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연장 또 불붙은 일본, 말도 꺼내지 못하는 한국 / 5/31(금) / 중앙일보 일본어판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난제
일본이 쏘아 올린 고령자 기준 70세 인상 논란이 한국에도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사회로 나아가는 상황에서 고령자 기준 상향, 정년 연장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 재계를 대표하는 경제단체연합회의 도쿠라 마사카즈 회장은 23일 일본 정부의 경제재정자문회의에서 고령자의 정의를 (현재 65세에서) 5세 연장하는 것을 검토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령자 기준을 높이면 65세 이상을 위해 만든 각종 사회보장제도(기초연금, 간병보험 등) 적용 기준도 70세 이상으로 올려 재정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고령자의 기준 상향 조정은 정년 연장과 양륜으로 되어 있다. 일본은 이미 2021년부터 기업에 70세 정년을 권고해왔다. 많은 일본 기업에서 65세가 넘어도 일하는 인구가 늘어나는 추세다. 스페인과 독일도 각각 2027년과 2029년을 목표로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늘릴 계획이다. 미국·영국은 아예 정년을 두지 않고 있다. 나이에 따른 차별이 되는 경우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한국에서 노인의 기준은 65세다. 1981년 경로우대라는 취지로 제정한 노인복지법을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65세 이상부터 국민연금·기초연금·의료급여는 물론 지하철 무임승차, 통신비 할인 등 각종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노인복지법 제정 당시 노인의 비중은 전체 인구의 3.8%, 기대수명은 66세였다. 현재는 노인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한다. 기대수명은 82.7세다. 정년은 물론 제정된 지 43년 된 고령자 기준도 올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최근 성인 남녀 1535명에 대해 질문조사를 한 결과 66.1%가 노인 기준(65세) 인상에 동의했다.
각종 복지 혜택을 받고 있는 고령자 기준은 65세지만 직장 근로기준법상 정년은 60세다. 2016년 58세에서 60세로 인상된 후 변화가 없다. 하지만 각종 통계가 일할 수 있는 나이를 올리지 않으면 '지속 불가능한 사회'에 들어갈 것이라는 경고를 재차 울리고 있다.
최근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장래 인구추계(2022~2072년)에 따르면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이 2022년 17.4%에서 2025년 20%→2036년 30%→2072년 47.7%로 늘어난다. 50년 뒤면 인구의 절반이 노인이 된다는 것이다. 반면 통계상 한창 일할 나이로 분류되는 생산가능인구(1564세) 비율은 2022년 71.1%에서 2072년 45.8%로 축소된다.
사실 이 문제는 중요하지만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노인 빈곤율(39.3%)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1위인 상황에서 노인 기준을 높이면 반발이 예상된다. 정년을 연장할 경우 청년 일자리가 줄어 '세대 갈등'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정부는 올해 말까지 연령제 개편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형식뿐인 것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수차례 추진해 흐지부지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김영선 경희대 노인학과 교수는 정부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단다고 볼 것이 아니라 정년 연장, 고령자 기준 상향 조정 문제도 연금 개혁 문제만큼이나 중요한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말했다.
기업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라도 노력해야 한다. 정년을 연장할 경우 기업의 부담이 커지는데, 이는 한국 기업의 임금체계가 거의 호봉제에 따른 연공서열형으로 짜여 있기 때문이다.
정승두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년을 늘리려면 현재의 임금체계를 업무와 생산성에 따라 급여가 다른 직무급 제도로 바꾸는 등 유연한 근무체계로 개편하는 작업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