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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버글거림으로 어김없이 찾아온 5월은 다음을 기약하는 공허한 어울림과 함께 이미 끄트머리에 다다르던 며칠 전, 장충동기 김종필로 부터 원주의 김명성의 '집 들어올리기' 초대를 받고는 옛 친구들을 하나 하나 찾아 보는 것이 나 에게는 또 하나의 새로운 즐거움이 되어 있기에 흔쾌히 응하였고 더불어 민수와 준수도 이 행복한 동행에 동참하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5.28) 술 한병을 들고 멀리 있는 친구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노래했던 옛 어른들의 풍류를 닮고 싶던 나 였기에 아내가 장식용으로만 고이 모셔왔던 양주 한 병을 가방속에 집어 넣는데 아무 거리낌 없는 그야말로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남자가 되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잔머리를 굴린다. 어차피 빠져나간 빈자리만 채워넣으면 아내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할 것 이기에 비슷한 빈 병하나 구하여 소주에 보리차를 부어 놓기로...
준수와의 만남을 위하여 집을 나섰다. 늦은 5월의 따사로운 했살이 눈이 부시도록 맑았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보니 맑기 보다도 눈을 뜰수 없도록 시려움이 느껴와 선글라스를 껴야만했다. 어제보다 짙어진 라일락의 향기와 가벼워진 지나가는 이들의 옷차림이 그 새 지루함을 느꼈는지 화려한 계절의 여왕을 저 멀리로 떠밀고 있었다. 아니 저만치 서있는 뜨거운 여름을 성급히 불러 들이고 있는 듯 하였다.
파주(봉일천)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초등학교 2~3학년 정도 되는 녀석들이 삼삼오오 서 있었다. 생긴건 분명 한국놈들 인데 지들끼리 "what do you want me?" " i'm very tired." "let's go to study english." 등 영어로 떠들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영어로만 강의하고 고급 호텔에선 한복 입장 불가하고 조그만 구멍가게 조차도 '마트'라 이름을 붙이느 현실의 아득함에 잠시 숨이 턱 막혀온다.
잠시 동안의 우울함을 뒤로 하고 나는 이내 도착한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에 오르자 습관처럼 나는 맨 앞좌석에 자리를 잡는다. 젊은 날에는 주로 뒷좌석을 선호 하다가 지인들과의 대화의 주요 화두가 '건강' 이라는 단어가 자주 오르내렸을 때 부터 맨 앞좌석에 앉아서 느긋한 자세로 넓은 운전창 너머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는 것은 마치 '운좋은 과부는 자빠져도 고추밭에 자빠지는' 것과 같이 내가 버스를 타는 색다른 즐거움이고 그 즐거움이 나를 더욱 안락케 하기에 충분했다.
그런 안락감에 묻혀서 차창밖으로 스치는 가로수들에 이따가 보게될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세겨가며 모습을 떠올린다. 배 나온 얼굴, 홀쭉한 얼굴, 안경쓴 얼굴, 흰머리 얼굴, 미소가 환한 얼굴, 하얀이가 가지런한 얼굴, 이마가 빛나는 얼굴...거의 20까지 세었을때 라디오에서 나훈아의 '무시로'가 흘러 나왔다. 나훈아 특유의 꺽어지며 끊어지는 무시로의 잘잘한 울림은 이내 애써 그려 놓은 친구들의 얼굴을 지워 버렸다.
...이별보다 더 아픈게 외로움인데... 이 가사가 마음에 딱 다가와서 잔잔한 파문을 일게한다. 아들놈의 아빠라는 호칭이 아버지로 바뀌면서 부터 이별보다 외로움이 더 나를 비틀 거리게 하는거 같았다. 외로움이 마음속 한 구석에 지워지지 않는 깊은 생채기로 남겨져 시도 때도 없이 아리게 할 때 마다 독한 소주에 몸을 담그면서 서서히 벗어 나게 해주었으나 그건 잠시 뿐 어느새 다시 또 그 곳에 자리를 잡고 나를 희롱하고 있다.
바같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게 외로움을 가지고 들락 날락 하는 사이 차 내에서는 목적지를 알리는 기계적이고 정감 없는 안내방송이 흘러 나와 무시로의 가락을 무심히 끊어 버리고 흔한 '안녕히 가십시오!' 라는 인사도 없이 나 보고 어서 내리라고 재촉 하였다. 3~4명의 승객을 뱉어낸 버스는 무엇이 그리 급한지 뒤도 안 보고 문도 안 닫은채 냅다 앞으로 달려갔다.
