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과학의 역사》
이 책은 -창의적인 삶을 위한 과학의 역사- 라는 부제가 붙기는 했어도 ‘과학의 역사’도 인류의 역사만큼 방대하고, 길고, 복잡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 ‘월리엄 바이넘’교수는 런던 ‘웰컴의학사연구소’명예교수이자 진화론자로서 그는 서양인이면서도 과학의 기준을 서양이 아닌 보편성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학사라면 보통 서양 중심으로 되어 있는 것과 달리 “우리는 숫자는 인도에서 종이는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구구단은 동양에서 만든 아주 오래된 선물을 사용하는 셈이다.”라고 하였다. 서양인 우월주의나 동양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기원전 484년경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이집트 나일강 상류지역을 여행하고 그곳의 구조물 ‘피라미드’와 ‘석상(스핑크스)’등을 보고 크게 놀랐다고 기록했다. 당시 이집트는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는데, 그리스는 이집트보다 훨씬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발전 중이고, 활기가 넘치는 사회인 것을 그는 느꼈다. 그로부터 1세기 후에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집트를 지배했다. 이집트 역사는 왜 다시는 부활하지 못했을까? 하는 궁금증을 헤로도토스도 가졌던 것이다.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진 탈레스(기원전625∼기원전545년)는 로마령 - 지금의 키르키예 해안 - 에서 태어났다. 상인이면서, 천문학자, 수학자였던 그는 천문을 보고 농사가 잘될 것을 미리 알았고 올리브 압착기를 사들여 두었다가 임대해 많은 돈을 벌기도 하고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기도 했다고 한다.
시칠리아 출신인 엠페도클레스(기원전500∼기원전430년)는 우주의 4대 요소를 ‘공기·땅·물·불’이라고 했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도 인정했다. 이것이 지금도 익숙한 이유는 이후 2000년 동안 기본적으로 이 사실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원자도 원소도 발견되기 이전이었으니 당연했던 것이다.
의사가 되려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해야 하는 나라가 지금도 있듯이 그의 영향력은 의학계에서는 매우 크다. 지금까지 전해지는 그의 논문에는 그 시대에 행한 의료행위 전체를 다루고 있으며, 주제가 다양할 뿐 아니라 오래전에 쓰였다는 사실이 놀랍다. 히포크라테스는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가 태어나기 이전에 로마 ‘고스’라는 작은 외딴섬에서 태어났다. 그의 저서는 대부분 훨씬 후대에 편집된 사본이긴 하지만, 이것이 서양 의학의 기초를 놓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들의 이론이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질병도 초자연적인 원인 때문에 생겼다고 할 수 없다는 확고한 신념, 건강과 질병은 체액 때문이라고 한 때문이다.
열이 나면 땀을 흘리고, 감기에 걸리면 호흡기 염증이 생기고 콧물을 흘리면서 기침을 하며 가래가 나온다. 배탈이 나면 토하거나 설사를 해서 체액을 밖으로 내보낸다. 끍히거나 베이면 피부에서 피가 난다. 흔했던 말라리아를 비롯해 체액을 만드는 장기에 영향을 주어 여러 가지 질병은 황달을 유발하기도 한다. 히포크라테스주의자들은 체액을 신체 장기와 관련시켰는데, 혈액은 심장, 황담즙은 간, 흑담즙은 비장, 점액은 뇌와 연결되어, 혈액은 습하고 뜨겁고, 황담즙은 뜨겁고 건조하며, 흑담즙은 차고 건조하다고 보았다. 실제로 아픈 사람들은 이런 증상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현상으로 체액의 균형을 중요하게 본 히포크라테스 의학을 진료에 적용할 경우, 체액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방법이라고 하나 그것을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뒤에 태어난 갈레노스(129∼210년)는 아우렐리우스 황제와 전장에도 동행한 주치의였는데, 흔히 황제의 저서로 알려져 있는 《명상록》은 갈레노스가 쓴 것이다. 갈레노스는 해부학에도 관심이 많아 동물의 사체를 해부하고 인간의 해골을 탐구했다. 물건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기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알기 위해서는 그것을 분해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안 모양이다. 인간과 동물의 몸을 이해하기 위해서 갈레노스는 여러 가지 동물을 해부하고 해체했다.
