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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대청호오백리길 15구간(구름고개 길)
여행일 : ‘23. 3. 18(토)
소재지 : 충북 보은군 회남면 일원
여행코스 : 은운리(싸리골)→언목마을→구름고개(독수리봉 전망대 왕복)→분저리→용호리선착장→판장대교→회남면사무소(거리/시간 : 14km, 실제는 15.35km를 3시간 30분에)
함께한 사람들 : 청마산악회
특징 : 1980년 대청댐이 완공되면서 조성된 대청호(大淸湖)는 ‘전국 3대 호수’ 중 하나로 2개 광역(대전·충북)과 5개 기초(대전 대덕구·동구, 청주시·보은군·옥천군) 자치단체에 걸쳐 있으며, 둘레만도 무려 ‘500리’나 된다. 이 호수 위로 해발고도 200-300m의 야산과 수목이 펼쳐지는데, 그 야산과 호숫가·자연부락·소하천·옛길 등을 둘레길로 이은 다음 ‘대청호 오백리길(220km을 21개 구간으로 나누었다)’이란 이름으로 포장해 세상에 내놓았다. 오늘은 열다섯 번째 구간인 ‘구름고개 길(14km)’을 걷는다. 이 구간은 구름이 넘나든다는 ‘고개’ 하나를 오롯이 넘는다. 하지만 고개를 넘으며 바라보는 감입곡류(嵌入曲流)의 비경이 그 고생을 상쇄시켜 준다. 하나 더, 다리품만 조금 더 팔면 ‘독수리봉 전망대’에서 악어 한 마리를 만날 수도 있다. 보은 제일의 비경이라니 그냥 지나치지 말 일이다.
▼ 들머리는 은운리 경로당(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당진-영덕고속도로(청주-상주) 보은 IC에서 내려와 37번 국도를 타고 옥천방면으로 12km쯤 내려오다 안내교차로(옥천군 안내면 현리)에서 502번 지방도로 옮겨 10km쯤 들어오면 ‘은운리(‘싸리골’이지 싶다)’에 이르게 된다. 이 마을 경로당이 15코스의 들머리이다.
▼ 오늘은 풀코스를 완주했다. 2km쯤 전방에 위치한 ‘언목마을’에서 집사람을 출발시키고 내가 쫒아가는 형식이다. ‘구름고개 길’란 브랜드까지 만들어낸 고갯길(은운리-분저리)이 부담스러웠지만, 집사람의 체력에 맞춰 걷다가 마땅한 곳에서 회남면 택시를 부를 요량이었다. 하지만 이 정도쯤이야 하는 집사람 덕분에 택시를 부르지 않고도 마칠 수 있었다.
▼ 15구간이 시작됨을 알리는 이정표(분저리 6.5㎞/ 장고개 2.1㎞)는 ‘답양1교’에 세워져 있었다.
▼ 이정표가 지시하는 대로 분저리 방향(북쪽)의 협곡으로 들어가면서 트레킹이 시작된다. 참! 행장은 주차장 한켠에 세워놓은 쉼터용 정자에서 꾸리면 되겠다.
▼ 그런데 100m쯤 떨어진 곳에서 도로가 1차선으로 바뀌어버리는 게 아닌가. 입구에는 협소한데다 급커브가 많아 대형차량의 통행을 제한한다는 안내판까지 세워놓았다. 하지만 마음 좋은 황사장님은 체력이 부담스러운 회원(우리 집사람처럼)들을 조금이라도 더 태워다 주겠다며 차를 몰고 들어간다. 그러다가 ‘언목마을’에서 우리가 도착할 때까지 고생고생하고 있었지만...
▼ 오백리길은 ‘가산천(佳山川)’을 옆구리에 끼고 좁디좁은 협곡 속으로 들어간다. 은운교를 건너고 이름조차 없는 또 다른 다리를 건넌다. 조잘대는 시냇물 소리에 발맞추니 발걸음도 경쾌해진다. 참고로 ‘가산천’은 노성산(보은군 수한면)에서 발원하여 용촌리·답양리·은운리를 거쳐 대청호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하천이다.
