 함께 살고 있으며 장족, 묘족, 요족, 동족이 어우러져 살고 있으며 순박한 자기들의 민족 성정을 그대로 간직하며 살고 있단다.
유람선을 타고 이강 주변을 관광하는데 봄과 가을에는 물이 적어 큰 배는 뜨지 못하고 작은 유람선만 겨우 뜰 정도로 물이 귀해졌다고 한다.
환경의 변화가 관광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첩채산(疊彩山)-디에차이산으로 올라간다.
첩채산(疊彩山)은 계림시 동북부에 위치하며 색깔 있는 비단을 포개놓은 모습의 산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강과 독계봉과 인접하여 있으며 해발 73미터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계림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고 우리가 앞으로 관광할 곳을 가이드가 저기 여기 조기, 요기 하며 알려 준다.
동굴 입구에 馬相泊이란 사람의 상이 조각되어 있다.
유리로 덮개를 하고 있는데 얼굴 부분이 하도 만져 반들반들 닳았다. 보존하기 위해 유리로 덮었다.
그는 103세에 상해의 일본군을 피해 이곳으로 와서 후학을 가르치고 상해에서는 제일 큰 대학교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오래토록 건강하게 살았다 해서 장수산이라고 불리가도 한다.
정산 부근에 동풍이란 병같이 생긴 동굴이 있는데 동굴 벽에는 글, 그림, 시, 동상이 새겨져 있다. 첩채정. 인지당, 월각등도 있고 정상에는 나비 박물관이 있고 박재한 나비도 팔고 있다.
반들거리는 손잡이를 짚고 가는 산의 입장료는 20위안이다.
계단에서 바라보는 시가지, 산들이 겹겹이 동서남북을 그림 그리고 있고 산수화의 화폭을 둘레에 홱 돌려댄 것처럼 그림 아닌 곳이 없다.
사진을 너무 찍으니 디카의 몸이 따뜻하다. 디카의 수명도 여기서는 장수하지 못한다.
산 아래에 흐르는 강을 이강이라 하는데 굽이굽이 340킬로를 흘러서 장강과 합쳐진단다.
지금은 물이 줄어 물이 줄고 옥토를 사막화 한다고 한다.
자연과 관경을 아끼고 물을 보호하여 재해로부터 우리와 우리 후손을 보호해야 한다.
인간의 환경 파괴는 큰 유람선 300여개의 발을 묶어 놓았다.
계림은 습도가 높아서 맑은 날은 안개처럼 뿌옇게 되어 멀리 볼 수 없다.
태풍이나 센 바람이 불어서 안개를 빨리 날리면 산들이 맑게 보인다고 한다.
오늘은 중간이란다. 운이 있는 관광이란다.
첩채산을 나와 커피 판매 숍에 들른다.
교포 3세가 운영하는 곳인데 한국말이 유창하다.
하는 말은 언제나 판에 박은 것 같다. 여행 상품 중에 우리는 특산물 코너에 들려야 하고 가이드는 출석부 날인하는 것처럼 사인을 받아간다.
그러나 그것이 아주 나쁜 것은 아니다. 필요한 사람에게는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중국 사람들은 특히나 차를 잘 마신다. 장수 비결 중에 들어가기도 하고 돼지고기를 자주 먹는 그들에게는 기름진 음식을 분해하고 비만이나 성인병의 예방차원에서 꼭 필요한 것이고 우리 한국 사람들도 어느 정도 차 문화가 익숙한 것이 되었다.
운난성에서는 보이차가 유명하다.
여기 계림지구는 계수나무 꽃차가 유명하다.
계수나무는 가로수로 쓰기도 하고 계수나무 농장을 만들기도 하는데 그 꽃을 따서 말린 차를 최고로 친다.
꽃은 네 가지로 구분한다.
금계, 은계, 월계, 사계의 꽃이 일 년에 네 번이다 핀다고 하여 차의 종류도 크게는 네 가지로 구분하기도 한다.
그 중에 제일은 금계로서 이 꽃을 끓여먹는 방법에 대한 설명과 직접 차를끓여 몇 번이고 마시게 하며 마지막에는 판매를 한다.
비싸지는 않으나 나는 여기 유명한 차보다는 보이차를 즐겨하므로 비싸기는 하지만 보이차를 샀다. 팔리지 않으니 궁여지책으로 장미, 오렌지, 생각, 말린 것을 5천 원씩 판매하고 그것은 같이 간 일행도 몇 개씩 사두었다. 물론 값은 반으로 깎아서 산다.
보이차 8만원을 5만원으로 다시 단위를 위안화로 바꾸어 240元으로 하면 반값으로 산 것과 같다. 한국 돈은 이제 가치가 제일 떨어져 있다.
그래서 元으로 계산하는 것이 유리하고 팁은 달러나 웬화보다는 천 원짜리 한 장이면 족하다. 실리적이다. 유리하다.
점심은 한국 요리집이다.
불고기에 상치 된장국과 쌀밥이 나온다.
우리가 먹던 한국요리와 다름이 없고 차진 쌀밥이 더 친근히 느껴진다.
김칫국이 맛이 있고 먹는 방식도 그렇고 향내도 나지 않는다.
일행이 싸온 김치보다 더 맛있어서 이 김치 세 번을 달라고 하여 먹었다.
오랜만에 한국음식의 고마움을 느낀다.
계림의 인구는 공식적 인구가 76만 명이다. 중국에서는 여자나 2인 이상의 자녀는 호적에 올리지 않는다고 한다. 가이드는 원래 흑룡강성에서 호적을 가지고 나왔으므로 여기서는 호적에 오르지 못한다.
유치원에 다닐 나이의 아이 하나는 여기서 낳았으므로 혼자 호적에 올랐으니 잠정적 인구는 4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우리가 중국의 인구를 13만이라고 알고 있는데 잠정적 인구로 따지면 18만 명이 넘는다고 하니 인구의 왕국이다.
이강 유람선을 타기 위하여 1시간가량을 이동한다.
우리의 사극“여명의 눈동자”의 은은한 산 모습과 신비한 산의 그림자가 바로 여기를 배경으로 하였단다.
한류열풍이 일본에서 “겨울 연가”로 인기를 끌었고 그 여파로 ‘여명의 눈동자’ ‘허준’은 이미 중국을 넘어서 동남아, 서남아시아로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이것은 경제나 정치적인 외교보다 더 크고 힘있는 외교효과를 가져온단다.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한류열풍이란다.
이강에는 물소가 많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세어서 농사짓는데 이용한다. 고기는 질겨서 잘 먹지 않지만 뿔과 가죽은 잘 이용한다. 뿔로 만든 빗으로 머리를 빗으면 검은 머리가 희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중에는 황소도 있는데 나중에 들어온 동물이며 키가 아주 작아서 소의 난쟁이 같다.
고갯길을 오르는데 물소 떼를 만났다.
4-50여 마리가 모여 지나가고 아이는 회초리를 들고 쫒아간다.
머리 긴 여인이 나뭇가지를 곱게 묶어 머리에 이고 지나간다. 자전거 오토바이에 짐을 싣고 지나가고 학교 수업을 마친 꼬마 다섯 명이 무엇이 재미있는지 한바탕 웃으며 동네를 지나간다.
아마도 자기들의 집이 이 동네를 지나 저쪽 동네인듯 웃는 소리가 차 안에 들릴 정도로 재미가 있다.
우리네 6O년대의 학창시절이 바로 저것이었다.
한 동네 너머 다음 동네이니 짓궂은 장난질이 힘든 줄 모르게 하여 주었지 아니한가? 우리의 꼬마 때 이야기를 저 애들이 들려준다.
가마우지는 수명이 18년이란다.
이강 강가엔 작은 배를 타고 가마우지로 고기를 잡는 어부들이 있다.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잡아 올리는 물고기의 값은 물소 너서 마리 값을 넘는다.
주인을 가마우지의 목을 물고기가 넘어가지 않게 줄로 묶어 배를 곯려 물속에 밀어 넣으면 배고픈 가마우지는 물고기 큰 것을 잡아 삼킨다.
목이 묶여 있으니 다 삼키지 못하고 중간에 걸치며 물위로 올라오면 뱃 주인은 목을 감아쥐고 물고기를 토해 내게 한다.
목을 감아쥐니 이름이 가마우지인가? 먹지 못하고 토해내니 가마우지인가?
양심 있는 주인은 큰 것을 잡아오면 작은 물고기를 상으로 준다고 한다.
그러니 신이 난 가마우지는 연신 토해낸 물고기가 고깃바구니에 들어가기 전에 다시 물속으로 잠수질을 한다.
한 번 물린 물고기는 가마우지의 이가 안으로 향해 있어 놓치지 않는다.
이런 일을 18년간이나 한 가마우지는 나이 늙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면 작은 물고기 주기 싫은 약아빠진 주인은 독한 술을 먹여 죽게 하여 충성한 값으로 양지바른 곳에 묻어준다. 아 인간! 먹지 않고 묻어준다니 그래도 미움은 반으로 준다. 충실한 종의 말로가 그래도 위로를 받는 것이다.
가는 길은 이렇다.
전동차가 시멘트 길을 요리조리 오는 차와 앞차를 피해 달린다.
가로수는 묵직한 계수나무로 그늘이 강하고
약식 비닐하우스 안에는 오렌지가 노랗게 익어가고
싱싱한 딸기밭에는 녹색 짙은 잎을 비집고
빨간 딸기 숨바꼭질로 행객을 유혹하고
짙푸른 건강한 배추며 상치들이 온 동네를 물들인다.
포도밭은 끝이 없는데 간간이 따지 않은 포도가 송알송알 맺혀있고
대파보다도 더 큰 쪽파는 남정네고 아낙네고 구푸리고 앉아서 다듬는 모습이 더 정답다.
보다가 참지 못하고 인심 좋은 소영광 가이드는
차를 잠깐 세우더니 내려가 딸기를 흥정한다.
물로 씻은 딸기 한 포대 들고 차에 들어와 뒤로뒤로 돌린다.
논산 딸기 유명하다마는 시장기 도는 이때에 맛좋은 이강딸기 더없이 훌륭하다.
통통하고 꼭지 달린 한 상자 딸기는 지금도 먹고 싶은 생각 간절하다.
노란 유자는 어떤가?
크기가 어린아이 머리통만 하달까?
피라밋처럼 쌓아두어 신비가 더한데
에라 내가 한 번 먹어보자.
한라봉의 할아버지라 칼로 가운데 갈라 놓고 겉껍질을 벗겨낸다.