후에 안드레아스 바실라우스(1514∼1564)는 벨기에 브뤼셀에서 태어난 의사로 그는 해부에 매료되어 해부도를 만들어 출판하기도 했는데, 바실라우스는 인체묘사도를 제작한 최초의 인물이다. 그림이 글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이다. 시신을 절개한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일이 아니다. 죽은 사람은 금방 부패하고 냄새 또한 역겹다. 바실라우스가 살던 시대는 시신이 썩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었고, 1700년대에야 방부제가 발명되었다.
망원경과 현미경은 과학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하다. 렌즈 2개를 합쳐서 만든 망원경은 쌍안경과 비슷하지만, 15배로 확대할 수 있는 망원경은 맨눈으로 보이지 않는 배를 훨씬 일찍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매끈하다고 여기던 달 표면이 산山과 분화구로 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목성에도 달처럼 위성이 있다는 것을 찾아내게 했다. 1615년 갈릴레오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책으로 출간했으며 “성경은 천국에 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지만 천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다. ‘갈릴레오’갈릴레이는 아이작 ‘뉴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처럼 성으로 불리지 않고, 이름으로 불리는 유명인 중 한 사람이라는 것도 기억해 두자.
코페르니쿠스로부터 갈릴레오까지 100년 동안은 과학이 세상을 뒤집어 놓았다. 지구는 더 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이 알려지고 해부학, 생리학, 화학, 물리학으로 고대인 철학자들이 모든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며, 여전히 알아야 할 것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은 케임브리지 법대를 나와 법률가로 대법관까지 올랐음에도 과학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다. 그는 지식을 얻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과학이라고 했고 ‘실험과 관찰을 반복해 결과를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는 〈귀납법〉이 자연의 작동방식으로 해야 한다고 했다.
뉴턴에 의해 물체 이동의 원리와 ‘만유인력의 법칙’이 밝혀졌음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우레가 치면서 천둥과 번개 속에서 벼락이 떨어지는데 겁을 먹기도 하고 그 원인과 결과에 대해서 공포를 느꼈다. 벤자민 프랭클린(1706∼1790)은 미국 독립선언서 작성에 참여한 미국 건국자로 그는 ‘시간은 돈이다.’‘이 세상에 죽음과 세금 말고 확실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등 소박한 지혜가 담긴 말을 남겼는데, 독학으로 공부했으나 상식이 풍부했고 전기에 대한 호기심도 많았다. 물체는 양전기와 음전기를 띤다는 것을 알고(+,-), 두 개의 납 조각 사이에 유리병을 놓아 일종의 전지(밧테리)를 만들었다. ‘전지’라는 말도 그가 처음 사용했다. 기계에서 만들어지는 불꽃과 하늘 불꽃의 차이를 연구하던 중 구름덩이 2개가 부딪힐 때 일어나는 전기가 방전되어 번개라는 것이 일어났다. 이에 폭풍 속에서 연을 날리면 자신의 생각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며 실험을 계속하다가 사람이 죽는 실패를 거듭한 끝에 뾰족한 막대기가 땅으로 전기를 흘려보내는 것을 보여주며 막대기를 건물 꼭대기에 설치해 절연된 전도체를 땅에 연결하면 건물이 설령 번개를 맞더라도 불이 붙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피뢰침’으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으며 세탁기, 냉장고 등에도 전하를 없애주는 절연된 철사 조각 ‘접지’가 사용되고 있다.