▼ 이 길은 공인된 ‘지방도(502호선)’이다. 보은군(회남면) 거신교 동단에서 시작 옥천군을 거친 다음 보은군(탄부면) 탄부교차로까지 간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걷고 있는 이 구간(분저리와 은운리 사이 5.8 km)은 명목만 ‘지방도’일 뿐이지 등치 큰 자동차는 다닐 수 없을 정도로 비좁은데다 구불구불하기까지 하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8분. 첨부된 지도에 ‘보호수(이를 알리는 표지판은 보이지 않았다)’로 명기된 삼거리에 이른다. 왼쪽은 계곡을 돌아나가 대청호로 들고, 오백리길인 오른쪽은 ‘언목마을’을 지나 구름고개로 오른다. 아무튼 이곳에서 우린 몸집 큰 느티나무를 만날 수 있었다. 근처에 돌탑까지 쌓아놓은 것으로 보아 ‘언목마을’의 당산나무가 아닐까 싶다.
▼ 이정표(분저리 4.5㎞/지경리 2㎞)는 이곳을 ‘언목’으로 적고 있었다. 지명에서 ‘목’은 ‘노루목’처럼 쓰이는 게 보통이다. 사람의 목덜미처럼 잘록하게 돌아가거나 어느 한 지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그러니 노루목처럼 생긴 저 골짜기 안에 작은 마을이 숨어있다는 얘기일 것이다.
▼ 인적이 뜸한 산골마을에서는 외지인이 반가움의 대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젠 옛말이 되었나보다. 흐르는 시절이 얼마나 하 수상했으면 저리도 섬뜩한 현수막까지 내걸었을까.
▼ 몇 걸음 더 걸어 모퉁이를 돌아서자 ‘언목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아까 들머리에서 만났던 ‘싸리골(은운리)’도 오지였는데, 은운리와 분저리를 잇는 고갯길에 위치한 이곳은 가히 오지의 끝판왕이라 하겠다. ‘구름도 울고 넘는 저 산 아래’로 시작되는 유행가가 생각나는 동네라고나 할까? 그런데도 4층짜리 주택이 들어섰다.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
▼ 마을을 빠져나와 비탈진 언덕으로 오르면 ‘카페 은운리’가 반긴다. 은운리 출신의 젊은 주인장이 운영(2021년에 문을 열었단다)하는 저 카페는, view가 좋은데다 브라질산 최고급 원두를 쓰는 커피 맛이 일품으로 알려지면서 호사가들의 입소문을 타는 중이라고 했다. 직접 구운 빵과 컵라면도 제공되며, 날이 추워지면 대추차와 생강차 등 수제차도 판단다.
▼ 카페를 지나면서 산길 구간이 시작된다. 오르막의 가파름도 만만찮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산허리에 올라서게 되고, 이후부터는 경사가 거의 없는 밋밋한 길이 이어진다. 하지만 온통 산에 둘러싸여 보이는 건 하늘에 그려진 능선뿐이다. 15구간의 브랜드가 ‘구름고개 길’로 굳어진 이유가 아닐까 싶다.
▼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지나온 ‘언목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그 사이에는 ‘호도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그때그때 제철 농산물을 파는 ‘카페 은운리’에서 내놓는 지역 특산품 중 하나이다. 참! 카페에서는 직접 생산하는 가구 소품도 살 수 있다고 했다.
▼ 오백리길을 벗어나지 말라는 경고용 현수막도 내걸려 있다. 가드레일을 넘지 말 것. 그러니 산나물 채취는 언감생심이다.
▼ 오늘도 소중한 인연을 만났다. 26코스에 들어선 ‘서해랑길’을 함께 걷고 있는 여성 도반인데, 이곳 대청호오백리길은 무서움도 없이 혼자서 걷는 중이라고 했다.
▼ 3일 후면 춘분(春分). ‘2월 바람에 김칫독 깨진다.’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갑다.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기 때문이다. ‘꽃샘’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구 온난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요즘은 옛말이 됐다. 그 덕에 진달래도 저렇게 소담스러운 꽃망울을 활짝 피워냈다.