힘센 아주머니는 손톱으로 조각을 떼어내는데
나는 힘이 적어 대칼로 조각내어 더 속살은 손톱으로 벗겨내는데
아 맛없어라 아 맛없어라
차라리 먹어볼 생각이나 말 것을 ......
다음에 가이드가 유명한 곳을 찾아가 실컷 먹여준다는데
그 말이 달갑지 않다. 하여튼 가보기나 하자.
작은 읍을 지난다.
마침 장날이란다.
사람들이 비로소 많이 모여 바쁘게 움직인다.
시골에서 아낙들이 바구니에 야채를 메고 와서 판다.
자전거는 빠르니 벌써 팔고 집으로 돌아간다.
시골풍경이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업그레이드 된 모습이다.
가로수가 대나무이다.
집 뒷간에 한 덩어리, 마당 옆에 한 덩어리
개울가에 두 덩어리......여기 대나무는 덩어리로 높이 자란다.
물론 왕대이다. 왕대덩이가 가로수 숲이다.
사람들은 대나무를 엮어서 배도 만들고
대나무를 짜서 들마루며 울타리도 만든다.
의자도 만들고 공예품도 만든다.
잎을 따서 밥을 짓기도 하고 대나무 통으로 술을 빚기도 한다.
어쩌면 대나무와 이강 사람들은 뗄라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갈대는 더 신기하다.
갈대 무리에서 삐져나온 갈대가 내 키의 두 세배나 된다.
건강한 모습이 여가가 갈대 고향인 것같다.
억세도 억세게 크게 보인다.
소나무는 잎이 크고 늘어져 있다.
우리나라로 오면 정원수로 사용하면 인기 있을 듯하다.
주차장에는 귤 파는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달라고 따라다닌다.
먹음직한 감과 귤이 많다.
두 바구니에 천원하고 외친다.
싸지만 먹을 시간이 없다.
이강 유람선에 오른다.
유람선은 산봉우리들이 둘러싼 산속 강을 가로지른다.
한가히 오리들이 헤엄치고
강가에 아낙들이 춥지 않은지 손빨래 하고
유람선은 뱃소리 줄여가며 요리조리 물 많은 곳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간다.
물속에 비친 산이 솟아있는 산보다 더 아름답다.
2기가 메모리가 다 차서 에러가 나온다.
아차! 여분으로 가져온 메모리는 호텔에 있는데......
이제부터는 글로 아름다움을 찍기로 한다.
산 속으로 배가 가고 배속에 내가 있어서
차라리 나는 산속을 나는 한 마리 새가 된다.
끝없이 울퉁불퉁 솟아오른 계림의 산봉우리는
신이 만든 것인가?
자연이 저럴 수는 없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은 인간을 만들기 전에
아름다운 산수를 먼저 만드신 것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저렇게 아름다움을 만들기 어려울 것을 아신 하나님이
먼저 이 산수를 만들고 인간을 다음에 만들어 이 속에 살게 한 것이리라.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배는 가볍기만 하고
머리 위의 휩쓸린 나뭇가지에 검정 비닐은 물살이 자기 영역을 표시한 것이다.
저 위까지 물이 흐를 때는 그 장관 또한 엄청났으리라.
산의 병풍 속에 이 작은 유람선 또한 매력적이다.
같이 탄 여행객들은 작은 탄성을 지르지만
몸을 어찌 둘까 서두른다.
2층을 올랐다가 다시 내렸다가 다시 오른다.
방정이 아니라 그럴만한 이유가 사뭇 변하는 경치를 더 잘 보기 위함이다.
83세의 정기범 할아버지도 찍던 사진 그만 두고
메모지에 작은 글을 긴다.
아마도 사진은 찍어도 찍어도 같은 모습일 테니까 차라리 글로 쓰시겠다는 뜻이다.
16번이나 중국을 여행 했어도 다시 오고파 오셨다는 할아버지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실까?
배는 우리를 작은 동굴 입구에 내려놓는다.
관암동굴로 가는 것이다. 이 봉우리 속에 동굴은 작지 않은 동굴이 있다.
이름하여 관암석굴(冠岩石屈) 매표소 앞에 크게 天洞有別(천동유별)이란 글씨가 있다.
관암동굴은 약 12키로 중 3키로만 개발된 종류석 동굴이다.
1937년에 황제의 관처럼 생긴 산꼭대기에 염소를 기르던 농부가 정상의 나무숲으로 뭍혀 있던 구멍에 빠진 염소를 구하려 밧줄로 내려가다가 이 굴을 발견했다고 한다.
1997년부터 본격적으로 개발에 들어갔단다.
계단으로 조금 올라가면 동굴 입구가 나온다.
나중에 동굴 밖을 나올 때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나오기도 하지만 레버를 조종하는 모노레일을 두 명씩 앉아 타고 나오기도 한다.
관암동굴은 오랜 기간 동안 폐쇄되어 있었기 때문에 동굴 안의 종유석, 석주, 석순 등의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관암동굴은 이강과 연결되어 있어서 이강을 유람하는 길에 관암에 들러 관람을 할 수 있다.
또한 관암동굴은 개발 시작 단계에서 부터 관광을 위해 계획적으로 설계되어서 자동 조명, 사운드 조절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또한 모노레일, 유람선, 엘리베이터 등이 설비되어 있어서 여느 동굴에 비해 편하게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굴 구경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수억 년을 거쳐 생성된 이 동굴을 모노레일을 타고 굴속의 유람ㅅ건을 타고 37미터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유람선을 탈 때마다 손전등으로 물을 비쳐보곤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모님들을 보라.....
1시간 40분을 거쳐 양삭으로 이동한다.
양삭은 같은 계림구이지만 계림보다 경치가 더 아름답다.
2만명이 사는 산골 군소재지란다.
광시장족 자치구[廣西壯族自治區] 동북부에 있으며, 흥안[興安] 계림[桂林] 양삭 풍치지구를 형성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진대(秦代 : BC 221~206)에는 계림군에 속했으며, 한대에는 시안현이 있던 곳이다.
삼국시대에 오나라는 양삭의 흥평에 상안현을 설치했으며, 진대에 희평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수대(隋代)에 양삭현으로 다시 바뀐 뒤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강을 끼고 있는 성벽 및 고목과 훌륭한 수목들은 명·청 양대의 유물이다. 기이한 봉우리와 골짜기가 많고 풍경이 수려해 관광지 중에서도 보배로 꼽힌다.
경치가 좋은 주요명승지로는 碧蓮峰, 서동산[書童山], 어전동굴[角田洞], 명월 동굴[明月洞], 전자 강[田家河], 관암[冠岩], 화산[畵山] 등 20여 곳이 넘는다.
주요산물로는 수박·금귤·여름밀감·감·감귤 등이 있는데, 향기가 좋을 뿐 아니라 달콤하고 신선하여 상품으로 꼽힌다.
벽돌집, 얇은 기와지붕, 넓은 밭과 논, 완두콩, 돔부콩이 자라고 목화와 포도밭이 농촌임을 짐작케 한다.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가 산의 8부 능선에 걸려 있다.
달리는 차 안이라 찍히는 게 시원치 않다.
경치가 사진보다 더 아름답기는 많지 않은 광경이다.
陽朔新世紀酒店(YANG SHUO NEW CENTURY HOTEL)은 이틀째의 우리 휴식처이다.
풍성한 과일과 유자를 사서 먹어본다.
맛이 없으나 유명한 곶감을 두 근 사 두었다.
2010년 1월 13일 수요일 흐림
그림첩 3,000, 아몬드 1,000, 대용수 사진 1,000
아침 5시 기상 우리 시간으로 4시에 일어난다.
눈물 콧물이 나오려 하고 눈에 따끔따끔한 눈물이 나오려 한다.
눈에 핏발이 서려하고 눈 가장자리가 붓는 것 같다. 고생도 지독한 고생이다.
간밤에 잔 잠이 불만족스럽다는 뜻도 된다.
온기라고는 하나도 없고 어제 저녁 잘 때의 온도가 30도로 올려놓은 온풍기가 선풍기가 되어서 찬바람이 가을바람 같다.
아내가 걱정이 되어 내 이불을 아내의 이불 위에 덮어주고 나는 아예 일어나 일기를 정리한다.
그래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이런 어려운 여행으로 하여금 부족한 나에게도 이런 힘든 중국 사람들의 생활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다행히 아내는 발열내복을 입었으므로 그다지 춥다고 하지 않았다.
선견지명의 아내에게 또 감사했다. 차라리 내가 추운 것이 낫지......
나는 내복을 입고 자지 않으니 내가 더 추운 것이리라.
옆방에서 콜록거리는 기침 소리가 간간이 난다.
아침 운동 겸 호텔 앞에 나가니 잡상인들이 많다.
양삭 풍경구 사진첩을 3,000원에 삭 아몬드 1,000원어치 부담 없이 샀다.
호텔 주위의 높은 산들이 양삭 새내를 압박하고 있는 듯 바로 건물 뒤에 아침 햇살을 막는 높은 산이 85도의 경사를 가지고 수직으로 서 있다.
우리는 이런 산을 두려움의 대상으로 보고 있으나 여기 양삭의 사람들은 친구요 생활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식사를 마치고 간밤에 안녕하셨느냐는 인사를 하였다.
눈으로 웃었고 가이드에게 사실을 이야기 한다.
가이드가 자기 말로는 안 되니 회사에 직접 이야기 한다고 한다.
9시에 1시간 10분 거리에 있는 이프로 출발한다.
이프의 동굴을 보고 점심을 먹고 양삭으로 다시 오며 월량산과 대용수를 보고 서가재래시장을 보고 저녁 후에는 유명한 인상유삼제 수상극을 관람하는 것이 오늘의 일정이다.
양삭은 한국 여행객은 적고 서양 관광객은 많다.
오후에 가는 서가 재래시장은 서양 사람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고 여기서는 영어도 의사소통의 수단이 된다고 한다.
서양 사람들은 단체관광보다는 개인 혹은 소수 사람들이 와서 자전거 렌트 여행이나 배낭여행을 많이 한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지도 한 장을 사고 호텔에 투숙하는 대신 작은 하숙을 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한 달 이상 체험하는 것을 즐긴다.
그들은 물건도 잘 사지 않는다. 이곳 사람들은 서양 사람들은 달갑지 않게 반긴다고 하며 샘플만 먹고 사지 않는 그들을 ‘서양거지 왔다’ 고 표현하기도 한단다.
그들은 실속 있는 여행을 하고 참다운 여행을 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옳은 것이다.