태양과 지구, 행성들로 이루어진 태양계는 몇백 만년 전 엄청난 폭발이 일어나 거대하고 뜨거운 가스 덩어리를 방출하고 있고 그것이 점차 식어 행성(위성)이 되었다. 빅뱅 이론인 ‘성운설’에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복잡한 수학적 계산을 통해서 알아낸 인물이 라풀라스다. 그는 우주 전체가 가장 잘 만들어진 시계처럼 작동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가 생각한 태엽 장치 같은 우주라는 것은 이후 100년 동안, 어쩌면 지금까지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피에르 시몽 드 라풀라스(1749∼1827)는 프랑스 혁명 이후 나폴레옹의 존경을 받고, 반세기 동안 프랑스 과학계를 대표했다. 그는 수학적으로 행성, 별, 혜성, 소행성이 미래에는 어떻게 움직일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산소라는 이름을 짓고, 현대과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투안 로앙 라부아지에(1743∼1794)는 프랑스 혁명으로 참혹한 죽음을 맞은 인물이다. 체포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당했는데 ‘세금 징수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창 시절부터 과학을 무척 좋아해 결혼도 과학도인 피에레트 폴즈와 했다. 폴즈가 14살, 라부아지에가 28살일 때다. 둘은 잘 맞았고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같이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화학교과서〉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최초의 현대적 교과서로 실험과 장비에 대한 정보와 원소의 성질에 대한 고찰도 담겨 있다. 지금은 원소를 화학실험에 의해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이라고 하지만, 화합물은 여전히 원소의 조합으로 적합한 실험을 통해 쪼갤 수가 있다. 물은 산소와 수소 두 원소로 이루어진 화합물이다. 이런 내용이 화학교과서에 실려 있다. 라부아지에 이후 화학에서는 공통된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는데 그가 “우리가 말이라는 매체를 통해서만 생각한다.”고 한 영향이다.
원소는 원자들로 이루어지는데 원자도 전기의 일부다. 바닷물 용액에서 나트륨은 음극으로, 염소는 양극으로 이동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1821년 9월 영국의 왕립연구소에서 일하던 페러데이는 역사상 유명한 실험으로 자성을 띤 바늘로 실험하던 중 바늘이 전류가 흐르는 철사에 둘러싸이면 계속해서 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코일에 전기가 흐르면 자기장을 만들어 바늘을 계속 끌어당기기 때문에 돌고 도는 것이다. 처음으로 전기에너지를 역학 에너지로 바꾼 실험이었다. 모든 전기모터, 세탁기, 디스플레이어, 진공청소기 등 전기가 동력으로 전환되는 원리가 바로 이것이다. 페러데이는 이후 30년 동안 전기와 자기를 연구했다.
‘공룡(恐龍)’이라는 이름은 ‘공포스럽게 큰 도마뱀’이라는 뜻이다. 이는 1842년 영국뿐 아니라 세계 다른 곳에서도 여러 종류의 공룡화석이 계속 발견되자 이름을 새로 지은 것이다. 공룡이 지구 생물 역사에 포함되기에 이르렀고 그들이 생존한 시기는 화석과 함께 발견된 암석으로 측정이 가능했다. 공룡 이름을 지은 리차드 오언(1804∼1892)은 정원사이자 건축가로 런던 자연사박물관 건립의 기초를 닦았는데 자연사박물관에는 지금도 공룡 전시실이 따로 있고, 여러 종류의 공룡이 전시되어 있다. 1851년에는 엑스포와 비슷한 〈세계박람회〉가 런던에서 개최되었는데, 이때 박람회장의 전시장으로 만든 ‘수정궁’이 높이 33m, 가로 124m, 세로 563m 건물로 지어졌다. 유리와 철제로 지어졌다는 것이 지금이라면 몰라도 당시로서는 경이로웠다. 이후 6개월 동안 600만 명이 몰려왔다고 하는데 이제는 “2030 엑스포는 부산에 유치해!”라고 외쳐본다.