▼ 평생을 꽃다운 소녀로 살고 싶다는 집사람이다. 그러니 활짝 핀 진달래를 보고 어찌 방심이 동하지 않겠는가. 냉큼 달려가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카페에서는 32분). 구름고개의 정점(고도계는 273m를 찍는다)으로 여겨지는 고갯마루에 올라섰다. 이곳에 왼편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제법 또렷하게 나있었다. 행여 대청호라도 눈에 담을 수 있을까 일단을 올라봤다.
▼ 하지만 대청호는 빽빽하게 들어찬 소나무들 뒤로 숨어버렸다. 소나무 사이사이를 돌아가며 2~3분을 더 내려가고 나서야 요 정도의 풍광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 금강일보의 김현호 기자는 언목마을로 가는 길을 ‘한국 10대 오지마을 길(나머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로 적고 있었다. 맞다. 얼마나 오지였으면 명색이 지방도(5로 시작되는 세 자리 수의 도로는 충청북도 소관이고, 6으로 시작되는 세 자리 수는 충청남도 소관이다)인데도 1차선으로 그냥 놓아두고 있겠는가. 하긴 심심찮게 나타나는 저런 암벽들 때문에 이 정도의 길조차 내는 게 쉽지는 않았겠다.
▼ 10분쯤 더 걸어 또 다른 모퉁이에 다다랐다. 이곳에도 왼쪽 능선을 향해 길이 나있었고, 대청호가 그리운 나는 그 길로 들어섬을 망설이지 않는다.
▼ 하지만 또 속았다. 잘 써진 묘역이 떡하니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청호 너머로 서탄봉(7구간 ’꽃봉‘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져 나온 봉우리이다)과 환산이 눈에 들어오지만 주변 잡목이 아랫도리를 몽땅 잘라먹어 버렸다.
▼ 자칫 심심해지기 쉬운 산길이지만 지루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구불구불’로도 모자라 ‘삐뚤빼뚤’대기까지 하는 길을 바라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기 때문이다.
▼ 이즈음부터 대청호가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일부러 찾아갔던 아까보다도 훨씬 더 완벽해졌는데, 굽이굽이 돌고 도는 오백리길처럼 대청호 역시 곡선으로 요동치고 있다. 옥천 방아실에서 길게 뻗어 나온 산줄기를 굽이굽이 휘감으며 흐르는 금강 물길이다.
▼ 저녁 잠자리 때 부인이 두려운 이들이여 오백리길로 오라. 복분자(覆盆子) 나무가 저렇게 군락을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복분자를 먹으면 정력이 강화되어 소변 줄기에 요강이 엎어진다는 속설도 있지 아니한가.
▼ 나그네들을 위한 쉼터도 빼먹지 않았다. 준비해온 소찬에 박주로 목을 축이고 가기에 딱 좋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1시간 20분. 쉬엄쉬엄 내려오다 보면 왼쪽으로 무덤들이 보인다. 그 무덤 위로 ‘독수리봉 전망대’로 가는 오솔길이 나있다. 오백리길에서 살짝 비켜나 있지만 보은 제일의 비경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니 꼭 들어가 보자.
▼ 오솔길은 오백리길 7구간이 지나가는 ‘서탄리’와 가장 가까운 곳으로 인도한다. 그 초입에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다. 전망대까지의 거리(0.5km)와 함께 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풍경 사진을 게재했다. 사진 속 지형은 악어의 머리를 쏙 빼다 닮았다.
▼ 전망대로 가는 길은 15구간에서 유일하게 맛볼 수 있는 오솔길이다. 500m의 산길이니 짧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폭신폭신한 흙길에 경사까지 무디다보니 걷는데 부담이 없다. 거기다 울창한 소나무 숲이 피톤치드까지 흠뻑 보내주니 내딛는 발걸음이 오히려 힘차진다.
▼ 8분쯤 들어가면 ‘독수리봉 전망대(독수리봉에 걸터앉았다고 해서 얻은 이름이다)’가 나온다. 은운리 고갯길에서 잠시 쉬다 온 구름이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반해 다시 쉬어갈 수밖에 없다는 곳. 그곳에 전망대를 짓고 절경을 감상하도록 했다. 절경을 바라보며 멍이라도 때리다 가라는 모양이다.
