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찮고 성가신 일이라도 피하려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찾아서 한다면 즐거운 군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느니라”
입대를 앞둔 큰아들 넘에게 칼이 당부한 말이다.
어차피 할 일을 고참들 눈치 보며 피할 생각을 한다든가 좀 고참이 되었다고 쫄들이 알아서하길 바란다면 서로 피곤하다는 이야기다.
아파트 위층에 부부교사가 살고 있는데 그 아들 넘은 칼의 큰 넘과 둘도 없는 친구이고 군 입대도 둘이 같이 지원하여 같은 부대에서 마쳤다.
춘천보충대에 자식 넘을 델꼬 가서리 잘 입히고 잘멕이고 잘 재우고 잘 가르치겠으니 부모님들 걱정하덜 말아달라는 부대장 야그를 듣고 마지막 헤어지는데 칼이 “용감” 하였더니 거수경례를 하며 “용감”복창하며 씨~익 웃고는 돌아선다.
위층 선생부부가 눈물을 글썽이며 헤어지는 것과 대조적인 헤어짐.....
100일 휴가 왔다가고 첫 면회를 가는데 지도에 나타난 길을 따라 최전방이라고 말로만 듣던 인제, 원통에서 북쪽으로 아들넘이 근무하는 서화리를 향해 달리는데...
젠장!! 초행길이라 홍성에서 원통으로 통하는 좋은 길 두고 춘천댐 따라 꼬블 꼬블 오르락 내리락 하는 길을 달리다 보니 마눌이 어지러워 토할 것 같다하여 멈춰 마눌이 토를 시작하자 작은 아들넘과 김아롱이도 나란히 앉아 토를......
원통에서도 20분을 북쪽으로 더 달려 도착한 서화리...
일반차량은 넘이 근무하는 부대 앞까지만 갈 수 있을 뿐이고 북쪽 산허리엔 철책선이 보였다.
넘은 포병대대 사격지휘병으로 ... 윗층넘은 정보과에서 탱자 탱자하는 넘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면회신청을 하는데 전방이라 그러려니 해도 이건 너무하다.
초라한 위병소엔 하사 한넘이 연탄불 피워 놓고 쪼그려 앉아 있는데 이건 아니다.
30년 전에도 칼이 근무하던 부대는 체력이나 정신력이나 인간 한계를 극복하여야 할 정도로 심하게 훈련시키고 매일밤 빳다를 의무적으로 치고 맞았지만 스팀난방시설에 온수를 쓸 수 있었고 먹고 입는것 만큼은 서울시민 중류층 이상이라 하였는데 특수부대였기에 그랬었다 해도 연탄난로라니 이기 뭔가?
최소한 석유난로라도 있어야 할기 아니냔 말이다.
더 기막힐 일은 면회 나온 아들과 친구 모습이다.
두 넘 모두 기침을 하는데 아들 넘은 눈까지 빨갛다.
왜 이 모양이냐니깐 난방시설 고장으로 며칠째 추운 내무반 생활에 감기가 걸렸고 아들 넘은 공부로 이틀째 밤 세우다 보니 그렇다는 거다.
곧 포사격대회가 있는데 사수가 전역하여 부사수인 아들 넘이 목표물과 거리. 풍향, 풍속 등을 참고하여 포신의 각도를 계산하기를 밤 세워 공부하였다는 거다.
국방을 위해 며칠 밤을 새우든 군기가 빠져 빳따로 엉덩이 옷에 피가 엉기든 좋다.
야이 국방관계 씨바들아!! 잘 멕이고 잘 재워야 할기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며 면회실로 갔는데 ....
또 젠장!! 입속에서 절로 나왔다.
썰렁한 컨테이너 박스에 전기장판 한 장이 깔려 있고 한편엔 예수 초상화 한 장이...
아들넘 야그가 교회에서 기증한 거란다.