연못의 물 한방을 뜨다 현미경으로 관찰하면 작은 미생물이 득실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들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영양상태를 갖춘 환경에서 화학적 과정을 거쳐 생기거나, 발생한 것이다.’는 것이 19세기까지 일반적 생각이었고, 이치에도 맞는 것처럼 보였다. 고깃덩이가 부패하면 역겨운 생명체가 생긴다는 것 말고는 더 잘 설명할 방법이 없다. 일종의 자연발생설이다. 1850년 프랑스 과학계가 자연발생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것을 설명한 이는 화학자인 루이 파스퇴르(1822∼1895)였다. 그는 무생물에서 생물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심하고, 화학반응이 원인이라는 자연발생에서도 살아 있는 어떤 미생물이 관여하는 것일지 모른다고 의심했다. 파스퇴르는 밀짚과 물을 끓여 살균한 다음 공기와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입자에 노출시켰다. 그리고 액체를 며칠 뒤 관찰하자 미생물이 득실거렸다. 미생물은 공기 자체가 아니라, 먼지 입자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는 더 많은 실험을 했다.
사람이 죽기도 하고, 꼼보로 만들기도 했던 천연두는 무서울 만큼 매운 전염병이었다. 영국의 한 시골 의사에 의해 예방약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어디서 본 이야기 같은데, 농사나 가축을 기르다 보면 탄저병의 위험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사람에게도 번진 이 탄저병에 파스퇴르는 우두 약을 사용하고자 했으나, 실험대상을 찾지 못해 탄저병 박테리아를 약하게 만드는 방법을 개발했다. 박테리아라를 증식시키기 위해서는 적합한 조건이 필요했으며, 오랜 연구 끝에 탄저병 박테리아의 힘을 대폭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는 스승 제너를 예우하는 의미에서 약해진 박테리라를 ‘백신’이라고 불렀다. 세균·바이러스·기생충 이것들이 얼마나 적응력이 뛰어나고 교활한지 그는 알고 있었다.
학교에서 배울 때도 어려웠지만, 양자역학에서 양자·전자·중성자 이런 것들은 물리학자 아닌 이상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원자핵 구성요소 중 중립적 입자인 중성자의 수가 다른 경우에는 ‘동위원소’라고 한다. 동위원소는 동일한 원소 중에서 원자량이 다른 원자를 말한다. 수소도 가끔 원자량이 1이 아니라, 2인 경우가 있는 것처럼, 전자 1개와 함께 중성자가 있을 때가 그렇다. 체드윅(1891∼1974)은 중성자 역할을 발견함으로써 노벨상을 수상했다. 많은 사람들은 중성자 발견으로 우주의 구성요소인 원자구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놀라운 발견이 아직 남아 있었다. 전자·양성자·중성자에 대한 기본적 이해는 파동과 알파선, 베타선, 감마선 같은 입자를 더 연구해야 했다. X선과 양자들의 묶음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 일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들은 20세기 핵물리학과 양자물리학에서 각광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독일의 특허청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이미 노벨상을 탔던 아인슈타인(1879∼1955)은 질량(m)과 에너지(E)의 관계를 ‘E=mc²’으로 해석했다. 여기서 c는 빛의 속도다. 사실상 질량과 에너지가 물질의 중요한 두 측면이라는 것을 입증한 것이다. 빛의 속도는 무척 큰 수고 그것을 제곱하면 더 커지기 때문에 질량이 아주 작은 물질이라도 완전 에너지로 전환하면 아주 큰 에너지가 된다는 뜻이다. 원자폭탄도 질량의 극히 작은 부분만 에너지로 전환한다. 사람 몸무게만큼을 완전한 에너지로 전환하게 되면 대형 수소폭탄 15개를 만들 수 있다는 가설이 가능한 것이다.
