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재풀이
노병철
아침부터 집사람이 부산스럽다. 한참이나 서랍장을 뒤적거리더니 마침내 산속에서 산삼 이파리라도 본 듯 환한 미소를 짓는다. 이내 뭔가를 끄집어내어 얼른 보자기에 싼다. 그리곤 핫바지 방귀 새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뭔가 궁금해서 한마디 물었다간 감히 지엄한 아녀자 일에 간여한다면서 꾸중 들을 것이 뻔한지라 모른 척 다시 잠을 청한다. 하지만 이리 뒤척 저리 뒤척거려도 도무지 한번 깬 잠은 돌아오지 않는다. 식전 댓바람부터 뭘 찾았을까? 궁금증은 꼬리를 물고 나의 새벽잠을 방해하고 만다.
자기 딴에는 명리학자라고 불러주길 원하지만 난 그를 ‘점쟁이’라 호칭한다. 제 팔자도 제대로 가늠을 못 해 사기를 당하는 주제에 뭔 남의 팔자를 어떻게 해준다고 설치는 게 영 마뜩잖다. 단지 현금을 항상 주머니에 가득 넣고 다니는 터라 맛있는 것을 많이 얻어먹을 수 있어 냉정하게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특히 구정 전후로는 돈이 주머니에서 삐져나올 정도로 수북하게 넣고 다닌다. 돈맛을 제대로 알게 해주는데 어찌 사람이 도덕적으로만 살 수 있겠는가. 맛난 음식과 고급술을 진탕 먹고 대리 운전비까지 챙겨주는 통에 간혹 몇 가지 부탁도 들어준다. 30분 후에 전화하라고 연락이 오면 시간 맞춰 전화해 주는 일이다. 대화는 제 혼자 다 한다. “아, 영천 사모님. 30일에는 예약이 다 찼습니다. 6월까지는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죄송합니다.” 10분 간격으로 두어 번 더 걸어주는 난 가끔 공범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이고 토끼띠면 올해가 눌삼재라 액풀이해야 한다구. 안 그러면 큰일 나.”
올해가 토끼, 양, 돼지띠가 ‘눌삼재’란다. 역학적으로는 삼재의 기운이 가장 강하기에 가장 조심해야 한다면서 기선 제압을 한다. 작년에 들삼재라 돈 빼먹고 내년은 날삼재라며 남의 주머니를 털 것이다. 봉이 김선달도 이 정도는 아니었지 싶다. 마구잡이로 반말하면서 공포마케팅을 하는 걸 보고 있자면 섬뜩할 정도이다. 액풀이하지 않으면 자식이 잘못된다는 말에 아연실색하고 지갑을 연다. 몇 년 전만 해도 삼재라면 딱 그해뿐이었는데 이젠 3년을 들삼재니 눌삼재, 날삼재 운운하면서 곰탕 우리듯 우려먹는다. 옆에서 보고 있자니 멀쩡하게 생긴 여자가 어찌 저런 말에 휘둘리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피 같은 돈을 저렇게 무의미한 곳에 쓸어 넣다니 한심할 뿐이다.
“저 여자 교회 다녀. 인마.”
종교가 제 역할을 다하고 있지 않은 모양이다. 절에도 ‘삼재풀이’라고 쓴 현수막이 보인다. 절에서의 삼재는 화재(火災), 수재(水災), 풍재(風災)같이 개인이 노력해도 피할 수 없는 일반적 재해를 말하는 것이지 12지간을 이용한 액막이 부적을 팔지는 않는다. 혹여 그렇게 파는 곳이 있다면 아주 궁핍한 절이라 생각하고 발길을 끊는 것이 맞다. 사람들이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본다거나 미국의 브릭스 모녀가 융의 심리유형 이론을 이용한 MBTI를 진짜 그대로 믿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스포츠 신문에 ‘오늘의 운세란’에 나오는 것을 읽고 그날 태어난 토끼띠들은 종일 몸을 사리고 있지는 않을 것이 아닌가. 재미는 재미로 흘려 넘겨야지 자신의 운명을 거기에 맡기는지 기가 막힐 뿐이다. 그리고 중국에서 만들어진 12지신은 나라마다 다르다. 따라서 특정 띠를 지정해서 눌삼재 운운하는 것은 무속인들의 돈벌이로 보면 틀림없으리라.
저녁상을 물리며 도저히 궁금해서 조심스레 입을 뗐다. 새벽에 서랍장에서 가져간 것이 뭐냐고 물었다. 내 눈치를 힐끗 보더니 친구 따라 점쟁이에게 토정비결 보러 갔다가 올해가 자기들 나이인 토끼띠가 삼재가 들었단다. 액막이하지 않으면 큰 재앙이 내린다고 하면서 태울 속옷 한 장 가지고 오면 원 플러스 원으로 친구 덕에 부적 한 장 공짜로 써준다고 해서 가져갔단다. 배울 만큼 배운 여자가 나이를 어디로 먹었는지 정말 어이가 없다. 다 내가 지은 악업이라 생각하니 그 점쟁이 친구와의 인연을 여기서 끝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