버스에서 내리자 마자 먼저 와 있던 민수의 흔들 거리는 손 인사가 방금 까지도 머리 속에서 맴돌던 외로움을 말끔히 지워 버렸다. 한층 가벼워진 마음으로 민수의 손을 잡으며 서둘러 준수가 지정한 약속장소로 향하게 하였고 이미 준수는 저 멀리서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엊그제 명종이 모친의 장례식장에서 빨강 뚜껑의 참이슬을 맞잡고서 다시 보는 얼굴들 이었으나 만날 때마다 항상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오는 얼굴 들이다.
다가온 준수는 바로 옆의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하얀 대문의 너른 마당 한 가운데 마침 뜨거운 태양을 가려줄 아담한 파라솔이 놓여있었고 저 편 한구석에는 냉장고 받침대로 제법 모양을 내어 만들어 놓은 닭장 안에서 닭 두마리가 정겹게 날개짓을 하면서 우리를 반기는것 같았다. 준수는 그런 닭들에게 다정한 눈빛을 보이며 모이를 건냈다. "이 놈들이 알을 무척 잘 놔"라는 말과 함게...
따거운 햇살을 피해 파라솔에 자리 하였을 때 대학생인 준수의 딸아이와 고3 막둥이 사내녀석이 공손하게 아버지 친구들께 인사를 한다. 맑은 빛을 지닌 녀석 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라, 부모님 말 잘들어야 한다.!"라는 상투적인 덕담 보다는 좀 더 근사한 덕담을 건네고 싶었으나 막상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아 미소로 대신 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곧 이어 얼움 동동 띄운 냉커피에 과일을 곁들여 내 온 준수부인과 인사를 주고 받았다. 조심 스럽고도 조신한 말씨의 아내를 다정히 바라보는 준수에게서 아내에 대한 깊은 애정과 사랑을 읽을 수 있었음이 더 없이 흐믓하였다. 유난히도 하늘이 뜨거웠고 그 만큼 갈증을 쉬 느끼던 터라 보통 이상의 커다란 글라스의 냉커피를 단 숨에 들이켰다. 냉커피의 진하고 깊은 한기는 양쪽의 관자놀이를 띵하게 하였으나 오래 가진 않았기에 몆 번을 더 들이킬수 있었다.
시간에 때 맞추어 준수가 점심을 하자며 준수동네인 조리읍에서 개최하는 자선 바자회장으로 향했다. 이미 많은 양의 냉커피와 과일로 허기가 가셨으나 반갑게 친구들을 맞이 해주는 준수의 넉넉한 여유에 거릴 것 없이 따라 나섰다. 거리를 걸으면서 준수는 여러 사람들과 스스럼 없이 안부를 주고 받는다. 지나치는 모두가 선배 아니면 후배 또는 친척 이상의 친밀함으로 엮인 작은읍내의 소박한 관계들이 푸근히 다가와 미소짓게 하였다.
바자회장에 들어서며 자연스레 준수의 가까운 지인들과 잔치국수를 함께 하고 주문한 막걸리가 나오지 않아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으나 그래도 우리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주최측에서 지금 사러 간 막걸리를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촉박하여 일어서야 했으며 돌아서는 길에 준수 초등학교 여동창의 골 때리는 술버릇을 듣고 나하고 민수는 깔깔 뒤집어 졌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그녀를 보고싶다. 그리고 그녀의 얘기를 듣고싶다. 본능에 충실한 것인지, 삶 자체를 즐기는 낙천성이 어디서 비롯 된 것인지 묘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면서도 지금의 이 나이에 만나서 격의없이 스스럼없이 빨강뚜껑 참이슬을 마주 하고 나름대로 아픔을 토로하고 감싸줄수 있는 그러한 여동창이 있는 준수가 부러웠고 '나도 그런 초등학교 여동창이 있었으면'하고 은근히 바랬었다.
이윽고 민수와 나는 준수의 차에 오르고 목적지인 원주로 향하였다. 유명모델 나오미캠벨의 매끈하고 잘 다듬어진 각선미를 닮은 듯한 토요일 오후의 외각도로는 생긴 것 만큼이나 우리를 쉽게 빨아 들였고 그 위에서 우리는 아스라히 희미해진 지난 조각들에 대하여 하나 하나 맞추어 갔다. 발이 넓은 민수에 의해 주로 확인이 되어지고 그럴 때마다 안타까움과 미련이 교차하며 짙은 한숨과 회한에 창밖을 바라 봐야 했다.