같은 독일 출신인 물리학자 막스 플랭크(1858∼1947)의 에너지 묶음과 함께 같은 양자와 질량과 에너지가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은 아인슈타인의 이름을 영원히 남게 했다. 이들의 발견으로 우주를 이해하는 방식을 변화시켰고, 질량과 에너지, 파동과 입자, 시간과 공간 같은 개념이 이루어진 자연은 ‘이것’이나 ‘저것’이 아니라 ‘두 가지 모두’일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냈다. 이런 개념은 원자의 구조와 우주의 탄생을 설명한 역할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길을 찾는 것을 도와준다. 위성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서 위성항법에서 특수상대성이론을 적용해야 하는 것과 같다.
책 머리말에서 저자는 과학의 역사가 서양인의 전유물이 아닌 것처럼 말했지만, 결국 이 책은 서양사를 보는 듯한데, 그만큼 사실관계가 분명하기 때문일지 모른다고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제목에서 침팬지는 게놈 98%가 인간과 같다. 둘이 공동 조상을 가진 것은 1억 5천만 년 전쯤이지만, 그들은 왜 인간으로 진화하지 못했을까? 침팬지·고릴라·우랑우탄들을 유인원이라고 부르고 같은 호미니드(Hominid) 과에 속한다. 이들 4종은 모두 같은 조상을 가졌다. 인간은 이들과 사촌이긴 하지만, 거슬리는 면이 없지는 않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위대한 존재의 고리」에 침팬지를 인간 바로 아래에 위치시켰던 이유는 ‘빠진 고리’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전설처럼 생각하는 –지금은 멸종된- 털북숭이 매머드와 검치호랑이는 석기 시대 우리 조상들과 같은 시대에 살았던 것을 화석으로 알 수 있다. 이에 대해 다윈의 친구이던 헉슬러(1825∼1895)는 다윈의 진화론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 종에 속하지 않는 최초의 호미닌이라고 했다. 호미닌은 오늘날의 인류와 멸종한 우리 조상 모두를 말한다. 이 말은 다윈의 생명체 가계도가 확장될 뿐 아니라 점점 더 채워지는 느낌을 준다. 네안데르탈인은 우리와 무척 비슷하지만, 다른 면도 있었다. 눈두덩이가 거대했고, 비강(鼻腔)도 현대인보다 훨씬 넓었다. 사지의 비율도 달랐고, 심지어 다른 종이 아니라 기형일지도 모른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을 매장한 최초의 호미닌이었다.
근본적인 인간의 조건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에 인류학자들은 동굴에 살면서 불과 석기, 무기, 조리도구를 사용했다는 점을 들었고,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에서 수렵채집인들이 무리 지어 살았다는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모든 인간 사회가 공통된 사회적 발달 단계를 거쳤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사회적 관행, 종교, 관습, 미신 그 밖의 여러 가지로 가족 구성 방식을 가졌던 것이다. 1890년까지 발견된 모든 인간의 화석을 호모 사피엔스로 간주했다. 그러나 네안데르탈인의 정체는 여전히 불확실하다. 네덜란드의 인류학자 외젠 뒤부아(1858∼1940)는 우랑우탄 서식지 동인도제도를 탐색하던 중, 자바(인도네시아)에서 직립 보행한 화석 두개골을 발견했다. 뒤부아는 이를 ‘자바원인’이라고 불렀고, 이 무렵 프랑스 크로마뇽에서 발견된 인간뼈를 통해서 보행이 먼저였을까? 아니면 큰 두뇌가 먼저였을까? 그도 아니면 언어와 집단생활이 먼저였을까? 하는 의문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1924년 발견된 ‘아프리카 남쪽의 원숭이’라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프리카누스’는 240∼300만 년 전의 화석이었다. 그리고 1970년대에는 메리 키카가 화산재 속에서 인간의 발자국이 발견되었는데, 360만 년 전 것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1978년 에티오피아에서 절반 이상 모습을 드러낸 루시라고 이름 붙였던 인류의 조상은 300∼400만 년 전에 살았던 것으로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속으로 초기 종임이 판명돼 ‘아파르 원숭이’라고 불렀다. 루시는 직립보행을 하고 침팬지보다 덩치가 크지 않지만, 뇌는 약간 컸다. 혼합된 특징을 갖고 있었으나 ‘인간 같다’고는 할 수는 없었으며 나름대로 성공적인 생명체였다.
