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경제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2015년 국가 부도 위기를 겪으며 경제가 곤두박질친 뒤로, 여전히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실업률은 25퍼센트에 육박했다.
이쯤 되면 모두가 자기 실속만 챙기느라 각박해질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의 선택은 달랐다.
그리스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아도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카페가 다.
커피를 마시러 온 손님들이 종종 자신이 마신 커피값 외에 한잔 값을 더 지불하곤 한다.
이른바 '서스펜디드 커피(Suspended coffe)' 다.
커피를 사 마실 돈이 없는 노숙자나 실직자 등 가난한 이웃을 위해 미리 돈을 내고
'맡겨두는 커피'다.
누군가를 위해 서스펜디드 커피값을 지불한 사람은 그 증표로 '힘내세요'와 같은 응원의
쪽지를 남겨둔다. 그러면 커피를 마시고 싶은 사람이 그 쪽지를 구매권처럼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 네 곳으로 시작한 서스펜디드 카페는 이제 그리스 전역에 걸쳐 백여 개가 넘는다.
그리스에서 처음으로 서스펜디드 카페 운동을
시작했던 알레판티스 씨조차도
서스펜디드 카페가 이토록 급속도로 자리 잡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처음에 이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직장과 재산을 잃고 집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나와서 커피 한 잔 하며
이웃과 어울리고 기분 전환을 하라는 것이었다. 동정이 아니라 관심 어린 선물이었다.
우리 삶에는 생존을 위한 빵뿐 아니라 삶의 아름다움이라는 장미도 필요하다.
힘든 누군가가 생존을 위한 투쟁 속에서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갖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모여 서스펜디드 커피라는 착한 소비를 가능하게 했다.
경제위기에도 서스펜디드 카페가 늘어나는 이유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이나 그러한 이웃을 생각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서스펜디드 커피가 처음 생겨난 것은 그리스가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에서였다. 당시 전쟁의 공포와 고통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생겨났는데 그 뒤로
한동안 잊혔다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계기로 다시 한 번 큰 붐이 일었다.
그리스에서뿐 아니라 미국,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세계 곳곳에서 서스펜디드 커피를
만날 수 있으며, 불가리아에서는 150개 이상의 카페가 동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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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명견만리〉 제작팀 저, ‘명견만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