한참을 얘기하던 민수가 불현듯 생각이 난 듯 우리 동기 왕보현에게 전화를 때린다. 수화기 저 멀리서 흘러나오는 왕보현의 음성이 경쾌하게 다가온다. 얼마전 까지 힘들게 암투병을 하다 이젠 완쾌가 되어 다시 직장에 복귀했다고 한다. 그 시절 카메라를 자주 들고 다니던 기억으로 남아 있던 보현이의 모습은 얼마나 변해있을까? 일요일이면 아직도 남대문교회에 다닌다고 하니 언젠가 한 번 들려봐야 할 거 같다.
맛깔스런 민수의 입담과 곁들여진 준수의 익살스런 추임새에 빠져 있다보니 차는 어느새 남원주IC에 들어서고 있었다. 남원주에 들어선 우리는 약간의 혼동은 있었으나 내비양(?)의 상냥한 안내에 따라 어렵지 않게 명성의 보금자리에 닿을수 있었다. 야트막한 구릉지에 아담히 자리잡은 전원주택단지는 다가서는 낯선이의 접근에 부끄러워인지 손을 감춘듯 하였기에 우리는 조심스레 두리번 거려야 했고 길지 않은 약간의 헤메임 끝에 집주인의 결기를 닳은 '김명성, 김경희의 보금자리'라는 단단한 안내석이 우리에게 손짓을 한다.
-김명성, 김경희의 보금자리-
곧 이어 집 안쪽에서 명성이가 다가 와 서로의 반가움의 손을 잡는다. 작년 12월 장충동기회에서 명성이를 보고 - 중간에 통화는 한 적이 있지만 - 거의 5개월 만의 만남이다. 그 때보다 얼굴이 좀 야윈것 같았으나 약간의 희끗한 머리칼과 함께 건강하고 넉넉한 중년의 모습으로 서있는 명성의 모습이 유럽풍의 정갈한 하얀주택과 정원의 푸른 잔디와 잘 어울려 보기 좋았다.
먼져 도착 해 있던 홍사구, 이상관, 홍석우, 최병긍 에게도 우리의 도착을 알리며 정감있고 푸근한 음성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 하였다. 오늘의 호스트인 명성이는 숯불을 피우느라 음식 나르느라 멀리서 찾은 친구들을 위해 조금 이라도 더 편케하려는 듯 분주히 움직였으며 덩달아 친구들도 함께 나르고 옮기고 하면서도 모두들 명성의 귀거래사에 조금씩 빠져 들었다.
-민수, 준수, 병긍-
-명화, 사구, 종석-
-종석, 인수-
나는 정원을 찬찬히 둘러 보았다. 가지런히 잘 다듬어진 잔디와 더불어 아직은 크게 자라지 않았지만 심은 지 얼마 안된것 같은 자그마한 묘목들, 아이들의 입학과 명성의 육사입교등 각 기 하나씩의 사연을 담고 있는 정원석들, 현관입구에 단단히 버티고 선 커다란 석조물들, 어두워 지면 더욱 운치를 더해줄 정원등, 얕게 내려않은 화훼식물들 이 들 모두 모두가 적절히 자리하고 어울려져 소담한 풍경화로 서 있었다.
그것들 하나 하나가 결코 흘려 보낼 수 없는 소중한 땀의 결실 이었고 지난 했던 지난 날에 대한 보답으로 다가 왔기에, 또 거기에 명성이의 희망과 소박한 기쁨을 담아 놨기에 그는 그리도 소중히 심고 가꾸고 어루 만지고 쓰다 듬으며 즐거이 성심 성의껏 그 것들을 돌봐 왔을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명성이가 여지껏 살아온 삶의 방식이었을 것이다.
잠깐 동안의 생각에 빠져 있을 겨를도 없이 주변의 분위기가 약간 들뜨는걸 봐 명화부부와 성인이가 도착한 거 같다. 뒤 따라 신종원이 부인과 함께 도착했고 이종석, 종필이 부부가 그 뒤를 이었다. 신종원과 이종석은 교문을 나선 후 오늘 처음 보는 것 이었으나 서로가 단 번에 알아 볼 수 있었다. 그 날 이 후 시간은 그렇게 우리의 모습은 바꾸어 놓았으나 가슴까지 바꿔 놓기에는 우리들의 가슴이 너무 넒었나 보다.