네안데르탈인과 현대인과의 관련성도 흥미로운 과제인데, 이들 두 종은 5만 년 전쯤 같은 시기에 유럽에서 산 것이 확실하다. 현대인인 우리는 그들의 유전자 일부(4%)를 갖고 있다. 그들은 호모 사피엔스 때문에 멸종한 것일까? 두 종은 교배를 했을까? 아마 그럴 것이라고 보지만, 마지막 빙하기가 덮쳤을 때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모두 혹독한 고통을 겪을 때 여기서 네안데르탈인은 살아남지 못했다. 어쨌거나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호모 사피엔스 호미닌은 처음 아프리카에서 살다가 점차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호미닌은 아직 밝혀내지 못한 부분이 많다. 아프리카에서 여러 차례로 나누어 이동했을까?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유인원과 달리 큰 뇌를 갖도록 빠른 속도로 진화한 계기가 있었을까? 다른 유인원들도 의사소통은 하지만, 말은 하지 못하는데 원인이 무엇일까? 과학은 그 무엇의 이유가 아닌 방식을 다루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아 둘 필요가 있겠다.
사망률이 100%에 가까운 에볼라와 에이즈가 퇴치되고, 코로나19도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생긴 것일까? 당연히 항생제인 백신 개발 덕분이다. 백신은 누가 어떻게 만든 것일까? 지구상에는 5에다 0을 30개 묶은(500량) 놀라운 수의 박테리아가 존재한다. 극지방 얼음이나 간헐 온천 끓는 물, 우리 몸속 어디서든 살 수 있는 것이 그들이다. 그들은 우리의 소화를 도와주지만, 그들이 소화한 쓰레기는 어떻게 될까? 박테리아는 다른 미생물인 곰팡이와 더불어 유용한 약을 만드는 데 쓰이기는 하지만, 질병과 염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독일에서 영국으로 망명한 에른스트 체인(1906∼1979)은 최초로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상을 수상했다. 항생제는 미생물이 다른 미생물을 죽이도록 만든 물질인데, 그 물질을 이용한다는 것은 자연에서 항상 일어나는 일을 우리의 이득을 위해 제어한다는 뜻이다. 자연에 원래 존재하는 곰팡이나 진균류(眞菌類)인 페니실리움 노타툼을 정제한 것이 페니실린이며 오래된 빵에 생기는 푸른곰팡이, 버섯에도 진균류가 있다.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은 감염성 질환을 치료하는 항생제로 화학 약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물론 이후 이런 약 덕분에 질병을 박멸할 수 있는 의약의 힘에 낙관적 생각을 하게 되었다.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의심할 여지 없이 부모나 조부모보다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걸리면 몇 년 안에 죽었던 당뇨병은 위장 근처 췌장에서 인슐린을 만드는 특수 세포가 활동을 멈추면서 발생하는 질병이다. 인슐린은 혈당(혈액안 포도당)의 양을 적절히 유지해 주는 호르몬으로, 화학적 ‘전달자’ 역할을 하는 물질이다. 페니실린 발견이 행운이었다면, 인슐린 주사제는 인체의 기능에 대해 힘겹게 연구한 결과물이다. 만약 이 주사제가 없었다면 죽었을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잇고 있다. 1921년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프레더릭 밴팅(1891∼1941) 교수와 조수 찰스 베스트는 개의 췌장에서 인슐린을 추출해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것을 췌장을 제거한 실험동물에 투여하자 동물이 당뇨병에서 회복되었다. 그러나 인슐린이 환자의 정상적인 생활을 안겨 주는 것은 아니다. 환자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규칙적으로 인슐린을 주사해야 하고, 소변 검사를 해야 하고, 10,20년 지나면 초기 당뇨병 환자는 다른 건강상 문제로 고통받기 시작한다. 심부전, 심장병, 시력 저하, 다리 궤양이 나타나므로 평생 관리하는 질환으로 바뀐 것이다.