이프로 가는 길은 다시 한 번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계림의 삼림을 동서에 배치한 듯 더 많이 더 높이 더 깊숙이 산들을 숨겨 놓았다.
한 겹 뒤에 두 겹 산이요, 두 겹 산 뒤에 세 겹산이로다.
길거리에는 작은 산처럼 쌓아놓은 우자더미, 열대과일이 풍부하다.
곤명(쿤밍)의 석림은 돌 사이로 사람이 지나는데 양삭 이프는 산 사이로 차가 지나간다.
앞을 보아도 산수도요, 뒤를 보아도 동양화다.
옆을 보면 삼림이 우리를 보호하는 듯 뜬 눈을 감동한다.
아미산은 봉우리가 두 개로 관광객을 유치하는데 여기 이프는 마이산 수백 개가 우리를 맞는다.
상상을 해 보라.
채소밭이 참 많다. 흙이 검고 윤기가 흐른다.
나는 유독 땅에 대한 관심이 많다. 앞으로도 자연 환경과 땅 그리고 우리와의 관계가 원만하도록 하는데 관심을 더 가질 것이다.
자연은 우리의 어머니다. 우리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우리가 나중에는 그속에 들어간다. 보호할 가치가 참으로 많은 우리의 유산이다.
가끔 가다가 길거리에 작은 각목을 줄맞추어 쌓아 놓은 곳을 지나간다.
한 두 개가 아니라 차로 한참을 같은 나무 단을 목격한다.
이 아파트처럼 쌓아놓은 나무들이 있는 곳은 옷걸이 공장이라 한다.
우리는 나무로 만든 옷걸이는 이미 지나 플라스틱이나 가는 철사 그리고 더 모양이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다.
나무로 만든 옷걸이를 말리는 곳도 있다.
여기는 토란이 주산물이다.
길거리에도 쌓아두고 상점에 진열도 하여 두었다.
그런데 우리의 토란과 다른 것은 토란이 아기 머리만 하다는 것이다.
어떤 토란은 아기만 한 것도 있다고 하며 이프에서 생산된 토란을 지개에 지고 북경까지 가서 황제가 즐겨먹는 식품으로 진상을 하였다 한다.
맛이 좋아서 고구마처럼 삶아 놓았는데 껍질이 잘 벗겨지고 우리나라의 토란과 같이 아리거나 미끈거리지 않고 고구마와 같이 먹을 수 있다.
이프는 짝퉁의 도시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소개한 기억이 난다.
그 도시를 우리가 간다.
가짜도 못 만드는 물건이 없다.
술도 담배도 돈도 악세사리도 모두가 짝퉁이다.
이곳서 만든 가짜 술을 먹고 시력을 잃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있다고 하여 세상 사람들이 중국 물품을 경계하라 하였는데 여가가 거기다.
거리에는 오토바이가 즐비하고 자동차도 벤츠나 외국 비싼 차들도 많은 도시다. 주로 돈을 만들어 부자가 된 것이다.
이들이 만든 가짜 돈은 투명 그래픽이 나오기 전에는 거의 비슷하여 진품과 가짜가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다.
100위안을 만들어 상점에 가서 10위안의 물건을 사면 20위안을 환전 수수료로 떼고 l70위안을 준다.
즉 100위안의 가짜를 만들면 물건까지 합하여 80위안을 남길 수 있으니 부자 되기는 식은 죽 먹기가 아닌가?
그러나 요즈음은 그렇지 않다. 인쇄기술을 따라가기 어렵다.
그래서 공식적인 낮에 쓰리 힘들고 밤에 택시가사들이 자주 사용한다고 한다.
짝퉁의 가짜 돈을 사용하다가 상대방에게 알려지게 되면 그들은 당장 가짜라고 말하지 않는다.
“ 손님 다른 돈으로 바꾸어 주시지요......”
그 뜻은 이것은 가짜이니 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그사람은 의젓하게 다른 돈을 주고 아무렇지도 않게 그곳의 거래를 마치는 것이란다.
짝퉁의 예의다.
번듯한 옷에 긴 부츠를 신고, 번쩍거리는 오토바이를 타고, 캐드락 신식 차가 다닐 수 있는 곳. 이프. 그리고 짝퉁의 도시......돈의 위력이다.
논에서 일하는 농부가 우습기도 하다.
그 넓은 논을 부부가 앉아서 여자는 호미로 논을 갈고 남자는 써래같은 나무 삽으로 흙을 갈아엎는다.
세상에 지금이 어느 시기인데 원시적인 논갈이 법으로 저 넓은 논을 다 뒤짚는다냐? 어리석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일하는 곳이 한 두 곳이 아니다.]
가이드에게 물으니 그것은 논을 가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삼모작을 수확하는 중이란다.
2모작까지는 벼를 심고 3모작은 마티라는 작물을 심는데 그 알이 작아서 호미나 삽을 사용하여 파고 수확하는 중이란다.
마티라는 것은 작은 검은 알 채소인데 묵을 만드는 재료로 쓴다한다.
풍어동굴 가기 전에 짓다가 만 아파트처럼 생긴 건물을 설명한다.
풍어동굴이 인기가 있을 때는 관광객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호텔과 상점이 즐비하여 이 공사를 시작하였다가 인기가 식어 지금은 모든 것이 문을 닫고 이 건물들도 짓다가 그만 두었단다.
덕분에 우리뿐인 관광객으로 우리는 귀빈 대접을 받을 수 있었다.
배도 우리만 타고 기차도 우리만 탄다. 우리가 전세를 낸 것과 같다.
동굴 들어가기 전에 카메라의 메모리가 꽉 찼다.
그래서 호텔에 가기 전에는 풍어동굴 사진을 찍지 못한다. 아쉬움으로 가이드의 말과 눈의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풍어암(豊漁岩) 동굴
아시아 최대 7.1km 라는 풍어암 동굴이다. 풍어암 유람로라고 되어 있습니다.
계림에서 남쪽으로 104km 떨어진 곳에 있어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다. ‘이프동굴’이라고도 하는데 1994년 5월에 대만과 이프에서 동시에 개발에 착수하여 9월에 개발된 곳이란다.
동굴 입구에서 무령왕릉의 연도처럼 생긴 곳을 3-40미터 지나 2km를 걸어서 들어가며 경관을 감상하고 기기묘묘한 석순들의 군집을 바라보며 몽환천공부분에 다다른다. 큰 홀이다.
티벳 음악소리가 은은히 들리며 하늘열차(충칭열차)로 티벳을 갈 때의 장족의 구슬픈 노랫소리가 벽을 타고 들려온다.
보탑왕국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고 풍경이 아름다워서 아시아제일동굴(亞州弟一洞屈)이라고 이름한단다.
수많은 석순 사이로 계단이 있다. 그 뒤에 요족의 집이 있다.
요족의 생활은 돌 사이에 집을 3을 짓고 산다. 요족은 55개 부족 가운데 생활수준이 최하위라고 한다.
머리카락이 세계에서 제일 긴 민족이다.
그들 여성들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결혼 할 때에 모리를 자르고 죽을 때까지 그 머리를 자르지 않는다.
자르거나 빠지는 머리는 다 모아 두었다가 또리를 틀어서 머리에 얹고 다닌다.
기이한 것은 이들은 노인이 되어도 어리가 희어지는 법이 없다한다.
특이한 그들의 머리털 보관법이 있단다.
그들은 쌀을 씻고 난 뜨물을 버리지 않고 모아두어 발효시킨 다음에 그 물로 머리를 헹군다.
다른 어느 비누나 향료나 샴푸를 쓰지 않고 단지 이 방법만 사용하여 검은 머리를 유지한다하여 기네스북에 오른 민족이다.
우리나라도 단오 날에 청포로 머리를 감으면 검은 머리가 된다한 풍습이 있고 이로 미루어 그 것도 일리가 있는 우리 민족의 전통이렸다.
우리 여성이 흰머리가 되는 것은 일 년에 단 한 번 단오 때만 감으니 일 년 사시를 창포물로 감으면 그 여인은 검은 머리가 죽을 때까지 보장되는 것은 아닐지......
또 요족의 결혼 풍습도 적어두자.
그들의 집이 3층임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다.
일층은 짐승이 사는 곳이요. 이층은 부모가 사는 방이다. 처녀가 사는 방은 3층에 있다.
삼월 삼짓날에 처녀 총각이 모여서 노래를 부른다.
눈이 서로 맞는 처녀 총각이 있다면 총각은 처녀의 발을 살짝 밟고 더 힘껏 밟으면 사랑의 고백이다.
밤이 되면 총각은 처녀의 방으로 직접 들어가지 못하고 부모의 눈을 피해 신호를 하고 처녀는 자기의 긴 허리띠를 끌러 아래층으로 보낸다.
총각은 그 허리띠를 붙잡고 3층으로 올라가 운우의 정을 나눈다.
몇 달 뒤에 배가 부르면 결혼을 한다.
우리의 전통 삼돌이와 갑순이의 결혼 이야기와 배슷하다. 경험해본 분도 있지 아니한가?
큰 홀에서 나와 3.3km는 6인승 보트를 타고 어두운 동굴을 손전등을 이용하여 벽을 훑어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며 감상한다. 맑은 물 사이를 비취는 돌 석순 사이로 오색 보명이 비치고 환한 앞쪽의 빛을 받아 물속에 비친 벽과 천정의 석순이 기묘한 환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몽환 세계다. 꿈속의 장관이다. 마음이 어린아이 같아야 저 사모님들의 감탄사를 따라갈 수 있는데 나는 아직 어린아이로 돌아갈 능력이 없나보다. 감탄사가 작게 나오니.....
명경지수를 지나 다시 돌계단을 오르고 바위 뒤로 올라서 또 보트를 탄다.
이 보트로 밖으로 나온다.
출구에 도착하기 30m 전은 찬바람이 불어오는데 이곳이 동굴을 처음 발견한 곳이란다.
물이 나오는 원천을 이상히 여겨 따라 들어가 발견한 동굴이 아홉 봉우리를 통과한 거대한 동굴이었단다.
비록 주위가 어둡고 현대적으로 훌륭한 관광시설은 부족하지만 10여 미터와 좁은 곳은 배가 겨우 통과할 정도의 숨 막히는 동굴이 수심 1미터 정도의 얕은 물로 되어 있고 주위에 색색의 조명이 비쳐 신기함을 더한다.
수초가 작은 물고기를 숨기고 송사리는 집단 무용을 한다.