-명화, 종원-
30여년전 재회의 기약없이 뿔뿔이 흩어졌던 친구들은 고교동기라는 끈끈한 인연의 끈에 엮여 오늘 다시 이 넓은 지구 땅 덩어리의 아주 작은 부분에 불과한 대한민국 강원도 하고도 원주의 김명성집에서 다시 얼굴을 맞대게 되었다. 혹 자에게는 너무 거창하게 노가리를 푼다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으나 살아 오면서 이 보다 더한 아름다운 인연이 어디 있겠는가? 하여 나는 이 상황을 이렇게 외에 달리 표현 할 수가 없었다.
명성의 '집 들어 올리는 잔치(?)'라는 명목 하에 우리는 모였지만 내용적 으로는 축제였다. 해마다 어김없이 5월이면 찾아 오는 축제를 한 동안 잊고 지냈었다. 화려하고 요란스런 웃음 뒤에 찾아오는 매스꺼움과 속쓰림은 축제를 가장한 비즈니스일 뿐 이었다. 그 안에서는 그 어떠한 감동이나 순수한 환희를 맛 볼 수가 없었다. 그러했기에 내 스스로가 거기서 멀리 비켜 있었다.
풍요로운 자연과 더 할 나위 없이 정겨운 친구들, 그리고 술이 있었기에 축제가 갖추어야 기본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었다. 미팅에서 팍 필이 곷힌 그녀가 애프터를 받아들여 처음 나설 때의 설레임과 함께 그렇게 우리의 축제의 밤이 시작됐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모두가 모여 해맑았던 고삐리 시절의 얼굴을 하고 기념사진을 한 판 박은 후 하늘을 올려보니 조금 전 보다 약간은 하늘이 내려와 있는것 같았다.
-모두 모여서 인증샷 꽁!!-
-주인장 환영사-
-명화, 성인, 명성, 인수-
주인장 명성이의 환영인사를 시작으로 자연의 품에 던져진 우리들은 '술과 친구는 익을수록 진국' 이라는 옛선인의 가르침을 더욱 실감 하게 되었다. 이렇게 밝게 웃어 본 지도 꽤 오래된 것 같다. 또 이렇게 맑고 투명한 미소를 본 지가 얼마 만 인지 모르겠다. 그들 하나 하나의 모습을 간직하기 위하여 나는 12시를 앞에둔 신데렐라의 심정이 되어 쉼 없이 셔터를 눌러댔다.
또한 중학교 어린 나이에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려워진 가정형편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로 자신의 앞날을 설계하고 개척하여 지금의 자리에 우뚝 선 명성이의 스토리(명성이의 별명인 '노가다'의 유래 中)가 가슴을 울컥하게도 하였고 명성이는 아내에게 언잖은 일(뿔날 일)이 있으면 사슴뿔을 든다며 직접 시범을 보였고 그 모습을 본 명성의 아내의 수줍움 띈 미소가 자리를 환하게 밝혔다.
-명성이 뿔났을때 (야마 돌았을때)-
-수줍어하는 명성이 마난님-
-오늘을 빚내주신 마나님들-
-종필, 석우, 명화, 병긍-
-사구, 종원, 종석-
-상관, 성인-
우리 친구인 이대근(3학년때 2반)이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되었단 종필의 소식에 모두가 두 손 모아 내 일처럼 축하를 해주었다. 한순배, 두순배 곁들여 살아온 흔적들을 주고 받으며 서로의 얼굴이 옅은 진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단 걸 보았을 때 근처 어디 에선가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하루 종일 길게 따사롭던 햇살은 이미 자기 책임을 다 하였다는 듯 서서히 별빛에 자리를 내주려 하였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는것 같자 소리꾼 성인이 나서서 한 자락 뽑아낸다. 춘향전중 사랑가의 한 대목이라는데 국악에 관한 한'제비 몰러 나간다. 후리러 나간다...' 정도만 알고 있는 나 였지만 성인의 묵직하고 걸죽한 중저음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자락의 소리는 이미 희미해져 버린 태양을 잡아 두기에 충분 하였고 벌어진 입을 한 동안 다물지 못하게 하였다.