▼ 전망대에 서면 입이 떡 벌어지는 절경과 마주한다. 건너편 ‘서탄봉’이 큰 악어 한 마리가 호수 위에 떠있는 형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마치 곧바로 달려들 기세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거울처럼 잔잔한 물 위로 파란하늘이 비치는 호수, 그리고 그 주면을 둘러싼 절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호수여행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 대청호의 또 다른 비경인 ‘부소담악’을 떠올리게 하는 풍경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서탄리를 크게 휘감아 굽이쳐온 물길이 또 하나의 절경을 만들어냈다. 자연이 빚어낸 조각품으로 대청호의 위엄과 신비로움이 함께 어우러지며 감탄사를 자아내게 한다.
▼ 오백리길로 되돌아와 답사를 이어간다. 이제는 완연한 내리막길이다. 하지만 볼거리는 전무한 편이다.
▼ 그렇게 15분쯤 내려오자 예상 외로 너른 들녘이 나타난다. 회남면에서 가장 너른 ‘빈정들’이라는데, 대청호에 물이 채워진 다음에도 2만 평이나 되는 농경지를 유지하고 있단다.
▼ 분저실 초입에는 폐교(회남초교 분저분교)를 활용해 만든 ‘드림스쿨 예지원’이 들어서 있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만두었는지 텅 빈 마당에는 경작을 금한다는 경고판만이 외롭게 서있었다.
▼ 폐교 부근에서 도로가 2차선으로 바뀌었다. 꽃망울을 활짝 연 매화나무 가로수가 길손을 반기는 멋진 구간이다.
▼ ‘대한민국 스타팜(Star-Farm)’이란 팻말이 눈길을 끈다. ‘스타팜’이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이 선정한 대한민국 대표농장이다. 국가인증제를 선도하는 농장을 지정해 소비자에게 국가인증 농·식품의 올바른 이해와 신뢰를 제고시키고, 체험을 통한 소비촉진을 위해 2010년 도입했다.
▼ 한때 ‘침대는 과학입니다’라는 광고가 세상을 들썩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모든 게 과학으로 귀결되는 추세다. 저 과일나무도 그중 하나일 것이고. 나무의 높이를 최대한으로 낮춤으로써 일손을 확 줄여버렸다.
▼ 그 과학은 작물의 재배 범위까지 확 넓혀놓았다. 드넓은 들녘을 꽉 채워버린 인삼밭이 그 증거일 것이고 말이다.
▼ 잠시 후 들른 ‘분저리(粉諸里, 또는 분저실)’는 여말 명장인 최영 장군이 군량을 모아 가루로 만들어 군사들에게 나눠주던 곳이라는 데서 유래한다. 여말은 북쪽에는 홍건적, 남쪽에는 왜구가 날뛰던 시절이다. 특히 왜구와는 끝없는 전쟁을 치렀다. 이에 공민왕은 최영에게 양광도(충청도와 경기도 일대)와 전라도의 체복사를 맡겼고, 왜구들에게 최영은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고 역사는 적는다. 그러니 최영장군이 왜구를 토벌하러 가는 도중 이곳에 들렀을 수도 있겠다.
▼ 분저리(이정표 : 회남면사무소 7.5㎞/ 은운리 6.5㎞)는 녹색체험마을로 운영되고 있었다. 수영장 등 다양한 체육시설이 갖춰져 있는 체험마을로, 여름이면 복숭아따기체험과 농촌생활체험, 전통문화체험, 레저스포츠 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단다. 가족단위 나들이지로 안성맞춤이라 하겠다.
▼ 마을 앞 가로수에는 새집이 매달려 있었다. 녹색체험마을다운 발상이라 하겠다. ‘나누는 삶’이 사람과 사람뿐만 아니라 사람과 동·식물간의 사이에도 존재한다는 게 요즘 추세이니 말이다.
▼ 오백리길은 분저리를 지나 대청호와 마주한다. 이즈음 만난 버스정류장(하루에 3번 멈춘다나?)은 ‘용호리’란 옛 지명을 적고 있었다. 현재의 지명인 ‘분저리’도 병기했다. 용호리(龍湖里)가 대청호에 수몰되면서 남은 부분을 분저리에 포함시켰다는 얘기일 것이다.
▼ 대청호(금강의 지류인 ‘회인천’이기도 하다) 너머는 ‘신곡리’. 오백리길 6구간 때 신곡리 앞의 호반도로(회남로)를 걷기도 했었다.