배에서 내리면 석청을 파는 상인이 큰 칼로 석청을 깨뜨려 맛보라 한다.
누런 유황 같은 고체가 석청이다. 달고도 향내가 짙다.
값도 물어볼 사이도 없이 이번엔 기차를 탄다.
아까 들어갈 때의 입구 쪽까지 기차가 운행한다.
산 밑을 감도는데 예전의 기차여행 생각난다.
논둑 밭둑 지나서 옥수수밭 지나서
오솔길을 지나면 오막살이 집 한 채
박넝쿨이 엉켰네 조롱박이 열렸네
박넝쿨이 엉켰네 조롱박이 열렸네......
얼마나 신이 나서 불렀던 노래인가?
우리 집이 그런 곳에 있었다.
박넝쿨이 엉켜있는 지붕 밑에서 내가 자랐다.
조롱박은 지붕이 아니라 울 밑에 열렸었다.
달그락 거리던 산 밑 기찻길 옆에 돌을 뚫은 무덤이 비석과 같이 서 있고, 꽃과 시원한 바람과 싱싱한 채소들이 맡을 덮고 있었고 평화로운 산길을 열며 추억의 기차는 달린다.
평화로운 산골 시골 풍경이 엉켜 붙었다.
완두콩이, 유자나무가, 불도화와 계수나무가......
점심을 현지에서 먹는다.
식당 입구에는 어김없이 큰 토란 두 개를 놓아두었고 구워 만든 토란과자를 먹어보란다.
딱딱하면서도 따끈하면서도 바스락거리며 군침 돌게 한다.
식단은 옥수수, 닭 뼈와 함께 고은 스프와 토란 엿에 졸인 것(바로 먹어야지 굳으면 잘 안 때어짐), 배추, 상치, 야채 볶음, 돼지 비개 사이에 감자 넓게 썰어 졸인 것, 오이, 당근, 무 썰어 고추장과 함께 나오고, 쌀밥이 멀건 국과 함께 나온다.
시장한 판에 나온 것 모구 먹고 더 달란다.
식성도 다들 좋으시다. 식사를 하시는 것을 보니 내가 후련하다. 모두가 여행의 달인들이시다. 배테랑들이시다.
맛있는 식사를 마친 후 이프에서 양삭으로 다시 이동한다.
짝퉁도시 이프로 들어오는 길에 가로수에 빨간 꽃을 달아 놓았다.
집 문 기둥에도 빨간 글씨를 달아 놓았다.
두 개, 세 개, 네 개, 다섯 개를 단 집도 있다.
계수나무에 탐스런 꽃이 핀 것 같다.
이들 漢族은 붉은 색이 그들의 행운과 축복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더구나 구정이 한 달 남았다.
그들은 고향 가서 설을 쇠는데 한 달을 일도 하지 않고 복을 기다린다.
한 족과 소수민족을 설날 전의 다른 풍습이다.
우리도 봄이 되면 立春大吉을 대문을 엇갈려가며 써 붙이는데 이런 풍습의 유래 같다.
중국 사람은 풀지 못하는 세 가지 소원이 있다 한다.
첫째는 중국의 글씨를 다 써보고 죽는 것. 그들은 하루에도 수백 개의 글씨를 만들고 수백 개의 글씨는 없앤다고 하니 그것을 다 아는 사람은 신이다.
둘째는 중국 사람은 자기들의 나라의 좋은 관광지를 다 보지 못하고 죽는다.
아직도 개발하지 않은 그들의 관광자원이 얼마나 많은지?
셋째는 중국 사람은 자기들이 만든 요리를 다 먹어보지 못하고 죽는다.
항주의 모기 눈알 요리는 귀한 요리이고 팔진미도 먹어보지 못했지만 그들의 요리는 하늘에 나는 것은 비행기를 제외하고 땅에 기는 것은 책상다리만 빼고 못해먹는 요리가 없다고 한다.
차는 월량산 앞에서 정거 한다.
산봉우리 한 가운데가 달 모양 둥근 구멍이 나서 관광을 하는 곳이다.
정말 둥근 구멍이 엄청 큰데 우리는 오르지 못하고 보이는 곳에서 사진만 찍는다.
다행히 권해석 선생님께서 기념사진을 찍어주어 서운면은 하였다.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구멍이 많지만 이렇게 인공으로 뚫은 것 같은 것은 신기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볼 수 있으니 명산은 명산이다.
카르스트 지형이 만들어낸 명물이기도 하다.
옆의 산에는 구우령, 와호산이 소와 호랑이 누워있는 모습을 한 곳도 있다.
좀 더 가면 대용수에 이른다.
고전향 창암촌 금보하 남쪽 연안에 있는 용수나무이다.
멀리에서 보면 커다란 녹색 우산처럼 보이고, 가까이에서 보면 나무줄기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晋나라 때 심었다고 전해지며 마을 사람들은 '신수(神树)'라 부른다. 중화인민공화국국무원에서 1982년에 계림이강국가중요점풍경명숭구대용수경구로 지정되어 있다는 말이 큰 돌판에 기록되어 있다.
榕樹는 벵골 보리수이며 원산지는 인도란다.
년전에 앙코르와트를 방문했을 때 수백년 된 쓰러져가는 돌 담과 석탑을 받치고 있던 거대한 나무의 뿌리가 대용수의 뿌리였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므로 별 놀랄 일은 아니지만 이 대용수는 높이가 8미터에 어비가 18미터인데 큰 나뭇가지를 받치고 있는 기둥이 사실은 기둥이 아니라 나뭇가지가 힘이 들면 그 나뭇가지에서 잔가지가 땅으로 내려오고 땅에 닿으면 그 가지가 굵어져서 기둥처럼 母樹를 받쳐준다고 하니 '신수(神树)'라는 이름이 그럴 듯하다.
수나라때 심어져서 수령이 1411년이 되었고 그래서 이름을 大榕樹라고 이름 지었단다.
한 바퀴 돌면 수명이 연장 된다고? 백년 연장이라도 좋겠다는 듯 도는 사람이 있다. 나도 무심코 돌아보기는 하지만 내 생명은 하나님이 지켜주신다.
앞의 돌산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대가대의 글씨 위에 劉三姐란 글씨가 새겨져 있다.
유씨 셋째 딸은 노래를 잘 불렀는데 부자들의 유혹을 뿌리치고 소몰이와 결혼을 한 서민들의 우상적인 아가씨다.
장예모 감독이 이것을 알고 ‘이강유삼저’의 유명한 수상쇼를 만들었다.
저녁에 구경할 것이다.
인근에 수석 전시관과 작은 용나무들이 수염을 땅에 늘이며 서 있다.
사진 1000원 주고 사진사한테 찍으니 즉석에서 나온다.
사진기 메모리 없으니 기념으로 두련다.
西家在來市場(서가재래시장)
서양 사람들이 많고 짝퉁의 시장이다.
길거리 상점 안에 아가씨들이 뜨개질 하는데 솜씨 대단하다.
아내가 뜨개질에는 관심이 많아 구경을 하는 사이 우리 팀들은 먼저 시장에 들어간다.
그래 이왕 늦은 것 천천히 보고가자.
600m 이면 길지 않은 거리를 한 시간 주었으니 시간은 충분할 테고......
그녀들은 쉐터를 목부터 떠간다. 몸통을 달아내고 양팔을 연결하여 짜 내려간다.
신발 바닥만 있으면 실내화고 구두고 무엇이든지 짠다.
신발 바닥에서 곱슬머리 실로 샌달을 짜낸다.
대단한 솜씨라 칭찬하며 예쁘다고 중국말로 했더니 영어로 ‘thank you' 한다. 영어 발음이 부드럽다.
오우 캔 유 스픽크 잉그리쉬?(Oh!! can you speak english?) 하며 영어로 대화를 하니 더 친근한 것 같다.
해외에 나오면 영어나 그 나라 말 조금 할 줄 알면 훨씬 가벼운 대화를 할 수있다.
짜기는 잘 짜는 데 실이 싸고 질이 좋지 않은 실이다. 칭찬을 던지고 나온다.
목이 좁은 병속에 글씨와 그림 그리는 아가씨는 신기함속에 속한다.
老師(라오쓰-선생)라고 자기소개를 한다.
학원 선생님인듯 한데 그리는 모습이 매우 섬세하다.
우리 잔과 차작은 주전자에 우리 부부의 이름을 한자로 새기고 100위안을 준다.
엄청 깎아 주는 것인데 우리의 칭찬에 홀딱 넘어 간 듯 부담 없이 주었다.
식사 후에 옷을 겹으로 껴입고 나오란다.
캄캄한 초이틀 밤이다. 그나마 추운데 겁이 난 터라 옷을 겹으로 껴입고 깔개를 하고 모자를 쓰고 에스키모인처럼 나선다. 모습 웃긴다.
印象劉三姐를 보러가는 것이다.
印象은 우리가 어떤 강한 인상을 받을 때, 혹은 어떤 대상에게 강한 느낌이 작용할 때 스는 말이다.
인상 여강쇼에서 우리는 얼마나 강한 소소민족의 애환을 생각했던가?
마음속에 나타난 그들에의 연민이 얼마나 깊어졌던가?
劉三姐는 장족 유씨의 셋째 달이다.
산가의 명수로 유삼매 혹은 유삼녀로 통한다.
그녀는 장씨 소작농의 딸로 부자들의 유혹과 박해에 넘어가지 않고 목동과 결혼하는 수수한 들려오는 전설의 이야기를 장예모 감독은 세 명의 작가와 공동작으로 이 쇼를 만들었다. 단순한 이야기를 예술적 경지로 이끌어 내었다.
장예모 감독은 붉은 수수밭, 연인, 영웅, 홍등의 작품으로 유명하다.20045년부터 공연에 들어간 인상유삼저는 8개 소수민족의 춤과 노래가 등장하고 출연자가 소수민족 660여명이 출연하고 있다.
인상유삼저를 보기 위해 비행기로 오는 사람도 있고 2,500 객석을 가득 채운 관광객이 넘칠 때는 2,3번 공연을 한다고 한다. 오늘은 두 번 하는 모양이다.
이 출연하는 소수민족은 출연료를 하루 30위안을 받는데 한 집에 4 명이 출연하면 120위안을 받으니 구 수입이 어느 농사보다 나아서 낮에는 학교와 농사일을 하고 밤에 경운기나 오토바이 자전거를 타고 와서 매일 연출과 연습을 하고 돈을 받으니 그 어느 사람보다 인기가 높은 장예모 감독이다.