-성인의 소리 한자락-
-절정에 이른 제비 후리러 나간다~~-
-마나님들 감동-
-친구들도 감탄-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다-
-덩달아 얼굴 빛이 환하다-
-명성이 마나님과 함께한 명화부부-
-'2011의 종석이 얼굴-
-'2011의 상관이 얼굴-
-'2011의 성인이 얼굴-
-'2011의 명성이 얼굴-
-'2011의 사구 얼굴-
-'2011의 병긍이 얼굴-
-'2011의 준수 얼굴-
-'2011의 민수 얼굴-
-'2011의 종원이 얼굴, 그리고 종원이 마난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다-
분위기가 깊어 갈수록 점점 짙은 진홍색의 얼굴빛이 되어가는 우리들을 시샘하듯 처녀가 아기를 품고 누워 있는 모양이라 이름 붙여진 건너편 처복산(?) 너머로 서서히 붉은 노을이 피어 오른다. 징관 이었다. 잠시 전에 다물렸던 입 들이 다시 또 벌어지기 시작한다. 아마도 술에 취하여 강물속의 달을 잡으려 했던 이태백의 심정이 이러 했을 것이리라...
그 노을을 배경 으로는 그 어느 것도 놓칠수 없는 순간 순간들이 되어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아쉬움에 조급함에 서둘러 친구들의 모습을 담았고 어느 정도 담았다고 만족했을 때는 벌써 그 자리는 검은 담요 위에 내려 앉은 작고 영롱한 별들의 보금자리로 바뀌어 있었다. 내 스스로가 자연의 아름다음에 감탄 하기는 얼마 전 소금강에서 느꼈던 것 과는 색다른 느낌으로 강하게 다가왔기에 한 동안 거기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지는 석양을 배경으로 병긍이 부부-
-명화부부도 이 아름다운 그림을 담았다-
-종필이, 이 사진 꼭 간직하시라. 그러고 마난님과 거시기할 때 꼭 다시 꺼내 보시길...-
-우리들도 덩달아 노을에 빠졌다-
-자연은 이렇게 우리를 감싸주는데...-
-여기가 어디인가? 이런 곳에 와 본적이 있는가?-
이미 주위는 어두운 검은색의 드레스로 바꿔 입었다. 명성이가 그 위에 초록 빛깔의 양초로 장식을 하였다. 주위의 검정과 초록빛의 양초, 거기서 피어 오르는 주황빛의 삼색 조명이 잘 어우러져 몇 시간 전 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만들어져 모두들 환호하며 축제의 밤을 노래하였고 밤이 깊어 갈수록 빈 술병이 늘어 갈수록 담배꽁초가 쌓여 갈수록 그 들에게서 가장, 아버지라는 무게에 눌려 작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모두들 치열하게들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아버지는 눈물을 흘리지 않느다. 술을 마실 뿐이다.' 그렇다 아버지의 눈물은 감추고 감춰야 한다. 감춰진 눈물이 넘쳐서 주머니를 축축히 적시고 그것이 흘러 발등 위를 적실 때 그 곳에 술잔을 얹어 놓고 찰 때까지 기다리자. 그리고 아버지라는 이름의 한 잔 술로 마셔버리자. 왜? 그것은 술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마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축제의 밤은 깊어만 가고...-
-우리가 이렇게 웃을 때까지 얼마나 남았을까? 30년, 20년, 10년..?-
-아버지들의 미소는 어떨 때 보면 슬프게 다가 올 때도 있다-
'...이성은 투명하되 얼음과 같으며 지혜는 날카로우나 갑속에 든 칼이다.. ' 라며 팔팔하게 청춘을 예찬하던 시절에 처음 만난 우리는 이제 먼 길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송곳 같던 뾰족함은 이미 둥글게 무디어 지고 무언가를 예찬 하기 에는 너무나 힘이 부치는 나약한 가시고기가 되어 있었음에 서로에 대해 진한 연민과 애정에 빠져 시간 가는 줄을 잊고 있었다.
촛몸의 길이가 점점 짧아져 감을 아쉬워함 인지 유난히 촛불은 팔랑 거렸다. 축제의 내림막은 서서히 내려온다. 젊었던 날, 그럴 때면 내림막을 억지로 다시 끌어 올리려는 만용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살아오면서 그만큼 체득된 지혜로움 덕 일까? 내려오는 내림막을 서서히 바라보면서 '다가올 우리들의 앞날을 예찬 하리라'는 결의를 친구들 모두의 얼굴에서 읽었기에 흐믓하였다.
