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우 건축가 . 발행일 2023.12.01>
머리를 맞대니 이런 공간이! 청소년·주민과 함께 만든 공공시설
아빠건축가의 다음세대 공간 탐험 (17) 청소년과 함께 만드는 공공공간
지하철 6호선 화랑대역 인근에 위치한 공릉청소년문화센터는 지역주민들과 청소년들의 자치활동이 매우 활발한 공공시설이다. 지하1층 지상7층 규모의 작은 건물에는 청소년을 위한 복합문화센터와 노원구 구립 도서관인 화랑도서관이 한 건물에 함께 자리를 잡고 있다. 그런 공간구조 때문에 이 센터는 자연스럽게 마을의 사랑방이자 모임터의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센터를 그들은 ‘공터’라는 애칭으로 불러왔다. 단순히 공릉청소년문화센터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이라고 짐작되지만, 그 안에는 여러가지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다. 공터는 마을사람들을 위해 비워져 있는 모두의 광장이자 모두의 놀이터이다.
공터에서는 이곳을 위탁 운영하는 성공회대학 측에서 주도적으로 만든 행사 또는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아기자기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끊임없이 채워지고 빠져나가는 다채로운 활동을 통해 사람들은 공터를 너머 마을에 대한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사용자 참여설계
사용자 참여 디자인 워크숍을 뜻하는 참여설계는 최근에 공공시설 건축에서 중요한 이슈로 자리잡았다. 학교나 공익을 위한 공공공간을 조성함에 있어서, 사용자의 의견이 반영되는 일은 중요하다.
이유에스플러스건축은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번에 걸친 다음세대와의 공간계획 워크숍에서 쌓은 경험을 가지고, 공터를 이용하는 청소년들과 지역주민들, 그리고 운영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의 참여설계를 진행했다.
공터 안팎으로 자세한 사전 현장조사를 하고, 운영자 인터뷰, 청소년과의 워크숍을 통해 두 집단의 의견을 촘촘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들과의 사용자 참여설계 모습. 의견을 모으는 것을 넘어 상상하고 토론하며 더 높은 곳을 같이 바라보는 과정이었다.
청소년 워크숍의 내용은 크게 ▲현재의 공간 돌아보기(사진구성 및 연관성 토론), ▲각 층별 공간에 대한 상상(입체조형 작업), ▲‘가변성’을 염두에 둔 공공영역 구상(입체조형 작업)에 관한 내용으로 이어졌고, 운영자 워크숍은 ▲청소년들의 생각에 의견 더하기(메모 및 토론), ▲ 층별 공간의 성격에 관한 상상(현황도면위 스케치) 작업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역주민과 공청회 자리를 마련하여 어른들이 바라는 청소년복합문화공간의 방향을 들어보았다.
공터 리모델링을 위한 운영자, 주민들과의 사용자 참여설계 모습. 주민 마음을 합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이렇게 참여설계 워크숍의 전체 과정에서 모아진 공터를 사용하는 모든 이용자들의 의견은 실제 공간계획의 중요한 하나의 축으로 마련되었다. 이제부터 중요한 것은 건축가의 판단이다. 사용자의 의견은 물리적인 공간으로 그대로 구현된다기 보다는 공간구성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바탕이 되어야 한다. 기술적 재료적 심미적 측면에서 공간이 건축적으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요소들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참여설계의 성패를 가르는 기준은 이렇게 ‘원하는 그대로 만들어지는가’ 아니면 ‘창조적인 공간언어로 한 번 더 해석되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리모델링의 원칙
공터 리모델링 공간설계의 첫 단계는 기존 프로그램과 기능을 재분류하고 수직적으로 최적의 위치에 재배치하는 것이었다. 처음 시설이 지어질 때 의도되었던 ‘외부와 연결되어 밝은 모습으로 사회와 대화하는 모습’은 가구와 게시물로 인해 단절되었고, 전체적으로 일정한 기준이 없이 ‘비어 있으면 채우는’ 식으로 사용되어서, 그 결과 효율성이 매우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다.
연령대별 사용자별 접근성과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면적을 고려하여 저층부에는 영유아를 위한 어린이도서관을, 상부 2개층에는 화랑도서관 등을 배치하는 것으로 정리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활용도가 낮거나 새로 발견한 공간들은 다양한 프로그램 수용이 가능한 개방적인 구조로 만들었다.
참여설계의 결과에서 도출된 ‘경춘선 숲길’과 ‘수직적 마을 길’이라는 공간계획방향은 ‘내부의 외부성’이라는 콘셉트로 발전되었다. 이것을 위해 실내마감재는 마을의 골목길 분위기를 드러내고 일상에서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소재인 벽돌과 목재 중심으로 계획되었다.
재료의 통일에서 오는 지루함은 색상의 변화와 일부 구로철판을 사용함으로 상쇄할 수 있었고, 3층과 4층이 연결되는 2개층 높이의 오픈스페이스에는 키가 큰 식재를 두고 자연광을 적극적으로 유입해서 마치 외부와도 같은 내부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도서관의 유형
또한 독서실형 열람실과 벽면서가 위주의 공간이었던 5, 6층 서가를 기둥서가와 칸막이서가로 조성하고, 이를 통해 만들어진 ‘책 길’을 따라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십진분류법에 의한 고정된 서가목록이 아니라 일꾼과 청소년들이 함께 서가의 주제를 꾸려볼 수 있는 ‘컬렉션’서가를 배치 및 운영하게 됨으로써 정보와 사람이 자유로이 드나드는 ‘공터’가 되었다. 도서관의 중심이 ‘책’이 아니라 ‘책을 찾고, 보고, 즐기는 사람’으로 회복시키는 것이다.
도시로서의 청소년 공간
공릉청소년정보센터(노원구 화랑도서관)의 리모델링은 공릉동을 가로질러가고 있는 긴 경춘선 숲길공원의 모습과 ‘아름다운 언덕’이라는 공릉(孔陵)의 뜻에서 건축적 영감을 얻어, 1층부터 6층까지의 공간이 수직적으로 배치된 하나의 마을로서 공간의 큰 개념을 잡아갔다. 그리고 각 층마다 주어진 공간의 성격을 따라 ‘공벽(孔壁 아름다운 벽)’, ‘공작(孔作 아름다운 제작)’, ‘공구(孔丘 아름다운 언덕)’ 등의 이름을 붙여가며 공릉동 마을과의 관계를 건축적으로 연결하게 되었다.
참여설계과정에서 모아진 사용자의 의견을 바탕으로, 칸막이와 벽으로 막혀 있었던 예전 공간은 마을을 향해 활짝 열렸다. 여전히 고유의 기능을 가진 여러 공간들이 독립성이 보장되면서도 단절되지 않은 공간의 집합으로 탈바꿈했다.
엄마손을 잡고 아빠 품에 안겨서 어린이 도서관으로 들어오는 아이들도, 유스카페에서 신나게 게임을 즐기는 트윈세대도, 도서관에서 편안하게 몸을 기대어 독서 삼매경에 빠진 어른들도 이 안에서 – 사용자와 운영자가 함께 만들어 나가는 진정한 ‘열린 공터’에서 – 새롭게 회복한 공릉동 마을의 사랑방을 함께 공유하는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이 공간은 실내 리모델링으로 최초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공터의 리모델링 프로젝트 후에 참여했던 모든 주체와 사람들, 워크숍에 참여한 청소년들 이름까지 새겨서 건물에 부착했다. 이러한 점이 디자인의 우수함과 더해져서 대한민국 공공건축상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