▼ 용호리선착장(이젠 ‘분저나루’라고 해야겠지?)은 개점휴업 상태인가 보다. 선착장 옆 전원주택의 소유로 여겨지는 보트 한척이 외로울 뿐이다. 그것도 뭍에서...
▼ 이제 오백리길은 ‘회인천’을 거슬러 올라간다. 걷는 내내 대청호의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을 수 있음은 물론이다.
▼ 언제부턴가 가로수가 벚나무로 바뀌었다. 대전(동구)의 자랑거리인 오백미(五白眉), 그중에서도 첫째로 꼽히는 ‘세상에서 가장 긴 벚꽃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굵은 벚나무들이 일렬로 늘어섰다.
▼ 앗! 교회에 십자가가 없다니. 건물의 생김새도 예배당이라기보다는 여염집에 더 가깝다. 요즘은 이해 불가능한 교회도 많던데...
▼ 교회 근처에서 왼쪽으로 크게 방향을 튼 도로가 능선으로 올라선다. 뒤돌아보면 방금 지나온 황개골(kakaomap에 그렇게 적고 있다)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 회남면은 대청호에 물이 채워지면서 큰 수난을 겪었다. 대부분의 농경지가 수몰되었고, 경사도가 심한 박토만 남았다. 그러다보니 한 평의 땅도 소중했을 테고, 농부는 저런 산비탈까지 개간을 위한 삽질을 멈추지 않는다.
▼ 트레킹을 시작한지 2시간 40분. 판장소교를 지났다싶으면 ‘판장대교’가 기다린다. ‘대교’라는 이름이 부끄럽게 길이가 100m에도 못 미치는 자그만 다리다. 하긴 이런 산골에서는 저만한 다리를 놓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 다리 건너 ‘판장교삼거리’. 이정표(회남면사무소 4.3㎞/ 분저리 3.2㎞)가 트레킹이 막바지에 이르고 있음을 알려준다.
▼ 저 낚시꾼은 강태공은 못되는가 보다. 부지하세월이 일상화되어야 하겠건만, 움직임을 멈춘 찌에 노한 어부는 아예 물속으로 들어서 버렸다.
▼ 대청호의 담수는 지형까지도 변화를 주었다. 산줄기가 물에 잠기면서 호수를 향해 툭 튀어나간 곶(串)을 곳곳에 만들었다. 덕분에 오백리길은 심심찮게 능선의 허리를 가로지르며 넘는다.
▼ 15분쯤 더 걸어 ‘늘개미 마을(광포1리)’ 앞을 지난다. 법정 동리인 ‘광포리(廣浦里)’를 구성하는 4개 자연부락(늘개미·늘티·도목·큰골) 중 하나다. ‘늘개미’는 지형이 널처럼 생겼다는 데서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판장’이라고도 하는데 이게 옛 이름인 판장리(板藏里)가 되었다.
▼ 긴 겨울가뭄은 대청호의 아름다움을 많이 훼손시켰다. 저 버드나무 숲이 물에 잠기면, 거기다 대청호의 안개라도 더해진다면 주산지(注山池)에 못지않는 장관을 연출할 텐데 아쉽다.
▼ 올해는 꽃이 꽤 일찍 피었다고 했다. 꿀벌의 날갯짓도 바빠졌음은 물론이다. 그렇다고 심심찮게 영하로 내려가는 수은주까지 무시할 수야 있겠는가. 겹겹이 둘러놓은 저 포대기는 농부가 전하는 애틋한 ‘벌 사랑’이다.
▼ 잠시 후 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를 넘는다. 고갯마루에는 ‘오백리길 쉼터’가 만들어져 있었다.
▼ 이곳이 ‘늘개미 마을’임을 알리기라도 하려는 듯 표석과 마을유래비를 세웠다. 1914년부터 불려오던 판장리(板藏里)라는 지명에 부정적 이미지가 담겨있다고 해서 2019년 구전으로 전해오던 광포리(廣浦里)로 고쳤다는 것이다. 양한석 시인의 ‘수몰지구 내 고향’이라는 시비도 보였으나 옮기는 것까지는 사양한다.
