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고아의 아들,
비올라로 그래미를 품다한국계 용재 오닐
세 번째 도전 끝에 ‘클래식 기악 독주' 수상
김성현 기자입력 2021.03.15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이 15일 열린 제63회 '그래미 어워즈'에서 '베스트 클래시컬 인스트루멘털 솔로' 상을 받았다. 수상 작품은 리처드 용재 오닐이 데이비드 앨런 밀러의 지휘로 알바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연주한 테오파니디스의 '비올라와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다. /레코딩 아카데미 트위터 캡처
“비올라에는 위대한 날이에요(This is a great day for viola)!”
한국계 미국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43)이 15일(한국 시각) 미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최우수 클래식 기악 독주(Best Classical Instrumental Solo)’ 부문을 수상한 뒤 이렇게 말했다. 용재 오닐은 영상 소감에서 “모든 음악인에게 힘든 시기에 가족과 타카치 4중주단에 감사를 드린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는 세계 정상급 실내악단인 타카치 4중주단의 멤버다.
현재 미국 콜로라도에 머물고 있는 용재 오닐은 수상 직후 본지 전화 인터뷰에서 “평생 살면서 가장 놀랐던 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전 세계에서 잡혀 있던 공연이 줄줄이 취소되고 실망스러운 일이 거듭되면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데 어두운 터널의 끝에서 한 줄기 햇빛을 본 것 같아서 기쁨과 감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2005년과 2010년에 이어 세 번째 후보 지명에서 그래미상을 받았다.
용재 오닐은 6·25전쟁 직후 미국에 입양된 전쟁 고아 이복순(68)씨의 아들.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 뇌 손상으로 정신 지체 장애를 지닌 미혼모다. 수상 직후 그의 어머니는 용재 오닐에게 “스마트 키드(smart kid)”라고 칭찬했다고 한다. 어릴 적에는 워싱턴주 시골 마을에서 TV 수리점을 했던 아일랜드계 미국 조부모가 용재 오닐을 돌보았다. 요즘 말로는 한국계 ‘흙수저’ 출신인 셈이다. 그는 다섯 살 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고 열다섯 살에 비올라로 악기를 바꿨다. 용재 오닐의 양할머니가 10년간 그의 레슨을 위해서 왕복 200㎞를 손수 운전하면서 뒷바라지했다. ‘용재(勇才)’라는 한국식 이름은 줄리아드 음대 재학 시절 그의 스승인 바이올리니스트 강효 교수가 지어줬다. 용기와 재능이라는 의미. 지금도 한국에서 활동할 때는 ‘용재’라는 중간 이름을 꼭 넣는다.
용재 오닐은 스승 강효 교수가 창단한 실내악단인 세종솔로이스츠의 단원으로 한국 활동을 시작했다. 2007년에는 한국에서 젊은 동료들과 함께 실내악단 ‘디토 앙상블’을 창단해서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클래식계의 아이돌 스타로 떠올랐다. 2019년에는 타카치 4중주단의 멤버로 합류하는 등 대중성과 음악성을 겸비한 것도 그의 장점으로 꼽힌다. 2007년부터 마라톤을 시작해서 3시간 30분대의 기록을 지닌 준족(駿足). 2009년과 2010년, 2012년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에서도 세 차례 완주했다. 그는 “오르막길이 이어지는 구간이 많아서 힘든 코스지만 달리는 도중 아름다운 경치 덕분에 잊을 수 있었다”며 웃었다.
그의 그래미상 수상작은 그리스계 미국 작곡가 크리스토퍼 테오파니디스(54)의 비올라 협주곡. 2001년 9·11 테러 전후에 작곡해서 슬픔과 위안 등을 담은 4악장 형식 30여 분 길이의 작품이다. 현대 음악이지만 슬픔과 애잔한 정서가 투영되어 있다. 용재 오닐은 “테러 이전까지 바쁘고 정신없던 뉴욕이 잔인한 비극을 겪는 과정에서 슬픔과 희망으로 공동체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기억이 생생하다”면서 “음반 녹음을 하면서도 그 기억을 담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테러의 비극을 표현한 클래식 작품이 코로나 이후 팬데믹 시대의 위로를 담은 곡이 된 셈이다.
그래미상은 매년 팝과 록, 재즈와 클래식 등 80여 개 분야에서 시상한다. 한국에서는 소프라노 조수미(1992년 최고 오페라 음반), 음반 엔지니어 황병준(2012년과 2016년) 등이 클래식 부문에서 그래미상을 받았다. 올해 그래미상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수상이 유력시됐지만, 아쉽게도 본상 수상은 하지 못했다. 용재 오닐은 “뉴욕의 택시에서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듣고서 깜짝 놀랐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방탄소년단이 축하 공연을 하는 세상이 됐다”면서 “그들의 팬으로서 전 세계에 아미(방탄소년단의 팬들)가 있는 한, BTS의 수상은 시간문제일 뿐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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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효원
2021.03.15 23:46:33
이렇게 국민들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업적을 쌓는데, 망국적 집권 세력은 나라를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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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1.03.15 20:58:20
비올라라는 악기가 좀 애매한 점이 있지요. 굳이 말하자면 바이올린과 첼로의 중간음역대인데 별로 존재감이 없거든요. 유명 작곡가들의 작품 중에도 비올라 협주곡은 거의 없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에서도 잘 존재감이 들어나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바이올린은 정경화 장영주(사라장/미국 국적), 첼로는 지금 지휘자로 활동하는 장한나 등이 있지만 비올라 독주자는 사실상 없었습니다. 아마 한국 클래식 무대에서 비올라의 존재감을 처음 보여준 연주자가 용재 오닐 아닌가 싶습니다. 섬집아기 와 파가니니의 소나타를 음반에 담아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용재 오닐은 세계 최고라는 베를린필 오케스트라의 단원으로도 합격했던 걸로 알아요. 그런데 입단은 하지않고 독주자와 실내악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에 입단했다면 독주자 생활에는 지장이 좀 있었겠지요. 생활은 안정됐겠지만...나는 에네스 사중주단에 속한 줄 알았는데 타카치 사중주단으로 옮겼나요? 그건 몰랐네요. 앞으로 좋은 연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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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승열
2021.03.15 20:09:31
축하합니다. conOOatul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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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2021.03.15 19:56:42
리처드 용재 오닐...국내 활동이 뜸해서 어찌된 일인가 했는데(물론 코로나 영향이 크지만), 미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모양이네요. 모처럼, 용재 오닐에게 직접 사인 받은 CD를 들어봐야 겠습니다.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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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만
2021.03.15 19:49:39
장하다 축하합니다 용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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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준
2021.03.15 19:00:06
자신의 어머리는 '천사'라는 고운 마음의 아들.. 축하합니다.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