현대인의 식생활은 설탕과 가공식품이 지나치게 많아 비만이 세계적인 유행병이 되었다. 의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혈당 수치를 조절하는 우리 몸의 원래 기능보다는 못할 수밖에 없다. 이제 환자가 약을 처방대로 먹지 않거나 잘못된 용량을 처방받으면 병균이 내성을 키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약을 오용해도 그런 일이 일어난다. ‘예방이 치료보다 낫다’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질병은 미생물인 박테리아에 의해 발생 되지만, 이제 유전자가 DNA(디오시리보핵산)와 RNA(리보핵산)에 의해 구성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로써 질병의 원천에 대한 생각을 바꿔놓았다. 호르몬인 인슐린 단백질이 혈당을 조절하는 방법을 밝혀냈고, 현대인들이 매우 두려워하는 암을 이해할 수 있게도 되었다. 모든 암은 몸 전체에 퍼질 수 있으므로 전신 질환일 수 있다. 시작은 단 하나의 돌연변이 세포가 분열을 멈춰야 할 때 멈추지 않아 발생한다. 통제 불능인 이 세포는 탐욕스러워 신체의 양분을 다 소모하고 중요 장기에 퍼져, 세포가 장기 기능을 방해해 질병을 일으킨다. 진행을 늦추거나 멈추게 하려면, 이런 일이 분자 차원에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밝혀야 한다.
인간처럼 크고 복잡한 동물을 대상으로 연구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분자생물학자들은 더 단순한 유기체로 연구하는데, DNA와 RNA에 대한 초기 연구는 대부분 박테리아로 하고, 암 연구는 쥐 같은 동물을 이용한다. 여기서 얻은 것을 인간에게 적용하고 해석하는 일도 쉽지 않지만, 현대과학은 이런 식으로 발전해왔다.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우리의 운명을 통제하는 분자가 DNA라는 것이 밝혀졌다. 그래서 더 많은 질병이 통제되고 있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암, 심장병, 당뇨병, 치매 등 주요 사망 원인의 질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약이 개발될 것이다. 과학자들의 연구 덕분에 더 건강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 더 오래 살아야겠지만, 오래 사는 것도 문제가 많을 수밖에 없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장치가 컴퓨터인데 영원히 보존할 수 있어 좋다고 생각한다. 이런 컴퓨터가 처음에는 계산을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컴퓨터를 첨단 기술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미 19세기에 영국의 수학자 찰스 배비지(1792∼1871)에 의해 계산을 위한 프로그램 기계가 고안되었으므로 오래된 역사를 갖는다. 이 무렵 데이터를 읽어 정보를 처리할 수 있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암호 메시지를 풀기 위해 사용되었다. 1989년에는 정보관리의 총아로 불리는 ‘월드와이드웹(www)’이 컴퓨터에 미쳤던 팀 버너스 리(1955∼ )에 의해 발명되어 이것이 대중에게도 공개되면서 직장뿐 아니라 가정에서, 개인도 컴퓨터(pc)를 사용하게 되었다. 버너스 리가 태어난 1955년은 매우 중요한 해로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이 해에 태어났으며 모두 부자가 되었고 이 분야에서 군림했다. 현대과학은 컴퓨터 없이 생각할 수 없다. 신약 개발, 기후 변화에 이르기까지 근본적인 수많은 과학 문제를 컴퓨터에 의존하고 있다. 이제 세계는 훌륭한 과학자도 필요하지만, 더 나은 세계를 만들도록 감시하는 훌륭한 시민도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