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주인을 바꿔라'
내 마음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니라 여전히 나다
여전히 자기가 주인 된 사람의 두 가지 특징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애’와 ‘자기의’다. 이 두 가지가 나를 이끄는 에너지가 된다면, 아직도 내 인생의 왕좌에 내가 앉아 있는 것이다.
가인을 생각해보자. 가인은 하나님이 지으신 첫 인류 아담과 하와에게서 태어난 첫째 아들이다. 그런데 어느 날,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다. 그러자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물으셨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때 가인이 어떻게 대답하는가?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어떻게 동생을 죽여놓고 이렇게 뻔뻔하게 대답할 수 있는가? 양심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하나님이 오셔서 동생을 찾으셨을 때 바로 무릎을 꿇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납작 엎드려야 할 상황에 뻔뻔하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라니. 어떻게 이런 대답을 할 수 있는가?
이런 뻔뻔함은 바로 가인의 ‘자기의’에서 나온다. 자기 생각으로는 동생을 죽일 만한 충분한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대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동생을 죽이고 세상에서 없애버릴 만한 이 유가 있었다고 자신의 의를 내세우고 있다.
그때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신 말씀을 보라. 하나님은 그에게 형벌을 내리신다.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창세기 4:10~12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에 대해선 가인이 뭐라고 대답하는가?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그래서 사람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공격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살인이란 죄가 끔찍한 것이다. 이 엄청난 죄를 범한 가인에게 하나님이 이 정도 말씀하셨으면 더 이상 토를 달 것이 없을 것 같은데, 가인은 ‘이건 너무한 것 아닌가요? 전 어떻게 살라는 거예요?’라며 여전히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를 위하는 마음으로만 가득하다.
하나님 앞에 떨 수도, 엎드릴 수도 없는 것은 가인이 자기 사랑, 즉 ‘자기애’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인류의 첫 가정에서 일어난 끔찍한 살인 사건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부패한 마음의 두 가지 특징, 곧 ‘자기애’와 자기의’다. 우리의 옛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이다. 자기의와 자기애로 가득 찬 모습 말이다.
그렇기에 내가 자기의와 자기애에 얼마나 사로잡혀 있는가를 보면 내 마음의 주인이 누군인가를 제대로 볼 수 있다. 나 자신을 돌아봐도, 내가 언제 가장 불안하고 하나님의 평화를 잃게 되는가 하니, 내 안에서 자기 의와 자기애가 살아서 날뛸 때다. 그럴 때 하나님의 평강을 잃게 되고, 주님이 주시는 확신과 견고함을 놓치게 된다.
그러니 지금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자기의와 자기애가 나를 얼마나 사로잡고 있는지 살펴서, 여전히 나 자신이 마음의 왕좌를 차지하고 있다면 빨리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주님께 그 자리를 내어드려야 한 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께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하여 주시고 부드러운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며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내 마음의 주로 모신다는 의미다. 우리 모두 우리 마음의 주인을 주님으로 삼고 주님과 동행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고자 하는 하늘의 풍성한 삶을 누리는 우리가 되기를 바란다.
- 마음의 주인을 바꿔라, 김승욱
마음의 주인을 바꿔라마음까지 새롭게 되어 성숙의 열매를 맺는 삶
규장김승욱
† 말씀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 로마서 10:3
† 기도 기도 제 안에 자기의와 자기애가 가득한 것을 봅니다. 하나님, 이 굳은 마음을 제하여주시고 제게 부드러운 마음을 주옵소서.
† 적용과 결단 하나님의 공의의 눈으로 나의 죄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자기의와 자기애를 주님 발 앞에서 벗어버리기를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