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기루는 미완의 새로움, 만해 한용운
곽효환
북쪽으로 돌아앉은 성북동 한옥 심우장에서
여덟번 소실되었으나 아홉번 일으켜 세운 백담사에서
갔으나 가지 않은 아니 아직 보내지 아니한
사랑하는 님을 봅니다
수없이 많은 것을 버리고 또 버렸으나
마지막까지 버리지도 변하지도 않은 님의
처음의 마음을 헤아립니다
온몸을 던져 독립만세운동의 전위가 된
잠시나마 행복했던 그날
감옥으로 붙들려 가는 길목에서
님은 보았습니다
님이 끌려가는 자동차를 향하여
열두서너 살 되어 보이는 두 아이가
두 손을 높이 들고 부르는 만세를
일경에 떼밀려 개천에 떨어져서도 부르는 만세를
한 아이가 붙잡히는 것을 보고도 부르는 만세를*
목놓아 외치고 또 외치는 만세를
님은 비오듯 흐르는 눈물을 삼키며
만세소리를 가슴 가장 깊은 곳에 심었습니다
님이 무작정 오세암으로 출가했을 때보다
더 어린 아이들에게서
처음 품었던 마음을 다시금 보았습니다
망한 나라의 슬픔 가득한 백성이 사는 궁핍한 시대에
만주와 시베리아 벌판을 떠돌면서도
얼음장 같은 냉골에 누워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그 마음만은 내려놓을 수 없었습니다
그 마음으로
일신의 안위를 위해 어용화한 동료들을 향해
똥보다 송장보다 더 더러운 것은 네놈들이라고,
변절한 옛동지에게는 침을 뱉으며
내가 아는 그 사람은 벌써 죽어서 장송(葬送)했노라고,
지역주의를 앞세운 지도자를 향해서는
그것 때문에 이 나라가 자꾸 갈라지고 망한 것 같다고,
매섭게 노기를 뿜어내며 꾸짖을 수 있었습니다
북향집 담벼락 아래
손녀 같은 어린 딸과 나란히 앉아
나주볕에 해바라기하는 것과 같은
소박하지만 단단한 처음의 마음을
생을 다할 때까지 품고 지킨
님은 영원히 기루는 미완의 새로움입니다
갔으나 여전히 우리 곁을 떠나지 아니한
*한용운 산문 「평생 못 잊을 상처」(『조선일보』 1932. 1.8.) 참조.
----애지 가을호에서
곽효환(郭孝桓)
- 시인,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 1967년 전주 출생
- 1996년 『세계일보』에 「벽화 속의 고양이 3」 을 발표하고, 2002년 『시평』에 「수락산」 외 5편을 발표하며 작품활동 시작
- 시집 『인디오 여인』, 『지도에 없는 집』, 『슬픔의 뼈대』, 『너는』 등
- 저서 『한국 근대시의 북방의식』, 『너는 내게 너무 깊이 들어왔다』 등
- 편저 『이용악 시선』, 『구보 박태원의 시와 시론』, 『아버지, 그리운 당신』『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백석 시그림집』, 『이용악 전집』(공편), 『청록집 ―청록집 발간 70주년 기념 시그림집』, 『별 헤는 밤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시그림집』 등
- 고대신예작가상, 애지문학상, 편운문학상, 유심작품상, 김달진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