깜깜한 호수에 조명이 들어오면 노래하는 소년 소녀가 무대 앞에서 목청을 돋우고 이어서 배 한 척이 호수 가운데로 들어온다.
12개의 산봉우리가 은은한 조명으로 신비한 모습으로 나타나면서 쇼는 시작된다.
배 한척에 선 여인이 노래를 부르면 이어서 소수민족들이 횃불을 들고 등장한다.
이들은 산수에 명인들이다.
갑자기 소수가 붉은 천으로 변하고 사람들이 천으로 산을 만들기도 하고 배를 소리 없이 이동시키면서 다시 집어넣어 호수를 가득 채운다.
검은 밤 호수에 묽은 천이 호수를 가득 메우고 어부가 산과 물을 만들어가며 일사불란하게 우리 눈을 현혹시킨다.
red impression은 어부들의 강렬한 고기 잡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들은 그물을 걷우고 기쁨으로 자기들의 고향으로 돌아가면 거기는 빨래하는 여인, 소모는 목동, 뛰놀기도 하며 서로 아름다운 대화를 하고 음악소리가 태평하게 들린다.
은은한 노랫소리와 동시에 호수는 푸른색으로 변하고 가마우지로 고기를 잡는 어부가 등장하고 신기한 초승달 모양의 배가 호수에 등장한다.
한 선녀가 배 위에서 무용으로 뇌살적인 춤 모습을 보여준다.
뒤틀고 구부리고 눕고 뛴다. 팔짝 뛰다가 다시 몸을 튼다. 달의 여신이다.
이 여신은 처음에는 알몸으로 춤을 추었다가 지금은 얇은 망사 옷을 입고 춤을 춘다고 한다.
이때 유삼저가 등장하고 유삼저는 여신의 도움으로 평번한 목동과 결혼을 하게 된다.
신랑이 배를 타고 등장하며 유삼저가 맨발로 나가 맞아들이고 가마를 타고 마을 사람들의 호의 속에 결혼을 한다.
수수민족 200명이 은빛 찬란한 옷을 입고 어느새 호수가 긴 다리를 놓고 그 위를 한발 한 발 다가오며 우리 눈에 들어온다.
그 빛이 꺼지고 들어오고 반듯한 행렬이 꺾이는 데 묘한 맛을 더한다.
남방 민족이 차를 따는 모습이란다.
이 때쯤이면 그 찬란한 쇼도 마칠 시간인가 보다.
무대 앞으로 소수민족의 기를 단 차전이 행렬을 하고 출연자 모두가 나와서 노래로 마지막을 인사한다.
유치원 정도 꼬마부터 장성한 소녀 청년, 나이 든 농부가 모두 모여 박수를 받으며 노래를 부른다.
박수를 받으며 퇴장하고 사람들은 하나씩 일어나 자리를 뜬다.
싸늘한 느낌이 이제 들기 시작한다.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우리는 모두 그런 마음이 든다. 허전하기도 하고 웅성거리기도 하며 아주 높은 대나무 군집의 싱싱한 모습을 보며 엄청 많은 관광차 중에 우리 가이드가 알려주는 우리의 차로 들어온다.
온 마음이 감동으로 아직도 얼얼하다.
장예모 감독의 소수민족 사랑이 중국 애국인가 싶다. 위대한 사랑을 가진 예술가의 공연을 본 우리는 정말 좋은 구경을 했다 모두 말한다.
오늘은 신기한 것들만 보고 다녔다.
메모를 마음속으로 정리하며 내일을 위해 몸을 씻고 잠속으로 들어간다.
아참 오늘 호텔 안은 마지막 밤이라고 훈훈한 열기가 돈다.
가이드가 참 애를 많이도 썼다.
감사. 하나님께 감사. 모두에게 감사.
2010년 1월 14일 목요일 흐림 Gu
그림 100위안
양삭에서 계림으로 이동한다.
도화원은 동진 때의 시인 도연명이 쓴 桃花源記에서 유래되었단다.
인간이 바라는 신의 세계이며 인간의 이상향으로 생각되는 곳이 무릉도원이다.
후난성 북부에 농사가 풍부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상덕이란 곳이 있었는데 여기가 바로 무릉이란 곳이다.
한 어부가 배를 타고 가다가 桃花林이란 곳에서 길을 잃고 산길을 헤매다가 동굴을 발견하고 동굴 속을 따라 들어가다가 바깥세상을 나오는 순간 눈앞에 펼쳐지는 복숭아꽃 만발하고 평화로운 곳을 발견하게 된다.
배가 고프고 가난했던 그 사람을 후히 대접하고 먹을 것을 주며 손님 대접을 후히 받고 꿈속 같은 생활을 하게 해준 그 사람들은 독특한 의상을 입고 있었고 자기들은 진나라 때 난리를 피해 이곳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라 소개하면서 밖에 나가면 자기들의 일을 절대 말하지 말라고 하였단다.
어부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발설을 하였으며 그 후로는 아무리 이곳을 찾아도 동굴은 물론 그곳의 흔적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도화원기에 쓰여 있는 내용이지만 나중에 혹자는 어부가 가난했던 도연명 자신이었고 꿈속의 세계를 그려본 이상향이 도화원기의 무릉도원이었다고 말하기도 한단다.
도화원은 중국 역사에서 4대 도교승지의 하나이며 크고 작은 동굴이 설흔 개가 넘고 수많은 문인과 묵객들이 다녀간 곳이며 도연명, 맹호연, 왕유, 이백련, 이백 같이 유명한 사람들이 다녀가며 남긴 글들이 무수히 많이 자취를 남기고 있다.
입장표를 끊고 물이 얕아져가는 선착장을 빠져나와 어부가 지나갔다는 코스를 따라 유람선은 움직인다.
동굴 속을 어두컴컴하게 들어가면 굴 옆에 석순과 조각물이 나타나고 동굴을 통과하면 환한 세상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 겨울에도 복숭아꽃이 만발하여 우리 눈을 휘둥글게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관광객을 위한 인공으로 만든 조화를 나무에 붙여 놓은 곳이라 한다.
진의 특별한 의상은 옷을 입지 않고 살았다 해서 벌거벗은 소년이 튀어나오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노래하며 강둑을 오르락거리고 농부가 열심히 밭은 간다.
나무마다 마귀를 내쫒고 복을 오라하여 물소 머리뼈를 색칠하여 걸어놓고 가마우지로 물고기 잡는 어부가 강가에 배를 띄운다.
수초위에 물고기가 노닐고 우렁이가 빨간 우렁이 알을 나뭇가지며 돌 위에 뭍여놓고 야외 공연장에서는 아가씨 열 명이 교대하며 노래를 불러준다.
우리는 어부가 되어 꿈속의 이상향으로 들떠 있을 때 배는 이미 밖으로 나왔고 거기는 여기와 별 다름 없는 평범한 세상이 된다.
봉우리 감돌아 보니 이게 웬일 아까 우리가 출발한 선착장이 아닌가?
여기 나오는 도화족은 키가 작고 벌거벗고 사는 소수민족이다.
운남성에서 살고 있던 그들은 정부에서 땅을 주고 집을 지어주고 그들의 풍속을 지키며 살게 하였다.
지금은 동족, 묘족이 토산품을 만들어 팔고 있으며 입구에서 쌀로 만든 곡주를 한 잔씩 마시게 한다.
베를 짜고 조각을 하며 수를 놓고 그림을 그린다.
출구 쪽에 문을 통과하는데 위 누각에서 꽃을 든 소녀가 손에 들고 있는 인공 꽃주머니를 맘에 맞는 관중에게 던진다.
사랑에 빠진 사람을 도화원으로 데려다가 살 요양인지......
유종희 선생님에게 던진 공을 키큰 권해석 선생님이 받아들고 키 큰 덕을 자랑하며 목에 걸고 다니신다.
사랑도 가로채면 채이는 구나.
묘족은 사랑하는 사람의 귀를 잡아당긴다고? 귀 조심하며 밖으로 나온다.
때맞추어 가이드는 해남도 야자파는 아가씨의 이야기를 한다.
해남도는 중국의 가장 남쪽의 섬으로 중국의 하와이라 한다.
야자열매를 파는 묘령의 아가씨에게 진열대 위에 있는 야자가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큰 야자열매를 따오면 10배를 준다하여 치마를 입고 올라가는 아가씨를 감상했다는 이야기다.
화장실 옆에는 밑은 대나무처럼 테두리를 만들고 야자수보다 더 큰 잎이 달린 나무가 있는데 물고기 꼬리 같다 하여 위어나무라고 한단다.
처음 보는 나무여서 세 가족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외도화원이란 큰 글씨 비석 앞에서 도화원을 향하여 사진들을 띡었다.
어떻게 찍어도 경치가 좋아 사진이 잘 받는다.
벗를 타기 위하여 길가로 나오니 담 너머의 못생긴 아주머니들이 목에 아까의 사랑의 구슬을 판다. “두 개에 천원!!!!!!!!”
5백원의 사랑이었다면 몇 개라도 사고 싶지만 이들 소수 민족은 중국 소수민족 가운데 가장 못생긴 민족이라나?
안 받길 잘 했지......
1 시간 거리의 계림으로 이동
도중 유자 많이 나오는 길거리에서 유자 체험을 한다.
이미 내가 먼저 먹어 보았으므로 지나치자고 하고 싶으나 이 체험을 할 만한 체험이란다.
한 개에 4위안, 혹은 5위안 한다.
노란 수박덩이를 놓고 파는 것 같다.
큰 칼로 네 조각 낸 다음에 먹으라 하나 객이 먹기는 힘들어서 내가 속 조각을 내어 나누어 주었다.
여기 맛은 다른 곳보다 맛이 있는 것 같으나 우린 별로고 기사(익따꺼)는 열 개 봉지 두 개를 사간다.
집에서 기다리는 아이들에게 줄 것이고 이것은 부와 명예와 자손 번창을 기원하는 음식이라 모두가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니 길거리에서 많이씩 사가는 것이지......
30여분 남은 차안에서 정기범 할아버지가 마이크를 잡으신다.
정중하게 당신 소개를 하신다.
45년의 교직생활이며 지금의 노인대학 강의며, 담담하고 또박한 83세 답지 않은 카랑한 목소리로 여행의 의미를 소개하신다.
이 할아버지는 여행 내내 메모하시고 사진 찍으시고 먼저 가서 물으시고 답도 하시는 분이시다.
우리와 일행이 된 것이 무척 다행스러웠는데 한 번 마이크를 잡으시면 다른 사람에게 묻지도 주지도 않으시는 분이시다.