내무반에 물건 반입이 금지(워낙 전방이다 보니 면회 오는 일이 별로 없어 못 오는 아그들 사기저하를 우려한다나?)되니 점심 먹을 통닭과 김밥만 사오라 했는데 백화점에 다니는 마눌이 부탁한 것 외에 고급과자와 족발 등등 엄청 사가지고 갔는데 허겁지겁 먹고 또 먹은 다음 한숨 자고는 두넘이 남은 과자를 바지춤과 내복 속에 몽땅 담는다.
밤에 옆에 동료들과 나누어 먹겠다고.....
돌아와 청와대 게판에 이래서 국방이 제대로 되겠냐고 점잖게 한 말씀 올렸는데 시정이 되었는지 확인은 않았다.
두 번째 면회는 이듬해 여름 장마철에 갔다.
고참이라고 피씨방(외출 나온 아그들의 유일한 휴식처)에서 기다리던 넘을 애마에 태워 원통으로 나와 뭘 먹고 싶으냐니까 회를 먹고 싶다는데 시가지를 몇 바퀴 돌아봐도 회집다운 곳이 없다.
속초로 가자니까 안된다는 거다.
1년 이상 근무하는 동안 원통에도 100일 휴가. 첫 휴가. 부대 업무 수행 차 세 번 뿐이 못나왔고 이번이 네 번째란다.
요즘도 이럴진데 30년 전엔 어찌했을까?
세삼 칼이 뺑이 쳤다고 하자 더 뺑이 쳤다던 전방에 근무한 칭구 넘들이 떠올랐다.
가자 ! 아빠가 책임지마. 탈영도 아니고 애비가 군 생활에 뺑이치고 있는 자식넘 먹고 싶은 거 사주겠다는데 어느넘이 시비냐?
원통까지가 위수지역이라며 원칙을 지키겠다는 넘에게 아빠 중학교 고등학교 동창이 울나라 헌병 총 댓빵인 육본헌병감(대령으로 직무대리 중이었다)이니 걱정 말라 안심시켜 속초로...
돌고 돌아 대포항에서 점심을 먹는데 쏟아지는 폭우 덕택에 손님이 없어 극진한 대접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넘이 말한다.
아빠가 옳았다고 ...
넘도 결혼하여 자식을 갖게 되면 아빠와 같은 방식으로 키우겠다고....
뭔 야그냐 하면 자식 키우는 방법에 마눌은 공부를, 칼은 공부하는 넘들 내쫒아 칭구들과 뛰어 놀기를 주장하였다.
칼의 뜻에 따라 중학교 까지 열심히 뛰어 놀게 하였고 방학땐 고향 할머니께 보내 흙을 밟으며 자연을 익히게 하였다.
원통에서 일어책과 일어CD 구입해 달라 하여 사줬는데 넘은 열심히 독학하여 일어 자격증을 획득했다.
군은 결코 썩는 곳이 아니다.
단체생활을 익히고 내 이웃을 알게 하고 부모님과 가족이란 의미를 깨닫고 국가란 무엇이며 애국이 무엇인가를 배우고 인내심을 키우는 곳이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여!!! 자식을 즐거운 마음으로 군대에 보내자!!!
첫댓글 옛날 군장교로 가 있던 친구 넘이 휴가 받아나오자마자 집은 안가고 절 찾아왔더군요. 나흘동안 계속 굴러당기면서 같이 술을 빨았는데... 참 그때는 체력이 대단했습니다... ㅋ
애긍..참잘못된것이 힘든 부대 일수록 보급품이나 주위 환경이 좋아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 것 같습니다,,제 큰녀석은 해병대를 제대했는데 훈련받고 바닷가 초소에 배치를 받앗더군요..전화가 왔는데 생필품이 모자라 붙이라 하였는데 부대로 부치는게 아이고 부대옆 횟집주소로 붙이라 하더라구요..근데 제가 그주소로 생필품을 사서 찾아갔지 뭐여요..횟집주인부부다 어찌나 정이 많으신지..이이병이<제아들>하루에 한번 식수를 뜨러 횟집으로 오니까.기다려서 보고가라 하더라구요..두어시간 기다렸나..단체목욕을 갔다가 오는 군트럭에서 빨간 츄리닝 차림에 젊은 아이들중 맨골찌에서 막내라 쫄아서 얼굴도 못드는 아들이 트럭에서.