▼ 광포리 고개를 넘으면서 주변 풍광이 확 바뀌어버린다. 대청호 너머로 산만 첩첩이 쌓였던 풍경 대신 규모가 제법 큰 마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다. 15구간의 종점인 ‘거교리’이다. 하지만 길은 곧장 마을로 들어가지 않는다. 호안을 따라 한없이 구불대면서 목적지를 외면하고 만다.
▼ 산비탈에 터를 잡은 ‘거교마을’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회남면의 새로운 소재지다. 대청댐의 완공되면서 신곡리·조곡리·산수리·거교리·사탄리·매산리·어성리·분제리 등 대부분의 마을이 수몰되었고, 그 과정에서 면사무소도 신곡리에서 거교리로 이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 이처럼 고운 풍광을 놓칠 집사람이 아니다. 그 풍광을 배경삼아 포즈부터 취하고 본다. 그리고 ‘뒤센 미소’를 보내온다. 예의를 차리는 웃음이 아니라 얼굴 전체를 밝히며 진정한 기쁨을 드러내는 그런 웃음 말이다.
▼ 또 다시 나타나는 ‘거교리’, 그게 아까보다 한참 더 고와졌다. 나무데크길(‘사담길’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탁 트인 대청호수를 바라보며 조용히 산책하듯 걸을 수 있게 만들었다)이 성곽처럼 마을을 감싸고 이어지며 한 폭의 그림으로 승화된다.
▼ 한없이 구불대는 길이 지겨워질 즈음 ‘새실마을’에 이른다. 법정 동리인 조곡리(鳥谷里)를 구성하는 2개 자연부락(새실·마전사) 중 하나다. ‘새실’은 노성산과 호점산성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 마을을 전면에서 바라보면 ‘새 조(鳥)’자 모양으로 나타난다며 ‘조곡’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이게 현재의 지명이 됐다.
▼ 마을 앞, 옛날 사진들이 담긴 안내판이 눈길을 끈다. ‘섶다리가 장마로 끊겨 다리 걷고 영당으로 장보러 갔었지. 가재또랑에서 가재·중태기 잡아 끓여 먹었지. 주막거리에서 막걸리 내기 윷놀이 하면서 놀았지. 각시둠벙에서 멱감고 오다가 복숭아 서리해 먹다가 들켰지. 군량뜰에 모심을 때 물이 모자라 도링(?)이 입고 물댔지. 방앗간 옆 공터에서 추석맞이 콩쿨대회도 하고 공회당 앞마당에선 낮엔 자치기하고 밤엔 도둑놈 잡기도 했었지.’
▼ 조금 더 걸으면 ‘거교삼거리’. 이정표(면사무소 0.4㎞/ 분저리 7.1㎞)는 400m쯤 더 가야 날머리가 나온다고 알려준다.
▼ 조곡리도 마을 표석과 함께 마을 자랑비를 세워놓았다. 홍희표 시인의 ‘오, 조곡리’란 시비도 보인다.
▼ 반대편은 돌탑과 장승 차지다. 내력이야 청마리의 랜드마크인 ‘제신탑(祭神塔, 충북 민속문화재 제1호)’에 못 미치지만 외형은 훨씬 더 잘생겼다. 청마리의 것은 주민들이 손수 쌓거나 깎았으나 이곳은 돈을 들여 전문가의 손을 빌렸음이리라.
▼ 날머리는 거교삼거리 주차장(보은군 회남면 조곡리)
이정표 앞에 깔아놓은 방향표시지가 오른편으로 가란다. 이쯤에서 15구간을 마치고 다음 16구간을 이곳에서 출발하겠다는 산악회의 결정이다. 취사가 가능한 장소를 찾다가 화장실까지 갖춘 주차장을 만났다니 어쩌겠는가. 아무튼 오늘은 3시간 30분을 걸었다. 앱에 찍힌 거리는 15.35km, 앞세운 집사람을 뒤쫓느라 걸음이 빨라졌던 모양이다.
▼ 부지런한 집사람은 한시도 손을 놀리지 않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냉이를 캐더니만 식사를 마친 후에는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호강에 넘치는 난 내일 아침 밥상에서 저 냉이로 끓인 국을 마주할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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