살짝 메모를 하여 두었다.
여행이란 가이드 말이 30%이고, 관광이 30%이고 나머지가 체험이라시며
1. 몸은 밖으로 마음은 안으로!
중국의 길거리에서 중국 국기를 보았을 때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태극기를 생각합니다. 맞습니까? 네!!!!!!!
2. 레크레이션 효과
활력을 얻으며 생산적 효과를 동반하는 것이 레크레이션의 효과입니다. 낮습니까?
3. 아름다움을 보는 미의식의 발달
작은 미소와 감탄을 가지고 여행을 합니다.
4. 여행은 그 사람의 인생과 정비례 한다.
시인은 시를 쓰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고 작가는 글을 쓰며 사색가는 생각을 한다.
5. 새로움에 대한 동경의 극치
보는 것마다 마음속의 동경심을 기른다. 새롭게 바라보고 새롭게 생각한다.
6. 자기 인생을 관조한다.
살아오던 걱정, 근심을 잠시 잊고 자유를 구가한다.
7. 여행은 한 권의 책을 읽는 것 같다.
새로운 주제를 여행동안 보고 간다. 보는 것이 몸으로 실지로 눈으로 읽는 독서와 같다.
8. 친교 효과를 나타낸다.
여행 동안 사귄 친구는 어쩐지 정답다.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충동을 가지게 한다.
그런 충동을 가지는 것이 여행이다.
맞습니까?
우린 박수로 답을 드렸고 매번 답을 강조하시던 할아버지는 마이크를 놓으셨다. 대단한 정력가이시며 기억력이다.
메모한 것을 본 것도 아니면서 술술 나오시는데 번호만 한 번 틀리셨을 뿐 막힘없는 대화를 나누셨다.
명 강의였다.
중간에 있는 임계군(신계림) 한식당으로 간단다.
길가에 오리 농장을 본다.
넓은 호수에 수천마리의 오리떼가 연못으로 들어가는 광경을 본다.
사람 사는 집이나 창고로 알았는데 오리의 집이었다.
수천마리가 환경미화원이 끌고가는 쓰레기차가 휴지를 주루루 쏟는 것 같은 오리 쏟음이 저것이다.
땅이 넓고 물자가 풍부하니 모든 것이 규모가 크다.
우리 오리 농산물이나 다른 어느 것보다 경쟁력이 트게 작용할 것 같다.
한식당은 조선족(할아버지가 대구에 사신다) 남자가 주인이다. 구수한 언변에 40도 짜리 고량주와 52도짜리 고량주를 한 잔씩 선사한다.
한국에서 먹는 음식과 맛이 비슷한데 두부 김칫국은 더 맛이 있다.
식사 후에 참깨, 흑미, 목이버섯, 악세사리 등을 판은 매장으로 인도한다.
참깨가 5킬로에 3만 5천원 이다.
1kg에 7천원이면 한국과 별 차이 없다.
예전엔 2만원이었다고 하자 올라서 그렇단다.
한국의 농산물은 자꾸 값이 떨어져 농민들이 울상을 하고 농토를 떠나려 맘먹고 있는데 중국의 농산물은 날이 갈수록 비싸지니 농민들이 신이 난다.
우리 농산물 올해 벼가 12만 5천원으로 떨어졌단다.
십여년 전에 쌀값이 17만원을 호가 한 것에 비하면 농민들의 불만이 이유 있는 항거이다.
목이버섯도 깎아서 사고 아래층의 꽃병, 조각품도 반으로 깎아서 사는 사람들이 제법 장사의 도를 턴 것 같다. 매매의 숙달된 조교답다.
오늘 오후 관광은 복파성 등정.
삼국지의 마초장군의 후손 동한의 마원이 복파 장군이다.
한나라 광무제 유수의 명을 받들어 교지(지금의 베트남의 마을)로 원정을 갔다.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약재를 한 마차 얻어 낙양으로 돌아온다.
조정에서는 복파장군을 시기한 많은 사람들이 복파장군이 귀중한 보물을 몰래 숨겨 왔다는 소문을 퍼뜨리고 마침내 보물을 숨긴 복파장군을 참수했다는 슬픈 이야기인데 그 약재가 바로 여기에서 나는 약재였던 것이다.
마원 장군이 죽은 후 도량이란 군관이 사실은 마원장군이 거짓을 말한 것이 아니라 나쁜 벼슬아치들이 모함하여 죽인 것이라고 간계를 올려 황제가 이 사실을 알고 마원을 복직시킨 교지를 내려 보냈다.
후에 마원의 청렴결백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 산을 복파산으로 명명하고 지금에 이른 것이다.
늠름한 기상의 동상이 계백장군 동상처럼 위용을 자랑하고 서 있다.
북파산 정원에 들어가면 네 가지 계수나무가 있다.
입구에 금계, 중간에 은계, 단계, 월계인데 단계는 영할고 떨어지면 얼어죽는다 하여 보살핌이 남다르다.
특이한 소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난송과 나한송, 난송은 가지에 솔망울이 있고 그 솔방울을 지나 다시 가지가 연결된다.
나한송은 열대기후에 맞도록 잎이 무성하고 바늘잎이 뭉쳐져 있다.
복파산 밑에 뚫려있는 동굴을 지나 천불동으로 들어간다.
승려상이 양 쪽 벽 위쪽에 있는데 서로 무슨 말을 하려는 듯 하다.
왼쪽이 당대의 불상이고 오른쪽이 송대의 불상이다.
두 시대를 차이에 두고 이런 대화를 한단다.
“ 사람에게 좋은 것은 야채와 뿔뿌리 뿐이군!” 그래서 스님들은 채식읋 주로 하는 가 보다.
오랜 풍상에 바위에 새겨진 부처의 동상과 글들이 부식되고 훼손되어가고 있다.
이들 화강암과 대리석은 빗속의 이산화탄소와 결합하면 부식되고 시멘트가 되고 석순이 된다. 이런 자연의 변화가 급속히 일어나고 있는 곳이 이곳 계림이다.
327 계단을 고불거려 오르면 엊그제 본 첩재산과 다른 봉우리들이 다 보인다.
여기가 시내 복판이란다.
독수봉(獨秀峰)은 청강왕성이다.
북파산 바로 앞에 있다.
계림에서 가장 오래인 명승지 독수봉은 시 중심의 명성왕대의 궁궐인데 지금은 대학으로 변신을 하여 사범대학으로 이름하고 있다.
평지가 갑자기 솟아올라 봉우리를 이루는데 올라가는 데 험상굳다.
14세기 주원장의 손주인 정강왕 주수겸이 세운 왕궁 가운데 우뚝 솟은 독수봉은 빼어난 봉우리란 이름으로 그 위용이 대단하다.
광서사범대학 학생들뿐이 아니라 모든 대학생들이 입시를 치르기 위한 국학당은 왕궁이 있던 자리란다.
청강왕은 4번째 왕이었고 가장 왕성한 왕조였다. 16대 왕의 초상화가 걸려 있고 유물들만 남아있다.
주춧돌과 왕이 오르는 계단만 남아있는데 명나라가 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자 마지막 왕은 그저 넘겨주기 싫어 왕궁을 불질렀고 다 타버린 왕궁을 지금 복원하여 관광지로 쓴다한다.
승주원에는 역대 왕과 마지막 왕궁의 모습의 영상만 볼 수 있다.
저녁 먹기 전에 실크공장을 들른다.
여기서 생산되는 누에가 아니라 남경의 소주 항주에서 생산한 비단을 판매만 하는 곳이다.
정말 구수한 안내자의 설명이 귀를 솔깃하게 한다.
쌍고치를 삶아 넓게 펴서 60겹이 되는 솜을 생산하고 직접 윌보고 펴보게 한다.
이불보, 솜, 벼개 등 여섯 가지를 33만원에 판매한다.
편리한 우리나라의 이불이 더 실용적인 것 같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1시간 뒤에 식사다.
국수를 주는데 비빔국수, 물국수, 요리국수다. 향이 있고 터벅거리며 막상 먹어보니 입맛 당기지 않는 듯 나만 두 그릇 먹고 남은 국수가 더 많다.
우리나라의 소비되지 않는 쌀도 국수를 만들면 많이 소비 될 것 같다.
이제 마지막 남은 코스는 모든 여행의 하이라이트로 양강 사호의 선상유람이다.
특별히 소매치기에 주의하란 말을 남기고 우리는 밤빛 찬란한 사호의 관광에 들어간다.
양강사호에서의 수상유람은 일찌기 당대로부터 송대에 이르기까지 한껏 꽃을 피웠다고 한다.
지금의 수상 유람은 이강과 도화강(桃花江) 등 2개의 강과 산호(杉湖)ㆍ용호(榕湖)ㆍ계호(桂湖)ㆍ목용호(木龍湖) 등 4개의 호수를 서로 연결한 물줄기가 도심을 관통하는 거대한 인공 호수다.
해가 진 뒤 유람선을 타면 수천 개의 봉우리로 둘러싸인 구이린 시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야경 코스를 위해 특별히 조성한 여러 개의 탑과 다리에는 아름다운 조명이 설치되어 있으며, 물 위에 세워진 정자에서는 배가 지나가는 시점에 맞춰 전통 공연을 한다.(금탑,은탑 레스토랑과찻집)
20억 위안(400억 원)이나 들여 조명시설 등등, 다리가 19개로 아름운치가 있다.
자료에 의하면 약 천 년 전, 계림은 성호수계를 형성하였는데 역사를 경과하면서 강과 호수가 격리되고 수질이 악화되고 문물이 물에 묻혀버리면서 계림의 수상명소가 종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천년고수로를 다시 이어놓은 양강사호는 아름다운 역사의 한 폐이지를 엮어 놓았다.
“千峰环野立,一水抱城流”(수천개 봉우리로 둘러 쌓인 도시를 순회하는 한줄기의 물)의 수성(水城)절정을 양강사호에서 느낄 수 있단다.
배를 타고 강을 따라 도시를 순환하노라면 세속을 벗어나 마음을 비우는 변화무쌍한 묘경 속에 들어선다.
첫째 산호에서 출발한다. 유명 인사가 많이 나온다는 산호
구리로 만든 9층의 금탑과 아연을 주 건축재로 사용한 은탑이 호수위에 금색과 은색의 조화를 이루며 조명아래 서있다.
호수위의 탑은 1층이 카페인데 물밑의 통로를 이용하여 출입한단다.