내려서 맨뒤에 줄을 서더군요.일미터 앞에서 엄마가 온지도 모르고 언덕위에 초소로 들어가는데..부르지도 못하고 하염없이 군대가고 3개월만에 처음보는 아들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ㅎㅎ잠시후 아들이 횟집으로 내려오고 모자상봉을 하는데 아들을 끌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그때가 겨울이였는데 밤에잘때 춥다하기에 이불없냐 했더니 보급품이 모자라서 침낭없이 얇은 모포 한장으로 자려니 춥다 하더라구요.참말로 ..기가찼지만..할수있나요..지가 원해서 빡씬데 갔는데 누굴원망하랴~ㅎㅎ
동창 넘들 중 체력은 좋은데 머리가 좀 안좋아 군에 몸담은 장교 넘들이 곳곳에 박혀 있지만 아들 넘들이 편히 지내길 원하지 않아 인사부탁 안합니다.
아들의 뻥에 당한겁니다 30년전 백령도해병으로 근무한 사람입니다만 그 시절에도 모포 한 장으로 잘만큼 초라하진 않았습니다 전기가 없어 호롱이나 남폿불로 어둠을 밝히긴 했지만 영 아닌 내용이기에 대꾸를 했습니다
머털님..아들녀석이 제대한 마당에도 뭣하러 뻥 치겠습니까..재차 물어보니 침낭없이 모포만 덮고 잤다네요.다 모포만 덮고 잔게 아니고 아들이 이병으로 배치를 받아가니 자기 침낭이 없어 모포만 덮고 잤다 하더군요 그후에 침낭을 받긴 받았다는 편지도 받은 기억이 나구요 ..오히려 30년전에 해병대가 막강하지 않았나요?해병이 해군으로 들어가면서 파워가 예전만 못해서 보급품도 넉넉치 않다고들 하던데 전 군에를 안갓다와서 자세한것은 모르겠습니다 머털님이 더 잘 아시겠지요.즐거운 휴일 되셔요~^*^
전 ㅠ 시력이 너무 나빠 군댈 못 갔어요... 3년 동안 딴 친구들 군에 다녀올 때까지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한게 없는것 같네요... 군 생활 했었으면 더 강한 내가 되었을텐데~란 생각이 들곤 합니다...부럽기도 하고^^
님 같은 생각만 가지고 있어도 애국자입니다. 칼이 군대 보내는 일에도 관여한 일이 있었는데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빠지려고 하는 넘들도 많습디다. 기피자 찾아 나섰다가 군 동기넘을 만나기도 했지요...
아들과 딸을 가진 입장에서 .요즘 세태는 딸들 에게 넘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시기 같아 보입니다..울 동네의 사례를 보면 한 중학교 학년당 학생수를 500명으로 볼때 전교50위 이내들어가 남자얘 들은 불과 5명정도 된다 하더군요..사회 시스템과 시스템에 따른 소프트 웨어적인 요소들이 여성적 이고 여성중심으로 재편되어감을 엿볼수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가장 혈기 왕성한 20대초반에, 보상과 아무런 혜택없는 국가에 2~3년씩 봉사를 마치 당연시 하는 일부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안타깝더라고요...전 남자들이 2~3년씩 의무복무를 해야함은 찬성하지만 , 여자애들 역시 그에 준하는 국가에 봉사기간이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처럼 평등과 기회균등의 원칙이 여기에도 적용해야 됨은 너무나 당연한 보편타당한 원칙이 아닐까요 ??
사내 넘들이 계집화하고 있습니다. 저넘이 남잔지 여잔지 구분이 잘 안되는 넘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성전환을 했다는 넘들보면 남자가 여자로 했다는 말은 심심찮게 들리는데 여자가 남자로 전환했다는 야그는 못들어 봤습니다. 작업하기가 쉬워서 인가? 아님 남자로 살아가기가 힘들어서인가? 둘다 사유가 되겠지만 아무래도 으~~음 작업하기가 .. 짜르고 도끼질 한방이면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