-축제의 내림막이 서서히 내려온다-
-다가올 우리들의 앞날을 예찬 하세!!-
-Wonderful Tonight, Brovo our life를 외치며-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과 아쉬움을 날려버리며-
-그렇게 축제는 막을 내렸다-
축제의 내림막이 완전히 내려왔음을 확인 한 우리는 빙 둘러섰다. 그리고 우리가 지나온 시간에 대한 회한을 한꺼번에 날려 버리려는 듯 갈고리촌충, 민촌충, 십이지장충, 대장충을 소리 높여 외쳤다. 다시 헤어짐에 대한 아쉬움을 서로 서로가 진한 손 잡음으로 대신 하고 각 자가 왔던 길로 돌아섰지만 30여년 전 교문을 나설때 처럼 재회의 기약 없이 돌아선 것이 아니었기에 돌아서는 발걸음은 가벼웠던거 같다.
돌아서는 내내 나는 기원했다. 내 친구들의 이 미소와 재잘거림과 익살스러움 모두를 하나도 빠짐없이 다시 볼수있기를. 또 곱씹는다. 지금의 이 나이에서는 사랑은 기댈 곳을 찾는 것이 아니라 기댈수 있는 곳을 만들어주는것 이라는 것을... 그러기에 차창 밖으로 아까 부터 계속 따라 오는 하늘의 별들이 오늘 따라 유난히 맑음이 느껴졌을 것이다..
- 영상으로 보는 친구들과 함께한 5월의 축제여! Vol.1 http://bit.ly/j2jSpH
- 영상으로 보는 친구들과 함께한 5월의 축제여! Vol.2 http://bit.ly/iYQ9Rm
- 영상으로 보는 친구들과 함께한 5월의 축제여! Vol.3 http://bit.ly/kQMg7Q
- 영상으로 보는 친구들과 함께한 5월의 축제여! Vol.4 http://bit.ly/lCqUGN
EPILOGUE 1. 새로운 인연
지금껏 살아오면서 원주에 대한 특별한 추억이나 기억은 없으나 아마도 오늘 이 후로 원주하면 명성이가 생각날 것이고 오늘 함께 한 친구들이 그리워질 것이고 영화 '씨네마천국'의 성장한 토토가 옛애인 엘레나를 그리듯이 오늘 함께 한 시간들에 대하여 한없는 애정의 눈길이 머물 것이다.
명성이를 통하여 원주라는 도시는 그렇게 새로운 인연의 끈으로 나를 단단히 묶어놓았다. 고요하기보단 조용한 포근함을 주는 이 도시가 화려하지는 않지만 질박하고 수줍은듯한 미소로 우리를 감싸주었기에 당분간은 이 도시가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을것 같다.
EPILOGUE 2. 선물
친정온 딸 시집으로 다시 나설 때 바리 바리 싸주는 듯한 심정으로 정성껏 챙겨주신 선물, '감자떡' 정말 고마웠습니다. 제수씨 잘 먹겠습니다.
EPILOGUE 3.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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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또 한번 느꼈지만...선배님의 글 솜씨는 대단하십니다..그리고 동기분들의 추억...저 또한 시간이 지나 동기들과 저런 자리를 마련해서 즐기고 싶습니다...글과 사진이지만 푸근함속에 동기애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에 대한 애정만큼 자꾸만 글이 길어지내요.이 글을 읽고 동기 오성인이 밤12시가 다되어 고맙다며 전화로 '옛친구'란 노래를 불러줬는데 코끝이 찡해졌습니다. 이러한 친구들이 자꾸만 글쓰게 만드네요. 흐르는 시간만큼이나 동기들과 만날시간은 짧아지겠지요.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뿐입니다. 지금 당장 동기들 전화한번 때려보세요. 그러면 저런 사진들이 훨씬많이 쌓여갈테니까...
동기분들과 밤늧도록 즐거운시간 보냈군요,이 인연 평생 소중히 간직하면서 늘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근래 들어 동기들, 선.후배님 들과의 만남은 항상 새로운 추억을 가져다 주기에 넉넉해집니다. 엊그제 영선이 결혼식장에서 인사도 제대로 못한것 같습니다. 꾸~~벅. 요번 산행에서 선배님의 푸근한 미소를 볼것을 생각하니 흐믓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