호수 주위의 찻집, 데이트 장소가 있고 돌조각을 한 중심의 양교 밑을 지날 tO 음악소리에 맞추어 물 높이가 다른 춤을 추는 분수가 있다.
분수를 통과하면 중심지에 계림의 시청이 보인다.
둘째 용호이다. 시적인 정취와 그림 같은 경지의 용호
호수 주변에 용나무가 많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아치형 다리(금문교)를 지날 제 큼직한 호텔들의 불빛이 보이고 일철교 두위에서는 가마우지로고기를 잡는다.
가마우지는 생각보다 큰 고기를 주인에게 물어다 주는데 큰 고기는 주인 작은 고기는 가마우지에게(80%주인,20%가마우지) 불쌍한 가마우지, 그리고 야행성이라 주로야간에 활동한단다.
유랍선 주위에서 두 척의 배가 가마우지로고기를 잡는데 어부는 긴 장대에 고깃바구니와 발목을 묶은 가마우지 네 마리 뿐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을 인식하고 발목 묶은 가무우지를 물속으로 보낸다.
호수에 들어간 가마우지는 30초 정도 지나면 손바닥만한 물고기를 목을 실룩거리며 물고 나오고 어부는 손으로 가마우지의 목을 쳐든 다음에 손을 넣고 물고기를 꺼내어 바구니에 담는다.
가마우지는 토해낸 물고기를 뒤로하고 또 물속으로 자맥질을 한다.
18년을 이런 생활을 하는 가마우지는 그러나 내가 보기에는 너무 가혹하다.
혹시라도 저 물고기의 가시가 가마우지의 목을 상처내지는 않는지?
피곤하고 하기 싫으면 잠시 물속에서 쉬었다 나오기라도 하지.
연신 물속을 들낙날락하며 충실한 머슴처럼 일만 하는 가마우지를 나는 측은지심으로 바라본다.
가이드는 유치원 정도의 아주 어린 꼬마가 천원! 하고 외치며 꽃을 파는데 사지 말랜다.
꽃을 팔면 뒤 어서 어른이 나와서 아기의 돈을 빼앗는다 한다.
앵벌이를 하는 것 이다.
마치 어부가 가마우지를 데리고 앵벌이를 하는 것처럼 생각되어 불쌍한 맘만 든다.
야 인마, 가마우지야. 물속에 들어가면 나오지 말고 쉬어라 늦게 나와라!
내말이 들리지 않는지 연신 잡아 올리는 물고기를 승객들은 좋아만 한다.
그래서 야생 가마우지 한 마리의 값은 물소의 값보다 더 쳐준댄다.
계호는 세 번째 호수이다. 수천(水天)일색의 계호
계수나무가 많단다.
여기 용나무 한그루는
뿌리가 나무보다 크고 넓게 펴져 물속에 뿌리를 박고 있다.
강둑을 버텨 자기 나무를 유지하고 있다. 위용이 대단하다.
조주경 다리는 물살이 세면 돌다리도 밀려나는데 연구를 하여 다리 난간마다 수로를 내어 빠른 물이 많이 흘러가도록 설계되어 있다.
교각에 통로는 만들고 양 가에도 물이 흘러가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다리 소개를 하는데 돌다리를 물이 잘 흘러가도록 하여 천 년을 유지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우리 조상이나 여기 조상들의 지혜가 대단하다.
종유석 다리를 지나면 산에 구멍이 뚫린 봉우리를 지난다.
이름하여 선학봉. 이 봉우리를 먼 데서 보면 학이 날개짓하는 모양이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조명이 아름답다. 구멍이 한 개가 아니라 아래에도 몇 군데 동굴이 있다.
마지막 목용호다. 소박하고 굳센 의지를 상징하는 목룡호는 흘러가는 물결과 조화되어 기상만천이다.
자연의 정취, 문화내포, 도시의 풍경, 생태적 의미, 생활의 취미를 한눈에 감상하며 갈 수 있는 호수이다.
첫날 구경한 첩재산의 바로 아래에 있는 호수이다.
물리 줄어들면 이강의 물을 흘러내려 수위를 조절한다.
관광객을 위해 자금성 모양을 만들어 놓고 사람이 살지 않지만 조명을 한다.
밖의 조명이 정말 그럴듯하다.
그 위는 이강이다.
여기서 우리는 돌아온다.
은은한 아쟁소리가 들리더니 광서사범대학 음악교수가 선상 손님을 위하여 음악을 연주한다고 한다.
무슨 대학교수가 할 일 없이 관광객의 활욱으로 연주하는 일을 할까?
그러나 관객을 중시하는 그들을 알게 하고 또 부수입으로 얼마는 벌 수 있지 않을까?
우리의 가락에 맞추어 같이 탄 팀의 여자들이 노래와 박수를 한다.
나는 휘파람으로 반주를 넣으며 마지막으로 아리랑을 연주할 때는 모두가 합창을 하니 교수는 더 흥겨워 보너스곡을 더 해주었다.
음악과 불빛과 물이 삼박자를 이루어 로렐라이 언덕을 스쳐가는 유람선이 되었다.
나올 때 고맙다고 중국말 인사를 한다. “라오쓰 씬꿀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대폭포가 내리는 날이란다.
마침 오늘이 목요일이고 선장의 말에 조금 있으면 폭포수가 내린다 하여 조금 걸어서 이강호텔로 향한다.
무슨 폭포일까 했더니 12층의 호텔에서 이강 물을 끌어올려 동시에 폭포를 만든단다.
세계 최대의 건물 폭포라 하여 기네스북에 여기도 등재 되었다.
10분 동안 쏟아져 내리는 폭포는 또 다른 구경거리가 된다.
길거리 사람들 틈을 비집고 두 청년이 우리 주위를 맴돈다.
얼핏 눈을 보니 눈동자가 번쩍거리고 눈빛의 세기가 남다르다.
한 번 보아 소매치기가 분명한데 우리 주위에 오지 못하도록 몸으로 막고 가방을 다시 한 번 앞으로 걸쳐 매었다.
폭포수 구경이 마쳐지고 다시 버스로 올 때 나와 아내의 뒤를 뒤 쫒는 그 둘을 우리 뒤에서 유선생님과 권선생님이 바짝 붙어 따라오지 못하게 방해를 했단다.
소매치기가 실패로 돌아가자 그 녀석들 홱 돌아서며, “씨!”하고 소리치고 달아났다나?
우리를 호위해준 선생님께 감사하고 하마터면 우리가 소매치기의 희생물이 되어 고국에도 돌아오기 힘든 상활이 될 뻔 하기도 했다.
마지막 호텔의 밤이다.
나이가 젊었다면 길거리 야시장을 돌기도 하고 노래방도 갔을 법 한데 우린 몸을 씻고 감사하고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잠으로 들어간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려운 여행도 거뜬히 이겨내도록 힘주시고 건강 주심을 감사합니다.
항상 나의 편에 서 계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2010년 1월 15일 종일 비
그림 100웬, 과자대나무상자 5개 22,000원
마지막 관광 아침이다.
아침부터 비가 온다. 오후부터는 날씨가 추워진다고 소영광 가이드가 어제부터 말하였는데 정말 비가 안개 낀 아침처럼 온 천지의 해를 가렸다.
새벽에 일어나서 어제의 일을 2시간 동안 정리를 하고 목욕하고 아침을 먹으러 2층 식당으로 간다.
마지막 식사인줄 아는 지 식탁이 간소화 되었다.
달걀 후라이도 없고 과일도 없는 것이 많다.
저쪽 10명의 교회팀의 아주머니들이 비닐봉지에 먹다 남긴 과일이며 빵을 싸는 것을 식당 종업원 아가씨가 보고 그리하지 못하도록 감시를 하는 것 같다.
우리 팀도 남은 음식을 시장할 때 먹으려고 몇 개 사놓았는데 음식을 가지러 간 사이 가방에서 꺼내어 식탁에 내어 놓았다.
약삭빠른 행동이지만 결코 달갑지 않은 모양이었다.
알고도 모른체 하는 것이 가진자의 베품이 아니던가?
꼭 먹기만 하는 것이 원칙은 아닌 것 같다.
전번 내이멍으로 여행을 가는데 거기는 한 번 차를 타면 2시간에서 4시간 사이다.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빵이 남아서 종업원에게 남은 빵을 가져가면 안 되느냐고 물으니 좋다고 하면서 오히려 봉지를 가져다가 듬뿍 싸주던 인심과는 사뭇 다른 인심이다.
호텔 방온도 낮추어서 잠이 깰 정도로 춥게 하고 다른 서비스도 별로인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약아져버린 관광호텔이 된 것 같다.
여기서는 밖에 나와서 식사를 하는 광경을 가끔 본다.
집에서 국수를 끓여서 밖으로 나오는 습관이 아마도 추운 집보다는 밖이 낫다는 생각을 하는 모양이다.
길거리에 의자를 놓고 아이도 어른도 먹는 광경을 볼 수 있다.
또 남방 사람들은 여자들도 잠옷 바람으로 길거리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단다. 그들 특유의 습관이란다.
9시가 되어 우산공원으로 간다.
우산공원은 장개석 총통의 휴양지로 유명하다고 한다.
두 개 지역으로 나뉘는데 우산 관광구역과 우산 오락구역이다. 관공구역은 우제사당, 집아원, 남훈루, 오복탑, 구중천 등으로 되어 있으나 비가오는 관계로 우제사당쪽을 보기로 한다.
우산공원은 요순시대의 순 임금이 남방을 다녀갈 때를 기리고 당나라때 이곳에 사당을 세운 것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는 舜(순) 임금의 이름을 따서 순산으로 했다가 훗날에 우산(虞山)으로 고쳤다고 한다.
우는 순임금이 국호로 정한 것이기 때문에 우산으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 본다.
우산공원은 1977년에 조성된 것으로 치수정책을 중요시했던 순임금을 기리기 위하여 물을 테마로 해서 조성되었다고 한다.
여러개의 동굴에는 체조를 하러 고원에 나왔다가 비를 피하여 그 속에서 춤도 추고 무술도 하는 모습도 본다.
큰 동굴 속으로 가니 장개석이 숨어 있었다고 하는 대리석 의자가 있다. 부인과 같이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부하들이 배려한 것이란다.
그 뒤로는 용의 조각 밑에 여러 가지 물고기들의 조각이 보이고 배를 쑥 내민 동자승이 누워있다.
검은 색인데 배를 하도 만져 닳아 있었다.
그 뒤로는 여러 가지의 수석들이 전시되어 있다. 4대 명석중의 하나인 초석이 유명하다고 한다.
그 동굴을 감돌아 나오면 장개석의 기거하던 집이 나온다.
장개석의 침실이 있고 전화기, 책들, 등잔불과 사진화보가 있다. 미인의 사진과 그림이 있다. 장개석의 부인이 송미령인데 아주 미인이란다.
중국의 4대미인이 양귀비, 초선, 서씨, 왕소군인데 송미령도 미인에 속한단다.
4대 미남은 누구일까?
장개석, 주원래, 김일성, 스탈린이라고 가이드가 말한다.
우제사당의 뒤뜰에는 장개석의 스승이란 성인의 동상이 있다.
청동으로 만들었는데 하도 머리를 만져 반질반질하다.
이분의 머리를 만지면 머리가 좋아진다고 하여 많은 사람이 만져 유리처럼 윗부분이 반들거린다.
우산을 들고다니며 관람하니 약간은 불편도 하다.
나는 기능성 점퍼를 입어서 비가와도 상관이 없다.
이어서 요산으로 간다.
요산케이블카는 가장 높은 요산에 있는데 계림의 정경을 가장 넓게 볼수 있다고 한다.
오늘은 비가 와서 다 볼 수 없는 것이 약간은 불만이란다.
가이드는 우리가 방문할 산이 이산도 아니고 조산도 아니고 요산이라고 한다.
요산으로 가는 길은 아직도 포장이 안되어 비오는 가운데도 포장하느라 바쁘다.
한적한 산길로 오르다 보니 오른 쪽에 공동묘지가 눈에 들어온다.
상당히 많은 묘지는 돌로 둥글게 벽을 만들고 거기에 관을 놓는다 하다.
특이한 것은 관을 눕히는 것이 아니라 세워둔다고 한다.
처음 듣는 관의 보관에 대한 이야기다.
이들 묘지는 오래전에 만들어진 것으로 요사이는 매장이 아니고 화장이란다.
주은래는 자기가 화장을 먼저 하게 하고 다른 국민들도 화장을 하에 하여 이제는 화장문화가 중국 전역에 법으로 되어 있단다.
여기서는 각종 개발로 묘지가 있는 곳을 개발하려면 미리 묘지를 이장하라고 1개월 여유를 준 다음 그 뒤는 불도져로 싹 밀어버려도 말을 못한다고 한다. 개발되는 곳이 한 군데 보였다.
요산을 계림에서 유일하게 케이블카를 타고 가는 곳이다.
1천미터를 오르면 여러 가지 신비로운 경치를 관람할 수 있으나 오늘은 비를 맞으며 둘씩 앉아 안개 덮인 산이 가끔씩 봉우리를 들어내면 사진을 담은 것으로 만족을 했다.
정상에 오르면 꼭대기에 망일봉(望日峰)이란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의 가장 동쪽으로 해가 오르는 모습을 관망한단다.
이름하여 Sunrise View!
정자간판에는 雲中閣이 보인다.
구름속에 뭍힌 요산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웃기는 것을 보자.
대나무를 둥글게 둥글게 실톱으로 오려서 벽게 걸면 벽걸이, 상에 놓으면 과자나 과일상자. 가져가기 쉽게 포장을 해 준다.
한 개에 만원을 두 개에 만원으로 눈물까지 보여가며 마지막 흥정을 하여 몇 씩 샀는데 내려와 버스 타다가 보니 세 개 만원! 세 개 만원! 하고 외친다.
수림석이 있는데 한 개에 25만원이다.
이것 우리 집에 있는 수림석 댓 개가 상당한 값이 나가는 것이란 것을 알았다.
이 사란들의 장사하는 것은 보아도 보아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까 샀던 사람이 싼 값에 한 번 더 사기도 한다.
산수도 그림 3백 웬을 100웬으로 흥정하여 가지고 온다.
계림에는 물이 많아 수력발전이 80%를 차지한다.
물이 적을 때는 단전을 한다.
그래서 정부에서는 수력발전소를 개인이 세울 수 있게 하여 개인이 쓰고 남는 전력을 국가에 팔게 한다.
개인이 세운 수력발전소가 50개 이상이란다.
오토바이가 많고 비가 많으니 오토바이 비옷이 있다.
비가 오면 오토바이를 앞에서 뒤까지 씌울 수 있는 비옷이 있다.
물론 자전거 비옷도 있다.
자유중국에는 오토바이 비옷이 없어 그곳 사람들이 오면 오토바이 비옷을 많이 사간다. 아이디어다.
필수라는 동물이 있다.
용의 아홉 번째 아들로 먹는 머리만 있고 똥을 싸는 항문이 없다.
그래서 돈을 벌기만 하고 쓰지를 않는다.
사람들은 필수의 상을 대문에 세우고 자기 집의 부를 기원한다.
중국 사람은 세 가지 소원이 있다.
소주 항주에서 태어나고
광주에서 먹고
계림에서 주기가 소원이란다.
계림에서는 담향목이 나는데 관을 만들면 100년이 가도 썩지를 않는다.
개 이야기
계림 도로는 교통이 문란하다.
오토바이 도로, 자전거 도로, 인도, 차도가 있는데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사람이 자동차 길로 무질서하게 달린다.
급하게 달리던 관광차가 길거리 나온 개를 치여 죽였다.
바빠서 그냥 달려 돌아오다가 개 치인 시각부터 기다리던 동네 사람들에게 봉변을 당한다.
개 값이 300웬인데 600웬을 내란다.
300웬반 낸다고 하니까 차 밑에 드러눕고 소리지르고 차를 움직이지 못하게 한다.
왜 600웬이냐고 하니까 그 개가 임신을 하여 두 마리라고 한다.
경찰까지 불러서 500웬으로 사건을 해결했다고 한다.
점심을 한식집인 金韓苑에서 한다.
불고기를 구워주는 아가씨. 된장과 멸치 김칫국이 맛이 있다.
밥을 한 그릇 더 목고 불고기도 정주양반이 이인분에 11,000원에 웃돈을 주고 더 사먹는다.
오랜만에 불고기 맛있게 먹었다.
라텍스 가게와 진주가게를 들른다.
여행관광에 포함해야 한다고 한다.
가이드의 부탁으로 가 보았으나 규모는 커도 살 맛이 안나는 값이다.
쇼핑도 마지막이다.
이제 관광 마지막 천산(穿山)등정이다.
천산공원(穿山 公園)
산과 물과 동굴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는 천산(穿山)공원을 향해 올라갔다.
해발 224m 높이의 천산(穿山)공원을 오르는 길 역시 가파른 돌계단으로 시작되었다. 비가 와서 미끄러우므로 조심하란 당부를 하면서 올라간다.
그 모습이 한 마리의 수탉 같다.
건너편 탑산(塔山)꼭대기에 서있는 아름다운 7층 수불탑(壽佛塔)을 바라보며 올라선 천산(穿山) 중턱에는 복파장군이 쏜 화살이 뚫고 지나갔다는 거대한 동굴이 뻥~ 뚫려있다.
그림과도 같은 계림 시내 풍광을 멀리 내려다보며 동굴 모서리 오른쪽 돌계단으로 올라 미로처럼 뚫려있는 바위굴을 지나니 작은 광장이 하나 나타난다. 종유석도 있고 부처를 새긴 동상도 있으며 비문도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계림시 동남쪽에 위치한 천산공원. 산과 물, 동굴이 함께 어울어진 공원이다.
공원에는 천산(穿山:뚤린 산) , 탑산(塔山) 이 있으며 이강의 지류인 소동강이 그 사이를 유유히 흐른다.
몽환이강쇼(Moonlight Circus and Ballet)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중국의 전통 민속쇼와 서양 발레가 어울려 조화를 이룬 몽환 이강쇼는 중국의 계림에서만 볼수 있는 쇼란다.
1시간 20분간 공연을 하는데 중국 남녀의 일생을 다루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기묘한 환상적인 기술로 묘사한다.
담배와 사진 찍기를 금지한다는 멘트가 서너 번 나오고 시간이 되면 곧바로 안개를 뿜으면서 우산 돌리기, 기둥 튀어 오르기, 창으로 보여주는 기술, 모자 돌리기, 가녀린 소녀의 등불을 발로 손으로 머리로 들며 몸을 뒤트는 기술은 기술이 아닌 신기에 가깝다.
의자쌓기, 굴렁쇠 돌리기, 마지막 총 출동을 하며 막이 내리는데 밖에 나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하는 점이 인상적이다.
대부분의 출연하는 배우들은 고아나 아주 가난한 아이들을 골라서 정부에서 훈련시키고 급료도 주어서 쇼를 하게 한다.
몽환은 꿈속에서 볼 수 있는 쇼란 뜻이란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우리는 비행장으로 가야 한다.
가이드는 우리가 출국하기 쉽도록 빨리 가기 위해서 관광차를 입구 바로 앞에 대어 놓았다. 찾기가 훨씬 쉽다. 공항으로 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을 본다.
비가 오면 교통사고가 잦은 것은 어느 곳이나 공통이다.
40여 분을 달려서 공항에 도착한다.
가이드는 국외선의 수속을 밟아주지 못한다.
바로 수속하는 곳에서 짐을 밭기면 거기서 비행기 표를 주며 다음에는 수속을 밟아 가라고 하고 우리와 이별한다.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이제 우리가 스스로 출국수속을 밟는다.
전자여권이 나온 뒤로는 출국수속이 쉽다.
짐을 맡기면 비행기표가 나오고 비자를 가지고 검표를 하면 바로 화물의 검색을 한다.
라이터와 액체로 된 것은 반입이 금지된다.
정기범 할아버지는 담배를 피우시기에 담배갑 속에 라이트를 넣으셨는데 검색대를 지나는 동안 발각이 되어 가지고 나오시지 못했다.
나는 치약을 넣고 나왔는데 통과가 되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 11시 40분 비행기가 우리를 태우고 그리운 한국 땅으로 돌아 왔다.
4시간 반 동안의 밤하늘을 날아 우리 집으로 간다는 것이 얼마나 그립고 흐뭇하고 눈물 날 일인가는 춥고 어려운 여행을 해본 자만이 가지는 고마움이다.
앉아서 이야기 하고 이메일을 적고 다음에 만나 다시 한 번 가자고 하는 것은 여행이 주는 친교의 아름다움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떤 경우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어찌 우리가 한시를 살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아멘!
첫댓글 선춘씨 여행기만 잘 모아 놓아도 훌륭한 자료가 될 듯. 12번째 중국 여행, 다음은 어떤 일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